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완성했다."

"어디 한 번 시험사격을 해보세. 잘 발사되었으면 좋겠군."
리스는 아르티옴이 칼라시니코프 기관총이라 부른 수제 총을 들고 선인장을 향해 쏘았다. 귀가 찢어지는듯한 소리와 함께 선인장은 순식간에 걸레처럼 찢겨나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총알은 주변 모래바닥에 박혔다.

"위력은 만족스러운데 명중률이 형편없군. 중세무기의 한계인가?"

"그렇기도 하고 이런 조잡한 설비로 만들다보니 오차가 많아질 수밖에 없겠지. 어차피 그 무기는 정확한 사격보다는 제압을 노리고 쏘는 거니 별 상관 없을걸세. 그나저나 그걸 한 손으로 들고 쏘다니 역시 강화갑옷은 대단하군."

"이걸 몇 주만 빠르게 완성했더라면..."

".... 이제 우리 나머지가 쓸 무기가 필요한데, 이 설계도대로 만들어보게. 중세에 대영제국 군대에서 쓰던 소총인데, 얼마 전까지 우리가 쓰던 고물 레버액션 소총보다는 훨씬 정확하고 좋을거야."

"아, 이건 역사교육 때 본 적이 있어. 영상에 나오는 중세기 대영제국군은 항상 이걸 들고 있었지."

리스는 아르티옴의 설계대로 자신의 조국이 계승을 주장하는 나라가 과거에 쓰던 총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복잡한 부품이 많았지만 이미 이런저런 물건을 만들어본 경험이 꽤나 쌓였기에 상당히 익숙해졌으므로 볼트액션 소총을 만드는 속도는 처음 경기관총을 만들 때보다 훨씬 빨랐다.

"방금 북쪽에서 붉은 연막이 피어오르는 걸 봤어요."

"음... 그건 보통 공중보급품에 쓰는 건데... 한 번 가보는 게 좋겠네."

"위험할 수도 있으니 나 혼자 가보겠어."

"자네는 내가 위험해지는 건 별로 신경쓰지 않을테니 나도 따라가겠네. 어디 이 소총은 잘 맞는지 한 번 살펴봐야지."

붉은 연막이 피어오르는 곳에는 커다란 낙하기가 땅에 비스듬히 박혀 있었고 낙하기의 꼭대기에서 붉은 연기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낙하기의 표면은 운석같은 것에 맞은 듯 크게 찌그러진 자국이 있었고 비록 찌그러져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붉은 오각별 안에 낫과 망치가 포개어져 있는 문양을 잘 알고 있었다. 적국의 상징을 본 제국 해병 중사는 본능적으로 그 적국의 구식 무기를 꺼내 이를 정조준한다.

"저거 뭐야? 당신 저거 알아?"

"아니, 나도 처음 보네. 우리가 잠든 이후의 물건이라면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군."
붉은 군대의 정치장교는 애증의 대상인 낫과 망치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가까이 다가가자 붉은 별 아래에 써있는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НКВД... 음... 내무인민위원회... 소비에트 연방 인민들에게...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내무인민위원회는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내무인민위원회는 상황이 호전되는 즉시 전 은하 모든 행성의 인류를 구조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화물 낙하기에는 옥수수가 실려 있습니다... 당장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상황이 아니라면 직접 먹기보다는 집단 농장을 구성하여 옥수수 농사를 지어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식량 자급자족을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해당 지역에 내무인민위원회 조직이 존재한다면 내무인민위원회의 지도를 따르십시오... 전자기 펄스 방출기를 항상 휴대하고 구할 수 없다면 야간에 외부활동을 하지 마십시오... 냉동수면 장치가 있고 이를 숨겨둘 안전한 장소가 있다면 그곳에서 구조를 기다리십시오...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소비에트 연방은 다시 한 번 고난 속에서 되살아날 것입니다... 인류 만세... 내무인민위원장 카티아 스미르노프..."

"이게... 무슨 소리지..."

"...... 차차 생각해보세... 일단 이 옥수수를 식량창고로 옮기는 게 좋겠군..."

"무슨 일이었나요?"

"하늘에서 옥수수가 굴러떨어졌다네! 두어달은 옥수수만 먹고 살아도 될 양이긴 한데, 혹시 이거 농사를 지어볼 수 있겠나?"

"전 농부는 아니지만, 어려울 거에요. 이 지역은 옥수수를 키우기에는 따뜻한 시기가 너무 짧아요. 옥수수는 다른 지역에서 온 상인들이 가져온 것만 먹어봤어요."

"안타깝구만."

"그렇지만 옥수수와 생선으로 페미컨을 만들어볼게요. 딸기와 고기로 만든 것보다는 맛이 없겠지만 더운 날씨에도 일 년은 보관 가능하니까요."

"그래, 그러는 게 좋겠군."
아르티옴은 프레야에게도 낙하기에 써있던 내용을 전했다. 아르티옴은 낙하기의 나머지 부분을 샅샅이 뒤졌지만 옥수수 재배 방법이 설명된 책자 외에는 어떤 정보도 더 읽을 수 없었다.

"인류가 큰 위기를 겪었다는 건 역시 사실이었군요. 그래도 이 행성에도 사람들이 어느정도 살고 있고, 지난번의 해적이 왔다는 행성 얘기도 들어보면 인류는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서고 있는 중이에요. 그 말대로, 희망을 버리면 안되요."

