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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본섬을 따라 오밀조밀한 해안선은 바다와 어우러져 푸른 빛깔과
하얀 거품을 품는 모습이 경이롭다. 거제도 14번 국도는
아름다운 해안선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도이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굽이쳐 가다보면 만나는 것이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구조라 마을이다.
구로조로 가는 구불구불 도로를 따라 서두른 운전은 매번 헤매고 있었다.
구조라 마을을 지나 등대가 있는 곳까지 갔다.
등대 부근 해안에는 다닥다닥 낚시꾼들이 따개비마냥 붙어 있다.
봄이면 구조라 포구로 몰려오는 학꽁치떼를 낚기 위해 강태공들도 구조라로 몰려왔는가 보다.
센 바람 탓인지 짙푸른 바다가 짓궂게 느껴졌다. 구
조라 초등학교를 어디에 있는지 마을 저편을 훑어보았다.
팝콘처럼 타닥타닥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가 봄비와 함께
언제 날라가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구조라로 향했다.
눈이 휘날리듯 꽃잎들이 후루룩 바람을 따라 어디선가 날아왔다.
어디선가 달콤한 향도 진하게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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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에서 가장 빨리 핀다는 거제도 구조라의 춘당매는
옛 구조라초등학교 분교 교정의 3그루와 노인정 뒤쪽의 1그루,
그리고 마을 초입의 1그루까지 모두 5그루이다.
수령이 약 120년에서 150년이나 된 그들과의 만남은 낯선 셀렘, 그 자체였다.
옛 구조라초등학교에 있는 이곳 매화는 소한때쯤 피기 시작해
입춘때 만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거제시 일운면에 있는 옛 구조라초등학교는 문을 닫은 지 10년이 더 지났지만,
낡은 폐교와 함께 고목이 된 매화는 늦겨울에서 봄을 기다
리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폐교가 되어 버린 교정 앞으로 펼쳐진 바다 위에 보이는
윤돌섬은 툭툭 떨어지는 매화의 하얀 눈물과 조화를 이룬다.
구조라의 매화들은 ‘춘당매’로 불린다.
이는 ‘우리나라 육지에서 가장 먼저 피는 매화’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구조라의 매화는 ‘만첩백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
봉오리 하나에 여러 겹의 흰 꽃이 피는 것’을 만첩백매라 한다.
교정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세 그루 아름드리 매화는 동박새와 공생하고 있었다.
그 향은 어찌나 진한지 향수를 뿌려놓은 듯했다.
운동장 잔디는 촉촉이 젖어 매화를 비추고 산책하는 마을사람들은
오순도순 그들의 시간을 나누고 있었다. 매화의 굵은 줄기 여기저기에서
새로 나오는 꽃봉오리도 눈웃음 치고 있는 구조라의 하늘이 덧없이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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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뒤편으로 가보았다. 검은 주단 같은 몽돌해변이 펼쳐졌다.
파도의 뭇매에 굳건히 자리를 지켰지만 닳아 작은 몽돌이 되어버린 저들을 보았다.
구조라의 작은 몽돌밭이 낯설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해돋이를 찍고자 진사님들을 따라 온 적이 있었던 곳이다.
처음 사진기를 부여잡고 가자는 대로 새벽이라도 달려갔던 초보 사진가,
아니 사진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내가 왔던 곳이다.
다른 진사님들은 일출을 멋지게 담았지만 초보사진가인 나는 초점만 맞추다
돌아온 그곳이었다. 이곳에서 본 일출은 의유당 남씨의 ‘동명일기’ 표현처럼
‘진홍대단 여러 필을 물 우희 펼친 듯’ 검은 하늘이 붉게 열렸고
바닷물 한가운데에서 아궁이에서 태어나듯 찬란한 태양이 떠오른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반대편은 거제에서 유일무이 하다고 표현될 정도로 모래로 빚어진
백사장이 말굽 모양으로 감싸듯 구조라를 안고 있었다.
구조라항은 거제시 북병산(465m)의 동부와 서남으로 능선이 갈라지면서
와치(臥峙)에서 와현(臥峴)으로 길게 뻗어 있어
풍수지리설에 근거해 일운면이라 명명되었다.
구조라의 정신적 지주인 해안선 동쪽 끝은 수정봉이 솟구쳐 있으며,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방어기지가 있다.
과거 구조라는 항리(項里)라는 옛지명으로 불리었다.
이는 1995년 공개된 조선후기 어촌 생활상 기술서인 ‘항리 어촌계(項里 漁村契)’에서
구조라의 옛지명을 찾아 볼 수 있다.
구조라 마을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것이 수정봉 올라가는 길이다.
그곳에 본 구조라는 통영의 비진도와 형상이 닮아있다.
모래해변과 몽돌해변이 아스라이 만나는 점이 다를 뿐.
