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은 이즈음의 연말 분위기를 돋으는 사물이다.
산타할아버지를 태우고 눈 내리는 밤하늘을 날고 있는 루돌프 사슴의 썰매.
선물이 든 빨간색 보따리는 크리스마스카드의 기본 디자인이다.
표면에 그려진 빨간 보따리가 카드 내부를 펼치면 선물이 쏟아낸다든지.
색색의 구슬이 달린 크리스마스트리나 먹기 아까운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속지에서 튀어나오는 등의 식의 기발한 입체 카드도 많다.
신년 연하장은 크리스마스카드에 비하면 차분하고 동양적인 게 많다.
붉은 해가 솟아오르는 가운데 학이 날고 있다든지 설경 속의 사군자.
동양의 시간 개념이 담긴 십이간지도 대표적인 도안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시절 그림이 인쇄된 영국의 크리스마스카드가 최초라고 얘기되지만,
15세기 독일에서는 이미 아기 예수의 그림과 신년 인사가 동판으로 인쇄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카드는 서양 것이지만,
신년 인사를 담은 일종의 '연하장'은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웃어른에게 신년 인사를 가면서 명함을 놓고 온다든가, 신년 문안 서찰을 올리는
오래된 풍습 등이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로 우편으로 오가는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의 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카드'라는 사물에는 물리적 실감이 특히 중요하게 느껴진다.
내 경우 그 실감은 화려한 카드 디자인에서 오기보다는 카드를 펼칠 때
펼쳐지는 하얀색 속지로 우선 다가온다.
왜 모든 카드의 속지는 하얀색인가.
그것은 요즈음의 눈밭 풍경인 동시에 아직 당도하지 않은 시간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얀 속지에서 직관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복(福)을 기원하는 발신자의 깨끗한 마음이다.
그리고 이 마음을 완성하는 것은 직접 쓴 '손글씨'다.
현대 문명을 주도한 서양에서 아직도 손글씨로 쓴 카드가 최고의 선물로 여겨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밟지 않은 하얀 눈밭 위에 새긴 이웃과 친구의 복을 빌어주는 기도와 인사의 몸짓.
그것은 손을 따라 나온 심장의 말이다.
내 심장을 따라나온 말만이 남의 심장도 뜨겁게 할 수 있다.
마음까지 얼어붙은 겨울이라는 말들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카드의 하얀 속지 위에 심장의 말을 손수 적어 누군가에게 건네 보자.
작지만 뜨거운 심장의 온기가 겨울을 견디는 힘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함돈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