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신 능력 (막 16:17-18)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시간에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능력 없다는 말일 것입니다. 무슨 말을 들어도 상관 없지만 백수 건달 폐인 등 무능하다는 말은 들어서는 안 됩니다. 능력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아직 예수가 누군지 모르는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셨겠습니까?
그리고 능력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이스라엘의 민족적 숙원을 뒤로 하시고 오직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겠습니까? 감사한 것은 우리가 무능하다는 소리 듣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능력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자입니다.
주님이 주신 능력은 무엇일까요?
1. 믿음이 능력입니다.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님은 예수 믿는 자라면 누구든지 다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찰스와 프한시스 헌터 부부가 쓴 ‘신유의 방법’이라는 책에 보면 신유의 방법이 나타납니다. 다른 방법이 아닙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셨으니 믿음으로 병자에게 손을 얹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병자들을 고쳤고 미국에서 알아주는 신유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주님의 지체이고 주의 이름으로 주님을 대신하여 환자에게 손을 얹는다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한 번 기도해서 안 된다고 안 되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우리가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끝까지 믿음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도 믿음입니다. 요16:33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원인을 알면 치료가 보입니다. 먼저 신앙적으로 잘못이 있는지 돌아보세요. 육신적인 원인도 찾아보세요. 진단받는 건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겁먹는 건 잘못입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어떤 병이든 원인만 바꾸면 좋아집니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움직이는 손가락부터 움직이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간증했지만 김정* 집사가 불신자와 결혼한 후 시가의 눈치 때문에 교회 출석하지 않다가 깊은 병에 들었습니다. 교회 출석은 기본입니다. 하나님 멀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분이 움직이지 못하고 전신이 석고상처럼 굳어져 죽을 날만을 기다리다 그때야 깨닫고 회개하며 기도하는데 다리만이라도 구푸리며 기도하고 싶어서 기도하며 힘쓰다가 조금씩 다리가 구푸려지고, 무릎도 꿇게 되고, 다음은 서고 걷고 그다음은 교회에 나오기를 시작해서 완전히 낫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계시는데 이처럼 믿음 가지고 노력해 보세요. 부르시는 그날까지 건강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고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2. 은사가 능력입니다.
고전12:7-11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은사란 신앙생활을 돕고 하나님의 사역을 돕고 우리의 각박한 세상살이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부정하는 것은 맨손으로 일하겠다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은사의 기초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도 은사가 잠재해 있다는 믿음 가지고 몸과 마음을 드려 열심히 하나님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기도의 제단을 쌓으면 자기만의 특별한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3. 사랑이 능력입니다.
고전13:8-11에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했습니다.
은사는 부분이지만 사랑은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보세요. 요14:10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를 믿는 자는 더 큰 일도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환영 받고 기독교가 더욱 강해지는 길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4. 예수 이름이 능력입니다.
요14:14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셨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에게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말하라 하신 것 부러워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은 우리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는 축복입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 뱅이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했듯 우리들도 예수 이름으로 어둠과 질병과 가난과 저주와 사탄을 물리치고 형통과 복이 올지어다. 명령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이름으로 마음의 풍랑도 잔잔해지고 환경의 풍랑도 잔잔해집니다.
러시아 선교사로 나가 있는 김바울 목사의 신유 영상(https://cafe.daum.net/agaser/JL0I/6986)을 보면 예수 이름으로 명령할 때 짧았던 다리가 쑥쑥 길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십 명의 치료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이적은 믿을 수 없는 등 논란이 많은 기적이라 확인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보았는데, 다리가 자라는 것이 징그럽게 보일 정도입니다. 예수 이름은 우리에게도 주셨다는 점에서 고집스럽게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5. 교회가 능력입니다.
고전12:25-26에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어머니의 품 안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중히 여기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돌보시기 바랍니다.
6. 우리의 연약함도 능력입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그것은 약할 때 더 겸손하게 되고 주님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사랑교회 박대규 목사님이 어릴적 주기도문으로 작두 타던 무당을 2번이나 떨어지게 해서 무력화시킨 간증이 있습니다. 수백 명이 지켜보던 작두 타는 무당을 무력화시켰다는 것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 체험 영상 아래 저도 그런 체험을 했다는 수백 편 이상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주일학생에게 그런 능력을 주신 것은 믿는 자에게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잘 믿고 그 말씀에 서서 주님을 더 믿고 더 사랑하고 더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온갖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고 주신 사명 넉넉히 잘 감당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