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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3661]장자(莊子) - 20 - 산목(山木)
山木(산목 ; 산의 나무) 第二十(제20)
莊子가 行於山中하다가 見大木하니 枝葉이 盛茂하되 伐木者가 止其旁而不取也어늘 問其故한대 曰無所可用이니라 莊子曰 此木은 以不材로 得終其天年이로다 夫子가 出於山하야 舍於故人之家하니 故人이 喜하야 命豎子하야 殺雁而烹之한대 豎子가 請曰 其一은 能鳴하고 其一은 不能鳴하나니 請奚殺이잇고 主人曰 殺不能鳴者하라 明日에 弟子 問於莊子曰 昨日에 山中之木은 以不材로 得終其天年하고 今主人之雁은 以不材로 死하니 先生은 將何處잇고
장자(莊子)가 산속을 거닐다가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는데 벌목하는 사람들이 그 옆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 나무를 베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쓸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장자가 말하기를,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천수(天壽)를 다할 수 있구나.” 했다. 선생이 산에서 나와 옛 친구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친구가 기뻐하여 아이 종에게 거위를 잡아서 요리하라고 시켰더니, 아이 종이 여쭙기를, “한 마리는 잘 우는데, 한 마리는 울지 못합니다. 어느 것을 잡을까요?” 하였다. 주인이 말하기를, “울지 못하는 놈을 잡아라.” 했다. 다음 날 제자가 장자에게 묻기를, “어제 산중의 나무는 쓸모없었기 때문에 천수를 다할 수 있었고 지금 주인집 거위는 쓸모없었기 때문에 죽었으니 선생께서는 장차 어디에 몸을 두시겠습니까?” 했다.
莊子 笑曰 周는 將處乎材與不材之間하리니 材與不材之間은 似之而非也론 故로 未免乎累어니와 若夫乘道德而浮遊면 則不然이라 無譽無訾하며 一龍一蛇하야 與時로 俱化 而無肯專爲하며 一上一下에 以和로 爲量하야 浮遊乎萬物之祖하야 物物而不物於物하나니 則胡可得而累邪리오 此 神農黃帝之法則也니라 若夫萬物之情과 人倫之傳은 則不然하야 合則離하고 成則毁하고 廉則挫하고 尊則議하고 有爲則虧하고 賢則謀하고 不肖則欺하나니 胡可得而必乎哉리오 悲夫라 弟子야 志之하라 其唯道德之鄕乎인저
장자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머물 것이다. 그런데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머무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아직 완전한 올바름이 아니기 때문에 세속의 번거로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도(道)와 덕(德)을 타고 어디든 정처 없이 떠다니듯 노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명예도 없고 비방도 없이 한 번은 하늘에 오르는 용이 되었다가 또 한 번은 땅속을 기는 뱀이 되어 때와 함께 변화하면서 한 가지를 오로지 고집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는다. 한 번 하늘 높이 올라가고 한 번 땅속 깊이 내려감에 조화로움을 한량으로 삼아서 만물의 시초에 자유롭게 노닐며, 만물을 만물로 존재하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물(物)에 의해 물(物)로 규정 받지 않으니 어떤 물(物)이 번거롭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옛날 신농(神農)과 황제(黃帝)가 지켰던 삶의 법칙이다. 그런데 만물의 실정(實情)과 인간 세상사의 전변(轉變)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합하였다 하면 이윽고 분열하고, 완성되었다 하면 이윽고 파괴되고, 날카롭게 모가 났다 하면 어느새 꺾이고, 존귀하게 되었다 하면 어느새 몰락하고, 훌륭한 행동을 하는 인간이다 싶으면 무너지고, 현명하면 모함에 걸리고, 어리석으면 기만당하니 어찌 (세상의 번거로움을 면할 것이라고) 기필할 수 있겠는가. 슬픈 일이다. 제자들은 잘 기억해 두어라. (내 몸을 둘 수 있는 곳은) 오직 도(道)와 덕(德)의 고장일 뿐이다.” 했다.
