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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읽는 고전]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 옥복연
여성해방은 나와 너의 분별 넘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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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탄핵 정국에서 응원봉 시위에 나선 젊은 여성들이나 방한용 은박 비닐로 몸을 두르고 눈을 맞으며 밤을 새운 ‘키세스단’은 한국 민주주의 회복의 상징으로 칭송을 받았다. 젊은 여성들에게 빚을 졌다거나 그들이 나라의 미래라는 등의 찬사가 이어졌지만,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 백래시(backlash, 반동)’는 여전하다. 페미니즘(Feminism)은 라틴어 페미나(femina, 여성의 특질을 갖춘 것)에서 파생된 용어로 성차별적인 남성 중심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성평등을 주장하지만, ‘여성우월주의’ 혹은 ‘남성 혐오’ 등으로 잘못 알려져 비난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매우 시급한데, 실존주의 페미니즘의 대표 주자이자 작가, 사회운동가로 최근 재평가되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를 만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그녀가 쓴 《제2의 성(Le Deuxième Sexe)》(1949)은 실존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성차별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 방안을 연구한 책으로, 여성이 어떻게 역사적·사회적·문화적 조건 속에서 ‘타자(the Other)’로 구성되어 왔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제2의 성》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 저서” “여성해방을 위한 실존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서”일 뿐만 아니라, 인간존재의 조건과 자유의 본질을 탐구한 철학적 명저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단순히 ‘여성의 문제’를 넘어 인간존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조건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존재와 무명(無明), 연기(緣起) 등 붓다의 핵심 가르침과도 연결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제2의 성》을 단순히 페미니즘 이론서로 소개하기보다는 불교적 관점으로 핵심 사상들을 재해석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사유가 붓다의 가르침과 어떻게 상통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불교가 얼마나 친페미니즘적인지, 페미니즘이 여성 깨달음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 글은 《제2의 성》의 핵심 논지를 정리한 후, 불교적인 언어로 주체, 타자화, 여성해방, 앙가주망이라는 네 축을 분석하고, 페미니즘을 하나의 수행이자 깨달음의 과정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여성은 어떻게 타자(Other)가 되는가
보부아르는 1908년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후 은행장이던 외할아버지가 파산하면서 가난한 삶으로 전락했다.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는 “여자는 천재가 될 수 없는데, 넌 남자의 두뇌를 갖고 있다”라며 그녀의 재능을 인정했고, 학문적인 성공만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그녀와 여동생의 교육을 적극 지원했다. 작가를 꿈꾸던 그녀는 15세 때 파리 대학에서 철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장 폴 사르트르(J. P. Sartre)를 만났다.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다시 공부한 그녀는 1929년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응시했는데, 사르트르가 1등을 하고 그녀는 최연소 나이로 2등을 했다. 이 해에 그녀는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을 하는데, 2년마다 계약 갱신, 서로 자유로운 애정 관계를 허용하되 숨기지 않기, 경제적인 독립이 조건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정치적인 견해를 함께하는 동지이자 학문적 동반자로 평생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는 1943년 《초대받은 여자》를 필두로 소설과 철학 서적들을 출간했고,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도 수상했다. 1949년 출판된 《제2의 성》으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197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 여성해방 운동에 동참하는 등 1986년 사망할 때까지 집필과 사회활동을 계속했다.
당시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며, 인간은 운명이나 역할이 정해진 존재가 아니라 태어난 후에 자신의 선택과 행위를 통해 스스로 어떤 존재로 만들어 간다고 주장하였다. 주체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세계에서 객체가 된다고 분석한 사르트르의 ‘타자화 이론’은 이후 보부아르의 ‘여성 타자화 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사르트르가 인간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존재’로 규정했지만, 보부아르는 여기에 ‘여성은 성별화된 실존’이라며 젠더적 관점을 첨가했다. 즉, 남자들이 남성을 ‘자아’로, 여성을 ‘타자’로 이름 지었는데, 만일 타자가 자아를 위협한다면 ‘여성’은 ‘남성’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에 남성은 여성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보부아르는 현실에서는 물론 학문 세계조차 지극히 남성 중심적임에 의문을 제기했다. 대학에서조차 여학생의 성적이 높아도 1등은 남자 몫이었고 여자는 2등이었으며, 남성에게 여성은 ‘종속 관계’일 뿐, ‘지적 동반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그녀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생 동안 사회 모든 영역에서 관습과 규범, 법과 제도로 여성은 타자화된다고 결론 내렸다.
