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명물’ 하면 제일 먼저 닭갈비가 떠오른다. 닭갈비는 오래된 전통음식은 아니다. 고기가 귀하던 1960년대, 음식점에서 부담 없는 닭고기를 갈비처럼 구워 술안주로 내놓으면서 만들어진 신종 메뉴에 가깝다. 하지만 불과 반세기 만에 닭갈비는 ‘춘천’을 대표하는 맛으로 자리 잡았다. 춘천시에는 명동을 비롯해 퇴계동과 강원대 후문 근처에 닭갈비 골목이 있다. 지금은 닭갈비집이 무려 280여곳이나 되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10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에 조양동의 새명동공영주차장 근처 ‘춘천우미닭갈비막국수’는 춘천 토박이들이 자랑스럽게 손꼽는 닭갈비 명가다. 이곳에 가면 춘천 닭갈비의 살아있는 전설, 서정순(62)씨의 원조 닭갈비 맛을 볼 수 있다.
춘천닭갈비는 숯불에 직접 굽거나 철판에 볶아내는데, 이 집은 두툼한 철판에 볶아주는 방식이다. 주문을 하면 커다랗고 둥근 무쇠 팬에 양념한 닭고기와 양배추, 쌀떡, 고구마 등을 듬뿍 올려준다. 어떻게 다 먹을까 걱정될 정도로 양이 푸짐하다. 철판에서 지글지글 맛깔스럽게 익어가는 닭갈비를 보노라면, 빨갛게 고운 빛깔하며 솔솔 풍겨오는 맛있는 양념 냄새에 군침이 꼴깍 넘어간다. 닭고기가 제일 늦게 익다 보니 쫄깃한 떡부터 골라 먹느라 젓가락질이 분주하다. 드디어 고기가 다 익으면 고기 한 점을 집어 천천히 음미해 본다. 고기의 탄력이 느껴지면서 촉촉하고 야들야들한 육질에 속까지 고루 밴 양념 맛이 달지 않고 칼칼하다. 뒷맛이 깔끔해서 물리지 않는 맛이라고 할까. 소주나 옥수수동동주 한잔 곁들이면 오순도순 이야기꽃이 절로 피워질 것 같다. 진짜 맛집이란 그 지역 주민이 가는 곳이라더니 바로 이 집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고기를 얼추 먹고 나면 밥을 넣어 볶아 먹는 맛도 춘천 닭갈비의 매력이다. 이 집 볶음밥에는 특별한 정성과 노하우가 들어간다. 우선 판에 눌어붙은 찌꺼기를 말끔하게 긁어내고 밥을 볶는다. 그런 다음 밥알 한 알만 한 두께로 얇게 쫙쫙 펴서 노릇하게 눌려지면 특수하게 제작한 주걱으로 달걀말이처럼 도르르 말아 한 덩이씩 앞접시에 놔준다. 누룽지라고 딱딱한 맛이 아니다. 겉은 바삭하면서도 폭신하고 부드럽게 씹히며 고소한 맛이 기가 막히다.
서정순씨가 닭갈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8년, 스물다섯 한창 신혼 때였다. 꽃다운 나이에 닭갈비 양념을 버무리고 서빙까지 도맡다보니 손님들이 애 취급을 했다. 그것이 싫어 일부러 “여보”라고 남편을 큰소리로 부르면서 결혼한 티를 냈다. 그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환갑이 넘었다.
생닭 쓰고 카레가루 넣지 않는다
▲ 대표 서정순씨
서씨가 닭갈비집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춘천에 닭갈비집이 세 군데밖에 없었다. 옥호는 우미집으로, 그 시절엔 닭갈비가 가게 이름이 될 만큼 번듯한 요리 대접을 받지 못했다. 지금처럼 부위별로 파는 닭이 없어 커다란 통닭을 뼈째로 토막 낸 다음 소 갈빗살처럼 넓적하게 펴서 양념했다. 갈비답게 판매 단위도 ‘대’ 수였다. 종일 연탄불을 피워놓고 한 대, 두 대 적은 양도 구워줬는데, 가격은 150g짜리 한 대에 250원. 가스가 들어온 뒤에야 300g을 1인분으로 팔기 시작했다. 채소와 고구마를 넣어 푸짐한 닭갈비는 인기가 날로 높아져, 춘천 지역 대학생들의 개강, 종강파티 단골메뉴가 되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군인과 서민들이 특히 즐겨 찾아 학생갈비, 서민갈비라고 불리기도 했다.
