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느림보는 백제의 미소인 마애삼존불이 모셔져 있는 용현계곡에서 출발하는 삐이팀과 남연군 묘에서
진입하여 가야산과 석문봉을 경유하는 에이팀이 청벚꽃이 유명하다는 개심사에서 합류하는, 연초록 풀숲과
개심사의 만개한 벚꽃의 정취 또한 즐겨 보는 일타 이매 산행이다. 고 스톱을 치다 보면
캬바레를 자주 들락 거리는 여인네들은 원고 투고 그리고 쓰리고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원스텝 투스텝으로
진행을 하고 자신이 한 첫뻑을 다시 먹을 적엔 피 두장과 함께 상대로 부터 벌금도 받게 되는데 이때 캬바레
출신들이 하는 말이 바로 어머 사랑 받고 돈 받고 이다. 소리 안 나는 권총이 있으면 확 쏴 지기뿌고 싶다.
고스톱은 서양 포커 처럼 의자에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방바닥에 털썩 주져 앉아서 하고 고스톱을 하다가
돈을 잃는 것을 돈이 까진다고 표현 하는지라 어떤 분들은 고스톱을 하다가 앞에 앉은 캬바레 여인네들이
원스텝 투스텝 하면서 사랑 받고 돈 받고 하여 돈이 까지기 시작하면 하시는 말씀이
니미씨팰 개 좆은 앉으면 까진다더니 고스톱 판에 앉았다 하면 나는 돈이 까지넹. 흐 흐
주자학이다 성리학이다 머다 하며 왕권 무력화에만 혼신의 힘을 쏟던 외척 안동 김씨 세력들은 끝내 강화도에서
이미 폐서인 되어 살고 있던 일자무식 떡꺼머리 총각 철종을 왕으로 옹립 하면서 조선 왕조는 몰락의 수렁텅이로
빠질 즈음 파락호 혹은 상갓집 개 소리를 들으며 왕권 부활에 절치부심 하던 흥선대원군 이 하응은 정 만인
이라는 지관으로 부터 가야산 인근에 2대 천자지지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수소문을 해 보니 그 명당터에 이미
가야사 라고 하는 절이 들어 서 있는 지라 돈 일만냥을 주지에게 건네고 그 주지는 스스로 가야사를 불 살라
버리고 그 자리에 있던 석탑도 해체를 해 버린다. 이 하응은
연천에 있던 지애비 묘를 이곳으로 이장을 한다. 왕을 모시면 릉이라 하고 그 아래 세자 정도의 등급은 원이라
하고 그 다음을 묘라고 하는데 남연군 묘는 묘 주변에 놓여져 있는 석물이 묘도 아니고 왕릉도 아닌 묘한 형태로
놓여져 있다. 조선 왕릉엔 필히 강과 잉이란 지형이 존재한다.
릉을 밑에서 올려다 보면 높은 언덕이 우선 보인다. 이것이 강이고 강 뒤로 여러 석물과 함께 릉이 모셔져 있고
릉 뒤 그러니깐 담벼락 같은 곡장 뒤로 여자 젖무덤 처럼 봉긋 솟아 나온 잉이 반드시 있는데 이 잉 부근에
펜스를 쳐 놓고 토목공사를 하는 모습이 보여 안내인에게 무신 사유인가 하고 물어 보니 참으로 놀라운 답변이
들려 온다. 과거 가야사 터를 발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흥선대원군이 살아 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 이지만 부처를 모시는 불당을 불 살라 버리고 그곳에 묘소를
마련하였는데 그 없어진 불당의 저주인가 그 불당터를 재발굴키 위해 묘의 잉 그러니깐 묘소의 목덜미에 해당
하는 잉에 작두를 내려 치고 있다.