그녀는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은 인종이나 계급 억압처럼 반전된 적이 없이 항상 남성에게 종속되어 왔음에 의문을 가지고, 여성이 지속적으로 이를 내면화해 온 억압의 구조를 여성해방을 위한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여성도 남성처럼 인권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받는 데는 지난한 세월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18세기에 등장한 ‘천부인권론’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했지만, 여성은 예외였다. 여성 인권에 대한 주장은 프랑스혁명 후 참정권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는 여성의 평등권 옹호와 관습적 여성성의 비판으로 오늘날 페미니즘 이론의 기초를 마련했고, 1789년 프랑스혁명기에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 1748~1793)가 〈여성과 시민의 권리선언〉(1791)에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지만 혁명 재판에서 처형당했다.
19세기 말 ‘제1세대 페미니즘’은 여성 참정권을 비롯하여 재산권 등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법과 제도를 누릴 것을 요구하였고, ‘제2세대 페미니즘’은 섹슈얼리티, 가족, 재생산 권리 등으로 담론의 범위를 확대했다.
보부아르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인간이 억압당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의식이 커짐과 동시에, 전쟁 시기에 남성을 대신하여 사회적 노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전후에는 가정에 복귀하여 현모양처로 살기를 강요받는 현실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녀는 여성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타자에 의해 강요당하는 한, 개인의 실존을 온전히 실현할 수 없다고 통찰했다. 즉, 여성들이 전후 가정으로 돌아간 것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남성이 생계 부양자이고 여성은 가정 관리자라는 성 역할 고정관념과 ‘모성 이데올로기’라는 남성 중심적 구조가 작동한 결과였다고 본 것이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남성은 세상의 주체로서 여성에게 적용되는 도덕과 규범을 만들고, 여성은 그 규범에 순종하며 희생하는 비주류, 즉 주체가 아닌 ‘타자’로 존재하게 된다. 그런 여성의 위치는 ‘제1의 성’인 남성에 비해 언제나 ‘제2의 성’에 머물렀으며, 가치 기준의 척도인 ‘남성적인 것’과 대비되는 ‘여성적인 것’은 열등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 결과 여성 억압은 정당화되었고,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여성상에 스스로를 맞추며 살아야만 했다.
이러한 모순을 바탕으로 보부아르는 41세가 되던 1949년, 현대 페미니즘 사상의 모태가 된 《제2의 성》을 출간했다. 당시 프랑스 여성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군인이나 간호사로 참전하고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국가를 지켜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참정권조차 없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여성의 지위가 급변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남성들이 나간 전쟁터에 여성들도 군인이나 간호사로 함께 싸웠고,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나라를 지켰다. 이러한 여성들의 역할을 인정받아 1944년 여성 참정권을 확보했지만, 1965년까지 여성은 직장을 구하거나 은행 계좌를 만들려면 남편 동의가 필요했고, 이혼할 권리나 피임·낙태 권리도 인정받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부아르는 제1의 성과 제2의 성 간의 차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차별받으며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었는지를 끊임없이 분석했다.
《제2의 성》 : 사실과 신화, 그리고 경험
1949년에 쓰인 《제2의 성》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선언과 함께, 여성들이 ‘제2의 성’에서 벗어나 남성과 같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남성들을 모욕했다며 극심한 공격을 받았고, 교황청에서 금서 목록에 올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제2세대 페미니즘의 기폭제가 되었다. 《제2의 성》은 원시 사회부터 현대까지 모든 분야에서 여성들이 남성 지배의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억압을 받는지, 어떻게 타자화되었는지를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권 《사실과 신화(Facts and Myths)》는 여성 차별의 역사적·과학적·문화적 기원을 분석한다. 제일 먼저 보부아르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데, 여성이 ‘수동적’이라거나 ‘열등’하다는 전통적인 인식은 과학이 아니라 남성 중심적인 해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프로이트(Freud)가 주장하는 남근 선망(penis envy)으로 인한 여성의 열등감이나,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사유재산과 가족제도 내에서의 여성 부불 노동(unpaid labor) 자체가 억압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원시 모계중심사회는 평화와 평등을 중시한 공동체였으나, 이후 무기를 든 남성들의 전쟁으로 권력 서열이 발생하면서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성 역할 고정관념과 남녀로 이분화된 성 규범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그녀는 생물학으로는 여성의 열등함을 설명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남성 중심 사회는 법이나 도덕, 교육 등으로 여성을 보조자, 의존자, 부차적 존재로 규정했고, 문학이나 예술은 여성을 성녀/유혹녀, 순결한 아내/위험한 마녀라는 이분법적 신화로 재현했으며, 종교는 순종과 희생을 정당화하는 여성 억압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여성은 생물학적 이유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타자’로 구성된 존재라는 것이다.
