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보내는 편지(116)
샬롬 !
9월이라는 너무도 신나는 이름을 만났는데 하늘에서 자주 비를 내리는 바람에 그만 필름이 오류가 난 영화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 밝은 귤빛 햇살을, 파란 하늘 아래서 살짝 부는 바람에도 나부끼는 코스모스를, 구름에 적당히 가려져서 황홀해진 석양을 넋을 잃고 몇 번은 봅니다. 희뿌연 잿빛 하늘을 볼 때마다 지나치게 흑백논리를 내세워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하는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바라보는 하나님께서 삶에는 회색도 있어야 함을 가르쳐주는 삶의 지혜, 또는 경종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흑과 백이 조화를 이루면 정말 은은하고 잔잔한 회색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계속되는 장마 속에서도 포도가 영글고 사과가 붉어지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그렇게 많은 방해를 받아도 저 할 몫은 잘 감당해 내는 자연의 신비를 보면서, 세상 것으로 너무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는 아름답고 평온한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가을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극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 맛을 넣어 주십시오.”가을이란, 여름을 보내면서 지상에 방 한 칸 마련하듯 연인에게 들려줄 시 한 줄기쯤, 오랜 친구에게 들려줄 아련한 사연 하나쯤 마련해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윤동주 시인의 고백처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도 그분처럼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헤아리며, 별 하나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보면서 어릴적 같이 뛰어 놀던 계집애들의 이름과, 제게 맡겨진 수많은 영혼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싶습니다.
정채봉님의 ‘느낌표’란 글입니다. 느낌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보거나 '그렇지 뭐'로 시들하게 생각하는 사람.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도 신록의 나뭇잎을 대해도 쌍무지개가 떠도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 파란 하늘을 보고 감탄하는 친구를 보거나 하면 '원 저렇게 감정이 헤퍼서야' 하고 혀를 차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집(사람)에 사는 느낌표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쓰지 않으면 삭아 없어지고 말 것이 자명한 이치가 아닌가.’ 느낌표가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도 이 집을 탈출하여야겠다고 별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비오는 날 밤, 마침내 느낌표는 이 사람한테서 떠나 버렸습니다. 느낌표가 빠져나간 줄도 모르고 있던 이 사람은 권태와 식욕부진에서 조울증으로 점차 발전했습니다. 보다 못해 가족들이 그를 데리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를 진찰한 의사가 처방을 일러주었습니다. "감동을 회복하시오. 무엇을 보거나 오! 하고 놀라고, 아! 하고 감탄하시오. 그리하면 당신의 기력은 쉬 회복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는 느낌표가 달아나고 없었습니다. 그는 느낌표를 찾아 유명한 산으로 갔습니다. 유명극장으로도 가고 유명 바닷가로도 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느낌표는 그 어느 유명한 곳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왔습니다. 목욕을 하고 한숨 잠을 자고 일어나니 문창호에 새하얀 빛이 스며 들어왔습니다. 문을 여는 그는 순간 숨을 멈추었습니다. 그가 잠든 사이에 온 첫눈이 담장과 마당을 살짝 덮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 바로 거기에 그의 느낌표가 숨어 있었습니다. "!"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은 감동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천지창조 이후 하나님이 발하셨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는 감동을 우리도 되찾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느낌과 표현의 차이가 행․불행을 만듭니다. 저도 마음의 표현이 모자란 사람이어서 답답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기뻐하는 자와 함께 웃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우는 마음을 잘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상 속에서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감사하는 마음의 여유와 너그러움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느낌표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선물을 받아도 느낌이 없는 사람되지 말고, 감정을 잘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태풍 매미로 많은 사람이 용기를 잃고 힘들고 지쳐 주저 앉으려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고마워! 사랑해! 감사해요! 등등...느낌표를 찾으심으로 행복한 나날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