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세존 석가문불(大覺世尊 釋迦文佛)
서천(西天)에 응화(應化)한 현성(賢聖)
62. 묵연(默然)
유마(維摩) 회상(會上)의 32보살이 제각기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이야기 하는데, 마지막에 문수가 말하였다.
"나는 일체법에 대하여 말도 이야기도 없고,
보일 수도 알 수도 없어서 일체 문답을 여읜 것이
보살이 불이법문에 드는 것으로 압니다."
이어 유마힐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이미 제각기 말했거니와
그대는 무엇이 보살이 불이법문에 드는 것이라 여깁니까?"
이에 유마힐이 잠자코 있으니, 문수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언어와 문자까지도 없는 것이
보살이 참으로 불이법문에 드는 것이군요."
설두현(雪竇顯)이 송했다.
애달프다. 저 유마 노인이
중생을 가엾이 여기느라 공연히 걱정하네.
비야리 성에 병들어 누웠으니
온몸이 바짝 말랐네.
7불의 조사께서 찾아왔는데
한 방을 깨끗이 치워 놓았네.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청하여 물었으나
당장에 밀려 쓰러졌네.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여,
황금털의 사자를 찾을 길 없네.
대홍은(大洪恩)이 송했다.
비아리성에서 앞을 다투어 달리더니
남극성[南星]을 가르켜 북두(北斗)라 하네.
마치 조개와 황새가 맞문 것 같더니
잠깐 사이에 어부에게 몽땅 잡혔네.
천복일(薦福逸)이 송했다.
비아리성의 유마힐이여,
그가 분명 깨쳤는지 아닌지를 알겠도다.
황금 털 사자가 이르기 전에
방 안을 비운 것이 비밀을 누설했네.
불이법문 무어냐는 물음을 받자.
한 덩어리 무공퇴(無孔槌)를 내놓았네.
문수가 말뚝 하나 박은 뒤로는
천추만세 오래오래 올록볼록 구겼네.
운거원(雲居元)이 송했다.
문수는 희고 유마는 검으니
도적을 잡는 자는 본래부터 도적일세.
애석하다, 8만 4천 범한 무리는
오늘에 이르도록 찾지 못했네.
천동각(天童覺)이 송했다.
문수가 유마 노인께 문병을 갔는데
불이문을 열어 놓고 작가(作家)를 기다리네.
옥돌[珉] 중에 진옥[粹]을 뉘라서 감상할꼬.
명신할 일 잊었다고 꾸짖지 말라.
구구하게 박옥(璞玉)을 안고 간 것은
초왕(楚王)의 궁정에서 발이 잘린 사나이요,
반짝이는 구슬을 물어 온 것은
수성(隋城)에서 상처 입은 뱀이었다.
점검하려 하지 말라. 티가 없느니라.
속기(俗氣)가 아주 없어야 비슷하리라.
승천회(承天懷)가 송했다.
말재주가 걸림 없는 유마 노인은
5천축의 3현(賢)들도 어쩔 수 없네.
문수를 한번 보자 입을 다무니
평생에 닦은 재주 당장 무디어졌네.
하하하, 바둑은 적수를 만나면 지나치기 어렵고
지음(知音)자가 모이니 거문고의 격조 더욱 높다.
장령탁(長靈卓)이 송했다.
사립문 열었건만 오는 손님 드문데
우거진 풀밭 곁에 고사리가 살찌네.
우습구나, 공연히 나이 먹은 저 늙은이
은혜 갚을 공덕 없음이 부끄럽구나.
개암붕(介庵朋)이 "유마힐이 잠자코 있으니"까지를 들고,
이어 착어(着語)하였다.
"틀렸다."
또 문수가 찬탄한 일에도 착어하였다.
"틀렸다."
이어서 다음과 같이 송했다.
이 잘못됨이 어찌 잘못된 것이랴.
크도다 어질어서 악하지 않구나.
