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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 003
s#1. 정윤겸 집 안채 마당
난정, 손에 쥔 옥패를 의아하게 들여다 보다가 고개들어 난정모가 들어간 안방을 바라본다.
s#2. 동 안채 방안
공간에 프레임 인 되는 분홍색 저고리.
박씨 : (난정모에게 저고리 건네며) 저고리 동정이 헐거우니 풀을 멕여 새로 달게.
난정모 : (받으며) 예.
옥련 : (난정모를 보다가) 장흥댁, 안방 출입하면서 앞치마도 벗지 않는 건 뉘 집 법돈가?
난정모 : (앞치마를 내려다 보고 흠짓 놀라)..에그머니. (황급히 앞치마를 벗는다)
옥련 : 그러니 난정이가 그 모양이지!
난정모 : ...?!
s#3. 난정모 방 안
난정의 손위에 놓인 옥패.
방 한쪽에 앉아 손에 든 옥패를 유심히 들여다 보는 난정.
난정모, 분홍저고리를 들고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난정모 : (보고) 난정아, 여태 옷도 갈아입지 않았니?
난정 : (옥패를 내보이며)..어머니 이게 뭐여요?
난정모 : (옥패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아,아니!!
난정모, 황급히 난정의 손에서 옥패와 비단주머니를 뺏듯이 낚아챈다.
난정 : (난정모의 과민한 반응에 무안하여)...아까 어머니가 흘리신 걸 주웠세요.
난정모 : (옥패를 비단주머니속에 넣는다)... 어쩌다 이게 떨어졌다.
난정 : 어머니, 그게 뭐에요?
난정모 : (옥패주머니를 치마속에 챙기고 난정보며)..이 옥패 어미 목숨과 같은거란다.
난정 : ..........? (갸우뚱)
난정모 : 옷이나 갈아입거라.
난정 : 네, 어머니..
난정모, 반짇고리를 꺼내 자리에 앉는다.
난정, 옷을 갈아입으려고 반닫이쪽으로 가다가 난정모를 돌아보고 갸웃한다.
s#4. 거제도 바닷가 (석양)
파릉군의 집사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본다.
바위 위에서 낚시대를 드리운 초로의 사내가 낚시에는 관심이 없는 듯
손에 쥔 반쪽짜리 옥패만 들여다 보고 앉았다. 파릉군이다.
옥패를 보는 파릉군의 얼굴위로 떠오르는 영상.
INSERT) 계향의 얼굴.
계향(E) : 대감, 부디 옥체 보중하옵소서.
파릉군 : (하늘을 보고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벌써 십년 세월이 흘렀구만...
파릉군, 다시 옥패를 보며 손에 꽉 쥔다.
s#5. 대전 방 안 (낮)
중종(29세), 고개를 숙인채 침울한 얼굴로 앉아있다.
중종 : (고개를 들고)..밖에 김상궁 있느냐-
김상궁(E) : 예!
김상궁(10년후의 모습)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김상궁 : 전하- 찾아계시옵니까?
중종 : 나가 보고 오너라.
김상궁 : (조아리며)..예...(문을 나간다)
중종 : (한숨을 내쉰다)..
s#6. 대궐 일각 (인왕산이 보이는 곳)
김상궁, 종종 걸음으로 오다가 멈춰서서 인왕산 쪽을 바라본다.
s#7. 인왕산 어느곳(INSERT)
바위 위에 펼쳐져 나풀거리는 다홍색 치마.
그 옆에 폐비 신씨가 그리움의 눈길로 경복궁쪽을 내려다보고 섰다.
해설(NA) : 입궐한지 칠 일만에 폐위 당해 사가로 쫓겨나간 폐비 신씨는 생이별한 중종의 애틋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날마다 인왕산에 올라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바위 위에 즐겨 입었던 다홍색 치마를 펼쳐놓았다.
s#8. 대궐 일각
김상궁, 인왕산쪽을 보고 한숨을 푹 쉬고는 황급히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s#9. 대전 안
김상궁(E) : 마마.
중종 : 들어오너라.
김상궁 : (들어온다)
중종 : 그래, 오늘도 이더냐?
김상궁 : 예.
중종 : ...(한숨을 토해낸다)
s#10. 대비전앞 뜰
중전 윤씨가, 상궁 나인들을 거느리고 대비전 계단을 오른다.
어딘지 병색이 도는 중전의 얼굴.
조상궁(E) : 대비마마, 중전마마 드시었사옵니다
자순대비(E) : 뫼시어라.
s#11. 대비전 방 안
방문이 열리고 중전이 들어온다.
자순대비 : (반갑게) 어서오세요, 중전.
중전 : (절을 올리고 자리에 앉는다) 찾아계셨사옵니까, 대비마마.
자순대비 : (중전의 얼굴을 살피며) 중전의 얼굴이 미령해 보이시니. 어디가 또 불편하신게요?
중전 : 가벼운 체증인것 같사옵니다.
자순대비 : 중전은 이 나라 국모이십니다. 중전의 옥체는 중전 혼자만의 것이 아니오.
급히 내의원에 기별 하시어 진맥을 받도록하세요.
중전 : 예, 마마.
자순대비 : (보다가)..요즘 주상께서 내전 침소엔 자주 드십니까?
중전 : (고개를 숙이는)....
자순대비 : 다른 후궁들은 벌써 아들을 하나 둘씩 낳았는데 유독 중전에게만 대군이 없으니
주상께서 중궁전에 마음을 못 붙이시는게 아니요?
중전 : (얼굴 굳는)...
자순대비 : 내 중전을 타박하는게 아니에요. 중전께서 대군 아기씨를 생산하시는 일은 이 나라 종묘사직의 대통을 잇는
국가지대사임을 명심하세요.
중전 : 예, 명심하겠사옵니다, 대비마마.
s#12. 대궐 일각
희빈홍씨와 창빈안씨가 나인들을 거느리고 오다가 멈춰서서 인왕산쪽을 바라본다.
(INSERT) 넓은 바위 위에 널려있는 다홍색치마.
창빈 : 참으로 지극정성이시요, 그 긴세월을 눈이 오나 비가오나 저리 치마를 내걸고 계시니..
희빈 : (못마땅) 폐비가 청승 좀 그만 떨었으면 좋겠어요.
창빈 : 가슴에 맺히신 한이 얼마나 깊으면 저러시겠사옵니까?.
희빈 : 그럼 뭐하겠소, 지금 중전께서 자리하고 계시온데.
창빈 : (끄덕이며)..허나 중전마마께오서 자주 환후에 드시니 걱정이옵니다.
희빈 : 그게 다 원자를 생산치 못하시어 생기신 마음의 병이실게요.
창빈 : ...마음의 병이요?
희빈 : 후궁들은 아들을 쑥쑥 낳았는데 중전마마께오선 효혜공주 한분 뿐이지 않소?
창빈 : (한숨) 아들만 낳았으면 뭐하옵니까? 전하의 사랑은 경빈께서 독차지하고 계신데..?
희빈 : 하긴 고 여우같은 경빈이 사향주머니를 차고 있다는 소문이던데
그게 요설을 피우는지 나도 전하의 용안을 뵈온지 한참되었소.
창빈 : 이러다 항간의 소문처럼 경빈의 소생 복성군이 세자로 책봉이 되는게 아닐지요..?
희빈 : 쉬! 말씀 조심하시오, 누가 들으면 어쩌시려고?
창빈 : ...?!
희빈 : (단호하게) 절대 안될 말이오. 난 경빈이 대비전에 앉는 그 꼴은 못보오!
창빈 : (섬찟한)...
s#13. 경빈의 처소
경빈 박씨, 김상궁(제조상궁)에게 패물을 건네준다.
경빈 : 김상궁, 오늘밤도 전하를 내가 뫼시게 해주게!
김상궁 : 마마, 오늘 일진을 보니 전하와 경빈마마의 합궁운이 불길하온데..
경빈 : (호통) 허어, 일진은 무슨 일진?!
김상궁 : (찔끔하여 침을 꼴깍 삼킨다)..
경빈 : 오늘밤 자시가 왕자를 잉태할 길시라니 내말 명심하여 거행하게나.
김상궁 : (조아리며)..예..
경빈 : (쌩긋 미소짓는다)
s#14. 중궁전 방 안
팽팽한 명주실이 보여진다.
명주실 위에 놓여지는 내의의 손 실을 따라 PAN하면 중전의 손목.
카메라 T.UP하면 긴장하고 있는 중전의 얼굴.
s#15. 동 방 밖 복도
김내의, 방안에서 나온 명주실 끝을 잡고 진맥중이다.
김내의, 진맥이 끝난 듯 눈을 뜨고 명주실에서 손가락을 뗀다.
