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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성경은 어떤 책인가? 3/ 히브리서 4:12
설교자: 비전교회, 마경훈목사
지금은 없지만 한국 초기 교회 시절에는 무거운 성경 보따리를 짊어지고 전국을 누비며 성경을 전하던 권서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 배달꾼들이었습니다. 한 번은 전북 만경 장터에서 권서인 최흥서가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김정규라는 사람이 마가복음 쪽복음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는 복음에는 관심이 없었고, 종이가 몹시 귀하던 시절이라 얇고 질 좋은 성경을 한 장씩 찢어 담배를 마는 종이로 사용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담배를 말기 위해 찢어 든 성경 종이에서 마가복음 1:15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바로 그 순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주님의 음성이 그의 심령을 강타했습니다. 죄책감을 느낀 그는 피우려던 담배를 내던지고 엎드려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말씀 앞에 굴복한 김정규는 독실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훗날 김제 만경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으로 헌신했습니다. 말씀의 파워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경을 읽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3주째 “성경은 어떤 책인가?”를 성경의 특성을 가지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첫날 살펴본 성경의 특성은
1. 계시성
2. 영감성
3. 무오성
4. 충분성이었습니다.
둘째 날 살펴본 성경의 특성은
5. 명료성
6. 기준성
7. 그리스도 중심성
8. 언약성이었습니다.
오늘도 네 가지 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9. 역사성
함께 합시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성을 믿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습니다. 실제 역사 속에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역사성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의 역사성은 기록된 인물, 장소, 구원 사건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세상 속에서 일어난 사실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에 개입하신 사건입니다. 천지창조, 출애굽, 홍해가 갈라진 일은 신화가 아닙니다. 실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 역시 역사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입니다. 장차 있을 예수님의 재림과 우리의 부활도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날 확실한 예언입니다.
성경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시공간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당시 통치자들의 이름과 구체적 연대, 지명까지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고고학적 발굴로 정확성을 보여줍니다.
한때 비평학계에서 성경의 기록을 신화나 오류로 취급했으나, 이후 고고학 발굴과 비문 판독을 통해 실제 역사적 사실로 밝혀진 사례들이 많습니다. 제가 여기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여리고성 하나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7일간 여리고 성을 돌고 함성을 지르자 성벽이 무너졌다고 말씀합니다. 초기 발굴자들은 연대가 맞지 않는다며 신화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고고학자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 등의 재조사를 통해 기원전 1400년경 여리고 성벽의 붕괴가 성경 기록과 일치함이 증명되었습니다.
보통 외부의 강력한 공격을 받으면 성벽은 성 안쪽으로 무너집니다. 그러나 여리고의 성벽은 바깥쪽으로 무너졌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벽을 무너뜨리셨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여리고 성내에서는 곡물이 가득 찬 항아리들이 불탄 채 대량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추수 직후 짧은 포위 끝에 성이 신속히 함락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 요단강을 건넜고, 유월절을 지킨 뒤에 여리고 성을 돌았다고 나옵니다. 오랜 포위로 식량이 바닥나는 일반적인 고대 전쟁과 달리 곡식이 가득 남아 있었다는 점은 성경 기록대로 추수 직후 단기간에 여리고성이 무너졌다는 증거입니다.
여리고 전쟁에서는 귀한 식량을 약탈하지 않고 성과 함께 온전히 불태웠다는 점이 성경과 일치합니다. 고대 전쟁에서 식량은 가장 귀한 전리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을 첫 열매로 구별해 모든 것을 진멸하도록 명하셨습니다. 발굴된 곡물 항아리들이 그대로 불탄 채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이 명령에 순종했다는 증거입니다.
여리고 성벽 전체가 무너졌는데, 북쪽 성벽의 일부 구간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서에는 기생 라합의 집이 성벽 위에 있었고, 성벽이 무너질 때 라합의 가족만 구원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외벽이 바깥으로 무너진 상황에서 특정 가옥 구역만 보존된 것은, 라합의 구원 약속이 실현된 것입니다.