제2권 《생활 경험(Lived Experience)》은 여성이 현실에서 어떻게 ‘여성’으로 사회화되는가를 출생부터 노년까지 분석했다. 딸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성으로부터 보호받는 존재로 순종적인 여성성을 내면화하도록 강요되며, 몰성적 존재로 임신 등 재생산을 위해서 여성의 몸은 통제된다. ‘모성 이데올로기’는 일하는 여성에게 죄책감을 내면화하게 만들고, 노동 현장에서 여성은 임금 차별이나 직장 성희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남성은 경험과 연륜으로 존경받지만 여성은 늙음과 가난으로 멸시당하는 등, 여러 겹의 차별을 겪게 된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삶의 단계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과 차별을 당하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 교육, 경제적 독립, 성·결혼·가정에 대한 새로운 규범 등을 통해 억압을 극복하고 스스로 주체로 당당하게 나서야 함을 강조했다.
불교적 관점의 《제2의 성》
1) 보부아르의 ‘주체’와 불교의 ‘무아(無我)’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보부아르의 말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사회적·문화적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 구성물이라는 뜻이다. 여성은 역사적으로 타자로 구성되어 왔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성에 의해 선택되는 존재였다. 그러므로 보부아르의 여성해방 전략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주체로서의 회복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는 자유로운 자아를 추구하지만, 이 자유는 책임이 따르기에 불안의 원천이 되고, 인간에게 해방과 동시에 불안을 제공하므로 일종의 형벌이 되기도 한다.
불교에서 모든 존재는 고정불변하지 않고 변화하기에 ‘무아(無我)’를 주장하는데, 오온(五蘊,색·수·상·행·식)으로 이루어진 자아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이를 ‘나’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그 자체가 고통의 근원이라고 본다. 그런데 만약 여성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열등한 존재로 인식한다면, 또는 스스로 판단하거나 선택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진리를 만나더라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실존주의 페미니즘과 불교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단계적 상보 관계임을 보여준다. 즉, 여성이 주체로 회복이 되는 것은 끝이 아니라, 그다음 단계인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의 확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역사적·사회적 억압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아’를 선험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자칫 비현실적이거나 여성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여성 억압적 상황에서 여성에게 무아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교조주의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실존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처럼 여성 주체를 회복한 후에 무아를 통해 집착의 해체가 가능하다. 여성해방은 ‘다른 여성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규범적 실체를 비워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처럼 불교는 주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나’를 믿거나 나에게 집착하지 않을 것을 가르친다.
불교적 관점에서 여성성/남성성은 오온의 결합인 존재 위에 덧씌워진 사회적인 관념일 뿐이고 ‘나의 것’이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기에 무상(無常)한 것이다. 실존주의에서 주체는 자유로우므로 ‘불안’한데, 이를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집착에서 파생된 자유’는 ‘놓아 버림으로써 얻는 자유’로, ‘여성은 만들어진다’라는 주장은 ‘여성이라는 존재는 연기적으로 구성된다’로, ‘여성은 주체가 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여성은 주체로 고정되지 않아야 한다’라는 의미가 된다.
불교에서 자유는 관계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관계 속의 깨달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란 자아의 독립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처럼 보부아르의 자유가 개인적 주체의 실현이라면 불교의 자유는 관계적 실존의 조화이며, 이 두 관점은 결국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주체로 깨어 있을 수 있느냐는 동일한 질문을 공유한다.
2) 보부아르의 ‘타자화(Othering)’와 불교의 ‘무명(無明)’
‘타자화’란 한 집단이 자신을 중심적 주체로 설정하고 다른 집단을 부차적이거나 종속적인 존재로 규정하여, 역사·제도·담론을 통해 집단 간 차이를 차별로 드러내는 권력 작동 방식을 말한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타자로 머무를 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거나 선택할 수 없으므로 실존적 좌절 속에서 지속적으로 고통받으며, 더 나아가 여성 타자화를 스스로 내면화하여 이를 다음 세대로 계승하게 된다고 본다.
