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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1)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늘 새롭게 태어나셔야 합니다!
원래 3월 25일에 경축하던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 올해는 훨씬 뒤로 밀렸습니다. 이유는 올해 이 대축일이 성주간과 겹칠 경우 부활 제2주일 다음 월요일로 옮겨 지낸다는 로마 미사 경본 지침에 따른 것입니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맞아 중세 신비가 마이스터 엑가르트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마리아에게서처럼 우리 각자 안에서도 아기 예수의 잉태와 탄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수를 낳지 못한다면 마리아가 그때 거기에서 예수를 낳았다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늘 새롭게 태어나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여기 이 자리에서 매일 아기 예수의 탄생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우리는 버리고 떠나있기 연습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철저하게도 빈 그릇으로 존재할 때 그 빈 그릇에 겸손하신 아기 예수님께서 잉태되실 것이고 탄생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 속에서 ‘하느님의 탄생’을 이루어 낼 때, 비로소 한 인간은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이런 큰 기쁨과 영광을 원한다면 반드시 먼저 우리 마음의 밭갈이 작업이 필요합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탄생하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잉태하는 일은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에 도전하는 어려운 일이 분명합니다. 그 옛날 나자렛의 마리아가 그랬듯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다가오는 천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내 안에 잉태한다는 것은 마리아가 그랬듯이 안락한 삶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내 안에 잉태한다는 것은 마리아가 그랬듯이 본능과 이기심, 자기중심적 삶을 철저하게도 배제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리스도를 내 안에 잉태한다는 것은 안개 자욱한 낯선 길을 떠나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리스도를 내 안에 잉태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과 멸시를 꿋꿋이 견뎌내겠다는 각오입니다.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잉태하고 낳아 기르겠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과제이자 세례를 통해 받은 책무입니다.
2)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2024년 나해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혼자 있는 것도 죄고 혼자 있게 하는 것도 죄다>
오늘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나타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인사합니다. 성모님은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주님께 함께 있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죄를 짓고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치 않아서 숨었습니다. 이것 자체가 죄입니다. 인간은 혼자 있을 수도 없는데 혼자 있겠다고 합니다. 빛을 떠나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은 어둠과 있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혼자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혼자 사는 분들은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머물기 위해 혼자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요? 99%는 부모나 배우자, 혹은 형제입니다. 만약 이도 저도 아니라면 ‘자아’나 사탄과 함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정신이 이상하게 됩니다.
유튜브에서 ‘섬에서 혼자 사는 바다 자연인’이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이 주인공은 섬에서 혼자 살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이분은 사업 실패로 세상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섬으로 와서 혼자 사는데, 동생까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 치료하고 동생을 공기 좋은 자신이 사는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음식 탓인지, 병원이 없는 탓인지 좋아지는 것 같다가 치료도 못 해보고 죽었습니다. 이에 동생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 섬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사실 혼자 있고 싶은 게 아니라 동생과 함께 있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 줄 동생과 함께 있고 싶은 것이 혼자 있고 싶은 것이 된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그 삶에 만족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혼자는 행복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점점 어둠과 가까워집니다.
여성이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지만, 실제로는 마귀와 함께 사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그 자매는 자신이 마귀와 잠자리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혼자가 좋다고 합니다. 혼자가 좋은 게 아니라 마귀랑 사는 게 좋은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알려주는 가브리엘 천사와 같은 존재입니다.
먼저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아기가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장난감을 가지고 재밌게 놀지만, 어머니가 안 보이면 불안해서 우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게 느껴져야 밖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둠, 사탄의 손아귀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니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자연인들에게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은 가브리엘 천사의 역할입니다.
산속에서 수십 년간 혼자 살아가는 이들이나, 화장실 같은 곳에 스스로 자기를 가두고 살아가는 이들은 자기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방송국의 스텝들은 그 좁은 공간에서, 그리고 그 추운 곳에서 그들과 함께 머뭅니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자기를 사랑해주는 누군가의 존재와 함께 머물기를 원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많은 경우 그 사람들이 스텝들이 사는 세상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자꾸 고향인 부산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혼자 있고 싶은 게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브리엘 천사나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오래 혼자 있게 해 드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혼자 있는 것은 결국 자기를 망치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는 것도 죄이고, 혼자 있겠다는 사람을 혼자 내버려 두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
오늘은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이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응답을 통해 사람이 되시는 위대한 사실을 오늘 복음은 전해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는 것은 곧 인간의 차원이 하느님의 차원으로 들어 올려졌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하느님과 같이 되게 하려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이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은 이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룰 수 있게 하였고, 그 마리아의 자세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된다.
