1974년 ‘스피릿인더우즈(Spirit-in-the-Woods)’라는 청소년 예술캠프에서 만난 여섯 명의 청소년들이 중년이 되기까지 그들이 겪은 삶의 단면을 차례차례 비춰나간다. 그리고 재능에 대한 기대와 실망, 사랑과 우정의 불분명한 뒤섞임을 지나, 돌아보면 저마다 흥미로웠던 인생의 한때를 포착하고 있다.
메그 월리처의 『인터레스팅 클럽』은 각자의 삶 속에 찾아오는 결정적인 한 순간에서 시작한다. 가난한 농장 주택에 살고 있지만 장학금을 받은 덕분에 예술캠프에 참가해 여태껏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 열다섯 살 줄스는 그곳에서 연극 연출가를 꿈꾸는 애시, 애시의 오빠이자 불안하고 위험한 미소년 굿먼, 전설적인 포크송 가수인 어머니로부터 받은 음악적 재능을 트라우마 때문에 썩히고 있는 게이 소년 조나, 무용수를 꿈꾸지만 가슴이 너무 커서 그 꿈이 불투명해 보이는 캐시,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천재적인 애니메이션 작화 재능을 타고난 이선을 만난다.
“우리 매년 여름 여기서 이렇게 만나자. 우리 모임에 뭔가 이름을 붙여야겠는데.”
“우리가 얼마나 말도 못하게 흥미로운지 온 세상이 다 알도록?” _10쪽
줄스가 참여한 예술캠프 ‘스피릿인더우즈’는 예술가 지망생들에게는 유토피아와 같은 곳이다. 줄스를 비롯한 애시, 굿먼, 조나, 캐시, 이선은 스스로를 ‘이 세상에서 제일 끼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인터레스팅스’라는 이름의 모임을 결성한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겠지만 바로 이날, 줄스를 포함한 인터레스팅스 멤버들은 평생지기를 얻었고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캠프에 참여해 세 번의 여름을 함께 보낼 때까지만 해도 인터레스팅스 멤버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생경한 순간들을 마주하며 저마다의 특별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집안형편과 사회적 계층, 사건사고, 인간관계들로 인해 인터레스팅스 멤버들의 인생 좌표는 크게 달라진다. 예술적 재능은 성공과 좌절로 갈리고, 순간의 결정들은 삶의 방향을 바꿔버린다.
특별함에 가려진 평범한 삶의 가치
“특별함은 모두가 원하는 거잖아. 그렇지만 젠장, 대부분의 사람한테는 재능이 없다는 거, 그게 가장 본질적인 거 아냐?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해. 자살이라도 해?”_655쪽
인터레스팅스 멤버들 가운데 예술적 재능이 장래를 결정한 사람은 이선과 애시, 딱 두 사람뿐이었다. 굿먼과 캐시는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멤버들과 멀어졌고 조나는 아예 이공계로 진로를 틀어 MIT에 진학해 졸업 후에는 장애인을 위한 로봇을 만들었다. 줄스는 20대까지는 희극 배우의 꿈을 접지 않고 애시와 함께 연극학교를 다녔지만, 애시와 달리 본인에게는 재능을 펼칠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심리치료사가 된다. 이선은 오빠 굿먼의 일로 몹시 괴로워하던 애시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다가 그녀의 연인이 되었고, 두 사람은 결혼에까지 이른다. 애시는 페미니스트 연극 연출가로, 이선은 [심슨스]에 맞먹는 걸작 [피그랜드]를 탄생시킨 애니메이터로 성공해 명예와 함께 엄청난 액수의 돈을 벌어들였고, 아동 노동 반대를 위한 기부 단체도 운영하고 있었다.
줄스는 평생지기 친구로서 이선과 애시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했지만, 한편으로 불쑥불쑥 치솟는 질투감과 자괴감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녀 곁에는 우울증을 극복하고 초음파 기술자로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남편 데니스가 있고, 본인도 내담자들이 의지하는 좋은 심리치료사로 자리 잡았지만, 애시와 이선과 같이 예술적 재능을 살린 ‘특별한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하다는 생각에 항상 어느 정도의 공허함을 느낀다. 줄스는 본인도 애시처럼 유년기부터 문화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가정에서 자랐으면 어땠을지, 이선처럼 가난한 아마추어 시절 누군가(이선의 경우는 장인)로부터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았더라면 어땠을지 생각하곤 했다. 줄스는 어느 날 남편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난 늘 재능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언제나 돈이 문제였는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계급’이거나. 아니 정확히 말해 계급이 아니라 연줄일 수도 있고.”