김내의 : 명주실을 거두시요.
s#16. 동 방 안
중전의 손목에 매인 명주실을 풀어주는 상궁 나인들.
중전 : 요즘들어 미음조차 속에서 받지 않으니 대체 내 병명이 무엇이요?
s#17. 동 방 밖
김내의 : 체증이 오래된 것 같사옵니다. 체증을 내리는 약을 지어올리겠사옵니다.
s#18. 동 방 안
중전 : (뭔가 생각에 잠기는)....
s#19. 중궁전 앞 뜰
김내의, 내의원 나인들을 거느리고 계단을 내려와 간다.
반대편에서 오던 윤임이 내의를 보고 갸웃하다가 급히 계단을 오른다.
윤임의 손에 보자기로 싼 약첩이 들렸다.
s#20. 중궁전 방안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윤임.
중전 : 앉으세요, 오라버니.
윤임 : (앉으며) 마마, 환후는 어떠시옵니까?
중전 : (큰 한숨을 쉰다)
윤임 : 속히 쾌유 하셔야지요, 그래야 회임도 하시고 대군 아기씰 생산 하실게 아니옵니까?
중전 :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 입니까? 전하의 마음은 폐비 신씨에게 머물러 계시고 밤에는 경빈의 침소로만 찾으시니...
(얕은 한숨 쉰다)
윤임 : (안스럽게 보다가)...신이 용하다는 의원에게 회임에 좋다는 탕재를 지어왔사옵니다. (약첩을 건넨다)
중전 : 고맙습니다. 오라버니.. (밖에다) 박상궁 게 있느냐?
박상궁(E) : 예.
박상궁 : (문 열고 들어온다) 마마. 찾아계시오니까?
중전 : (약재를 주며) 약방에 전하게.
박상궁 : 네. (약재를 들고 나가는데)
윤임 : 조석으로 두 번 정성껏 다려 올리라고 하게.
박상궁 : 내의원의 허락이 먼저 있어야 할것이옵니다.
윤임 : 뭣이야, 중전마마의 친정에서 지어올린 약도 허락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중전 : 고정하세요, 오라버니...궁중의 법도가 지엄한 걸 중전인 낸들 어쩌겠습니까?
윤임 : ....
s#21. 대전 외경
내관(E) : 전하, 오위도총부 도총관 들었사옵니다.
s#22. 대전 안
술상을 놓고 중종과 독대하고 있는 정윤겸.
중종 : 내 오늘 적적하여 경과 술 한잔 나누고 싶어 불렀소. (술 주전자 든다)
정윤겸 : (공손하게 받으며) 황공하옵니다, 전하.
중종 : (술 따르며) 경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나는구려. 그날 밤, 경이 사저에서 연을 타고 입궐 하는 나를 호위하지 않았소?
정윤겸 : 예, 그랬사옵니다.
중종 : ..벌써 십 년 세월이 흘렀구려...(술 한잔 마신다)
정윤겸 : (조심스럽게 마신다)
중종 : (보며) 도총관.
정윤겸 : 예, 전하.
중종 : 세상 돌아가는 민심이 어떠하오?..
정윤겸 : ...............
중종 : 지금 정국공신들의 여론을 주도하는 자가 지중추부사 남곤이라고 하는데.
정윤겸 : (곤혹스러운)...
중종 : 남곤이 경사에 통달하고 문학도 섬부하다던데 그 인물됨은 어떠하오?
정윤겸 : ...
중종 : 남양군이 정국 일등공신이었다고 하나 그 성정이 과격하여 따르는 자가 많지는 않을게요.
사림세력은 전조에 두 번에 걸친 사화로 힘을 잃었고 개혁정치의 이상을 품고있는 신진사류들은
아직 등용도 못하고 있소이다.
정윤겸 : .....
중종 : 어찌 말이 없소, 도총관?
정윤겸 : 전하, 소신은 정사에 관여할 수 없는 무관이옵니다. 그 점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중종 : 반정의 공신들은 훈구세력이 되어 조정의 권력을 공공히 장악하고 있소.
정윤겸 : ......
중종 : 과인은 정국 공신들의 등살에 밀려 조강지처까지 버렸소. 사가로 쫓겨가는 폐비를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었소...
헌데도 폐비는 십년을 하루같이 인왕산에 치마를 걸어 이 못난 지아비를 그리워하고 있구려.
그런데도 과인은 그를 가까이 보지도 못하는 구려.
정윤겸 : (고개를 숙인다).. 전하 망극하옵니다.
중종 : (자책하듯) 과인의 죄가 크오.
정윤겸 : 전하.
중종 : 아니오, 과인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 못할 짓을 했어요. 폐비 일도 그렇고.
역모로 몰아 죄없는 종친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냈지 않았소..
정윤겸 : ...
중종 : 그들이 보고 싶소..
정윤겸 : ....
중종 : (한숨 쉬며) 과인의 주변에 짐을 보필해줄 사람이 없어요... 사람이...직언을 해주던 파릉군 숙부가 보고 싶소..
(착잡하게 술 한잔 마신다)
정윤겸 : ...!
해설(NA) : 그랬다. 중종 5년 박원종이 죽고, 중종 7년에 유순정이, 그 다음해 성희안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니
중종반정의 삼대장이 모두 사라졌다. 중종은 친히 정사를 돌보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불행하게도 중종의 주변엔 그 뜻을 받쳐줄 정치세력이 없었다.
s#23. 대궐 일각
남곤이 걸어오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김승지가 남곤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한다.
놀라는 남곤.
남곤 : 뮛이야 독대!. (어디론가 휙 간다)
s#24. 빈청안
남곤, 심정 앉아있고 공간으로 들어오는 홍경주의 얼굴.
홍경주 : (놀라) 뭬요? 전하께오서 도총관 정윤겸과 독대를?!
남곤 : 예. 그 뿐만 아니라 전하께오선 요즘 부쩍 젊은 유생들과 면대가 잦으시옵니다.
홍경주 : 험, 그까짓 구상유취한 성균관 유생들이야 신경쓸 것 없지만,
군사를 거느린 도총관이 전하와 독대를 한다는 것은 예삿일은 아니오.
남곤 : 그렇소이다.
홍경주 : 음!!..전하께오서 무슨 은밀한 사안이 있어 도총관과 독대를 하시었는지 소상히 알아보시오.
남곤 : 예.
심정 : 듣자니 도총관의 소실이 역모죄로 가문을 닫은 허아무개의 딸이라 하오이다.
홍경주 : (솔깃하여) 그래요? 정윤겸의 집안내력을 소상히 더 캐보십시다..
심정 : 예, 대감.
(E) 복도에서 들리는 기침소리
모두 문쪽을 본다.
빈청안으로 들어오는 윤임.
홍경주 : (보고) 어이구, 판부사 어서오시요.
윤임 : 허허, 무슨 재미있는 말씀들을 나누고 계시옵니까? 이사람도 한자리 끼어주시지요.
남곤 : 재미는 무슨요? 전하께오서 도총관과 독대를 하신단 말씀을 나누고 있었소이다.
윤임 : (놀라) 독 독대요?!
s#25. 대궐 중문 밖
정윤겸, 궐문을 나와 사인교쪽으로 걸어 가는데.
윤임집사 : (다가와 조아리며) 대감마님, 그간 기체 대안하셨사옵니까?
정윤겸 : (보고)...오, 자넨 판부사댁 박서방 아닌가?
윤임집사 : 예, 대감마님.
정윤겸 : 어인 일인가?
윤임집사 : 저의 댁 대감께서 도총관 대감을 뵙자십니다.
정윤겸 : 나를?
s#26. 자운아 기방 대문 앞 (저녁)
정윤겸, 미복차림으로 혼자 걸어오는데
대문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살피던 옥매향, 정윤겸을 보고 머리를 조아린다.
옥매향 : (평안도 사투리) 도총관 대감이시디요?
정윤겸 : 네가 어찌 나를 아느냐?
옥매향 : (쌩끗 웃으며) 판부사께오서 도총관대감의 용모를 일러 주셨디요.
정윤겸 : 음...?!
옥매향 : 어서 드시디요.
s#27. 자운아 기방 대문 안 (저녁)
옥매향을 따라 들어오는 정윤겸.
옥매향 : (안채쪽에다) 오마니, 도총관 대감오셨시요.
자운아, 안채 방문을 열고 급하게 뛰어나온다.
자운아 : 아이구, 어서 오시라요, 도총관대감..처음 뵙겠습네다. (조아리며) 자운아라 하옵네다.
정윤겸 : 판부사께선 어디 계시느냐?
