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최고의 뜨거운 감자, <但 敎 化 菩 薩 (단교화보살)>
佛告舍利弗
【諸佛如來 但敎化菩薩 諸有所作 常爲一事
唯以佛之知見 示悟衆生】
舍利弗 如來 但以一佛乘故爲衆生說法 無有餘乘 若二若三
舍利弗 一切十方諸佛法 亦如是”
(方便品 第 2 에서)
(O)
모든 부처는 오로지 가르침을 펼쳐 (중생들로 하여금) 보살이 되게 합니다.
부처가 자나 깨나 행하는 모든 불사(佛事)는 오직 이 한 가지
때문입니다.
부처의 지견을 중생들에게 시(示)하여 그들을 오(悟)하기 위해서입니다.
(X)
모든 부처는 오로지 보살만을 교화하고 있습니다.
부처가 자나 깨나 행하는 모든 불사(佛事)는 오로지 이 한 가지
때문입니다.
부처의 지견을 중생들에게 시(示)하여 그들을 오(悟)하기 위해서입니다.
(羅썰)
*<但敎化菩薩>, <但敎化諸菩薩>, <但化菩薩>, <但化諸菩薩>
<但> 다만 단, 오로지 단, 무릇 단
<敎> 가르칠 교
<化> ~가 될 화(자동사), ~로 되게 할 화(타동사)
<敎化> 의 두 가지 의미
첫째. ~를 가르쳐(敎) ~가 되게 하다(化)
둘째. ~를 교화하다
(註: 두 글자로 된 이 단어, <敎化>는 경우에 따라 첫째 의미로도, 둘째 의미로도 사용되어
법화경을 공부하는 이들을 헷갈리게 한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 보아야 할지는 법화경 흐름의
전후를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羅궁시렁)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爲諸菩薩>을
<모름지기 보살이 된다.>가 아니라,
<모든 보살을 위해>라 번역한 거대한 착각은
바로 이 다섯 글자, <但敎化菩薩>을
<오로지 가르침을 펼쳐 보살이 되게 한다.>가 아니라,
<오로지 보살만을 교화한다.>라는 또 다른 착각으로 연결된다.
하나의 착각이 또 다른 착각을 불러온 것이다.
결과는?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법화경의 취지와 핵심 내용이
180 도로 뒤집어져버린다.
다시 말해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 설하신 법화경은
오로지 보살들을 교화하기 위한 법화경으로 뒤집어졌다.
또 “중생들이여, 반드시 보살이 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보살들이여, 반드시 부처가 되라.”는 가르침으로 뒤집어졌다.
바로 앞 경문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出現於世)하는
딱 한 가지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하신다.
불지견(佛智見)을 (보살이 아니라) 중생들에게 개시오입(開示悟入)하는 것, 그것이
이유였다.
<出現於世>라는 구절을 일곱 번이나 반복하시면서 말이다.
만일 위의 (X)번역처럼 <여래께서는 오로지 보살만을 교화하신다.>는 해석이
정확하다면 어떤 결과가 되는가?
부처님은 당신의 말씀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신 셈이 된다.
<모든 여래는 (중생이 아니라) 오로지 보살만을 교화한다>고 하셨으니 말이다.
중생들에게 불지견을 개시오입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 여래께서
오직 보살만을 교화하신다고?
이게 사실이라면, 부처님께서는 한 입으로 두 말씀을 하신 것이다.
법화경의 대가라는 분들이 경문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발생한 이 사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부처님께 죄스러운 대형사고 아닌가?
부처님을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법화경 대가님들.
그들이 궁리 끝에 만들어낸 수습책이 바로 <중생 = 보살>이라는 등식이 아닌가 싶다.
<모든 중생이 다 보살이다.>라고 요란 뜨시는 일본땅, 조선땅의
대가님들 말이다.
급기야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다.>라고 통 크게 인심 쓰는 대가님들도 계시는 모양이다.
<일체중생 = 부처>라는 화려하고 묵직한 날나리 등식으로.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다.>라고 꽹과리 치시는 대가님들 말이다.
이 모두가 <爲諸菩薩>의 오역이 인(因)이 되고,
이어 <但敎化菩薩>의 엉터리 해석이 연(緣)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셨다면,
이제 법화경으로 말장난 그만! 하실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인(因)과 연(緣)의 고리는 여기까지......가 아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그것의 끈질긴 흐름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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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