그러나 저자 메그 월리처가 『인터레스팅 클럽』을 통해 재능을 미처 펼치지 못하고 좌절감에 빠진 한 여인의 뒤틀린 심정만을 그리려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인터레스팅스 멤버들과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재능에 대한 기대 없이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자 하는 데니스라는 인물을 줄스의 곁에 두었다. 애초에 줄스는 주변의 예술가 지망생들과 달리 “검은 머리에, 덩치가 크고, 남성적이고, 세련된 미학에 대한 사적인 욕구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꾸밈’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데니스에게 매혹됐다. 줄스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본인의 예술적 재능을 펼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우울함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인터레스팅스에서 비롯된 환상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만들어준 이가 바로 그였다. 줄스는 데니스가 재발한 우울증을 극복하고 삶을 견뎌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차츰 깨닫는다.
“솔메이트하고 결혼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인터레스팅스’와 결혼할 필요도 없었다는 걸. 언제나 눈부시고 화려한 사람, 불꽃놀이를 펑펑 터뜨리는 사람, 모두를 빵 터지게 만들거나 모두가 자기와 자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 아니면 기립 박수를 받는 연극을 쓰고 또 직접 출연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었다. 흥미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 관념 자체에 이제는 강박적으로 집착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무튼, ‘흥미롭다’는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 그녀에게는, 이미 달라졌다.” _676쪽
게다가 정말 특별해 보이던 애시와 이선 커플도 언제나 행복한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선은 자폐-스펙트럼 증후군 진단을 받은 아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시는 법적인 처벌을 피해 숨어 사는 굿먼 때문에 골머리를 썩인다. 저자는 인물들의 꿈으로 충만했던 10대 시절부터 질곡의 세월을 거쳐 성숙해진 50대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그리며, 그 어떠한 인생도 결코 가볍거나 평범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개인의 삶과 현대사의 흐름이 맞물려 돌아가는 일상의 대하드라마
“그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닉슨이 축축하고 느릿한 자취를 남기고 휘청거리며 하야할 테고, 주인장이 식당에 질질 끌고 들어와 설치해놓은 낡은 파나소닉 텔레비전으로 캠프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그 장면을 지켜볼 테다.”_12쪽
소설 『인터레스팅 클럽』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코드는 바로 세월의 흐름 속에 녹아 있는 온갖 사회적, 역사적 사건들이다. 작품 속 인물들이 10대 시절 인터레스팅스 모임을 결성하고 쉰 살을 훌쩍 넘을 때까지, 저자는 인물들의 개인적 삶의 행적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비교적 최근인 2010년에 이르기까지 미국 현대사를 이루는 여러 사건들을 함께 다뤘다. 개별의 삶을 본격적으로 파헤치는 데, 그 당시 사회역사적 흐름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술캠프 ‘스피릿인더우즈’의 주인은 “늙어가는 사회주의자들의 작고 쇠락하는 세계 속에서 전설로 통하는 연로한 사회주의자 매니와 에디 운덜리히”이며, 매해 캠프에서 공연하는 조니의 엄마 수재나와 그의 동료는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곡을 써서 당시에 큰 인기를 얻었다. 굿먼과 캐시가 인터레스팅스에서 떨어져나가게 한 사건 당일은 건국 200주년 전야로, 이선은 저물어가는 1975년을 마치며 본인의 카툰에 베트남에서 미국의 실패와 군사적 후퇴 장면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인터레스팅스 멤버들은 연락이 끊겼던 캐시를 9.11 테러 사태 이후 그와 관련된 뉴스 인터뷰를 통해 다시 만난다. 히피들이 자유와 반전을 부르짖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2000년대에 이르는 동안, 사회문화적 기표들은 직간접적으로 인터레스팅스 멤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메그 월리처는 각 인물들과 현대사 속 여러 사건들을 어색하지 않게 잘 맞물려 풀어냄으로써 시대의 대기 속에 젖어드는 개개인의 삶을 날카롭게 포착해냈다.
『인터레스팅 클럽』 속 인물들은 나와 우리를 닮아 있다. 작품에는 젊음이라는 뜨거운 열기에 힘을 받아 마음껏 솟아올랐던 꿈의 궤도를 다시 현실에 맞게 조정하거나 아예 틀어버리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우리의 삶이 겹쳐진다. 평범해 보이지만 각자 들여다보면 너무나 흥미로운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터레스팅 클럽』은 그 자체로, 너무나 흥미진진한 소설인 것을.”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