市南宜僚가 見魯侯한대 魯侯 有憂色이어늘 市南子曰 君有憂色은 何也잇고 魯侯曰 吾學先王之道하고 脩先君之業하야 吾敬鬼하며 尊賢하야 親而行之하야 無須臾離居호대 然不免於患이라 吾是以로 憂하노라 市南子曰 君之除患之術이 淺矣샷다 夫豐狐文豹 棲於山林하며 伏於巖穴은 靜也요 夜行晝居는 戒也요 雖飢渴隱約이라도 猶且胥疏於江湖之上而求食焉은 定也라 然且不免於罔羅機辟之患하나니 是는 何罪之有哉리오 其皮 爲之災也니라 今이 魯國은 獨非君之皮邪아 吾는 願君이 刳形去皮하며 洒心去欲하고 而遊於無人之野하소서
저잣거리 남쪽에 사는 초(楚)나라 사람 웅의료(熊宜僚)가 노(魯)나라 임금을 만나 뵈었는데 노나라 임금이 근심하는 기색을 띠고 있었다. 시남자(저잣거리 남쪽에 사는 사람 ; 熊宜僚)가 말하기를, “임금께서 얼굴에 근심스러운 안색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노나라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옛날 성왕(聖王)들의 다스리던 방법을 배우고 선대(先代) 임금들의 유업(遺業)을 닦아서 귀신을 공경하고 현자를 존경하여 몸소 이런 도리를 실천하여 잠시도 선왕지도(先王之道)를 떠나서 안일하게 거처함이 없었는데도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때문에 근심하고 있습니다.” 했다. 시남자(市南子)가 말하기를, “임금께서 걱정을 없애는 방법이 천박합니다. 무릇 풍성한 털을 가진 여우와 아름다운 무늬의 가죽을 가진 표범이 산림 깊숙한 곳에 살며 바위굴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은 고요함을 잘 지키는 것이고, 밤에 나돌아다니고 낮에는 꼼짝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경계하는 것이고, 비록 배고프고 목마르고 곤궁하더라도 오히려 커다란 하천이나 넓은 호수 가에서 멀리 떨어져 먹을 것을 찾는 것은 안정을 지키는 태도입니다. 그런데도 그물이나 덫에 걸려 죽는 걱정을 면치 못하니 어찌 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다만 그들의 가죽이 재앙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지금 노나라야말로 바로 임금님의 가죽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임금께서 임금이란 신분을 베어버리고 노나라라는 가죽을 내버려서 마음을 씻고 욕심을 버리고 아무도 없는 들에서 자유롭게 노니시기를 바랍니다.
南越에 有邑焉하니 名爲建德之國이니 其民이 愚而朴하야 少私而寡欲하며 知作而不知藏하여 與而不求其報하며 不知義之所適하며 不知禮之所將이오 猖狂妄行이로대 乃蹈乎大方하야 其生可樂이며 其死可葬이니 吾는 願君이 去國捐俗하시고 與道로 相輔而行하소서 君曰 彼其道 遠而險하고 又有江山하니 我無舟車호니 奈何오 市南子曰 君이 無形倨하며 無留居하야 以爲君車하소서
남월(南越)에 어떤 고을이 있는데 이름을 덕(德)을 확립한 사람들의 나라라고 하는데, 그 백성들은 우직하고 소박하여 사욕을 적게 하고 욕심을 줄여서 묵묵히 일할 줄만 알고 자기 몫으로 저장할 줄 모르며, 남에게 주기만 하고 그 보답을 바라지 아니하며 도리에 꼭 맞출 줄 모르며 예를 받들 줄도 모르고 미친 듯 제멋대로 행동하는데도 대도(大道)를 벗어나지 아니하여 삶을 즐길 만하고 죽음을 거두어 간직할 만하니 저는 임금께서 나라를 떠나 세속을 버리시고 도(道)와 더불어 서로 도우면서 이 나라[建德之國]로 떠나가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도정(道程)은 멀고 험한데다 큰 강과 산이 가로 놓여 있는데 나에게는 배와 수레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시남자(市南子)가 말하기를, “임금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오만함을 없애고 편안하게 살겠다는 집착을 없애서 그것을 임금님의 수레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했다.
