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AMILIAR face appeared in many of the protests taking place in scores of cities on three continents this week: a Guy Fawkes mask with a roguish smile and a pencil-thin moustache. The mask belongs to “V”, a character in a graphic novel from the 1980s who became the symbol for a group of computer hackers called Anonymous. His contempt for government resonates with people all over the world.
이번 주 3개 대륙의 수십개의 도심에서 발생한 여러 시위에서 짓굿은 미소와 가느다란 수염을 한 Guy Fawkes 가면의 친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이 가면은 "무명씨"라 불리는 컴퓨터 핵커 그룹의 상징이 된 1980년대 그래픽 소설 등장인물인 "V"를 나타낸다. 그의 정부에 대한 경멸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울려퍼지고 있다.
The protests have many different origins. In Brazil people rose up against bus fares, in Turkey against a building project. Indonesians have rejected higher fuel prices, Bulgarians the government’s cronyism. In the euro zone they march against austerity, and the Arab spring has become a perma-protest against pretty much everything. Each angry demonstration is angry in its own way.
시위는 다양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브라질은 버스 요금에 대해 봉기했고, 터키는 빌딩 프로젝트에 반발했다. 인도네시아는 에너지값 상승을 반대했고, 불가리아는 정부의 족벌주의, 유로존은 긴축에 항의했으며, 아랍 (민주화)봉기는 거의 모든 것들에 반대하는 지속된 시위가 되었다. 각각의 분노한 시위는 그 나름대로 계속되고 있다.
Yet just as in 1848, 1968 and 1989, when people also found a collective voice, the demonstrators have much in common. Over the past few weeks, in one country after another, protesters have risen up with bewildering speed. They have been more active in democracies than dictatorships. They tend to be ordinary, middle-class people, not lobbies with lists of demands. Their mix of revelry and rage condemns the corruption, inefficiency and arrogance of the folk in charge.
그러나 1848,1968과 1989년 처럼, 사람들이 집단적인 목소리를 성토할 때, 많은 공통점이 있다. 지난 몇주동안 시위자들은 차례차례 당혹할만한 속도로 잇따라 들고 일어났고, 독재체제보다는 민주체제에서 더욱 활발한 양상을 보였다. 시위자들은 요구목록이 있는 압력단체가 아닌,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시위자들의 흥분과 분노의 목소리는 담당 공무원들의 부패, 비능률, 오만을 비난한다.
Nobody can know how 2013 will change the world—if at all. In 1989 the Soviet empire teetered and fell. But Marx’s belief that 1848 was the first wave of a proletarian revolution was confounded by decades of flourishing capitalism and 1968, which felt so pleasurably radical at the time, did more to change sex than politics. Even now, though, the inchoate significance of 2013 is discernible. And for politicians who want to peddle the same old stuff, the news is not good.
아무도 2013년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1989년에 소비에트 제국이 흔들거리다 무너졌다. 그러나 1848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첫 물결인 마르크스 신념은 수십년 동안 번성하는 자본주의로 당황했고, 1968년엔 그렇게 유쾌하게 급진적으로 느껴졌던 변화가 정치보다는 성 변화에 더 주력했다. 상황이 그렇다고는 해도, 2013년의 방금 시작된 중요성은 지금도 인식할 수 있다. 또한 똑같은 구식 스타일을 그대로 옮기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에게도 이 뉴스는 좋은 것이 아니다.
Online and into the streets
온라인과 거리에서
The rhythm of protests has been accelerated by technology. V’s face turns up in both Sao Paulo and Istanbul because protest is organised through social networks, which spread information, encourage imitation and make causes fashionable (see article). Everyone with a smartphone spreads stories, though not always reliable ones. When the police set fire to the encampment in Gezi Park in Istanbul on May 31st, the event appeared instantly on Twitter. After Turks took to the streets to express their outrage, the flames were fanned by stories that protesters had died because of the police’s brutal treatment. Even though those first stories turned out to be wrong, it had already become the popular thing to demonstrate.
시위자들의 리듬은 기술로 가속화 되었다.V의 얼굴은 시위자들이 정보를 퍼트리고,모방을 조장하고,주장하는 명분을 유행하게 만드는 소셜 네트워크로 조직되어, 상파울로와 이스탄불 둘다 나타났다.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믿을만한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이야기를 퍼트린다. 경찰이 5월 31일 이스탄불의 Gezi Park 야영지에 불을 질렀을때, 이 사건은 즉각적으로 트위터에 나타났다. 터키 사람들이 분노를 표현하러 거리로 나갔을때, 경찰의 잔인한 탄압으로 시위자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불꽃처럼 번졌다. 첫번째 소문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어도, 시위는 이미 널리 퍼져 버린 일이 되었다.