불교적으로 보면, 타자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상태’로서 이는 ‘무명’에 덮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여성에게 강요된 타자화된 삶은 업(業)처럼 작동하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빼앗아 간다. 그런데 불교에서 ‘남/여’ ‘상/하’ ‘우등/열등’ ‘순결/더러움’ 등 여성이 자신을 타자의 위치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은 무명(無明)과 분별심(分別心)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탐(貪)·진(瞋)·치(癡) 가운데 잘못된 견해인 ‘치(癡)’에도 해당하며, 타인이 ‘나와 동등하다’ ‘내가 낫다’ ‘내가 못하다’라는 자만(自慢)과도 연결된다. 그러므로 성차별의 극복은 단지 제도 개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명에 대한 자각과 깨어남을 요구한다.
무명이란 팔정도에서 바른 사유[正思惟]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인간을 사물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의 상태로 만든다. 이는 갈애의 원인이자, 인간이 태어나서 늙고 죽음에 이르며 고통을 겪는 과정을 설명하는 12연기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를 12연기의 틀에 비유적으로 적용하면, 여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명에서 차별적 관습과 습관을 따르는 행동[行]으로 나타나고, 타자화가 내면화되는 인식[識]을 갖게 된다. 여/남성이라는 명색(名色)으로 인해 성 역할이 고정되고 눈, 귀, 코, 혀, 몸, 맘 등 육입(六入)을 통해 열등한 여성관의 인식 구조가 고착되며, 성차별적인 방식으로 모든 것을 접촉[觸]한다.
그 결과 젠더 권력 등 남녀의 왜곡된 경험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受], 여성은 인정 욕망을 통해 생존하려는 조건화된 애착[愛]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여성 스스로 차별 구조를 내면화[取]하고, 성차별적 존재 양식이 발생[有]하여 규범이 된다. 이는 각종 교육이나 제도 등으로 다음 세대에게 젠더 규범으로 만들어져[生] 전달되고, 늙고 죽을 때[老死]까지 성차별로 인해 생애 전반에 걸쳐 고통을 받는다. 결국 깨닫지 못한 중생이 겪는 삶과 죽음의 반복적 순환 과정에서 ‘나’라는 자아를 탄생시키고, 이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윤회하며 살게 된다.
3) 보부아르의 ‘여성해방’과 불교의 ‘인간 해방’
보부아르와 불교는 억압을 극복하고 평등과 해방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양쪽 모두 차별이 본질적이거나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사회적 구조물이라는 점, 그리고 인간이 주체적 실천을 통해 해방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한다. 반면에 보부아르는 여성 주체 강화가 최종 목표이지만, 불교에서는 ‘나’ ’나의 것’이라는 집착을 버리고 자아와 분별을 초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차이점도 있다.
또한 보부아르는 이분법적인 성역할의 해체를 요구하지만, 불교는 단순히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차원을 넘어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허구의 이미지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자아에 집착하는 것은 고(苦)의 원인이 되어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열반(苦로부터의 해방)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므로, 불교는 탈이분법적인 인식을 요구한다. 실존주의 페미니즘을 불교적으로 분석하면, 여성 억압은 연기적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변화할 수 있고, 불교의 무아·연기·무상 사상은 여성 차별을 반박하는 근거가 된다.
차별은 불교의 진리가 아니며, 여성해방은 불교 수행의 연장선상에서 ‘나/너’의 분별을 넘어서는 깨달음의 과정이다. 실존주의에서 타자는 나의 자유를 위협하고 나를 객체로 만들기 때문에, 타자와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갈등적이다. 하지만 불교에서 나라는 존재는 실체가 없고, 나와 타자는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기에, 공 사상은 실존주의에서 타자를 적대시하는 근원을 해체하고, 타인을 위한 자비를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제2의 성》은 불교의 무아·연기 사상과 상호 소통하면서, 전통 불교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 요소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즉 ‘여성 억압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사회·문화·종교가 만든 연기의 산물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존적 자유의 실천과 불교적 깨달음의 실천 이 두 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붓다는 수행을 통해 누구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남녀의 구분을 넘어선 평등의 선언이자, ‘자기 안의 타자성을 초월하는 주체의 탄생’과도 맞닿아 있다.