君曰 彼其道 幽遠而無人이어시니 吾는 誰與爲隣고 吾 無糧하며 我 無食호니 安得而至焉이리오 市南子曰 少君之費하시며 寡君之欲하시면 雖無糧이나 而乃足하리니 君其涉於江而浮於海하야 望之而不見其崖하며 愈往而不知其所窮이라 送君者는 皆自崖而反이어든 君은 自此로 遠矣시리이다
임금이 말하기를, “저 도(道)는 깊고 멀어서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으니 내 누구와 이웃이 될 수 있겠습니까? 또 나는 양식이 없고 먹을 것이 없으니 어떻게 저곳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하니, 시남자(市南子)가 말하기를, “임금께서 비용을 줄이시고 욕심을 적게 하면 비록 양식이 없어도 충분할 것입니다. 임금께서 강을 지나 바다에 떠가시면 멀리서 바라볼 때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며 갈수록 다하는 곳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임금을 전송하는 이들은 모두 그 끝에서 되돌아오면 임금께서는 거기서부터 더 멀리 나아가실 것입니다.
故로 有人者는 累하고 見有於人者는 憂하나니 故로 堯는 非有人이며 非見有於人也니라 吾는 願去君之累하시며 除君之憂하시고 而獨與道로 遊於大莫之國하소서 方舟而濟於河할새 有虛船來觸어든 舟에 雖有惼心之人이라도 不怒어니와 有一人이 在其上이면 則呼張歙之호대 一呼而不聞하며 再呼而不聞커든 於是에 三呼邪면 則必以惡聲으로 隨之하리니 向也에 不怒코 而今也에 怒는 向也에 虛하고 而今也에 實일새니라 人能虛己以遊世하면 其孰能害之리오
그 때문에 인민을 자신의 소유로 삼아 다스리는 자는 얽매이고 다른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자는 근심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요임금은 인민을 자신의 소유로 다스리려 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임금께서 얽매인 것을 풀어버리고 근심하는 것을 제거해서 홀로 도(道)와 함께 아득한 대막의 나라[大莫之國]에서 노니시기를 바랍니다. 두 척의 배를 나란히 띄워 하수를 건너갈 때 빈 배가 와서 부딪치면 비록 속 좁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지만, 그 위에 사람이 있으면 고성으로 배를 밀어라 당겨라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한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고 두 번 소리쳐도 듣지 못하여 결국에 세 번 소리 지르게 되면 반드시 욕설이 따르게 될 것이니 지난번에는 노여워하지 않았다가 이번에는 노여워하는 까닭은 지난번에는 빈 배였고 이번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을 비워서 세상에 노닐면 누가 해칠 수 있겠습니까?”
北宮奢가 爲衛靈公하야 賦斂以爲鐘하더니 爲壇乎郭門之外한 三月而成上下之縣하거늘 王子慶忌가 見而問焉曰 子何術之設고 奢曰 一之間에 無敢設也하라 奢는 聞之호니 旣彫旣琢하야 復歸於朴이라호라 侗乎其無識하며 儻乎其怠疑하며 萃乎芒乎라 其送往而迎來하야 來者를 勿禁하며 往者를 勿止하야서 從其强梁하며 隨其曲傅하야 因其自窮하노니 故로 朝夕에 賦斂而毫毛不挫하니 而況有大塗者乎따녀
북궁사(北宮奢)가 위(衛)나라 영공(靈公)을 위해 백성에게 특별히 세금을 걷어 그것으로 종을 만들었다. (이 종을 주조하기 위해) 성곽문 밖에 흙으로 단(壇)을 축조한 지 불과 삼 개월 만에 위아래 두 단에 종을 걸어놓자 (이때 마침 위나라에 망명해 있던 오나라의) 왕자 경기(慶忌)가 그것을 보고 묻기를, “도대체 그대는 어떤 기술을 썼습니까?” 하니, 북궁사가 대답하기를, “저는 마음을 순일(純一)하게 하였을 뿐 감히 다른 기술을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듣건대, ‘인위(人爲)를 깎고 쪼아 없앤 뒤에 자연(自然)의 순박함으로 돌아간다.’고 하더군요. 저는 멍하게 아는 것이 없는 듯, 아무 생각 없이 어리석은 듯하며 황홀한 가운데 가는 사람을 보내고 오는 사람을 맞이함에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아서 사나운 백성들은 사나운 채로 맡겨 두고 잘 구부리고 따르는 사람은 따르는 대로 내맡겨 두어 그들 스스로 이르는 것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세금을 거두어도 털끝만큼도 백성들을 해치는 일이 없었으니 하물며 대도(大道)를 체득한 사람이겠습니까?” 했다.