Protests are no longer organised by unions or other lobbies, as they once were. Some are initiated by small groups of purposeful people—like those who stood against the fare increases in Sao Paulo—but news gets about so fast that the organising core tends to get swamped. Spontaneity gives the protests an intoxicating sense of possibility. But, inevitably, the absence of organisation also blurs the agenda. Brazil’s fare protest became a condemnation of everything from corruption to public services (see article). In Bulgaria the government gave in to the crowd’s demand to ditch the newly appointed head of state security. But by then the crowd had stopped listening.
시위는 더이상 예전처럼 노동조합이나 압력단체로 조직되지 않는다. 일부 시위는 상파울로의 버스요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처럼 목적이 있는 소그룹 사람들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뉴스가 너무 빨라서 ( 시위가) 조직편성되는 중심부가 압도 당하기도 한다. 시위자들을 무의식적으로 들뜨는 하는 가능성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목적을 가진) 조직의 부재는 (시위의 명확한)의제를 흐리기도 한다. 브라질으리 요금 항의는 공공 서비스 부패에서 모든 것에 대한 비난이 되어 버렸다. 불가리아 정부는 새로 지명된 국가안보수장을 해임 시키라는 대중의 요구에 굴복했다. 그러나 대중은 주장이 처리될 때까지는 정부의 말을 듣지 않았다.
This ready supply of broad, fair-weather activism may vanish as fast as it appeared. That was the fate of the Occupy protesters, who pitched camp in Western cities in 2011. This time, however, the protests are fed by deep discontent. Egypt is suffering from the disastrous failure of government at every level. Protest there has become a substitute for opposition. In Europe the fight is over how to shrink the state. Each time the cuts reach a new target—most recently, Greece’s national broadcaster—they trigger another protest. Sometimes, as in the riots of young immigrants in Sweden’s suburbs in May and of British youths in 2011, entire groups feel excluded from the prosperity around them. Sweden has the highest ratio of youth unemployment to general unemployment in the OECD. Too many young Britons suffer from poor education and have prospects to match. In the emerging economies rapid real growth has led people to expect continuing improvements in their standard of living. This prosperity has paid for services and, in an unequal society like Brazil, narrowed the gap between rich and poor. But it is under threat. In Brazil GDP growth slowed from 7.5% in 2010 to only 0.9% last year. In Indonesia, where GDP is still below $5,000 a head, ordinary families will keenly feel the loss of fuel subsidies.
이런 광범위하고 자기 좋은식대로 하는 행동주의 활동은 그것이 나타난 것만큼 빨리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2011년 서구 도심지에서 야영했던 시위자들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위자들이 깊은 불만에 신물이 나있다. 이집트는 파멸을 초래하는 정부의 실패로 고생하고 있다. 이집트의 시위는 반대를 대신하는 용어가 되었다. 유럽의 시위는 정권을 어떻게 축소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새로운 삭감이 나올때마다-가장 최근에는 그리스의 국립 방송회사-그들은 또다른 시위를 일으키고 있다. 때때로, 5월 스웨덴 외곽지역의 젊은 이민자들의 소요와 2011년 영국 젊은이들의 소요에서처럼, 이 전체 그룹들은 그들 주변의 번영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낀다. 스웨덴은 OECD국가에서 일반적인 실직률보다 젊은층의 실직률이 가장 높다. 영국의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빈약한 교육과 그에 상응하는 벌이에 고생하고 있다. 급속한 성장을 하는 이머징 국가들에서는 국민들이 생활수준의 지속적인 향상을 원하고 있다. 이런 번영이 브라질같은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서비스를 보상해 주었고, 빈부격차를 줄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붉은 신호등이다.(위협받고 있다) 2010년 브라질의 7.5%의 GDP성장은 작년에 0.9%로 떨어졌다. 1인당 GDP가 여전히 5,000$ 아래인 인도네시아의 평범한 가정에서는 연료 보조금 감소에 예민해 질 것이다.
More potent still in the emerging world are the political expectations of a rapidly growing middle class (see article). At the end of last year young educated Indians took to the streets of several cities after the gang rape of a 23-year-old medical student, to protest at the lack of protection that the state affords women. Even bigger protests had swept the country in 2011, as the middle class rose up against the corruption that infests almost every encounter with government officials. In Turkey the number of students graduating from university has increased by 8% a year since 1995. The young middle class this has created chafes against the religious conservatism of the prime minister, Recep Tayyip Erdogan, who wants large families and controls on alcohol. The 40m Brazilians who clambered out of poverty in the past eight years are able for the first time to scrutinise the society that their taxes finance. They want decent public services, and get overpriced sports stadiums instead.