춘천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간 춘천 닭갈비의 명성은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춘천을 찾아온 외국인들의 발길까지 끌어모았다. 몇 년 전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우리나라 손님이 딱 끊겼을 때도 일본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와 춘천 닭갈비 골목을 살렸을 정도다. 이렇게 춘천에 닭갈비가 발달한 데는 환경적 요소도 있었다. 인근에 군부대가 많다 보니 여기에 부식을 보급하는 양계장이 많았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닭고기가 흔하고 저렴했다고 한다.
서씨는 냉동 닭을 절대 쓰지 않고 싱싱한 생닭을 매일 들여온다. 1990년대부터는 뼈를 발라낸 닭다리살이 나와 먹기 좋게 잘라 쓰고 있다. 재료야 어느 식당이나 비슷하지만 서씨의 닭갈비가 특별한 이유는 양념비법에 있다. “요즘 흔히 쓰는 카레가루를 넣지 않아서 어른들이 더 좋아해요.” 언제부터인가 춘천의 많은 닭갈비집에서 닭 누린내를 잡겠다고 카레를 넣기 시작했다. 서씨는 카레가루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간장이나 케첩 등도 넣지 않는다. 그래야 고추장구이였던 춘천 닭갈비 원조의 맛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빛깔 고운 국산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고 고추장, 소금, 마늘, 생강 등을 적절히 배합해 너무 달거나 텁텁하지 않게 양념한다. 매운 맛을 원하는 손님에게는 청양고추를 섞는다. 한겨울 청양고추가 무척 비쌀 때도 개의치 않는다. 30년 넘게 서씨의 손맛과 인심이 변치 않으니 “그래 이 맛이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서씨는 양념을 먼저 개어 닭고기에 넣고 맛이 골고루 배도록 주물러 한나절 이상 재웠다가 손님상에 낸다. 그래야 양념이 겉돌지 않고 고기에 깊이 배어든다. “앞치마가 평생 내 교복이에요.” 가게 주인이지만 여태 앞치마를 벗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양념 계량은 물론 닭고기를 양념에 버무리는 작업까지 혼자 직접 해낸다. 그날그날 닭과 채소 등의 상태에 따라 양념 비율을 조절하는데 여기서 아무나 따라하기 힘든 서씨만의 손맛이 들어간다. 잠시 가게라도 비울라치면 그날 팔 닭고기에 양념부터 버무려놓고 나서야 안심이 된다고 한다. 요즘 춘천에서 인기 절정인 누룽지말이를 최초로 만든 사람도 서씨다. 모두가 내 집을 찾는 손님께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다.
외지인은 주로 볶음밥을 먹지만 춘천사람들은 우동사리를 좋아한다. 우동사리는 닭갈비를 주문할 때 미리 해두는 것이 좋다. 춘천국수공장에서 뽑은 굵은 면발로 40분 이상 삶아 익혀 넣는데, 볶은 닭갈비에 미리 묻어두었다가 고기를 다 먹은 뒤에 먹으면 양념과 고기 육즙이 폭 배어 색다른 맛이 난다.
서씨는 슬하에 아이가 없어 평생 닭갈비집을 자식 키우듯 길렀다. 지금 명동 닭갈비 골목의 ‘우미닭갈비 본점’과 온의동의 ‘명동우미닭갈비’는 서정순씨가 터를 잘 닦아 시동생과 시누이에게 각각 물려줬다. 2011년부터는 이곳 조양동에서 ‘춘천우미닭갈비막국수’라는 이름으로 원조의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무한도전’ 출연진들과 함께 찍은 얼굴 사진을 가게 밖에 붙였더니 오래전 서씨를 찾았던 손님들이 알아보고 반갑게 들어서기도 한다. 춘천 시민이 즐겨 찾는 이 집 닭갈비의 변함 없는 맛과 명성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