이처럼 불교의 여성해방은 인간 해방이자 온 존재의 해방임을 주장하는데, 보부아르의 이론은 이러한 불교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평등한 교리와 여성 성불 가능성 인정, 그리고 수많은 깨달은 비구니들의 기록이 전해 옴에도 불구하고, 열등하고 부정적인 여성관이 교단에 뿌리 깊게 자리한 원인을 여성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불교 페미니즘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4) 보부아르의 ‘앙가주망(engagement)’과 ‘불교 페미니즘’
실존주의는 주체성을 가진 개인의 선택과 행위는 크든 작든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개인은 책임감을 가진 존재라고 인식한다. 이 책임감은 직접 사회문제에 참여하여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대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주체로서 자신의 선택과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삶의 태도를 ‘앙가주망(engagement)’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회를 향한 비판과 변혁을 위한 참여를 이끈다. 보부아르도 1970년대 이후 사회변혁 운동에 나서는데, 낙태권(임신 중지권) 확보를 위한 거리 시위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며 낙태 합법화에 앞장서며 실천적 페미니스트 운동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실존주의 페미니즘이 등장한 제2세대 페미니즘 시대에는 불교를 여성해방의 도구로 해석하는 불교 페미니즘이 등장한다. 페미니즘은 불교에 젠더적 관점을 제공하고 불교는 페미니즘에 여성해방을 위한 탈이분법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며 두 사상은 상보적 관계로 만난 것이다. 불교 페미니즘은 서구의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불교의 핵심 개념으로 페미니즘을 재구성하였다. 불교의 공(空) 사상을 통해 여성이 문화적으로 구성된 성(gender)임을 설명하고, 평등과 해방 사상을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더 나아가 온 생명으로 확대한 것이다.
또한 공 사상과 연기 사상을 통해 전 지구적 생명 살림에 동참하는 실천 행위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였고, 남성 대 여성, 인간 대 자연, 출가 대 재가 등에 대한 탈이분법적 인식론으로 자기 변혁적 세계관을 제시했다. 《제2의 성》 이론은 불교가 이처럼 성평등한 교리로 페미니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단 내 성 차별성이 고착화된 이유를 묻게 한다. 무아나 공 사상 등은 젠더 위계를 용납할 수 없는데, 여성은 성불할 수 없다거나 유혹자 여성 등의 왜곡된 여성관이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원인에 대해 불교 페미니즘은 ‘제도적 실패’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불교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적 사회의 가부장성과 교단 내 가부장성이라는 이중의 굴레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여성 관점의 교리 재해석, 법 제도의 성평등한 개혁, 생명 중심 불교, 불교사에서 잊힌 여성 발굴, 비구니 교단 재건 등의 실천을 주장한다. 이처럼 실존주의 페미니즘과 불교 페미니즘은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을 강조하면서 무명에서 벗어나 연기적 세계를 자각하는 길을 추구한다.
나가며
“여성은 어떻게, 왜 남성보다 차별받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했던 보부아르는, 결국 스스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답을 찾아냈다. 《제2의 성》은 여성이 어떻게 남성에 비해 ‘부차적·종속적 존재’로 규정되었는지를 폭로함으로써, 여성해방은 물론 인간 해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불교는 오래전부터 고정된 자아와 본질을 부정하며 해방의 길을 제시해 왔는데, 실존주의와 불교의 만남은 여성 문제를 넘어,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타자화하며 고통을 재생산하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오늘날 페미니즘 사조 가운데 남녀의 생물학적·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여성 고유의 특성을 중시하는 ‘차이의 페미니즘(Differ-ence Feminism)’은, 보부아르가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 주체성을 강조했다는 점을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참정권조차 없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인간이며, 여성으로서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나는 여자다’라는 긍정적인 여성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 우선되어야 했다. 그녀가 오늘날까지 소환되는 이유는 현대 여성들에게 성평등에 대한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여 ‘자기 안의 타자성을 초월하는 주체의 탄생’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제2의 성》을 읽는다는 것은 ‘성별’이라는 타자화의 장벽을 넘어 모든 존재의 평등성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며, 페미니즘을 하나의 수행이자 깨달음의 과정으로 나아가도록 안내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주체의 해방에서 ‘관계적 존재의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고, 불교가 간과해 온 ‘성별화된 수행의 조건’을 다시 성찰하게 함으로써 불교 페미니즘의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결국 보부아르를 불교적으로 만나는 것은, 여성해방은 곧 인간 해방이며 이것이 무명에서 벗어나 연기의 세계를 자각하는 길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
옥복연 byok2003@hanmail.net
미국 코네티컷주립대에서 여성학 석사, 서울대 대학원에서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주요 논문으로 〈불교 경전에 나타난 여성혐오적 교리의 재해석〉 〈붓다의 십대 재가여성제자에 대한 여성주의적 분석〉 등이 있고, 《붓다, 성과 사랑을 말하다》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 《불교와 섹슈얼리티》 등이 공저서와 역서 《불교와 페미니즘》이 있다. 종교와젠더연구소장, 불교아카데미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