이머징 세계에서 여전히 더 강력히 바라는 것은 급속히 성장하는 중산층의 정치적 기대감이다. 작년말에 교육받은 젊은 인도인들이 23세 의대생이 집단 강간을 당한후, 국가 차원의 여성 보호망 부족에 항의 하기 위해 여러도시에서 거리로 뛰쳐 나왔다. 2011년에는 정부 관료들을 만날때마다 만연하는 부패에 맞서기 위해 중산층의 더 큰 시위가 전국을 휩쓸었다. 터키의 대학 졸업자는 1995년 이래로 년 8%씩 증가했다. 이로 형성된 젊은 중산층이 이번에는 대가족과 주류 통제를 원하는 Recep Tayyip Erdogan 터키수상의 종교적 보수주의와 마찰을 일으켰다. 과거 8년동안의 가난에서 힘들게 빠져나온 40백만 명의 브라질인들은 처음으로 그들의 세금이 쓰이는 사회를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좋은 공공 서비스를 원했고, 그때문에 스포츠 스태디움에 과도한 경비가 지출되었다.
Trouble in Brussels and Beijing
브뤼셀과 베이징의 내분
How will this year of protest unfold? One dark conclusion is that democracy has become harder: allocating resources between competing interest groups is tougher if millions can turn out on the streets in days. That implies that the euro zone’s summer will surely get hotter. The continent’s politicians have got off lightly so far (the biggest demonstrations in Paris, for instance, were when “Frigide Barjot” led French Catholics in a bid to stop gay marriage). Yet social instability is twice as common when public spending falls by at least 5% of GDP as when it is growing. At some point European leaders must curb the chronic overspending on social welfare and grapple with the euro’s institutional weakness—and unrest will follow.
올해의 시위는 어떻게 전개될까? 민주주의는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는 것이 하나의 결론이다. 수백만이 대낮에 거리로 뛰쳐 나오면 경쟁하는 이익 집단들 사이에 자원을 할당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이는 유로존의 여름이 확실히 더 힘들어질 것을 시사한다.유로존의 정치가들은 지금까지 약간의 부담을 가지고 있다.(예를 들어,파리의 가장 큰 시위는 프랑스 카톨릭을 이끄는 Frigide Barjot가 동성애자 결혼을 금지했을 때였다.) 그러나 사회적 불안정은 GDP가 성장하고 있을 때 보다 최소 5% 하락했을 때, 공공 지출 삭감이 사회불안을 2배 증가 시킨다. 어떤 점에서 유럽 지도자들은 만성적인 사회복지 과소비를 억제 해야만 하고 유로의 제도적인 약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불안이 뒤따를 것이다.
Happily, democracies are good at adapting. When politicians accept that the people expect better—and that votes lie in satisfying them—things can change. India’s anti-corruption protests did not lead to immediate change, but they raised graft up the national agenda, with the promise of gradual reform (see article). To her credit, Brazil’s president, Dilma Rousseff, wants a national debate on renewing politics. This will be neither easy nor quick. But protest could yet improve democracy in emerging countries—and even eventually the EU.
다행히도, 민주주의는 환경에 적응을 잘 한다. 사람들이 더 좋은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표는 더 좋은 것을 만족시키는 것에 있음을 정치가들이 받아들일 때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인도의 반부패 시위들이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점차적인 개혁을 약속하는 국가적인 의제로 끌어 올렸다. 명예롭게도, 브라징 대통령 Dilma Rousseff는 정치를 새롭게 하는 국가적인 토론을 원하고 있다. 이것은 쉽지도 빠르지도 않겠지만, 시위는 이머징 국가들에서 아직까지는 민주주의를 향상 시킬 수 있고, 궁극적으로 EU도 그렇다.
Democrats may envy the ability of dictators to shut down demonstrations. China has succeeded in preventing its many local protests from cohering into a national movement. Saudi Arabia has bribed its dissidents to be quiet; Russia has bullied them with the threats of fines and prison. But in the long run, the autocrats may pay a higher price. Using force to drive people off the streets can weaken governments fatally, as Sultan Erdogan may yet find (see article); and as the Arab governments discovered two years ago, dictatorships lack the institutions through which to channel protesters’ anger. As they watch democracies struggle in 2013, the leaders in Beijing, Moscow and Riyadh should be feeling uncomfortable.
민주주의자들은 시위를 차단 시키는 독재자들의 능력을 부러워 할 수도 있다. 중국은 많은 지방 시위들이 국가 운동으로 단결하는 것을 막는데 성공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불만자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뇌물을 주었다. 러시아는 불만자들을 벌금과 감옥행으로 위협했다. 그러나 결국, 독재는 더 높은 댓가를 치를 수 있다. 사람들을 거리에서 내몰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것은 (터키의)회교 황제 Erdogan이 발견했을 수도 있는 것처럼 정부를 치명적으로 약화 시킬 수 있고, 독재는 시위자들의 분노를 돌릴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랍 정부들이 2년전에 발견했다. 그들이 2013년 민주주의가 고투함을 지켜 보고 있는 것처럼, 북경, 모스크바, 리야드의 지도자들은 틀림없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