강남에 가면 귀부인들만 만나는 모임이 있는데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전을 하여 남대문시장에서 생선을 팔아서
억만금을 벌어 드린 년들은 이 모임에 우선 찡가 주지를 않는다고 한다. 한국사회에선 어떤 사람을 평가할 적에
근본이 있는 놈 없는 놈을 우선 따진다. 그러니깐 이 하응도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 묘를 이장한 것도 아버지의
뼈를 명당터에 묻어 그 인연으로 후손들이 발복을 하는 동기감응론 때문이 아니라 남연군의 뼈를 2대 천자지지에
묻었기 때문에 이 집꾸석엔 황제 후손이 태여날 수 밖에 없다는 당위론을 국민들의 머리에 심어 주는 고도의
최면술이 아닌 가 한다. 조선의 역사를 잘못 배운 이들은 흥선대원군이 외고집으로 쇄국정책을 펼쳐서 나라를
그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서원을 철폐하고 경복궁을 재건키 위해 국고를 탕진 했다고 하면서 과연
그럴까요? 운현궁의 봄과 등신불이란 글을 썼던 작가 김 동리의 말에 의하며 그나마 최소한의 왕권을 확립하고
군주로서 제대로 된 행세를 한 사람이 흥선대원군 이란 것이다. 사학이란
요즘 말로 하면 사립대학 정도 이지만 실상은 지방에서 토호세력들이 이 사학을 중심으로 당파를 맹글기 때문에
중앙 정치 무대의 말빨이 전혀 멕히질 않기 때문에 철폐령을 내렸던 것이고 경복궁 재건은 왕권의 상징이라
어쩔 수 없이 국고를 들이 밀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엔 지관이다 풍수다 머다 하여 남의 묘터를 잡아 주고 먹고 사는 술사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들이
풍수를 배울 적에 제일 먼저 답사를 하는 곳이 바로 이곳 남연군 묘이고 그 다음으로는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의
영릉과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의 장릉 그리고 동구릉에 있는 태조 이 성계의 건원릉인데 남연군의 후손인
고종은 당대에 500년 왕조를 말아 먹었고 그 아들 순종은 후손이 없어 대가 끊어져 버렸는데 순종은 일설에
의하면 고자란 것이다.
어느 해 대통령 선거가 다가 오던 시절에 어느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보았는데 과거 대통령을 했거나 지금
대통령을 해 보겠다고 깝죽 거리는 흔히들 말하는 잠룡들 중에서 지애비 묘를 이장하지 않은 분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풍주쟁이들은 명당터가 반드시 있고 묘를 잘못 썼으면 필히 이장을 해야 된다고 부추긴다.
촌놈들이 시골에서 대충 선조들 묘를 이장하는 정도가 물론 아니다. 거금이 왔다 갔다 한다.
풍수의 모순점에 몇 몇 사례를 들어 보면 대표적인 것이 박 정희 대통령과 육 영수 여사의 산소 이다.
1974년 장충체육관에서 문 세광의 흉탄에 육 여사님께서 쓸어 지시자 그간 잘 알고 지냈던 청오 지 창룡이란
당대 최고의 지관이 오늘의 육 영수 여사님의 묘터를 잡아 주었는데 후일 터라는 풍수소설로 주가가 오른
육관 손 석우란 인물이 육 영수 여사의 묘터는 물이 차는 악터여서 시신이 썪지를 않아 후손이 끊어 진다고
떠들었는데 아드님인 박 지만 회장은 지금 결혼하여 자식들 보면서 잘 살고 있고 박 근혜 대통령은 물론
지금은 감옥에 있지만 일국의 대통령을 해 먹었는데 악터라는 말이 과연 어울릴까요? 육관 손 석우는
지방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 어느 해 고향엘 내려 가니 선친께서 하시는 말씀이 육관 이 친구 엉터리란 것이다.
자신이 그 당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국의 등 소평의 묫자리를 잡아 주고 거액의 선수금을 받은 상태이고
등 소평이 운명하면 최종적으로 산소의 좌향을 잡아 주고 잔금을 받아 올 터인지라 중국 공항에 손 석우를
모셔 오기 위한 특별 전용기가 항시 대기중 이라며 개구라를 치더란 것이다. 선친 말씀이 시골에 사는 촌
영감탱이들이라 아주 우습게 보고 헛소리를 하고 돌아 다니는 저런 인간에게 큰 돈을 주고 조상들 뫼터를
잡는 얼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두번 째는 전북대에서 교편을 잡다가 서울대 지리학과로 자리를 옮긴 최 창조 교수는 갑자기 서울대 교수자리를
팽개 치게 되니 모든 사람들이 그 사유가 궁금했었는데 본인의 변이 참으로 묘하다. 풍수엔
산 모양을 보고 문필봉이다 금계포란형이다 머다 하는 형세론은 단지 풍수를 가르칠 때 사용하는 한 방편이고
땅에서 솟구 쳐 올라 오는 찌릿 찌릿한 기운을 직접 술사가 느끼는 지기론이 있는데 이 지기론이 진땡이고
이런 기가 있는 땅에 조상들의 묘를 쓰면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을 하기 때문에 후대가 반드시 발복을 한다는
동기감응론을 내 세우면서 자신은 기를 어느 정도 느끼느냐 하면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땅에서 올라
오는 기를 느낀다고 한다. 주머니에 쪈은 넘쳐 나지만 앞날이 불안한 졸부들이 이런 지관에게 손을 내 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교수 자리 때려 치우고 나올 적엔 생각하는 바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선경그룹의
최 종현 회장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일정한 정도의 돈 벌이가 끝나고 나선 이 교수님이
말을 바꾸어 버린다. 풍수란 것이 묘를 잘 써서 후손들 발복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머다 하니 뫼터를 잡아
주고 먹고 사는 풍수쟁이들 입장에선 남의 영업방해를 하는 것 인지라 이 교수님 얘기만 나오면 입에 개거품을
문다.