좁고 긴 마을 구조라는 예사롭지 않은 정기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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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부터 은은하게 피어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매화나무며 구조라성이라는 간판에서
누구든 단박에 이곳을 그냥 스쳐가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곳이다.
이곳의 해변 왼쪽으로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고 오른쪽으로는
유람선 선착장이 외도와 해금강으로 가는 길손 객들을 나르고 있다.
그리고 서쪽 해변 앞에는 1㎢ 가량의 작은 섬, 윤돌섬이 딱 버티고 구조라 해변을 보고 있다.
구조라 마을로 접어든 시멘트 임도의 끝은 수정산 등산로로 이어진다.
항구에서 방파제, 자갈 해변, 수정산으로 길이 이어져 가볍게 등산을 해도 무관할 것이다.
만약 쉬엄쉬엄 둘러본다면 둘레길(2.28km)을 걸으면 된다.
색다른 체험을 하고 싶다면 마을을 관통하는 샛바람 소릿길로 올라가면 된다.
가는 길은 여러 길이라 어느 길로 가도 수정산 전망대로 갈수 있다.
수정산은 해발 150m로, 비롯 작지만 북쪽의 북병산의 진맥을 받아 솟은 산이다.
그래서 구조라마을 사람들은 수정봉은 진산(鎭山)으로 귀하게 여긴다.
수정봉에서 내도, 외도, 해금강, 구조라해수욕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돌담의 알록달록 벽화와 이어지는 좁은 골목을 통과하면 ‘샛바람 소릿길’을 걷을 수 있다.
지나는 바람마저 푸르게 물들이는 샛바람 소릿길은 대나무가
얼기설기 우거져 길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샛바람 소릿길의 대나무는 시릿대이다.
이것은 옛날발을 만들거나, 연(鳶)살대, 담뱃대, 화살대를 만들어 쓰던 대나무의 한 종류다.
현재 샛바람 소릿길 주변을 구조라마을 주민들은 ‘뎅박동’이라 부른다.
이 길은 ‘뎅방동’에서 ‘언덕바꿈’으로 가는 시릿대 오솔길을 말한다.
대나무가 저절로 자라 길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 길에서 자연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느 섬마을이나 바닷가 마을이 가진 공통점은 센바람이 부는 것이다.
구조라마을도 겨울이면 찬 샛바람이 불어온다. 사나운 바람을 피하기 위해
자연은 길을 만들어 놓은 샘이다. 구조라에 내려오는 애기장 설화가 있다.
입담 센 어르신들은 샛바람에 한 매친 어린 귀신이 울어대는 소리라 말하면
잠 안자는 어린 아회(아이)들을 겁주려 해주던 구전이 서린 곳이 ‘샛바람 소리길’이다.
샛바람 소리길이 끝나는 곳에 맞닥뜨려지는 곳이 작은 공원이다.
이곳에 솟대들이 마을 주민들을 무사안녕을 빌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일인지 자취를 감췄다.
이 작은 공원에서도 마을을 감상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가면 옛 구조라 성이 나온다.
그곳에서 구조라 마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구조라성은 길이 860m, 높이 4m, 너비 4.4m로, 조선시대 왜적을 막기 위하여
전방의 보루로 축조되었다. 성의 가운데 우물이 있고 동서남북 사방에
성문과 성문 중간에는 성루를 두었으며 성 아래 구조라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604년(선조 37)에 옥포진지로 옮겼다가 다시 이곳으로 옮겨왔다.
현재의 옥포 북쪽 조라포로 이동 후 생긴 명칭이다.
왼쪽으로 구조라해수욕장 백사장, 오른쪽으로 구조라항과 바쁘게 오가는
유람선과 고깃배와 조화를 이룬다.
옛 구조라 성에서 본 작은 섬, 윤돌섬. 이곳은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 해수욕장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1㎢ 가량의 작은 섬이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으로 뒤덮여 사철 푸른 기운을 가진 섬이다.
윤돌섬은 구조라와 그 서쪽에 있는 망치리 사이의 해변에서
뱃길로 약 3백m 해상에 떠있는 섬으로 마치 뿔고동을 엎어놓은 것 같이 생겼다.
또 봄부터 가을까지는 아침안개가 많이 끼는 곳이기 때문에 안개가 포구를 감싸고
섬의 머리만 내놓고 있는 모습 또한 절경이다.
게다가 간조 때가 되면 윤돌섬은 거제도와 연결된다.
물이 갈라지고 밑바닥이 드러나는 신비스러운 바닷길이 열리는 것이,
모세의 기적과 같다. 섬에서 섬으로 걸어 건널 수 있다고 한다.
바닷길 열리면 나도 모세가 되어 윤돌섬으로 걷고 싶다. /여행작가 최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