발굴팀은 도시 전역을 두껍게 뒤덮은 거대한 소각층을 확인했습니다. 고대 정복자들은 도시를 기지로 재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유적에서는 약 1미터 두께의 붉고 검은 재와 숯, 불탄 벽돌 파편이 성 전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여호수아 6:24입니다. “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이 말씀 그대로 도시 전체가 불태워져 잿더미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여리고 성의 함락은 신화가 아닌 증명된 역사입니다.
초대교회의 영지주의와 마르키온주의는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으로 보아 성경의 역사와 성육신을 거부했습니다. 특히 가현설은 거룩한 하나님이 더러운 육체를 입을 수 없다며, 예수님의 고난은 유령이나 홀로그램처럼 착시로 보인 것일 뿐 실제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하면 신앙의 뿌리가 흔들립니다. 가현설대로 몸이 거짓이라면, 유령은 십자가에서 실제 피를 흘리거나 고통당할 수 없으니 십자가 사건도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죄는 실제 역사 속에서 발생했습니다. 죄를 갚으려면 실제 육체의 죽음이 필요합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환상이 아니라 진짜 몸을 입고 역사 속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성을 믿습니다.
간혹 교회를 다니지만 성경을 다른 종교의 경전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성경을 역사적 사실보다는 신화적인 면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역사성을 믿습니다. 성경은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10. 역동성
성경의 역동성은 성경이 과거에 멈춘 문자가 아니라 지금도 인간의 내면과 공동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실제로 작동하는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역동성은 크게 네 가지 차원에서 작동합니다.
①성경의 역동성은 존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일제강점기 전후, 감옥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악명을 떨치던 일본의 흉악범 기모리 겐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 독방에서 한 선교사가 넣어준 신약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읽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칠고 사나웠던 그는 눈물로 죄를 회개했고, 출소 후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 교도소 사역과 빈민 구제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성경의 역동성이 그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존재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성경은 도덕적 훈계나 하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고 믿음을 가지면 죄인이 회개합니다. 상한 영혼이 치유됩니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 소망을 갖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가치관과 존재 자체를 새롭게 빚어내는 역동성의 책입니다.
②성경의 역동성은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현재성입니다. 성경은 수천 년 전 고대 근동과 지중해 세계라는 특정 맥락에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갇히지 않습니다. 지금도 성경을 읽으면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믿음이 생기고, 내면이 변하고, 삶이 새로워집니다. 삶의 답을 주고, 갈 길을 비추고,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합니다. 성경은 분명 과거의 문자로 기록되었지만, 오늘날 읽는 이들의 심령 속에서 살아 있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성경은 현재적 역동성을 지닌 책입니다.
③성경의 역동성은 사회와 시대를 변혁하는 공적 생명력입니다. 성경은 개인에게 영향을 주는 말씀이며, 사회와 시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성경의 메시지는 역사 속에서 노예제 폐지, 인간 존엄성 확립, 여성과 약자의 인권 신장, 정의로운 법치 제도 마련에 기여하였으며, 이런 역동성으로 문명의 흐름을 바꾸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부패한 사회 구조에 맞서 저항하게 하고, 새로운 윤리적 기준을 세우는 거대한 변혁의 동력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어느 신문에 났던 이야기입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부정과 부패가 심했습니다. 지방관리들까지도 횡포가 심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지방관리로 파송되는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곳은 교회가 왕성한 지역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의 수가 많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고작 1∼1.5%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탐관오리들에게는 교회가 무서웠습니다. 교회가 왕성한 곳에서는 부정을 저지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방 후에 김구 선생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찰서 백 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 세우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교회가 너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목사님들이 성경대로 못 살아서 그렇습니다. 성도님들이 성경대로 못 살아서 그렇습니다. 성경대로 살지 못하니 사회와 시대를 변화시키는 공적 생명력을 잃은 것입니다.
④성경의 역동성은 언약의 신실성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은 언약의 신실성 때문에 개인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고,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됩니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탄생, 십자가 고난, 부활이 실제 역사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성경의 약속은 인류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 계획대로 이끌어 갑니다. 그 이유는 언약의 신실성 때문입니다.
