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하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선택하신 이유
핀하스 토라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는 모쉐가 하나님께 유대 백성을 이스라엘 땅으로 이끌 유능한 후계자를 세워 달라고 청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충실한 제자인 여호수아가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미드라쉬는 하나님과 모쉐 사이에 오간 대화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드라쉬에 따르면, 모쉐는 자신의 아들들이 후계자가 되어 지도자가 되기를 요청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네 아들들은 앉아서 토라에 몰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요청을 거절하셨습니다. 반면 여호수아는 “베이트 al드라쉬(בֵּית מִדְרָשׁ: 학당)에 일찍 와서 늦게까지 머물렀으며, 의자를 정리하고 탁자에 덮개를 씌우곤 했다”는 이유로 정당한 후계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Bamidbar Rabbah, 21:14)
이 미드라쉬에는 두 가지 난점이 있습니다. 첫째, 모쉐의 아들들이 토라에 전념하지 않았다면, 모쉐가 어떻게 그들이 유대 민족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둘째, 하나님께서 모쉐의 아들들과 여호수아를 동일한 행동 영역, 즉 ‘토라에 전념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비교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sk님께서 여호수아를 칭찬하실 때는 그가 베이트 al드라쉬를 세웠다는 사실을 강조하셨는데, 이는 ‘토라에 전념하는 것’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모세의 아들들과 여호수아를 비교한 정확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라브 요세프 샬롬 엘야시브는 모쉐의 아들들이 실제로 토라 학자였으며, 유대 민족을 이끌기에 충분한 학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모쉐는 그들이 자신의 후계자로서 적합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앉아만 있을 뿐 ‘오섹 베토라(עוסק בתורה)’를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그들이 앉아서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공부했을 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토라에 ‘오섹’(עוסק: 몰두)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토라 공부를 돕는 데 참여하지 않았던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수아는 학당을 세워 다른 사람들이 토라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왔는데, 이것이 바로 ‘오섹 베토라(עוסק בתורה)’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라브 엘야시브의 설명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 여러 가지 있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구체적인 난점이 있는 듯합니다. 즉, ‘오섹 베토라(עוסק בתורה, 토라에 전념하는 것)’는 단지 자신을 위해 토라를 공부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이 토라를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대한 암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탈무드 토라 미쯔바의 기본 정의를 이해해야 합니다. 람밤은 이 미쯔바의 근거가 두 가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를 네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와 “너는 이를 네 자녀들에게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는 구절입니다.
람밤은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이 두 명령으로부터, 사람이 토라를 배워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합니다. 즉, 토라를 배우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통해 ‘탈무드 토라’의 미쯔바가 배우는 것만큼이나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람밤은 ‘자녀’가 제자들을 의미하기도 하며, 이 미쯔바의 근본적인 부분은 비록 자신의 자녀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임을 랍비 문헌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따라서 라브 엘야시브가 ‘오섹 베토라(עוסק בתורה)’를 ‘다른 사람들이 토라를 배우도록 이끄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토라’가 본질적으로 타인이 토라를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을 포함한다는 개념에 대한 또 다른 근거는 아보다 자라(Avoda Zara)의 게마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게마라에 따르면 세계 역사는 2천 년씩 세 시기로 나뉜다고 전합니다.
첫 번째는 ‘무(無)의 2천 년’이라 불리며, 두 번째 시기는 ‘토라의 2천 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석가들은 ‘무의 2천 년’이라는 명칭이 그 시기에 세상에 토라가 없었기 때문인 반면, ‘토라의 2천 년’은 세상에 토라가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게마라에 따르면, ‘토라의 시대’는 아브라함이 세상에 토라를 가르치기 시작한 시점, 즉 ‘하란에서 그들이 이끈 영혼들’로 상징되는 시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토라의 시대’가 오직 이 시점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데에는 난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전에 살면서 토라를 배운 위대한 인물들이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그들은 토라가 부재했던 시대로 묘사되는 시대에 살았으며, 게다가 아브라함 자신도 타인에게 가르치기 훨씬 전에 토라를 배웠습니다. ‘토라’의 시대는 오직 ‘그들이 하란에서 만들어 낸 영혼들’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왜 그럴까요?
라브 제브 레프는 아브라함이 저명한 선조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일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바로 토라를 가르쳤다는 점입니다. ‘토라’의 시대는 토라를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가르칠 때 비로소 시작되는데, 그래야만 토라가 널리 퍼질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토라를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같은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근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토라를 가르치는 것이 유대교 사상에서 그토록 근본적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벤 이쉬 하이(Ben Ish Chai)는 이 문제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는 산헤드린(Sanhedrin) 12장에 나오는 게마라를 인용하며, 쉘라흐(Shelach) 장의 구절을 통해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후 게마라는 이러한 치명적인 비난을 받아 마땅한 다른 행동 양식들을 설명합니다. 놀랍게도 게마라는 이 구절에 “배우고도 가르치지 않는 자”가 포함된다고 덧붙입니다.
벤 이쉬 하이(Ben Ish Chai)는 게마라가 왜 배우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는 자에 대해 그토록 가혹하게 말하는지 묻습니다. 그는 토라가 영원하며, 그 가르침을 다음 세대에 전수함으로써 토라의 영원성이 보존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배우고도 동료에게 가르치는 수고를 하지 않는 사람은 토라의 영원한 본질을 훼손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배운 토라가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랍비들이 이 사람을 그토록 엄하게 묘사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토라가 대대로 전해지는 사슬을 끊고 토라의 영원한 성질을 무효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이는 또한 유대 민족의 지도자가 다른 이들이 토라를 배우도록 이끄는 사람이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의 역할은 전승을 보존하고 이어가며, 이를 통해 토라의 영원한 본질을 보존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토라 가르침이 토라 학습이라는 미쯔바에 얼마나 본질적인 요소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게다가, 토라를 가르치는 것은 타인에게 베푸는 큰 자비일 뿐만 아니라, 토라 가르침에는 자기 계발이라는 매우 중요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즉, 토라 가르침은 우리가 토라의 영원성을 깊이 깨닫게 해주고, 이를 다음 세대에 전승하는 데 기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참고>
어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토라를 가르친 최초의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셈과 에베르는 예시바를 운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토라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토라를 가르친 반면, 셈과 에베르는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람밤의 『힐콧 아보다 자라』 1장 3절)
라바드와 케세프 미샤는 아브라함의 가르침과 셈, 에베르의 가르침의 질적인 차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또한 슈트 하삼 소페르의 『요레 데아』 서문과 호페츠 하임의 『호마트 하다트』에서도 아브라함과 그 이전의 위대한 인물들의 차이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셈, 에베르 사이의 또 다른 차이점은 셈과 에베르는 이미 의로운 사람들을 가르쳤지만, 아브라함은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극적으로 바꾸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게마라에서 아브라함이 만든 영혼들을 언급하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뒷받침됩니다. 이는 단순히 사람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수단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By Rabbi Yehonasan Gefen (senior member of the Jerusalem Koll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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