孔子 圍於陳蔡之間하야 七日을 不火食이러니 太公任이 往弔之曰 子는 幾死乎아 曰然하다 子는 惡死乎아 曰然하다 任曰 予가 嘗言不死之道호리라 東海에 有鳥焉하니 其名曰 意怠니 其爲鳥也라 翂翂翐翐而似無能하니 引援而飛하며 迫脅而棲하며 進不敢爲前하며 退不敢爲後하며 食不敢先嘗하야 必取其緖라 是故로 其行列이 不斥하며 而外人이 卒不得害라 是以로 免於患하나니라 直木이 先伐하며 甘井이 先竭하나니 子其意者는 飾知以驚愚하며 脩身以明汙하야 昭昭乎如揭日月而行 故로 不免也로다
공자(孔子)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 포위되었을 때 이레 동안 따뜻한 밥을 지어먹지 못했다. 태공임(太公任)이 가서 조문하고 말하기를, “당신은 거의 죽을 것 같습니다만?” 하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했다. 태공임(太公任)이 말하기를, “당신은 죽는 게 싫습니까?” 하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했다. 태공임(太公任)이 말하기를, “내가 시험 삼아 불사(不死)의 도리를 말해 보리다. 동해(東海)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을 의태(意怠)라 한다오. 이 새는 돼먹기를 퍼덕퍼덕 날개를 치기만 할 뿐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아무 능력도 없는 것 같아서 다른 새들이 끌어당기면 겨우 날며, 닦달을 당하고 위협을 당하고 나서야 겨우 집에 들어가 쉬며, 나아갈 때는 남들보다 앞서지 않고, 물러날 땐 남들보다 뒤에 남지 않습니다. 밥 먹을 때에도 감히 먼저 맛보지 않고 반드시 모두가 남긴 찌꺼기를 먹습니다. 그 때문에 새의 대열에서 배척받지 않으며, 외부의 인간이 결국 해를 입히지 못하는지라 이런 까닭에 근심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곧은 나무는 먼저 베어지고 맛있는 우물은 먼저 마르게 마련이지요. 당신은 아마도 자신의 지식을 포장하여 어리석은 자들을 놀라게 하고, 자기 자신을 수양하여 그로써 다른 사람의 악행을 돋보이게 만들되, 분명하게 마치 해와 달을 치켜들고 다니듯 했기에 근심스러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昔에 吾가 聞之大成之人하니 曰自伐者는 無功하고 功成者는 墮하고 名成者虧라하니 孰能去功與名하야 而還與衆人하야 道流而不明居하며 得行而不名處하며 純純常常하야 乃比於狂하며 削迹捐勢하야 不爲功名코 是故로 無責於人이며 人亦無責焉이라 至人은 不聞하나니 子何喜哉오 孔子曰 善哉라 辭其交遊하며 去其弟子하고 逃於大澤하야 衣裘褐하며 食杼栗하면 入獸不亂群하며 入鳥不亂行호리니 鳥獸도 不惡이온 而況人乎따녀
예전에 내가 크게 도를 이룬 분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공적을 이룰 수 없고, 공은 이루어지고 나면 무너지게 되고 명성은 이루어지면 훼손된다.’고 했습니다. 누가 공적과 명예를 버리고 백성들에게 돌아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道는 널리 세상에 퍼져 있으면서도 뚜렷하게 머물지 않고 덕(德)은 만물에 작용하면서 명성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고 한결같아서 미치광이에나 비길 수 있을 것입니다. 흔적을 없애고 권세를 버려 공명(功名)을 추구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남을 책망하지도 않고 남에게 책망을 받지도 않습니다. 지인(至人)은 명성이 소문나지 않는 법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런 것을 좋아하시오?” 하니, 공자는 “훌륭한 말입니다!”라고 하고는 교제를 사양하고 제자들을 돌려보내고 큰 연못가에 은둔하면서 가죽옷과 갈옷을 입으며 도토리를 먹고 살았다. 이윽고 짐승들 속에 들어가도 무리가 흩어지지 않고, 새들 사이에 들어가도 행렬이 흩어지지 않게 되었다. 새나 짐승들도 싫어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孔子 問子桑雽 曰 吾는 再逐於魯하며 伐樹於宋하며 削迹於衛하며 窮於商周하며 圍於陳蔡之間하야 吾犯此數患하니 親交益疏하며 徒友益散하나니 何與오 子桑雽曰 子獨不聞假人之亡與오 林回 棄千金之璧하고 負赤子而趨어늘 或曰 爲其布與인댄 赤子之布 寡矣오 爲其累與인댄 赤子之累 多矣어늘 棄千金之璧하고 負赤子而趨는 何也오 林回曰 彼는 以利로 合이오 此는 以天으로 屬也니 夫以利로 合者는 迫窮禍患害하야 相棄也커든 以天으로 屬者는 迫窮禍患害하야는 相收也하나니 夫相收之與相棄 亦遠矣라
