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환의 it읽기] 달항아리, 무심함의 미학 ‘달멍’
에이빙(AVING) 기사 입력 2024.02.16.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핫플레이스 만큼이나 높은 인기를 자랑하며 방문 관람객이 늘고 있다. 갑작스레 박물관에 새로운 기능이 생겼을 리는 없고, ‘달멍(달항아리 보며 멍 때리기)’ 영향이다.
관람객들은 달항아리가 보여주는 넉넉함과 무심(無心)의 미학이 스트레스 탈출에 효과가 있다는 반응이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온갖 정치·사회 뉴스는 시종일관 현대인의 귀를 때리고 눈을 어지럽힌다.
반면 순백의 달항아리 앞에 서면 머릿속이 하얘진다고 말한다. 꾸미지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힐링으로 이어진 셈이다. 여기에 더해 ‘복(福)을 담고 재물을 가져온다’는 달항아리의 속설도 토템미즘에 부합해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한다.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자)를 중심으로 ‘달멍’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2월 초 기준 네이버의 달항아리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다.
BTS 멤버인 RM은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를 직접 구매해서 안고 있는 사진을 SNS에 올리며 애정을 드러냈다.
도자기뿐만 아니라 붓으로 빚은 달항아리도 인기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카르마·Karma)’을 3점을 사면서 세계 미술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런 인기는 작품 값에도 반영되는 모양새다. 최근 47.5cm에 달하는 대형 달항아리가 서울옥션 경매에서 34억 원에 낙찰돼 국내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18세기 제작된 높이 45.1cm 달항아리가 456만 달러(한화 약 60억 원)에 낙찰됐다.
달항아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몸값을 자랑하자 국내 기업들은 이를 모티브로 한 아이템을 선보였다.
아성다이소는 직경 10~18cm의 달항아리 6종 제품, 리빙브랜드 소백은 달항아리를 본뜬 쿠션, 뷰티브랜드 설화수와 지샌달은 달항아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화장품 등을 출시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시대에는 ‘달항아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백항(白缸), 백대항(白大缸), 백자대호(白磁大壺) 또는 사기항아리로 불렸다. 이 무미건조한 그릇에 ‘달항아리’란 낭만적인 이름을 붙인 사람은 추상미술의 거장 수화 김환기(1913~74) 화백과 그의 절친인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최순우다. 남겨진 기록은 없지만 김환기와 최순우가 서로 백자대호에 대한 애정을 주고받으며 1960년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달항아리(백자대호)의 인기의 시작은 이때부터다. 2000년 런던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은 한국과 협업해 한국실을 개관하면서 18세기 백자대호를 ‘Moon Jar(달항아리)’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릇’이란 찬사를 보냈고, 그의 제부인 사진작가 스노든(Earl of Snowdon) 백작은 작품에 달항아리를 늘 등장시켰다.
영국 현대 도예가인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의 달항아리 사랑은 유별나다. 1935년 조선을 방문한 그는 달항아리 몇 점을 구입해 영국으로 떠나며 “나는 행복을 안고 간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이밖에도 달항아리는 소설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을 비롯한 유럽 문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부여했다.
급기야 2011년 문화재청은 국보 및 보물로 지정된 백자대호 일곱 개의 공식명칭을 모두 ‘백자 달항아리’로 변경했다. 이로써 달항아리는 한국의 미(美)를 상징하는 대표주자로 자리를 잡게 됐다.
최근 현대작가들은 조선 백자대호를 재현하며 우리 문화유산의 예술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대표 작가로는 봉금 이순구와 수호 박경선, 월정 한석기, 문산 김영식, 묵심 이학천 등이 꼽힌다. 모두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조선백자의 맛을 구현해 낸 재야 고수로 정평이 난 인물들이다. 대영미술관 소장 달항아리 등 국보급 달항아리를 재현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화 실현은 둘 중 하나다.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규격)에 맞춰 ‘보편성’을 갖추거나, 민족성을 강조해 ‘유일무이한 존재’로 나서는 것이다. 달항아리는 분명 후자에 가깝다.
달항아리는 자칫 묻혀버릴 뻔했던 우리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다는 점과 감성을 브랜드화 함으로써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설명환 칼럼니스트
설명환 칼럼니스트는 IR 전문가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커뮤니케이션실에서 20여 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트렌드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글을 쓰고 있다. 현재 국내 유일의 밸류에이션 브랜딩(Valuation Branding) 전문기업 펄스㈜의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기업이 직면한 다양한 도전과 위협에 대한 종합적인 조언을 해오고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과 문화체육관광부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정책 발굴·추진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런던에 뜬 달항아리…BBC, 달항아리가 특별한 이유 조명
연합뉴스 기사 송고시간 : 2023-05-12 17:02
한국 현대 작가들이 달항아리 재해석한 특별전, 런던서 열려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한국의 미학과 역사를 간직한 달항아리가 영국 런던에 떴다.
영국 BBC 방송은 이달 14일(현지시간)까지 런던에서 열리는 '달항아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Moon Jar: The Untold Story)' 특별전을 소개하면서 달항아리가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역사적 배경을 11일 조명했다.
BBC는 도자기로 보면 달항아리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아이템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 큐레이터인 로이드 최는 BBC와 인터뷰에서 달항아리는 가마에서 두 개의 사발을 하나로 이어 붙이면 "나머지는 중력이 알아서 한다"고 설명했다.
BBC는 달항아리가 미적으로 보기 좋을 뿐 아니라 "한국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며 달항아리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 시대 처음 만들어진 것에 주목했다.
단순함과 검소함 등 유교적 이상이 중국을 넘어 한국, 일본, 베트남 등으로 퍼졌고, 달항아리가 이러한 유교적 이상을 구현하면서 지금과 같은 중요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8세기 들어 조선의 엘리트들이 새로운 한국적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기 시작했고, 17~18세기에는 완벽함보다는 자연주의와 자연스러움이 미학적으로 선호됐는데 달항아리가 이러한 미학의 전형이었다고 BBC는 소개했다.
또 달항아리를 대표하는 색인 흰색은 한국에서 단순함 등을 상징하며 장식이 많은 중국 도자기와 차별화되는 점이라고 BBC는 설명했다.
달항아리는 일제가 한국의 문화를 억압했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재탄생한다.
전후 세대는 달항아리를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하고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추상화가 김환기가 대표적이다. 달항아리의 매력에 푹 빠져 달항아리를 수집했던 김환기는 자신의 그림에 달항아리를 등장시켰다.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였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의 큐레이터 솔 정(Sol Jung)은 달항아리가 한국의 문화 아이콘이 된 것은 1945년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것에 대한 직접적 반응이었으며 "달항아리가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동의어가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였다"고 분석했다.
달항아리는 이제 서양에서도 새로운 팬을 확보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선 달항아리 모양의 성화대가 세계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예가 이수종을 비롯해 이기조, 윤주철, 박성욱, 최보람, 곽혜영 등 한국 현대 작가 6명이 달항아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수종은 작품 소개 영상에서 "제 달항아리가 더욱 독특한 이유는 두 개의 큰 그릇이 연결될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무늬(patterns)를 의도적으로 남겨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성욱은 조선 초기 처음 등장한 분청사기 스타일의 달항아리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BBC는 한국을 상징하는 "달항아리가 시대마다 공감을 계속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 이어 달항아리에 담긴 철학적 사상을 주제로 한 '달항아리: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움'(Moon Jar: Untold Beauty)은 9월 4일부터 10일까지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다.
환기미술관 소장 김환기 '무제'(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