복음: 루카 1,26-38: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가 이어지고 있다. 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하는데,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28절) 이런 인사는 남자가 들은 것이 아니라 오직 마리아에게만 주어진 인사였다.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새로운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28절)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천사를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하늘의 심판관을 몸에 받아 모시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느님께서는 한 처녀를 당신의 어머니로 만드셨고, 당신 여종을 어머니로 삼으셨다. 온 세상도 하느님을 품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온전히 그 품에 오시어 사람이 되셨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31절)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서 행하시는 거룩한 신비를 드러내 줄 아기에 대하여 말한다. 마리아는 처녀로서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 되실 분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의미한다. 그분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세상을 다시 창조하실 분이시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34절)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이 물음은 동정 잉태라는 신비에 대한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천사는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내려오시어 잉태하리라고 한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35절) 마리아가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은 물 위를 감돌며 창조를 이루시는 성령이시다(창세 1,2 참조).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써 아들이신 말씀을 잉태하시게 되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말씀을 잉태하고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이웃에게 낳아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말씀을 잉태한다는 것은, 마리아와 같이 자신의 인간적인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버려야 한다. 나 자신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면 주님을 올바로 따를 수 없다. 하느님의 말씀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매 순간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끊고 자신을 버리는 고통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십자가이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마리아와 같이 말씀을 잉태하고 그 말씀을 낳아줄 수 있을 것이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마리아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하와의 불복종을 되돌려 놓는다. 그리하여 한 천사였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첫 번째 처녀의 타락이 다른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이 처녀 마리아의 믿음으로 극복되고 있다. 마리아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평범한 한 시골 처녀였다.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고 평범한 삶을 사는 인간이었다. 그 마리아가 그렇게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고백하고 실천해야 한다.
4)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분야에서의 집중력이 남다르다는 것입니다. 집중하는 그 순간에는 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 어떤 전기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쓸데없는 것 무시하기의 전문가.”
쓸데없는 것을 무시하는 그 전문성(?)이 자기 예술에 헌신하는 능력을 키울 수가 있었고, 눈앞의 과제나 프로젝트에 자신을 묶어두는 능력을 결합하여 전설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학창 시절, 공부하면서 음악 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또 여기에 텔레비전을 봐도 상관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실제로 집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집중에 솔직히 죄송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러다 보니 SNS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전화도 못 받습니다. 문제는 자기를 무시해서 SNS 메시지를 보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이것저것 못하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더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는 어떤가요? 주님께만 집중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의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고 집중하면서, 정작 주님을 외면할 때가 너무 많은 우리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탄생에 대한 예고를 기념하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이날, 우리는 예수님 탄생 예고를 들으신 성모님을 보게 됩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인데, 잉태해서 아들을 낳게 된다는 천사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이 메시지는 성모님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무조건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안 되는 이유만을 이야기합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면서 하느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만 집중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느님의 메시지는 무조건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집중하고 있었을까요?
오늘의 명언: 잘 들여다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아름다워집니다(로렌 올리버).
5)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 38)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망이
성모님의 마음에
솟구치고 있었던 것은
그 순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 까닭이라네.
우리에게도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망이
솟구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있는 까닭이라네.
6)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
말씀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영혼을 풍족하게 하고
또 만족시키는 것은
풍부한 지식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내적 갈망>으로
말씀 안에 깃들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말씀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맛있는 세상의 ‘빵’을 먹기 위해
추운 새벽부터 줄을 서는 것처럼
말씀의 영적인 ‘빵’에 맛들이기 위해서는
‘머무름’이 필요합니다.
맛있는 빵을 먹기 위해
새벽 6시부터 줄을 서는
‘머무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종으로
말씀 안에 머무르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복음 말씀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