윤임 : (방에서 나오며) 대감,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정윤겸, 헛기침을 하며 자운아의 뒤를 쫓아 안채 방으로 들어간다.
s#28. 자운아 안채 방 안 (저녁)
들어오는 윤임과 정윤겸. 정갈한 술상이 차려져 있다.
윤임 : (상석을 가리키며) 자, 내려 앉으시지요, 대감.
정윤겸 : (앉으며) 구종별배까지 물리치고 은밀히 오라셨으니 무슨 일이 있사오이까?
윤임 : (앉으며 자운아 보고) 자네는 나가있게나.
자운아 : (고개 조아리며) 그럼 말씀들 나누시라요. (나간다)
윤임 : (자운아 뒷모습보며) 지금은 퇴기로 물러 앉았지만 저래뵈두 연산주때는
평양에서 흥청으로 뽑혀 올라온 미색이었습니다. 허허.
정윤겸 : (신음)..으음?!
윤임 : (웃다가 진지하게 보는)....
정윤겸 : (보는)...
윤임 : (불쑥) 대감, 전하를 독대하셨다지요?
정윤겸 : ...!
윤임 : 시절이 하수상한데 어찌 독대를 하시었소? 언제 중상모략에 휩쓸려 삭탈관직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정윤겸 :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무관이외다. 신하된 자로 오직 전하께 충성을 다할 뿐이오!
언제라도 전하께서 독대를 명하시면 따를 뿐이외다!
윤임 : 이 사람도 무반출신이옵니다...다 대감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외다.
정윤겸 : ...
윤임 : 대감의 소실이 역모죄로 가문을 닫은 허아무개의 딸이라면서요?
정윤겸 : (놀라는)...그걸 어찌?!
윤임 : 만일 그게 무슨 빌미라도 되어 구설에 휩쓸린다면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이 되시옵니다.
정윤겸 : ...
윤임 : 허니 잡소리 나기전에 서둘러 소실댁부터 댁에서 내보내세요. 그게 현명한 처사일 겝니다.
정윤겸 : (목이 타는지 술 한잔 급히 마신다)
s#29. 대비전 방 안 (밤)
자순대비, 황촛불 아래서 책을 읽고 있는데.
조상궁(E) : 대비마마, 주상전하 드시었사옵니다.
자순대비 : (흠짓 보며) 주상이?..어서 뫼시어라.
조상궁(E) : 예.
방문이 열리고 취한 중종이 들어선다.
대비 : (책을 치우며) 어서오세요, 야심한 밤에 어인 걸음이시옵니까?
중종 : (비틀거리며 앉으며)..대비마마..
대비 : 주상, 어찌 이리 대취하셨소?
중종 : (취한 눈으로 보며) 죄송하옵니다 어머마마,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아시옵니까?
대비 : ...?
중종 : 오늘이 폐비와 성례를 올린 날이옵니다.
대비 : (흠짓하여)...?!
중종 : 귀 밑머리 마주 풀고 백년해로 하자고 천지신명께 맹세했던 바로 그날이 오늘이옵니다.
대비 : (마음이 아프다)...
중종 : ..폐비가 보고 싶사옵니다...
대비 : (엄하게) 주상!!
중종 : 십 년전 사가로 쫓겨나가며 소자를 부르던 폐비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서 떠나지 않사옵니다. (눈물 글썽거린다)..
대비 : 주상, 왜 그리 심약한 말씀을 하시오! 폐비의 일은 그만 잊으세요!
중종 : 어마마마...
대비 : 지금 그것보다는 종묘와 사직의 대업을 이어나갈 세자의 탄생이 급하옵니다.
허니 폐비의 일은 잊으시고 중전의 회임이나 걱정하세요.
중종 : ....
s#30. 대비전 밖 뜰 (밤)
중종, 비틀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내관들이 중종을 부액하는데 다가와 조아리는 김상궁.
김상궁 : 전하, 경빈의 처소로 드시지요, 기별을 해 놨사옵니다.
중종 : ..경빈?..경빈이라..(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s#31. 경빈박씨의 욕실 (밤)
경빈박씨, 욕통 속에 몸을 담그고 목욕중이다.
나인, 금이가 경빈박씨의 등에 팥가루비누칠을 하며 감탄한 듯 종알댄다.
금이 : 마마님 살결은 어찌 이리 보드라운신지..꼭 흰 눈 같사옵니다.
경빈 : (흡족한 미소)..되었느니라..
경빈박씨, 욕통에서 일어서면 금이와 다른 나인하나가 비단천을 들어 올리며 일어선다..
비단천에 비춰지는 경빈박씨의 실루엣이 육감적이다.
s#32. 경빈 박씨의 처소 (밤)
곱게 차려입은 경빈박씨가 거울을 보며 머리단장을 하고 있다.
경빈박씨, 치마에 찬 사향주머니(2회에서 박원종이 주었던)를 꺼내본다.
경빈박씨, 쌩끗 웃으며 사향주머니를 치마 속에 감추는데
금이 : (E) 마마님, 마마님!
경빈 : (방밖쪽을 보고) 들어오너라.
금이 : (방문 열고 울상되어 들어온다)..
경빈 : 그래 상감께옵서 이리로 걸음을 하신다드냐?
금이 : 전하께오선 강녕전 침소로 드셨다하옵니다.
경빈 : (일그러지며)..뭬야?!
s#33, 내전 중종 침소 (밤)
금침이 깔려있는 방안. 황촛불 앞에 앉아 깊은 상념에 빠져있는 중종.
중종, 고개를 들어 촉촉하게 젖은 그리움의 눈길로 허공을 본다.
s#34. 폐비 신씨의 사가 장독대 (밤)
폐비신씨, 장독대 위에 정한수를 떠놓고 두손 모아 간절하게 빌고있다.
신씨 :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구중궁궐에 계신 전하의 옥체를 굽어 살피시어 무병장수케 하옵시고...
국태민안을 이루실 지혜와 총기를 주시어 후대에 기리 기리 업적을 빛 낼 명군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신씨의 눈에 글썽 맺힌 눈물이 어느 순간 주르르 흘러 내린다.
s#35. 정윤겸 대문안 (밤)
집사가 조족등을 들고 앞장서고 정윤겸, 안채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정(E) : 부생아신(父生我身)이요, 모국오신(母鞠吾身)이시니. 복이회아(腹以懷我)요, 유이포아(乳以哺我)시라...
정윤겸, 소리가 들려오는 난정모 방쪽을 바라본다.
s#36. 난정모 방 (밤)
난정, 낡은 "四字小學" 책을 낭랑한 목소리로 읽고 있다.
난정 : 위인자자(爲人子者)로 갈불위효(曷不爲孝)라...
난정모, 바느질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흐뭇한 미소로 난정을 본다.
s#37. 동 방 밖 (밤)
정윤겸, 방문 앞에 와 선다. 그 옆에 선 집사.
방 문위로 난정모녀의 실루엣이 비추고 있다.
난정(E) : ...자식된 자라면 어찌 어버이께 효도하지 않으리오...
정윤겸, 난정의 글 읽는 소리를 듣다가 '어험, 험!' 헛기침을 한다.
방문 위로 난정모녀의 실루엣이 일어나면서 난정모녀, 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조아린다.
집사, 사랑채 쪽으로 나간다.
정윤겸 : 내 오랜만에 자네가 따라주는 술 한 잔 먹고 싶어 왔네.
난정모 : 안으로 드시지요,
정윤겸, 고개를 끄덕이며 방안으로 들어간다.
s#38. 동 방 안 (밤)
정윤겸, 들어오면 책을 치우고 일어서는 난정.
정윤겸 : (앉으며 난정에게) 밖에서 듣자니 사자소학을 읽더구나?
난정 : (고개 숙인다)....예.
정윤겸 : 글은 뉘게서 배웠느냐?
난정 : 어머니가 가르쳐주었사옵니다.
정윤겸 : (끄덕이고)...그래, 글 읽는게 재미는 있고?
난정 : ...예, 쇤네는 모르는 글자를 배우고 뜻을 깨치는 것이 재미있사옵니다.
정윤겸 : 허허, 네가 나를 닮았구나.
난정 : (보며) 예?
정윤겸 : 애비도 너만할 때 책을 읽으며 밤을 새운 적이 많았느니라.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로구나. 허허.
난정,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지만 기분은 좋다.
s#39. 동 부엌 안 (밤)
난정모, 술상을 차리고 있는데 들떠서 들어오는 난정.
난정 : (호들갑 떠는) 어머니, 어머니, 대감마님께오서 내가 대감마님을 닮았대요.
난정모 :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뭐어?
난정 : (의아하게 보며)...어머니. 왜 그리 놀라셔요?