공자가 자상호(子桑雽)에게 묻기를, “나는 노(魯)나라에서 두 번이나 쫓겨났으며 송(宋)나라에서는 환퇴(桓魋)가 나무를 베어 죽이려 한 위험을 당했고 위(衛)나라에서는 발자취까지 삭제되었고 상(商)나라의 옛터나 주(周)나라의 서울에서 궁지에 빠졌으며 진(陳)나라 채(蔡)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되었습니다. 내가 이처럼 여러 차례의 환난을 당해 친교가 더욱 소원(疏遠)해지고 문도와 학우들이 더욱 흩어지게 되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을 당한 것인지요.” 하니, 자상호(子桑雽)가 말하기를, “당신도 가(假)나라 사람이 도망친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겠지요. 임회(林回)라는 사람이 천금의 구슬을 버리고 갓난아기를 업고 도망쳤는데 어떤 사람이 묻기를 ‘돈이 나가는 물건이라 여겨서 그리한 것이라면 갓난아기는 돈이 얼마 되지 않으며, 거추장스러워서 그리한 것이라면 오히려 갓난아기의 거추장스러움이 더 심한데 천금의 구슬을 버리고 갓난아기를 업고 도망친 까닭은 어째서인가.’ 하고 묻자, 임회가 대답하기를 ‘저 구슬은 이익으로 맺어진 관계이고 이 아기는 하늘이 붙여준 관계이다.’고 했습니다. 무릇 이익으로 맺어진 관계는 급박하고 곤궁하며 재앙이 닥치면 서로 버리게 되는데 하늘이 맺어준 관계는 급박하고 곤궁하며 재앙이 닥치면 서로 거두어주니 서로 거두어줌과 서로 버리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且君子之交는 淡若水하고 小人之交는 甘若醴라 君子는 淡以親하고 小人은 甘以絶하나니 彼 無故以合者는 則無故以離하나니라 孔子曰 敬聞命矣로리라하고 徐行翔佯而歸하야 絶學捐書한대 弟子 無挹於前이나 其愛 益加進이러라 異日에 桑雽又曰 舜之將死에 眞泠禹曰 汝 戒之哉어다 形莫若緣코 情莫若率이니 緣則不離하고 率則不勞하니라 不離不勞하면 則不求文以待形하리니 不求文以待形이면 固不待物이니라
뿐만 아니라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단술과 같습니다. 군자는 맑음으로 친밀함을 이어가고 소인은 단 것으로 관계를 끊게 되니 저 소인들처럼 까닭 없이 모인 자들은 까닭 없이 흩어지게 됩니다.” 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하고는 천천히 걸어 자유로이 방황하면서 집으로 돌아가 (그 뒤로는) 학문을 끊고 책을 버렸다. 제자들도 공자 앞에서 읍(挹)하는 일이 없어졌으나 공자에 대한 마음속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다른 날 자상호(子桑雽)가 말하기를, “순(舜)임금이 죽을 때 우(禹)에게 신중히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는 경계하도록 하라. 형체는 자연을 따르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고 감정은 천진에 맡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으니 자연을 따르게 되면 괴리(乖離)되지 않고 천진에 맡기면 수고롭지 않게 된다. 괴리되지도 않고 수고롭지도 않으면 문식으로 몸뚱이를 꾸미려 하지 않을 것이니 문식으로 몸뚱이를 꾸미려 하지 않으면 당연히 외물에 의존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였다.”