이번에 미얀마 선교에서 만난 정00선교사님은 극심한 실패와 고난 중에 감림산기도원에 가게 되었고, 집회 중에 저의 안수를 받았습니다. 제가 안수하면서 “이사야 60:22”하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그분에게 주신 응답이었습니다. 정선교사님은 그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었고, 그 말씀을 붙잡고 지금까지 사역의 길을 왔는데, 이제 돌아보니 그 말씀이 성취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10년간 열 개의 교회를 건축했고, 지금은 열한 번째 교회를 건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성교사님에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동성이 언약의 신실성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11. 포괄성
성경의 포괄성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온 우주와 인류 전체를 아우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는 특정한 민족이나 계층, 특정 시대에 갇히지 않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포괄성은 세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①구원 대상의 보편성입니다. 과거의 유대인들은 성경을 오해하여 이방인들을 지옥의 뗄감으로 여겼습니다. 일부 유대 전승에서는 이방인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 유대인 산파가 돕는 것조차 금지했습니다. 이방인을 돕는 행위가 결국 지옥의 땔감을 하나 더 보태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집 방문, 식사 교제, 신체적 접촉 자체를 부정하게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유대인이라는 혈통의 울타리를 넘어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별과 인종의 차별을 없애고 신분과 빈부의 장벽을 허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차별 없는 은혜의 자리로 부릅니다.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쓴 사람은 존 뉴턴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악명 높은 노예선 선장이었습니다. 그는 흑인들을 물건처럼 사고팔았습니다. 1748년 3월, 그가 탄 배가 북대서양에서 침몰 직전의 거대한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극적으로 살아난 그는 성경을 읽으며 참된 회심을 경험했고, 자신처럼 흉악한 괴수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변화된 뉴턴은 목회자가 되었고, 흑인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엄한 존재임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윌리엄 윌버포스와 함께 노예무역 폐지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이 사건은 구원의 보편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종과 피부색을 뛰어넘어 흉악한 선장도 살리고, 쇠사슬에 묶인 노예도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부릅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누구나 동등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장벽을 허물고 만민을 품어냅니다. 구원 대상의 보편성입니다.
②삶과 영역의 전인성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성경은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포괄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내면을 만지며, 동시에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자연 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의 책임까지 가르칩니다. 인간 삶의 모든 자리를 빠짐없이 품어냅니다.
성경이 삶과 영역의 전인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은 앤소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의 저서 ‘종교박람회’에 나오는 내용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 요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서?”, “그렇다네”, “그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이 알겠구먼”, “글쎄,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예수께서 어디서 태어났나?”, “모르겠는데”, “몇 살 때 죽었지?”, “모르겠는데” 대화가 이쯤 되니 믿지 않는 친구가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자네는 예수에 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구만. 그래도 예수 믿는 건가?” 그때 믿는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별로 아는 게 없고 배운 것도 없는 것 같네. 그러나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달라진 게 있다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했고,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에게 변화가 왔다는 것이네. 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놀라고 있네. 자네도 알다시피 3년 전까지 나는 술주정뱅이요 빚도 많지 않았나, 가정은 산산조각이 나고,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는 아이와 아내 할 것 없이 온 집안 식구가 나를 무서워하지 않았나. 그리고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항상 화를 내며 살아왔었는데, 예수 믿고 달라진 것은 모두 나를 반가워한다는 것이네. 또 나도 가족과 만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구만. 그리고 나는 몰랐었는데 오래전부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네. 그러고 보니 감사하고, 하루하루의 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삶 자체가 아주 소중해졌다네.” 그 말을 들은 믿지 않는 친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복음은 한 사람의 내면을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망가진 가정을 회복시킵니다. 그리고 그의 일상의 모든 자리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영혼 구원을 넘어 삶의 전 영역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포괄적인 능력입니다.