난정모 : 아, 아니다. 난정아, 방이 차니 아궁이에 불 좀 더 지펴주련?
난정 : 네, 알았세요, 어머니. (밖으로 나간다)
난정모 : (난정 뒷모습 보며 다시 한숨을 내쉰다)
s#40. 동 안채 방 안 (밤)
박씨, 서안 앞에서 책을 보고 있다.
박씨 : (사랑채 쪽을 돌아보며)...오늘도 사랑에서 주무시려나?
박씨, 책을 덮으며 한숨을 쉰다.
s#41. 난정모 방 안 (밤)
난정모, 정윤겸에게 술을 따라준다.
정윤겸, 난정모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정윤겸 : 내 자넬 한양까지 데려와 고생 많이 시켰지?
난정모 : 아니옵니다. 관비로 박힌 이 몸을 거둬주신 것만도 큰 은혜이온데 저희 모녀를 어여삐 여겨주시니 백골난망이옵니다.
정윤겸 : 아닐세, 아니야..
난정모 : ...
정윤겸 : 난정이가 총명하더구나. 비록 서출이나 내 핏줄이니 잘 키우도록 하게.
난정모 : 예...(양심에 찔리는 듯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깨문다)...
s#42. 동 방문 밖 (밤)
난정, 마루 끝에 앉아있다가 방안의 소리를 들었는지..
난정 : (뭉클하여 입속으로 되뇌는)....아버님..!!
난정, 방쪽에다 허리를 숙이며 절을 하고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뒷곁으로 뛰어간다.
s#43. 정윤겸 집 외경 (새벽)
멀리서 새벽을 재촉하는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
s#44. 정윤겸 안채 마당 (새벽)
박씨, 안방문을 열고 대청으로 나오다가 아래채 쪽에서 나와 사랑채로 가는 정윤겸을 본다.
박씨 : (일그러지는)...!
박씨, 획 얼굴을 돌려 난정모 방쪽을 노려본다.
s#45. 중궁전 방 안 (낮)
중종, 자리에 앉으면 뒤따라 앉는 중전. 약을 마시고 소반 위에 약사발을 놓는다.
중종 : (소반 보며) 무슨 약이오?
중전 : 신첩의 사가에서 지어온 탕약이옵니다.
중종 : 허어, 어찌 사가에서 지어온 약을 드시오?
중전 : 내의원에서 다려온 약을 먹어보았지만 차도가 없사와..
중종 : (끄덕이며) 중전, 어서 쾌차하여 아들을 생산하여 주시요. 그래야 나도 대통을 이을 세자의 재롱을 볼 것 아니오?
중전 : (숙이며) 망극하옵니다...(하다가 갑자기 헛구역질 하는)...
중종 : (보며) 왜 그러시오, 중전.
중전 : 아, 아무것도 아니옵니다...(다시 입을 손으로 가리고 구역질 한다)
중종 : (잠시 생각하다가)...밖에 있느냐?
(E) 예-
중종 : 가서 어의 양수인을 불러오너라!
(E) 예-
중종, 계속 헛구역질을 해대는 중전을 본다.
s#46. 정윤겸 집 안채 마당
옥련, 안방에서 나와 마루 끝에 선다.
옥련 : 배서방, 배서바앙-
청지기 : 예- (한곳에서 달려 오며) 찾아계시옵니까, 아씨.
옥련 : 내 맞춤 꽃신은 어찌 됐는가?
청지기 : 예, 오늘 갖바치가 가져오겠다고 했습니다요.
옥련 : 기다릴거 없네. 난정일 보내게.
청지기 : (조아리며) 예, 그리합죠.
s#47. 어느 큰 길
요란한 풍물소리와 함께 광대패가 지나가고 있다.
땅재주꾼들과 탈꾼, 소리꾼 등이 묘기를 부리며 지나가는 행렬속에
모가비, 달래를 무등 태우고 가는 길상의 모습도 보인다.
몰려들어 구경하는 사람들.
난정, 지나가면서 힐끗 광대패 행렬을 보는데 길상과 눈이 마주친다.
난정, 고개를 돌리고 총총히 간다.
길상, 난정을 뒤돌아 보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돌부리에 걸려 벌렁 자빠진다.
s#48. 갖바치 초가 마당
갖바치, 덜 만들어진 꽃신이 놓인 작업대에 앉아 앞에 선 난정을 올려다보고 있다.
갖바치 : 허, 이거 어쩐다, 아직 다 못 지었는데?
난정 : (걱정) 우리 작은 아씨 화내시겠네..
갖바치 : 허허, 오래 걸리진 않을게다.
갖바치, 꽃신에 바늘땀을 넣는다.
작업대 주위에 놓여있는 여러 형태의 갖신들을 둘러보는 난정.
난정 : 아저씬 어디서 이런 재주를 배우셨세요?
갖바치 : (웃으며)...허허, 하늘이 사람을 세상에 낼 땐 누구나 한가지씩 재주를 주신단다.. 난 가죽신 만드는 재주를 받은게지.
난정 : 정말요?
갖바치 : 그럼, 신발 중에도 양반님네 신는 갖신, 진창길 나막신, 대갓댁 아씨들 꽃신, 우리네 신는 미투리처럼..
생김새나 재질은 달라도 다 제 각각 쓰임새가 있지 않느냐? 사람도 마찬가지지.
난정 : 나 같은 것도 이 세상에 쓰임새가 있을까요?
갖바치 : ...아무렴, 있고 말고.
난정 :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 하늘은 내게 무슨 쓰임새를 주셨을까?
s#49. 중궁전 방문 밖 복도
상궁, 나인들이 정적속에 도열해 있다.
어의, 양씨가 명주실에 댄 손가락 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여 진맥중이다.
팽팽해진 명주실이 미세하게 톡톡 흔들린다.
어의, 양미간을 움찔거리며 그 미세한 맥을 잡아낸다.
s#50. 중궁전 방 안
장지문 안으로 들어온 명주실이 중전의 손목에 감겨 있다.
중종, 중전 옆에서 걱정스럽게 지켜보다가.
중종 : 중전의 환후가 대체 무엇이냐?
s#51. 동 방 밖
양어의 : (얼굴에 웃음이 인다) 전하, 경하드리옵니다, 중전마마께오서 회임하시었사옵니다.
s#52. 동 방 안
중종 : (반가움에 놀라) 뮛이라 회,회임? 그말이 참말이더냐?
양어의(E) : 예. 틀림없사옵니다.
중종 : (기쁨에 중전의 손을 잡으며) 중전, 들으시었소? 회임이랍니다, 회임! 하하하, 이런 경사가 있나. (기분 좋게 웃어댄다)
중전 : (감격에 눈물 글썽)...전..하..!
s#53. 경빈 처소밖
금이 급히 달려온다.
금이 : 마마 마마
S#54. 경빈 처소 안
경빈 : (방문쪽 보며)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냐?
금이 : (급하게 방안으로 들어오며) 마마, 큰일났사옵니다. 중전마마께오서 회임하셨다 하옵니다.
경빈 : (소스라치는) 뭬야, 회임?!! 정념 회임이란 말이드냐?
금이 : 예, 마마님.
경빈 : 회임이라니 당치도 않아, 김내의는 체증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금이 : 전하께오서 오진을 범한 김내의를 파직하시어 갑산으로 귀양을 보내셨다 하옵니다.
경빈 : (일그러지는)...!!! (E) 이일을 어쩐다 이 일을 어찌한다.....?!
경빈박씨 잠시 생각하더니.
경빈 : 그렇지!
벌떡 일어나 장롱을 열고 무엇인가 종이에 싼 것을 집어들고 와 앉으며 종이에 싼 것을 풀어본다. 하얀가루 약이다.
경빈의 얼굴에 야릇한 웃음이 번진다.
s#55. 희빈의 처소
호호호- 웃어대는 희빈홍씨.
희빈 앞에 쌍륙판이 놓여있고 건너편에 창빈안씨가 앉아있다.
희빈 : 지금 경빈의 얼굴이 어떨지 상상이 갑니다. 호호호.
창빈 : ...
희빈 : 중전마마께오서 원자아기씨만 생산하시면 그 콧대 높던 경빈도 하루 아침에 끈 떨어진 뒤웅박신세가 되지 않겠소?
창빈 : 좋아 하실일 만도 아니옵니다.
희빈 : (보며) 아니, 왜요?
창빈 : 경빈이 끈 떨어진 뒤웅박이 되면 우린 깨진 뒤웅박신세가 될 것 아니옵니까?
희빈 : (웃음 멈추고)..깨진 뒤웅박이라니요?