莊子가 衣大布而補之하고 正緳係履하야 而過魏王한대 魏王曰 何先生之憊邪오 莊子曰 貧也라 非憊也니라 士有道德不能行은 憊也어니와 衣弊履穿은 貧也라 非憊也니 此所謂非遭時也니라 王은 獨不見夫騰猿乎잇가 其得枏梓豫章也에는 攬蔓其枝而王長其間이어든 雖羿蓬蒙이라도 不能眄睨也라나 及其得柘棘枳枸之間也하야는 危行側視하야 振動悼慄하나니 此는 筋骨이 非有加急而不柔也라 處勢不便이라 未足以逞其能也일새니라 今에 處昏上亂相之間하야서 而欲無憊인댄 奚可得邪리오 此 比干之見剖心이니 徵也夫인저
장자(莊子)가 여기저기 기운 자리가 많은 헐렁한 베옷을 입고 삼줄로 이리저리 묶은 신발을 신고 위(魏)나라 왕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위나라 왕이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이처럼 고달프게 사십니까?” 하니, 장자가 대답하기를, “가난한 것이지 고달픈 것이 아닙니다. 선비에게 도덕을 시행하지 못하는 것은 고달픈 것이지만 옷이 해지고 신발이 터진 것은 가난한 것이지 고달픈 것이 아니니 이것이 이른바 제 때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왕께서는 뛰어다니는 원숭이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원숭이가 녹나무나 가래나무를 얻었을 때 가지를 붙잡고 그 사이에서 군왕 노릇을 하면 비록 예(羿)나 봉몽(蓬蒙 ; 逄蒙)처럼 활 잘 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곁눈질하지 못하지만, 원숭이가 산뽕나무, 대추나무, 탱자나무, 호깨나무 따위의 가시나무를 얻었을 때에는 바짝 긴장하고 움직이며 곁으로 흘겨보아서 진동할 때마다 두려워하니 이것은 원숭이의 근골이 더 급해지거나 부드럽지 못한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는 형세가 편치 못하기 때문에 자기 능력을 발휘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두운 군주와 어지러운 재상의 사이에 머물면서 고달픔이 없기를 바란다면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비간(比干)이 심장을 가르는 형벌로 죽게 된 일에서도 분명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했다.
孔子 窮於陳蔡之間하야 七日을 不火食하야 左據槁木하고 右擊槁枝하사 而歌焱氏之風하시니 有其具而無其數하며 有其聲而無宮角호대 木聲이 與人聲으로 犁然有當於人之心하더니 顔回端拱하야 還目而窺之한대 仲尼 恐其廣己而造大也하며 愛己而造哀也할가하야 曰 回아 無受天損은 易커니와 無受人益은 難하니 無始而非卒也라 人與天이 一也니 夫今之歌者 其誰乎오
공자(孔子)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 곤경을 당해 7일 동안 따뜻한 밥을 지어 먹지 못했는데 왼쪽으로 말라 버린 나무에 기대어 오른쪽으로 마른 나뭇가지를 치면서 염제 신농씨의 노래를 부르니 두드리는 도구는 있었지만 가락이 없었으며 소리는 났지만 음률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무 두드리는 소리와 사람의 목소리가 조리 있게 사람의 마음에 꼭 맞는 점이 있었다. 안회(顔回)가 단정히 손을 모으고 조심스럽게 눈길을 돌려 살펴보자 공자는 그가 자기(공자)를 달관한 사람이라고 여겨 지극히 큰 사람으로 여기며 자기(공자)를 사랑한 나머지 지나치게 슬퍼할까 염려하여 이렇게 일러 주었다. “회(回)야! 하늘의 훼손을 받지 않기는 쉽지만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기는 어렵다. 시작함도 일정함이 없고 마침도 일정한 것이 아니니 이런 이치는 사람과 하늘이 마찬가지이다. 지금 노래하는 이는 (본래) 누구였던가?” 했다.