③시공간의 통합성입니다. 성경은 천지창조로부터 출발해서 세상의 종말과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이어집니다.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인간의 비극적인 타락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 구속과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까지 내다봅니다. 성경은 모든 시대적 흐름을 관통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사랑이 닿지 않는 영역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12. 윤리성
성경의 윤리성은 인간이 세운 도덕이나 시대적 관습에 기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뿌리를 둡니다. 성경의 윤리성의 핵심을 4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①내면성입니다. 성경 윤리는 겉치레가 아닌 마음 중심의 동기를 살피십니다. 성경 윤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적 행위와 도덕 준수도 다루지만 그것보다는 행동을 촉발하는 마음의 숨은 동기와 중심의 정결함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외형에 기준을 두면 내면이 약해줍니다. 그러나 내면에 기준을 두면 외적인 면도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과 간음도 금하셨지만 형제를 향한 분노와 음욕 등 내면에 품은 생각 자체가 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윤리는 외식과 위선을 철저히 배격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성령 안에서 사람의 영혼과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더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②사랑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윤리의 완성은 온 마음을 다하는 하나님 사랑과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롬 13:10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수많은 규례와 법조문이 있어도 그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뜻대로 살아집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윤리와 도덕의 완성입니다.
인류의 역사상 최고의 영성가를 꼽으라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의 영성을 ‘사랑의 영성’으로 봅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많이 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전부이시여, 나의 하나님, 나의 전부이시여, 나의 하나님, 나의 전부이시여...”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수없이 반복해서 이 고백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자신의 존재와 삶이 완전히 채워졌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젊은 시절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방탕하게 살다가 회심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랑에 충만하게 빠져있을 때, 길에서 살이 썩고 고름이 흐르는 나병환자와 마주쳤습니다. 과거 같으면 코를 쥐고 달아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혔습니다. 말에서 내려 환자의 손에 동전을 쥐여주고 그의 썩어가는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율법이 부정함을 피하는 격리였다면, 사랑은 부정함을 덮고 품어 안는 생명의 윤리입니다.
③공의입니다. 아모스 5:24입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세상의 가치는 이익에 의하여 움직입니다. 손해가 되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윤리는 인간의 이익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는 다수가 원한다면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윤리는 다수결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윤리의 기준은 공의입니다. 공의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기준입니다. 아무리 이익이 되고, 아무리 다수가 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아웃입니다.
세상 윤리는 강한 자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힘없는 민초들은 작은 죄도 법대로 판결 받습니다. 하지만 강한 힘이 있으면 죄도 없애버리는 세상입니다. 반면에 성경 윤리는 공의롭기 때문에 편견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합니다. 그러니 다윗 같은 왕도 범죄 했을 때 선지자에게 책망을 받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성경의 공의는 부정한 이익과 억울한 압제를 단호하게 바로잡는 질서입니다. 소극적으로 죄를 멀리하는 수준을 넘어, 삶의 모든 터전에서 정직과 성실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불의한 세상 구조에 맞서 진리를 세우는 행동하는 의로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윤리를 가진 사람은 불의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④사회적 약자 보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과 분리되지 않고 함께 갑니다. 그래서 성경 윤리는 고아, 과부, 나그네, 빈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특별한 관심과 보호를 명령합니다. 구약의 안식년과 희년, 추수 때 밭모퉁이를 남겨두는 율법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어설 기회를 주는 제도였습니다.
제 아내가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에 감동을 받은 말씀이 있습니다. 출 23:12입니다.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명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재정하신 이유 중에 하나가 사회적 약자들이 숨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도는 경제적 탐욕을 억제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할 거룩한 책임이 있습니다. 성경의 이런 윤리성은 약자의 호소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한 자를 돌아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제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잠 19:17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제가 우리 교회의 재정을 지켜나가는 방법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가난한 선교사님들과 가난한 목회자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모든 가난한 자를 다 돌아볼 수는 없지만 저와 연결 되는 목회자와 선교사님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어주려고 합니다. 그 일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빚지고는 못 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특징 중에 윤리성의 핵심 네 가지는 ①내면성 ②사랑 ③공의 ④사회적 약자 보호입니다. 저는 이 네 가지 경건한 윤리를 바라볼 때 깊은 한계와 무력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저의 결단이나 타고난 인격의 힘으로 실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런가요?
그런데 다행인 것은 제가 성경의 윤리로 살아낼 수 있는 원동력은 저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거룩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혼의 양식인 살아 있는 말씀의 능력으로 성경적 윤리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스스로의 도덕적 의지를 자랑하지 않고, 날마다 겸손히 보좌 앞으로 나아가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고,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파워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도 “성경은 어떤 책인가?”라는 제목으로 성경의 특성 네 가지를 살펴봤습니다. 역사성, 역동성, 포괄성, 윤리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