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 李超(1894 ~ 미상)】 "한반도 침투 ‘냅코프로젝트’에 침투훈련과 첩보훈련」
1894년 9월 17일 평안남도 평양부 용산7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기섭(李基燮)과 어머니 서씨의 3남 1녀 중 3남이며, 이명은 이정일(李鴊翼)이다. 부인 이초실은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에서 활동하였다.
1916년 9월 3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1917년 12월 7일 흥사단에 입단하였다. 또 대한인국민회 클레어몬트지방회의 재무로 활동하였다. 이후에도 샌프란시스코지방회의 회장과 대한인국민회총회 집행위원장 등을 맡아 광복 때까지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미주 지역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19년 8월 25일 레드우드 비행학교(redwood aviation school)에 입학하여 비행술을 익혔다. 1920년 2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盧伯麟)이 레드우드 비행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한인 재학생 이용선·한장호(韓章鎬)·이용근(李用根)·오임하(吳臨夏)·장병훈(張炳勳) 등과 한인비행학교 운영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1920년 6월 4일 레드우드 비행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는 재미실업가 김종림 등의 지원으로 노백린이 캘리포니아에 설립한 한인비행학교에 입학하여 학생 겸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7월 7일 우병옥(禹炳玉)·이용선·오임하와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졸업 후에도 학교에서 부교관으로 학생들에게 비행술을 가르치는 한편 8월에는 한인비행학교 졸업생들과 대한인비행가구락부(Korean Aviation Circle, K.A.C)를 조직하였다.
1932년 대한인국민회 새크라멘토지방회 회장 겸 학무로 선출되었으며, 1933년부터 1934년까지는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윤봉길 의사 추도회와 순국선현추도회 등을 주도하였다. 1935년부터 1936년까지는 대한인국민회총회에서 재무를 맡았으며, 1937년 대한인국민회총회 중앙집행위원 후보위원, 1939년과 1941년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42년 12월 6일 미국 전략첩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 OSS) 특수군사훈련에 참여하였고, 1945년 1월부터 8월까지 한반도 침투 ‘냅코프로젝트(NAPCO)’에 참가해 침투훈련과 첩보훈련을 수행했다. 1945년 10월 1일 미국 특수군사작전에 헌신한 공로로 전략첩보국 책임자 도노반(William J. Donovan) 장군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이와 함께 1916년부터 1944년까지 수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