마지막으로 제 고향땅 안동엘 가면 서후란 동네가 있는데 이곳은 만만치 않은 성씨의 사람들이 대거 살고 있다.
안동 권,김 그리고 장 그리고 학봉 김 성일의 의성 김씨 등등이 터전을 잡고 있는 이곳에서 찢어 지게 가난하게
살던 어떤 이가 부친이 돌아 가시자 어느 이름 모를 남의 야산에 봉분이 없는 평장을 하곤 오래지 않아
야반 도주를 했는데 어찌 어찌 하다 떼돈을 벌게 되어 해 마다 명절이 다가 오면 이곳 서후에 있는 부친 산소를
찾아 오지만 그 위치를 몰라 서후 동네 입구에서 멀리 동네 뒷산을 보곤 절을 하곤 돌아 간다는 것이고
경남 함양에서 죽염을 만든느 인산가 라고 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 윤세 회장의 선친이 죽염을 세상에
널리 알린 장본인 이고 이 분이 쓰신 신약 그리고 신약본초란 글이 있는데 오래 전 읽은 글이라 기억이 아물한데
잠시 소개를 하면 경남에 있는 어느 고을에 밭뚝 근처에 토굴을 짓고 사는 거지 내외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해 몹시 추운 동지섣달에 거지 아빠가 돌아 가셔서 자신들이 기거하고 있는 토굴 근처를 대충
파다 보니 땅이 꽝꽝 얼어서 도무지 땅을 팔 수가 없는데 어느 곳엘 파 보니 땅이 꿀뚝 처럼 동그랗게 아래로
파 내려 가는지라 아버지 시신을 똑 바로 세워서 묻어 버렸다고 한다. 동결심도란 것이 있다.
우리나라 땅은 대충 90센티 전후만 파 내려 가면 땅이 얼지 않는다. 겨울에 김장독을 묻는 원리 인데 아버지
장례를 치룬 뒤에 거지 모자는 어떤 사유 인지는 모르지만 돈벼락을 맞게 되고 생활이 편해 지니 세워서 묻은
아버지 시신이 생각 나서 지관을 불러 이장을 요구 하니 지관 왈
지금의 묘터가 오공혈 즉 발이 여러 달린 지네의 형상을 한 지네혈 인지라 시신을 세워서 묻어야 발복을
한다는 것이다. 이 거지 집안은 아버지의 시신을 세워 둔 상태인데 발복을 하며 떼돈을 벌고 있다고 하네요.
요즘은 돈 몇 푼 안 주면 자신의 연고지에선 디씨 꺼증 해 주면서 화력 좋은 기름불로 깨끗하게 꺼슬러
줍니다. 대통령 될려고 지애비 묘소나 이장하고 요런 조런 사유로 군대는 미꾸라지 잠지 처럼 빠지는 놈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엔 요설로 혹세무민하는 풍수쟁이들이 설치게 마련이다. 풍수란
녹비에 가로 왈이요 이헌령 비헌령 이닷 해석 하기 나름인지라 한마디로 표현하면 으 으음
문쪄귀에 좆 찡기는 소리와 비슷하다.
분당 탄천변에서
첫댓글 역사적 사실이야 어떻든
가야산 자락의 남연군 묘소에 관해서는 드라마도 많았고 소설로도 쓰였다보니
재미있는 역사인지..소설인지..ㅎ
그러나 개심사 청벚꽃,왕겹꽃 꽃대궐은 정말 좋았습니다.
b팀은 신입회원 한분이 지갑을 잃어버렸다하여 그걸 찾느라 정신이 없어
개심사는 찬찬히 볼 시간이 없었는데
그 지갑은 주인의 호주머니에 고이고이 간직되어 있었다 합니다.
할수만 있다면 새벽 일찍 출발하여 개심사 고요한 법당을 다시 한번 보고오고 싶습니다.
돌삐님 말씀대로 나는 선정릉에 가서 "잉"을 처음으로 살펴 본 적이 있습니다.
최창조교수의 "좋은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라는 책도 읽어 보았는데
글쎄요 잘은 몰라도 난 믿고 싶지 않아요
돌삐님의 해박한 글 잘 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독후감....머리가 꽉 차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