창빈 : 중전마마께오서 원자아기씨를 생산하신다면 전하의 사랑이 중궁전으로만 향하실테니,
경빈은 물론 우리까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 아니냔 말씀이옵니다.
희빈 : ('그렇구나!')...! (불안해지는)..허면 어쩌면 좋소?..
창빈 : (입술을 꼭 깨문다)
s#56. 어느 길
난정, 보자기에 싼 꽃신을 들고 오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흥겨운 풍물소리.
난정, 고개를 돌려 소리나는 쪽을 본다.
s#57. 광대 놀이판 안팎
흥겨운 풍물가락이 울리는 속에서 줄광대(어름산이)가 줄 위에서 한창 재주를 넘고 있다.
몰려든 구경꾼들, 넋이 빠진 듯 고개를 젖히고 구경한다.
도포짜리, 중갓쟁이, 양민, 장사치,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들.. 온갖 계층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놀이판.
길 쪽에서 옥매향이 퇴기 자운아의 손을 끌고 온다.
옥매향 : (평안도 사투리로 재촉하며) 오마니, 빨리 좀 오시라요, 재미있는 구경 다 놓치갔시오.
자운아 : (평안도 사투리) 알갔어. 에미나이래, 급한 성질머리하곤! 뉘기를 닮아 이런지 모르갔네.
화사한 차림의 옥매향 모녀가 구경꾼들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줄광대 줄 위에서 재주를 넘다가 발을 헛딛고 떨어지는 순간
구경꾼들, 앗! 긴장하고 자운아, 깜짝 놀라 질끈 눈을 감는데
다리로 줄을 감고 튕겨 올라 공중으로 날랐다가 줄 위에 바로 서는 줄광대.
사람들, 탄성을 내지른다.
자운아도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박수를 친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터지는 함성과 박수소리.
달래가 치마를 펴들고 구경꾼들 사이로 요리조리 다니며 구경값을 걷는다.
달래의 치마폭 위로 달걀, 떡, 쌀자루, 엽전등이 쏟아진다.
모가비, 턱짓하면 탈광대들이 땅재주를 넘으며 등장한다.
탈광대들이 숭어뜀, 뒷곤두치기, 모말되기, 뺑뺑이 치기..현란한 땅재주 묘기를 보인다.
눈동자를 굴리며 구경꾼들 사이를 지나던 남장차림의 꽃잽이 능금이 선비의 괴나리 봇짐을 보고 눈을 반짝인다.
능금, 선비의 뒤편으로 다가가 쪽칼로 괴나리 봇짐을 긋고 순식간에 봇짐속의 은전 몇닢을 꺼내들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구경꾼들 사이로 유유히 사라진다.
길 쪽으로 지나가던 난정, 구경꾼들 탄성소리에 멈춰서서 놀이판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난정, 까치발로 놀이판을 기웃거리다가 꽃신을 가슴에 품고 구경꾼들 틈으로 파고 들어간다.
취발이 탈광대의 땅재주와 창, 칼이 어우러진 묘기가 한참이다.
취발이 탈광대가 창잽이와 검사의 창, 칼을 땅재주로 피하며 묘기를 펼친다.
마치 춤을 추듯 신기한 몸동작에 감탄하는 구경꾼들.
능금, 자운아 앞을 지나면서 슬쩍 몸을 부딪치고 지나간다. 어느틈에 자운아의 노리개가 능금의 손에 쥐어있다.
능금, 씩 웃으며 다른 쪽으로 움직인다.
취발이 탈광대가 창잽이와 검사를 제압하는 것으로 놀이가 끝난다.
터지는 함성과 박수 속에서 취발이 탈을 벗는 광대. 온통 땀에 젖은 길상이 얼굴을 드러낸다.
신이 나서 보던 난정이 길상을 무심코 본다.
난정 : ...!
길상, 구경꾼들에게 조아리며 인사를 하다가 사람들 틈에 서있는 난정을 발견하고 반갑게 웃어준다.
난정, 길상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리는데
난정 쪽으로 걸어오던 능금의 손이 구경하던 양반의 허리춤쪽으로 움직이더니 염낭 줄을 쪽칼로 똑 따버린다.
묵직한 주머니가 순식간에 능금의 손에 떨어진다.
난정 : (보고 놀라)...!!
능금 : (자신을 보는 난정을 보고 흠짓서는)...!
난정, 능금을 보고 서있다.
능금, 난정을 쏘아보며 다가온다.
뱀 앞에 쥐처럼 겁에 질려 옴짝달싹 못한채 서 있는 난정.
능금, 난정의 옆을 스치면서 귀에다 속삭인다.
능금 : (낮지만 위압적인) 주둥아리 닥쳐. 나불대면 니 명줄 끊어져!
난정 : (숨이 탁 막히는)....!!
능금 : (날카롭게 노려본다)
난정, 겁에 질려 울듯한 표정으로 구경꾼들을 뚫고 도망친다.
능금, 난정의 뒷모습을 보며 씩 웃는다.
뒤편에서 누군가, 능금의 어깨들 턱 잡는다.
능금, 움찔 놀라 돌아보면 길상이 서 있다.
길상 : 무슨 일이니, 능금아?
능금 : 아냐, 아무것도. (가버린다)
길상, 난정이 간 쪽을 갸웃하며 본다.
달려가는 난정의 뒷모습.
s#58. 정윤겸 집 안채 마당 (저녁)
난정, 꽃신을 들고 안채쪽으로 급히 들어온다.
옥련, 안방에서 나오다 난정을 보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옥련 : (짜증) 왜 이리 늦었니?
난정 : ...저..
옥련 : 다리가 짧으니 어쩔수 없구나?
난정 : (의아하여) 예?
옥련 : 네 어미가 관비였으니 지체가 모자라 다리가 짧다는게다.
난정 : (모욕감에 입술을 무는데)....
옥련 : (비웃음) 왜? 내 말이 비위라도 상하니?
난정 : ...
하는데 대문 밖에서 '와료!' 가마도착을 알리는 소리.
옥련 : 어머 (대문쪽 보며) 아버님 오시네..(대문쪽으로 뛰어 간다)
청지기, 대문을 열면 안으로 들어오는 정윤겸. 손에 한지로 포장한 책을 들었다.
청지기 : (조아리며) 대감마님, 이제 퇴청이시옵니까?
정윤겸 : 오냐.
옥련 : (쫓아가 조아리며) 아버님.
정윤겸 : 오냐.
옥련 : (정윤겸의 손에 든 책을 보며) 아버님, 그건 무엇이옵니까?
정윤겸 : 오, 이거?..
옥련 : 네, 책 같사온데 소녀, 읽을만한 언문책 이옵니까?
정윤겸 : 허허, 네 것은 나중에 사다주마.
옥련 : ...예.
정윤겸 : (사랑으로 들어가면서 청지기에게) 배서방, 난정이 좀 부르게나.
청지기 : 예. (안채 쪽으로 달려간다)
정윤겸, 사랑채쪽으로 가고 옥련도 갸웃하며 안채쪽으로 간다.
청지기와 난정이 달려와 정윤겸 앞에 조아린다.
난정 : 대감마님, 찾아계시옵니까?
정윤겸 : (책을 건네주며) 옛다. 명심보감 이니라.
난정 : (받다가 놀라 보며)..예?
옥련 : ...?!
정윤겸 : 금과옥조같은 귀한 문장들이니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도록 해라.
난정 : (감격하여)..예, 대감마님. (허리를 깊이 숙인다)
서 있던 옥련이 난정을 쏘아본다.
s#59. 정윤겸 집 난정모 방 (저녁)
난정모,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책을 들고 들어오는 난정.
난정 : (자랑스럽게) 어머니, 이거보세요. 명심보감이에요.
난정모 : (난정 보며)..명심보감?
난정 : 예, 대감마님께서 사다 주셨세요.
난정모 : 그래
난정 : 네..(하다가) 아, 참. 갖바치 아저씨가 내일 좀 들르시래요. 당추스님 오신다고요.
난정모 : (흠짓)..다른 말씀은 없으셨고?
난정 : 네.
난정모 : ...그러고 보니 스님 뵌지도 오래되었구나..(앞치마를 푸는데)
난정 : (치마자락으로 나온 옥패 주머니를 보고) 어머니.
난정모 : (보며)...?
난정 : 그 깨진 옥패는 뭐여요, 어디서 나셨세요?
난정모 : (흠짓하여 옥패 주머니를 가리며) 얘가 뜬금없이?! 안방에 군불 좀 더 지피거라.
난정 : 예...
난정모 : (한숨쉰다)
s#60. 어느 객주 마당 (밤)
광대패들이 어울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s#61. 동 객주 방 (밤)
능금, 모가비 앞에서 옥가락지, 노리개 등의 패물과 은전을 우르르 쏟아낸다.