무쇠 소가 밤중에 겹 관문을 뛰쳐 나니
기린이 놀라 일어나서 두 뿔이 부러졌네.
잘못되고 잘못됨이여.
구담이 바른 법령이요, 공자의 목탁(木鐸)이로다.
지비자(知非子)가 송했다.
말 있음과 말 없음을 묻지 않았거늘
세존께서 나의 미혹한 구름을 걷어 주셨네.
손을 들자 채찍 그림자가 나타나니
좋은 말은 천리를 단숨에 달려간다.
비야 노인이 현명함을 드러내어 자취를 쓸어버리니
참으로 불이법문에 들었네.
보복전(保福展)이 염(拈)하였다.
"문수는 마치 귀를 가리고 방울을 훔치는 격이라 오강(烏江)에서 힘이 다했고,
유마의 한 번 침묵함은 교화의 문턱을 벗어나지 못했네."
또 말하였다.
"알량한 유마가 문수에게 한 번 주저앉혀진 뒤로는
지금까지 일어나지 못하는구나."
설두현(雪竇顯)이 염하였다.
"유마가 무어라 했던고?"
다시 말하였다.
"점검해 마쳤다."
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유마가 한 번 침묵한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한산(寒山)이 습득(拾得)을 방문했느니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그러면 불이법문에 들었겠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허(噓)!"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송했다.
유마 대사(大士)는 어디로 갔는가?
천고(千古)를 두고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네.
불이법문을 다시 묻지 말아라.
밤마다 밝은 달은 산 위에 솟는다.
낭야각(瑯瑘覺)이 염하였다.
"문수가 그렇게 찬탄한 것이 표주박 자루에서 헛기침을 듣는 격이로다.
유마가 잠자코 있는 것을 그대들은 함부로 점치려 하지 말라."
원오근(圓悟勤)이 문수가 유마에게 묻기를
"우리들은 이미 제각기 말했거니와 어떤 것이 그대가 말하는 불이법문인가?"
한 데까지를 들어 말하였다.
"이 한 토막의 이야기에 대해 총림에서 퍽 많이 떠들고 있다.
어떤 이는 '잠자코 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잠시 있었다'고 하며,
어떤 이는 '자리에 기대앉았다' 하고, 어떤 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나,
결국 만져보지도 못했다.
그 소리가 우레 같아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성인들이 말씀하신 법문이 유마의 잠깐 사이에 드러났다.
말해보라. 바야흐로 그런 때를 당해서 어찌해야 유마를 볼 수 있을까?"
*황금 털의 사자 : 문수보살이 타던 사자.
*조개와 황새 : 입 벌린 조개를 황새가 쪼았는데,
조개가 입을 다물어 서로 놓지 않으므로 서로가 꼼짝 못하다가
끝내는 어부에게 몽땅 잡혓다는 옛 이야기가 있다.
*초왕(楚王)의 궁정 : 변화(卞和)가 형산에서 얻은 옥을 초왕에게 받쳤다가
발을 잘리는 벌을 받은 고사(古事)가 있다.
*수성(隋城)에서 상처 입은 뱀 :
수의 원장(元帳)이 제(齊)나라의 사신(使臣)으로 가다가
허리에 상처가 난 뱀을 보고 가엾이 여겨 에 씻고 약을 발라 주었다.
그 후 어느 날 밤에 이상한 광채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적인 줄 알고 칼을 빼들고 기다리니 전일의 그 뱀이 구슬을 물고 와서
두고 갔다는 고사.
*오강(烏江) : 항우가 죽은 곳이다.
*점치려 하지 말라 : 거북의 껍질을 태우거나 기와쪽을 깨뜨려
금이 가는 꼴을 보아 점을 치는 일에 의해서 한 말이니,
이리저리 분별한다는 뜻.
선문염송. 염송설화((禪門拈頌 拈頌說話) 중
제2권 대각세존 석가문불(大覺世尊 釋迦文佛)
62. 묵연(默然) p319~p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