回曰 敢問無受天損이 易하노이다 仲尼曰 飢渴寒暑와 窮桎不行은 天地之行也며 運物之泄也니 言與之偕逝之謂也라 爲人臣者 不敢去之하야 執臣之道하리도 猶若是온 而況乎所以待天乎따녀 何謂無受人益이 難이잇고 仲尼曰 始用四達하야 爵祿竝至而不窮하나니 物之所利 乃非己也니 吾命이 其在外者也라 君子 不爲盜하며 賢人은 不爲竊하나니 吾 若取之인댄 何哉리오
안회(顔回)가 말하기를, “감히 ‘하늘의 훼손을 받지 않기는 쉽다.’는 말씀에 대해 여쭙습니다.”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그리고 곤궁과 질곡, 행하지 못함은 천지의 운행 법칙이며 만물이 운행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 말은 천지 만물이 그것과 함께 흘러감을 말함이니 남의 신하된 자는 감히 없애지 못하고 신하된 도리를 지키기를 이 같이 하는데 하물며 하늘을 기다리는 경우이겠는가?” 했다. (안회가 말하기를,)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기는 어렵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니, 중니가 말하기를, “처음 등용되어 사방으로 나아갈 때는 벼슬과 녹봉이 함께 이르러 곤궁하지 않다고 여기지만 이것은 외물이 이롭게 해 준 것으로 나 자신이 이룬 것이 아니니 나의 목숨이 외물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군자는 도둑질하지 않으며 현인은 훔치지 않으니 내가 만약 그것을 가진다면 어찌할 것인가?
故로 曰鳥 莫知於鷾鴯하야 目之所不宜處에는 不給視하며 雖落其實이라도 棄之而走하며 其畏人也나 而襲諸人間이어든 社稷으로 存焉爾니라 何謂無始而非卒이잇고 仲尼曰 化其萬物이어든 而不知其禪之者어니 焉知其所終이며 焉知其所始리오 正而待之而已耳니라 何謂人與天이 一邪잇고 仲尼曰 有人도 天也며 有天도 亦天也니 人之不能有天이 性也라 聖人은 晏然하야 體逝而終矣나니라
그 때문에 새는 의이(鷾鴯 ; 제비)보다 더 지혜로운 것이 없어서 마땅하게 여기지 않는 곳에는 눈으로 보지도 아니하며 비록 열매가 떨어졌다 하더라도 버리고 도망하며 사람을 두려워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 들어가 사는데 마치 사직이 한 곳에 있게 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했다. (안회가 묻기를,) “무엇을 일러 ‘시작함도 일정함이 없고 마침도 일정한 것이 아니다.’고 하신 겁니까?” 하니, 중니가 대답하기를, “만물을 변화시키는데 그것을 변하게 하는 것을 알 수 없으니 어찌 마치는 것을 알 수 있겠으며 어찌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자신을 올바르게 하고 기다릴 뿐이다.” 했다. (안회가 묻기를,) “사람과 하늘이 마찬가지라고 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니, 중니가 말하기를, “사람이 있게 된 것도 자연이며 하늘이 있게 된 것도 또한 자연이니 사람이 하늘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본성이다. 성인은 편안하게 자연과 함께 흘러가는 것을 체득하여 삶을 마친다.” 했다.
