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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87체제 속성 드러낸 비리의 무릉도원
선관위의 비리 파문은 언제쯤 잔잔해질까. 현재로선 기약이 없다. 의혹에 의혹이 더해지면서 국민의 분노가 가라앉을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 채용 자체도 심각하지만, 이런 부정을 밝히려는 외부 감사를 거부하고 수사를 방해하며, 심지어 자료를 조작하고 폐기하는 등 조직적 저항도 서슴지 않는다. 헌법을 흉기 삼아 휘두르는 조폭 집단을 연상시킨다.
선관위의 비리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아빠 찬스’라고 불리는 선관위 직원 자녀들의 특혜 채용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경력 경쟁 채용’이다. 경력 채용은 신입 공개 채용에 비해 절차가 느슨하고 빈틈이 많다는 것을 악용하는 것이다. 선관위 간부의 자녀가 지방공무원으로 경력을 쌓은 후 손쉽게 선관위 직원이 되는 방법을 가장 많이 동원했다고 한다.
선관위 간부들이 자기 자녀를 경력직으로 채용하기 위해 동원한 수법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공직 윤리마저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채용 담당 직원에게 "내 딸이 응시했다"며 계속 쪼기, 면접 채점을 연필로 적게 해 성적 고치기, 시험도 없이 하루 전에 합격 처리하기 등이다. 문제가 되자 "서류함을 갈아버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경력 채용 규정 위반만 878건에, 선관위 비리를 정리한 감사원 보고서 분량이 385페이지에 이른다.
선관위에 인사 비리가 만연한 것은 이들에게 어마어마한 특혜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 감시·견제를 받지 않는다. 민원도 없고 승진 기회도 많다. 근무 기강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8년간 817일 동안 해외에 머문 사례, 한 해 동안 48일의 무단결근 및 131일 해외여행을 한 사례도 드러났다.
선관위는 비리를 일상화하면서도 국민의 시선이나 다른 정부기관의 감시나 견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통치권 자체를 부정하고 권력을 조각조각 나눈 87체제의 속성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에서는 자기 영역 안에서 절대권력을 누리는 ‘작은 폭군들’이 많아진다. 선관위는 일부일 뿐이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 가운데는 선관위 못지않은 사례도 많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선관위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다. 작은 기득권들이 담합해 대한민국 미래를 향한 변화를 거부한다면 그 결과는 공멸이다. 그 저항이 대통령 탄핵을 불렀다고 말하면 지나친 오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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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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