모가비, 눈이 휘둥그래지며 입이 헤-벌어진다.
모가비 : (능금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에구, 내 새끼 재주도 좋지.
능금 : (웃으며) 아버지, 나 장하지?
모가비 : (은전을 깨물어 보다가)..암, 장하고 말고! 오늘만 같으면 얼마 안가 이 지긋 지긋한 광대패 때려치고
번듯한 객주 하나 차릴수 있겠다.
능금 : 그럼 상으로 (자운아의 노리개를 가리키며) 이거 나 주라.
모가비 : (보고)..기생년들 차는 노리갠 뭐하려고?
능금 : 그냥, 갖고 싶으니까 나 주라, 응 아버지?
모가비 : 오냐, 그래. 가져라.
능금 : (집어들고 환하게 웃는다)
s#62. 보름달(INSERT)
s#63. 동 객주 마당 (밤)
달래, 평상위에 걸터앉아 달을 보고 있다.
방문을 열고 내다보는 길상.
길상 : 달래야.
달래 : (길상을 돌아 보고)..응?!
길상 : 밤바람이 찬데 게서 뭘하고 있어?
달래 : 달을 보고 있었소.
길상 : ...달? (방에서 나와 다가온다)
달래 : (끄덕이며)..오라버니가 그랬잖소, 돌아가신 울 엄마가 저 달처럼 생기셨다고?
길상 : (달을 보며)....그래, 그러셨어.
달래 : 저 달을 보니까 엄마가 보고 싶소...(훌쩍 거린다)
길상 : (마음 찡하여 안아주며) 달래야...
달래 : 오라버니,
길상 : (달래의 등을 토닥토닥두드리며) 그만 눈물 그쳐 오래비가 내일 도성구경도 시켜주고 맛난것도 많이 사줄게.
달래 : (묻은 얼굴을 떼며) 참말이오? 오라버니.
길상 : 그러엄, 참말이고 말고. (두 엄지손가락으로 눈물자국을 지운다)
달래 : 오라버니.
길상 달래야 하며 달래를 달싹 들어올려 빙글빙글 돌려준다.
다른 방에서 나오는 능금.
능금 : (웃으며) 길상아!
길상 : (멈추고 돌아본다)
능금 : (다가와 옷에 찬 노리개를 보이며) 이것 좀 봐, 한양기생것인데 이쁘지?
길상 : (보고) 그래봤자, 개발에 편자지.
달래 : (킥 웃음 터지는)..
능금 : (발끈하여) 뭐어?
달래 : 아니오, 참 이쁘오, 능금언니.
능금 : (다시 헤 웃으며) 그치, 달래야? 나중에 네것도 하나 따줄게.
달래 : 정말?
능금 : 그러엄. 내 솜씨 몰라?
길상 : 도둑질한 물건, 일 없어. 들어가자 달래야. (달래를 번쩍 안아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능금 : (약이 올라) 어유, 저게 증말...
능금, 길상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분풀이라도 하듯 노리개를 떼어 바닥에 던져버리고 쿵쿵 밟는다.
s#64. 아래채 부엌 안 (밤)
난정,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면서 명심보감책을 보고 있다.
난정, 글귀를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책에 빠져있는데.
옥련(E) : 난정아!
난정, 옥련을 보고 일어서는데.
옥련 : (싸늘하게 보며) 그 책 이리 내.
난정 : 예?
옥련 : 어서!
난정 : ..예, 아씨. (책을 건네면)
옥련 : (책을 받아들고 펼쳐 보며)..천한 것이 언문도 아닌 진서책을 봐?
난정 : ...?!
옥련 : 종년의 딸에게 이런 책은 불쏘시개로 쓰면 제격이야.
옥련, 책을 아궁이에 던져 넣는다.
난정 : (놀라) 아, 아씨!
옥련, '흥!' 코웃음을 날리고 부엌 밖으로 가버린다.
난정 : 아이구 이걸 어째.
난정, 아궁이에서 책을 꺼내 보려고 하지만 이미 훨훨 불타오르는 책.
난정, 둘러보다가 부지깽이로 책을 꺼내 치마를 덮어 불을 끈다. 그러나 이미 반이상 타버리게 된 책.
불에 탄 책을 두손으로 감싸쥐고 가슴아프게 보는 난정의 눈에 눈물이 핑 고인다.
s#65. 대전 외경 (낮)
홍,윤,남(E) : 경하드리옵니다, 전하.
s#66. 대전 안
중종 앞에 윤임과 홍경주, 남곤이 앉아있다.
중종 : 지난번 판부사께서 지어 온 탕약이 신통한 효력을 발휘했나보오.
윤임 : (조아리며) 아니옵니다, 전하. 이 모두가 전하의 홍복이시옵니다.
중종 : 이번엔 중전이 아들을 낳아야 과인도 세자를 품에 안아볼텐데 말이오.
윤임 : ...........?!
중종 : 아니그렇소 (홍경주 보며) 남양군.
홍경주 : 전하. 신의 생각도 중전마마께오서 반드시 대군아기씨를 생산하실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중종 : 하하하. (오랜만에 웃는 웃음이다) 내 경들을 부른 뜻은 그간 과인의 치세 중에
억울하게 치죄 당한 사람들의 신원을 논의코자 불렀소.
홍경주 : 억울한 치죄라니요, 전하.
중종 : 과인이 속단하여 억울한 처지에 놓인자가 있을것이오. 중전의 회임도 있고 하니 내 사면령을 내리려하오.
먼저 거제도에 위리안치된 파릉군을 사면하려 하는데 경들의 뜻은 어떻소?
홍경주 : (놀라) 전하, 아니되옵니다. 파릉군은 역모를 도모한 대역죄인이옵니다.
중종 : ..역모라?!
남곤 : 그렇사옵니다, 전하. 당시 참형을 면한 것만도 전하의 성은이었사온데 사면이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중종 : 판부사는 어찌 생각하시오?
윤임 :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를줄 아옵니다. 전하께서 당시의 정황을 잘 살피시어 죄가 과했다면
사면하심이 가할줄로 사려되옵니다.
홍,남 : (윤임을 쏘아본다)...?!
윤임 : (시선을 슬쩍 피하는)...
중종 : 과인과 경들의 뜻이 이렇듯 다르니 삼사와 논의해 보도록 하겠소.
홍,남 : (뜳은 표정)...
s#67. 빈청 안
불쾌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홍경주, 남곤..담담한 윤임이 그 뒤를 따른다.
홍경주 : (앉으며) 판부사! 전하께 어쩌자고 그런 망발을 하신게요?
윤임 : 망발이라니요, 이 사람이 틀린 말이라도 하였사옵니까?
홍경주 : 파릉군이 복작되는 날이면 조정에 한바탕 피바람이 불것이란 걸 모르시는 가?
윤임 : 피바람이라니요?
남곤 : 만일 파릉군이 신원된다면 신진사류들은 물론 우리에게 반감을 가진 자들이 파릉군의 주변에 모여들 것은 자명한데
그리되면 지난십년동안 우리 공신들이 쌓아온 조정의 기반이 위태로울수도 있다 이 말씀이외다.
홍경주 : 그뿐인가?! 파릉군은 우리에게 원한이 많을터아닌가!
윤임 : 하오나 전하의 뜻이옵니다.
홍경주 : 전하의 뜻이라도 아니되는건 아니되는게요.
윤임 : 남양군대감, 언제까지 전하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시옵니까?
홍경주 : 뭬야?!
윤임 : 신하된 자로써 전하의 뜻을 가로막을게 아니라 뜻을 펼치시도록 보필해야될 것 아니오이까?!
홍경주 : 허, 저 사람..중전께오서 회임을 하시니 기고만장, 안하무인이됐구만!
윤임 : 뭬요? (벌떡 일어서며) 말씀이면 다하는줄 아십니까?!
남곤 : 왜들 이러시옵니까? 두 분다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홍경주 : 음!! (돌아앉고)
윤임 : 음!! (휙 나간다)
s#68. 정윤겸 집 안채 마당
난정모 외출복 차림으로 안채 방문쪽으로 다가간다. 그 뒤를 따르던 난정 선다.
난정모 : (안방문 앞에 다가서서) 마님.
박씨 : (방문 열고 얼굴을 내밀며) 왜 그러는가?
난정모 : (조아리며)..저..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서요..
박씨 : 자네 요즘들어 바깥 출입이 왜 그리 잦은가?...
난정모 : ..............?!
박씨 : 어디 눈맞은 사내라도 생겼는가?!
난정모 : (당혹스러운)..마,마님!