莊周가 遊於雕陵之樊할새 覩一異鵲이 自南方來者 翼廣이 七尺이오 目大 運寸이러니 感周之顙而集於栗林이어늘 莊周曰 此何鳥哉오 翼殷不逝하며 目大不覩하놋다 蹇裳躩步하야 執彈而留之하야서 覩一蟬이 方得美蔭而忘其身하며 螳蜋이 執翳而搏之하야 見得而忘其形하며 異鵲이 從而利之하야 見利而忘其眞이러라 莊周怵然曰 噫라 物固相累라 二類 相召也로다 하고 捐彈而反走하더니 虞人이 逐而誶之할새
장주(莊周)가 조릉(雕陵)의 울타리 안에서 산보하며 노닐 적에 남방에서 온 한 마리의 기이한 까치를 보았는데, 이 까치는 날개 너비가 7척이고 눈의 크기는 직경이 1촌이었는데 장주의 이마를 스쳐 지나가서는 밤나무 수풀에 머물렀다. 장주가 말하기를, “이 새는 어떤 새인가. 날개는 큰데도 제대로 날지 못하고, 눈은 큰데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구나.” 이렇게 말하고는 아랫도리를 걷어 올리고 살금살금 걸어가서 새총을 잡고 그것을 당겨 새를 잡으려 머물러 있다가, 한 마리 매미가 막 시원한 나무 그늘을 얻어 자기 몸을 잊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매미 뒤에서는 사마귀가 도끼 모양의 발을 들어 올려 매미를 잡으려 하고 있었는데, 매미를 잡는다는 이득만 생각하고 자기 몸을 잊고 있었다. 이상한 까치는 바로 그 뒤에서 사마귀를 잡는다는 이익만 생각하고 자기 몸을 잊고 있었다. 장주(莊周)는 깜짝 놀라 “아! 물(物)이란 본시 이처럼 서로 해를 끼치는 관계로구나. 이욕에 빠진 두 가지 다른 종류는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구나.” 하고는 새총을 버리고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는데 산지기가 쫓아와 장주를 호되게 꾸짖었다.
莊周 反入하야 三日을 不庭호라 藺且 藺且 從而問之호대 夫子는 何爲로 頃間을 甚不庭乎오 莊周曰 吾守形하다가 而忘身하야 觀於濁水而迷於淸淵하라 且吾聞諸夫子호니 曰入其俗하야 從其令이라할따녀 今吾 遊於雕陵而忘吾身하야늘 異鵲이 感吾顙하야 遊於栗林而忘眞이어늘 栗林虞人이 以吾로 爲戮할새 吾所以不庭也니라
장주(莊周)가 돌아와 집으로 들어온 뒤 사흘 동안 기분 나빠했다. 제자 인저(藺且)가 찾아가 묻기를, “선생께서는 요즈음 무엇 때문에 오랫동안 기분 나빠하십니까?” 하니, 장주가 말하기를, “나는 바깥의 형체에 정신을 빼앗겨 자신을 잊어버리고 탁한 물만 보다가 맑은 연못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나는 우리 선생님에게서 ‘세속에 들어가서는 세속을 따라야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나는 (세속의 금법(禁法)을 어기고) 조릉(雕陵) 울타리 안에 들어가 노닐다가 (막 그늘을 차지하고 자신을 잊어버린 매미처럼) 자신을 잊어버렸는데 마침 괴이한 까치가 내 이마를 스치고 가기에 어느새 밤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노닐다가 나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고 있었는데, 밤나무 숲의 산지기가 나를 밤을 훔친 범죄자로 처벌해야 한다고 꾸짖었기 때문에 내가 기분 나빠하는 것이다.” 했다.
陽子之宋하다가 宿於逆旅러니 逆旅人이 有妾二人호대 其一人은 美하고 其一人은 惡한대 惡者貴而美者賤이어늘 陽子問其故한대 逆旅小子 對曰 其美者 自美라 吾不知其美也며 其惡者 自惡라 吾不知其惡也하노라 陽子曰 弟子아 記之하라 行賢而去自賢之行이면 安往而不愛哉리오
양자(陽子 ; 楊朱)가 송(宋)나라에 갔다가 여관에서 하룻밤 묵었다. 여관 주인에게 두 명의 첩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미인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추녀였다. 그런데 추녀가 귀한 대접을 받고 미녀가 박대받고 있었다. 양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여관의 머슴이 말하기를, “미인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는지라 제가 오히려 아름다운지 알지 못하겠고, 추녀는 스스로 추하다고 여기는지라 제가 추한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했다. 양자는 따라온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제자들아. 잘 기억해 두어라. 현명하게 행동하면서도 스스로 현명하다고 과시하는 태도를 버리면, 어디 간들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않겠는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