"그래. 그 말이 맞아.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끔찍한 뭔지모를 재앙이 일어날동안 우리가 잠들어서 그 꼴을 보지 않았다는 게 다행일수도 있겠군."

"샘을 처음 만났을 때 한 말도 그렇고 신스 반란군이 제국과 소련을 모두 파괴했던 거 아닐까요? 혹시 아직도 신스들이 남아서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군. 소련과 제국이 정말 붕괴되었고 그 뒤로 그만한 거대 성간국가가 생겨나지 않았다면 대규모의 다닐로프군을, 아니 신스 반란군을 제압할 수 없었겠지. 포기를 모르는 기계들이 알아서 멈췄을리도 없고 말이야."

몇 주 지나지 않아 아르티옴은 축전기의 설계를 완료했다. 이제 풍력발전기로 충전한 전력을 밤낮없이 항상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에 리스가 총기를 생산하는 속도도 크게 빨라졌다. 오랫동안 써오던 스토브는 땔감을 태우는 대신 전기로 가열하도록 개조되었다. 샘은 처음에는 사용하기 어려워했지만 금방 배우고 익숙해져서 다시 모두에게 맛있는 식사를 제공했다.

아르티옴은 이제 냉방 장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옥수수를 얻은 이후로 약간은 걱정이 줄었지만 여전히 식량은 썩어가고 있었고 대책이 시급했다.

세 사람이 쓰고도 예비로 하나 남도록 네 자루의 볼트액션 소총을 완성한 리스는 플라스틸 광석을 녹여서 방탄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냥 플라스틸을 바가지로 만들어서 머리에 뒤집어쓰는 원시적인 형태였고 머리에 땀이 차며 불편했지만 부족민의 쇠구슬이나 화살은 확실하게 막아줄 것이 분명했고 볼트액션 소총을 정통으로 맞아도 깨지지 않았다.

보르알보브레이의 원자재 상단이 도착했다. 이들은 지난번에 노예를 사간 이후 제국 호송대를 훌륭한 거래 상대로 여기게 된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필요하신 물건 있으신가요?"

"어, 넌 꽤나 어리구나. 진짜 상단 대표니?"

"네. 상인 연습 중이에요. 제가 잘못 거래하면 뒤에 계신 상단장님이 혼내고 대신 거래하실 거에요."


"우선 이 옷들을 가져가렴. 해적들이 입고 온 걸 뺏은건데 아직도 입을만 하단다."

"네, 혹시 여기서 농사를 지으시나요? 목초, 참나무, 딸기 씨앗을 가져왔답니다."

"딸기를 사는 게 좋겠어요. 딸기는 여기서도 재배할 수 있을 거에요."

"그래, 딸기 씨앗을 주렴. 아, 저건 뭐니?"

"네, 자루에 담아드릴게요. 저건 전사들이 입는 조끼에요. 주머니를 많이 달아놓아서 쇠구슬이나 화살을 훨씬 많이 들고 다닐 수 있고 페미컨을 넣어서 들고다니면서 먹어도 좋아요. 3개 가져왔는데 사실래요?"

"총알을 들고 다니려면 꼭 필요하겠군. 3개 다 주겠니?"
전술조끼는 볼트액션 소총을 위한 클립 탄창을 넣어두기에 딱 좋았고 올해는 농사 시기를 놓쳤지만 내년부터는 딸기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보르알보브레이의 부족민들은 항상 훌륭한 거래 상대였으며 이들의 존재는 제국 호송대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르티옴은 3600년 전의 발명품을 재현해내는데 성공했다.

리스는 즉시 식량창고에 냉방장치를 설치했다. 이제 식량창고는 전기만 들어온다면 1년 내내 영하의 기온을 유지할 수 있었고 식량이 썩을 염려도 없었다. 리스는 개폐 가능한 환풍구와 냉방장치의 스위치를 이용해서 외부온도가 영하일 때는 전기를 쓰지 않고도 영하의 기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아르티옴은 사막에 넘치도록 굴러다니는 바위 덩어리들을 이용해 벽돌을 만들어볼 계획을 한다. 여태까지 모든 건물을 얇은 철판으로 지어왔는데 이는 내구도도 좋지 못했고, 샘과 리스 부부의 옆방을 쓰는 프레야가 내색은 안 하지만 매일 밤 들리는 두 사람의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느 5501년 가을날의 저녁, 제국 호송대의 일행은 왁자지껄한 소리에 놀라 식사를 하다말고 각자의 총을 들고 뛰쳐나간다.
첫댓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맛에 연재도 하고 핫산도 하네요
마지막쯤에 엑박이 하나있네요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언제나 마지막은 습격자들이 오는군요 ㄷㄷ
재밌게 잘보고있습니다~
어떤 모드 사용하시나요?
CE, VFWE, EPOE, 프리페어 캐어풀리, 임신, 청소운반로봇, hand me that brick, 접대, 씨드플리즈, 신발장갑, 낚시 쓰네요
@숙청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넘나 재밌게 보고갑니다 저도 덩달아 림월드 다시하기 시작했...
완전 꿀잼입니다. 림월드 다시 하고싶어지네요 ㅎㅎ
내가 할땐 재미없는데ㅋㅋ 글 진짜 잘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