박씨 : 새살림 차리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을 하게. 내 대감께 말씀드려 자넬 놓아 주겠네..
난정모 : (모멸감에)..마님..쇤네는..
박씨 : 샛서방을 만나고 오든 말던 자네 마음대로 하게!
박씨, 쌀쌀맞게 돌아서 들어가며 안방 문을 탁 닫아버린다.
난정모, 보다가 한숨을 폭 쉬다가 대문쪽으로 간다.
한쪽에 서서 보고 있던 난정.
난정 : (충격받은)...어머니..
s#69. 갖바치 집 마당
갖바치, 쇠가죽을 마름질 하고 있는데 당추가 삽짝 안으로 들어선다.
당추 : 잘 있었는가, 아우님.
갖바치 : (보며) 형님. 이제 오십니까?
당추 : 허어, 이사람아, 몇 년만에 찾아온 사람한테 겨우 이제 오십니까,라니?
갖바치 : 허허, 조선 팔도를 이웃집 드나들 듯 하는 형님 아니시오?
당추 : 예끼, 이 사람. 누가 들으면 내가 축지법도술이라도 쓰는줄 알겠네.
갖바치 : 그래 금강산에 들어가셨다더니 공부는 많이 하시었소이까?
당추 : ...공부는 무슨, 나같은 땡초가. 자네야 말로 아직도 관직에 못올랐나?
갖바치 : 관직이라니요?
당추 : 자네같이 학문과 경륜이 높은자가 관직에 나가야 이 나라 조정에도 새바람이 불게 아닌가 하하.
갖바치 : 반상의 제도가 엄연한데 나 같은 천 것이 등용이라니요.
당추 : (농조) 자네 인물은 재상감인데 쯧쯧 아깝네.
갖바치 : (농으로 받으며) 형님은 어떻구요? 내 보기에 당추형님은 정승 재목이외다.
당추 : 허허,
갖바치 : 재상에 땡추 정승이라..거 나라꼴 참 볼만하겠네, 하하.
삽짝 안으로 들어서는 난정모.
난정모 : (합장인사 올리며) 스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당추 : (보고 일어서며)...어이구, 오셨습니까? (합장한다)
s#70. 동 부엌 안
난정, 아궁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청지기(E) : 난정아.
난정 : (보며) 네?
청지기 : 대감마님께서 일전에, 사다주신 책을 가지고 나오라신다..
난정 : ...!
s#71. 동 사랑채 방안
정윤겸, 연상 앞에서 책을 읽고 있다.
방문 밖에서 작은 기침소리 들린다.
정윤겸 : (고개 들고 보며) 오, 들어오너라.
난정(E) : 예.
난정, 문을 열고 들어와 서서 조아린다.
정윤겸 : 오, 게 앉거라.
난정 : (꿇어 앉는다)...예.
정윤겸 : (난정의 빈손을 보고) 책을 가져오라고 일렀거늘 어찌 빈손이냐?
난정 : (바닥에 고개를 박으며)..대감마님, 쇤네에게 벌을 내려주옵소서.
정윤겸 : 벌?!
난정 : ...대감마님께서 주신 책을 태웠사옵니다.
정윤겸 : 태워?....그래 어쩌다가?
난정 : 다 쇤네의 불찰이옵니다...(울먹이며) 쇤네에게..벌을 주옵소서..
정윤겸 : (보다가)...밖에 배서방 있는가-
청지기(E) : 예, 대감마님.
정윤겸 : 가서 렴이를 오라하게.
s#72. 동 사랑채 마당
청지기 : 도련님께선 글방 가셔서 아직 안 들어왔는뎁쇼?
s#73. 동 사랑채 방 안
정윤겸 : (눈썹을 찌푸리며) 뭣이야?...자네, 렴이 방에 가서 명심보감을 가져오게.
s#74. 동 사랑채 마당
청지기 : 예, 대감마님.
청지기, 정렴의 방 쪽으로 종종걸음 친다.
s#75. 정윤겸 사랑채 방 안
공간에 프레임 인되는 明心寶鑑"
정윤겸, 책을 건네주면 두손으로 받는 난정.
정윤겸 : 명심보감은 고려조의 추적이란 사람이 편찬한 책으로 옛 성현들의 금과 옥조 같은 말씀들이 담겨있느니라.
어렵지 않은 문장들이니 어디 첫장부터 읽어보아라.
난정 : (망설이는)...
정윤겸 : 어서 읽어보래도.
난정 : 예..(조아리고 조심스럽게 책을 펼쳐서 읽는다)... 자 왈(子-曰)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하고..
s#76. 갖바치 집 방
갖바치, 당추와 난정모 앞에 놓여있는 찻잔에 차를 따른다.
당추 : (찻잔들어 향을 음미하며) 자네 차 끓이는 솜씬, 득도에 경지에 이르렀구만.
난정모 : (깊은 한숨 쉬는)...
당추 : (난정모 보고) 왜요, 무슨 근심이라도 있습니까?
난정모 : ...난정이가..난정이가 옥패를 보았습니다.
갖바치 : (차 따르던 손을 뚝 멈추고 난정모를 본다)..!
당추 : (소스라치게 놀라) 아,아니 어쩌다가..
난정모 : 다 제 불찰입니다...
당추 : 그래서 어찌되었습니까?
난정모 : 얼버무려 넘어가기는 했습니다만...감당하기가 힘드옵니다. 난정이가 옥패에 대해 자꾸 묻습니다.
어쩌면 좋사습니까, 스님...
당추 : 허어..
난정모 : 저의 대감께써 난정일 친딸로 아시고 어여삐 여기시는데..(눈물 글썽이며) 제가 죽을 죄를 짓고 있사옵니다...그래서..
당추 : 아니되옵니다. 힘드셔도 참아 내셔야 합니다...행여 난정이가 파릉군이 친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되는 날이면
여러사람의 목숨이 달아납니다..
난정모 : ....
당추 : (다짐받듯) 제 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난정모 : (입술을 깨무는)...
s#77. 정윤겸 집 사랑방 안
난정, 다소곳이 앉아 정윤겸의 말을 듣고 있다.
정윤겸 : 옛 성현의 말씀속에는 사람 답게 사는 도리가 있느니라. 사람이 귀하든 천하든, 사내건 여인이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누구든 그 도리를 배우고 행해야 되느니라..알겠느냐?
난정 : 명심하겠사옵니다.
정윤겸 : 그만 건너가거라.
난정 : (조아리며) 예. (연상으로 다가가 책을 내려놓고 나가려는데)
정윤겸 : 가져가거라.
난정 : (보며) 예?
정윤겸 : 오늘부터 이 책의 주인은 너이니 가져가 읽도록 해라.
난정 : ...?!
s#78. 정윤겸 대문 안
정렴, 삐닥한 도령복 차림의 정렴이 대문을 밀고 들어선다.
정렴, 사랑채쪽으로 가다가 사랑채 방안에서 나오는 난정을 본다.
정렴 : (찌푸리며) 저년이?
정렴, 난정쪽으로 쫓아와 막아선다.
정렴 : 네까짓 년이 사랑채엔 왜 출입이냐?
난정 : ...대감마님께서 찾으셨세요.
정렴 : 그래?..(갸웃하다가 난정의 손에 든 책을 보고) 그게 뭐냐? (확 뺏어들고 책을 살펴보며) 아니 이건 내 책이 아니냐?
...(노려보며) 요년! 네 감히 상전이 보는 책에 손을 대?!
난정 : 아니어요, 도련님, 이 책은..
정렴, 난정의 뺨을 찰싹-갈겨버린다. 바닥에 넘어지는 난정.
정렴 : 요 화근덩어리! 오늘 네 년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청지기 : (뒤쫓아와 막아서며) 아이구 저, 도련님..
정렴 : 배서방은 비켜서게.
정렴, 청지기를 밀치고 난정을 때릴 듯 다가서는데.
정윤겸(E) : 이 무슨 소란이냐!
정렴, 돌아보면 사랑방안에서 나와 서 있는 정윤겸.
정렴 : (조아리고) 소자, 아랫 것의 버릇을 고치고 있었사옵니다.
정윤겸 : (노기) 네 이놈. 당장 들어오너라! (방으로 들어간다)
정렴, 사랑방으로 쭈삣거리며 들어간다.
정렴의 뒷모습을 원망스럽게 보는 난정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흘러내린다.
s#79. 동 사랑채 방 안
찰싹-찰싹- 정윤겸, 정렴의 종아리를 치고 있다.
회초리를 맞을 때 마다 '아얏!' 소리를 내며 울먹거리는 정렴.
정윤겸 : 네 이놈, 손찌검 하는 짓거리는 어디서 배웠느냐!
정렴 : ...
정윤겸 : 네겐 필요없는 책인 듯 하여 이 애비가 난정이에게 주었느니라. 헌데 자초 지종도 살피기 전에 손찌검부터 해?
정렴 : (눈물 뚝뚝 흘리며)...아버님,
정윤겸 : 장차 무과에 나아가 병사를 통솔하겠다는 네놈이 이렇듯 경박해서야 어찌 주상전하를 보위할 수 있겠느냐?!
정윤겸, 회초리를 매섭게 친다.
s#80. 사랑채 방 밖 (밤)
옥련 방안에서 들리는 오빠의 매 맞는 소리를 듣고 분해하다가 무엇인가 결심한듯 얼굴을 휙 돌려 어디론가 간다.
s#81. 어느 골목길 (저녁)
난정모, 바쁘게 걸어온다.
난정모,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아낙과 스쳐지난다.
난정모, 지나가다가 순간 깜짝 놀라 멈칫 선다. 휙 돌아보는 난정모.
난정모 : (부르는)...이보오. 아주머니.
당골네 : (돌아보는)..나 말이....!?
아낙, 대수롭지 않게 돌아보다가 난정모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10년전 난정모를 벼랑에서 밀었던 그 당골네다.
당골네 : 에그머니나!
당골네, 겁을 먹은 듯 슬슬 뒷걸음질 친다.
난정모 : (당골네에게 다가가며)...이,이보시오..댁은..
당골네, 돌아서서 냅다 도망친다.
난정모, 당골네 뒤를 쫓아간다.
s#82. 다른 골목길 (저녁)
당골네, 헐떡이며 뛰어온다.
당골네, 멈춰서 뒤를 돌아보면 난정모가 골목안으로 쫓아들어온다.
난정모 : (숨 찬)...거기..거기 좀 멈추시오.
당골네, 재빨리 골목 밖으로 도망친다.
난정모, 그 뒤를 쫓아 골목 밖으로 뛰어간다.
s#83. 광대패 놀이판 부근 (저녁)
난정모, 골목 밖으로 뛰어나오면 흥겨운 광대패 풍물소리가 들린다.
저편에서 광대 놀이판이 벌어지고 있다.
난정모, 당골네를 찾아 둘러보는데 저편 놀이판 구경꾼들 속으로 숨는 당골네의 뒷모습이 보인다.
난정모, 놀이판쪽으로 쫓아간다.
s#84. 광대패 놀이판 (저녁)
난정모, 당골네가 숨어들어간 구경꾼들 틈을 파고 들어간다.
난정모, 북적대는 구경꾼들 틈에서 당골네의 행방을 쫓아 두리번거리는데
저 쪽편 사람들속에서 힐끗보이는 당골네 뒷모습.
난정모, 사람들을 뚫고 당골네쪽으로 가는데 누군가 급하게 다가와 부딪친다. 능금이다.
난정모 : 아이구.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능금 : (보며) 왜 밀치고 난리요? (머리통 움켜쥐고) 어유, 하마터면 머리통 깨질 뻔했네. (슬쩍 흘겨보고는 가버린다)
난정모, 일어나 당골네가 있던 곳을 다시 보는데 보이지 않는다.
난정모, 포기한 듯 구경꾼들 사이를 빠져나간다.
s#85. 정윤겸 대문 앞 (밤)
난정모, 골똘한 생각에 잠겨 걸어오다 대문 앞에 선다.
오던 길을 다시 돌아보는 난정모의 얼굴 위로.
난정모(E) : 십년전에 행방을 감췄던 당골네가 여긴 왜 나타났단 말인가?...
난정모, 심각한 얼굴로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s#86. 난정모 방 안 (밤)
한쪽 구석 벽에 기대어 무릎깍지를 끼고 앉아있는 난정.
난정모, 들어오다가 난정을 보고
난정모 : 아니 난정아, 네 얼굴이 왜 그러니?
난정 : (불쑥) 어머니, 우리 이 집 나가요.
난정모 : 뭐어? 집을 나가자니?
난정 : (울먹거리며) 어머닌 안방마님께 애매한 소리나 듣고 사람 대접도 못받고 우리 모녀를 종처럼 부리는 이 집에
더 붙어있어 뭐하오? ..밖에 나가서 우리모녀 날품이라도 팔면 두 식구 입에 풀칠 못하겠세요?
어머니 우리 이집을 떠나요?!..(눈물 흐른다)
난정모 : (엄하게) 난정아!! 그런 못된 말버르장머리 뉘게서 배웠느냐?!
난정 : (충격)..어머니.. 사람 대접을 받고 싶어 그래요.
난정모 : 그래도 이것이.
난정 : 어머니...
난정모 : 내 너를 이렇게 키우지 않았다.
난정 : (울며) 어머니,
난정모, 일어나 외출복을 벗으려다가 깜짝 놀란다. 허리춤을 들쳐보면 날카롭게 잘려져 나간 줄만 매달려있다.
난정모 :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 아니, 이럴수가!
난정 : 왜 그러셔요?
난정모 :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 일을...
난정모, 잠시 생각하다가 급하게 방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난정 : (그 뒤를 쫓아 나가며) 어머니! 어머니!
s#87. 객주 방 안 (밤)
모가비, 패물이며 은전 등을 계산하고 있다.
그 옆에서 능금,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비단주머니를 열어본다. 그 안에서 나오는 반쪽짜리 옥패.
능금 : 애개개, 이게 뭐야? 반쪽 뿐이네?
모가비 : (힐끗 보며) 액땜하는 부적인가보다. 재수없다, 내다버려라!
능금 : 체! 헛품 팔았네!
능금, 옥패를 주머니에 넣고 일어나 방밖으로 나간다.
s#88. 객주 마당 (밤)
능금, 방문을 열고 나온다.
평상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달을 보고있는 달래.
능금 : (다가서며) 달래야! 너 또 엄마 생각이냐?
달래 : ...
능금 : (옥패 주머니를 내밀며) 이거 너 가져.
달래 : (보며) 이게 뭐요?
능금 : 꺼내봐.
달래, 기대감에 주머니를 받아 그속에서 옥패를 꺼내본다.
달래 : (실망) 에이, 이왕 줄거면 온전한 걸 줄 것이지 깨진 반쪽이 뭐요?
능금 : 진짜 옥으로 깍은거야..그걸 몸에 지니고 있으면 잡귀도 쫓아주고 액땜도 해주는 부적 같은거야.
달래 : (시큰둥)... 부적??!!
능금 : 혹시 아니? 이 담에 나머지 반쪽을 가진 대갓댁 도련님이 네 정혼자가 될지?
달래 : (눈을 반짝이며) 정말?
능금 : 그럼..길상 오라버니한테 구멍뚫어서 목걸이 만들어달라고 해.
달래 : 고맙소, 능금언니. (옥패를 보며 웃는다)
s#89. 광대패 놀이판이 벌어지던 곳 (밤)
구경꾼도 함성도 사라진 썰렁한 빈터.
난정모, 달려와 땅바닥 이곳 저곳을 살핀다.
바닥을 손으로 쓸어보기도 하고, 사금파리를 주워보기도 하며 미친 듯이 옥패를 찾는 난정모.
난정모 : (넋나간 듯 중얼거리며) 이 일을 어쩌면 좋지, 어쩌면...
난정, 뒤쫓아와 난정모 곁에 다가선다.
난정 : 어머니, 대체 무슨 일이세요?
난정모 : (울상되어) 옥패,옥패가 없어졌다..
난정 : (놀라) 예에?...옥패요?
난정모 : (주변을 둘러보며) 분명 예서 흘린 것 같은데..어두워서 어디..
난정, 난정모를 따라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
순간 난정의 얼굴위로 스쳐가는
INTER CUT) 능금이 쪽칼로 양반의 염낭을 따던 모습
난정 : ...!!
난정, 갑자기 어디론가 급하게 달려간다.
난정모 : (난정을 보며) 난정아! 난정아! 어디가니?
s#90. 길 다른 곳 (밤)
난정, 뛰어가다가 지나가는 포졸에게 뭔가를 묻는다.
포졸,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키면 그쪽으로 급하게 달려가는 난정.
s#91. 객주 앞 길 (밤)
난정, 급하게 뛰어 오는데 객주 밖으로 느긋하게 나오는 능금.
난정 : (능금 보고)...!
난정, 능금쪽으로 달려가 멈춰선다.
난정 : (숨을 고르며) 이 애! 너 나 좀 보아!
능금 : (난정을 의아하게 보는)...?
숨을 쌔근거리면서 능금을 매섭게 노려보는 난정의 독기서린 얼굴에서 스톱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