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106]“아버지 꽃구경 가요” 모처럼 아들노릇
"아버지, 꽃구경 가요"라는 제목을 쳐놓고 보니, 가객 장사익의 <꽃구경> 노랫말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어머니, 꽃구경 가유/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유/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어머니는 좋아라고/아들 등에 업혔네/마을을 지나고/들을 지나고/산자락에 휘감겨/숲길이 짙어지자/아이구머니나/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봄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어머니, 지금 뭐하신대유/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신대유/솔잎은 뿌려서 뭐하신대유/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그렇다. 어머니는 ‘고려장’시키러 가는 아들이 돌아갈 때 길을 잃을 것을 염려한 것이다. 이 노래를 들으며 울컥하지 않는 사람은 그야말로 강심장일 터.
일요일 아침, 틀니를 새로 맞춰놓으니 치아가 없어 몹시 불편해하는 노친에게 누룽지를 잘게 부셔 끓여 드렸다. 월-토요일은 주간보호센터에서 모시고 가 세 끼를 해결한 후 되돌려 보내드리니, 내가 모시고 있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단지 나로선 일요일은 그야말로 엄청 부담이 된다. 세 끼를 챙겨드려야 하고, 어른의 심기를 살펴드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솔직히 단단한 스트레스다. 97세 아부지가 “오늘 특별한 일이 없으면 화순의 동복서원에 갔다오면 좋겠다”고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동복서원은 우리 초계최가 중시조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1483-1536) 선생의 위패를, 한강 정구, 은봉 안방준, 석천 임억령 선생과 함께 모시고 배향하는 곳이다. “어쩌면 내 인생 마지막길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는 데야 어이 하랴. 하지만 2시간 가까이 운전하여 그곳을 찾은들 뭐 할 것인가? 솔직히 나는 의미도 없거니와 가기도 싫었다. 사실은 새벽에 정읍 구절초 지방정원을 모시고 가려고 친구에게 정보를 알아놓았기에 싫음이 더했다. “그곳은 나중에 가더라도 여기에서 1시간만 가면 되는 구절초 꽃구경 갑시다”라고 불쑥 말을 해버리니, 속으로는 많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전북 지방정원 1호'라는 구절초정원은 축제가 끝난 직후인데도 여전히 인파가 붐볐다. 주차장에 승용차가 즐비하다. 종석산 자락에 온통 만발한 구절초는 장관이었다. 한 송이, 한 송이도 예쁘겠지만, 모아놓으니 바라보기에 심히 좋았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떠듬떠듬 걷는 노친과 보조를 맞추기는 힘든 일. 100여m 걷다가 벤치에 앉아 쉬시라하고, 나는 부리나케 한 바퀴 돌았다. 엽사사진도 찰칵찰칵. 무슨 꽃이 되었든 꽃은 사람의 얼굴을 환하고 부드럽게 해준다. 비록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꽃은 민낯으로 우리에게 무한한 즐거움을 준다. 마치 자기들처럼 예쁘고 착하게 살라고 말을 건데는 것같다. 여인을 꽃으로 비유한 것은 맞는 말일 것이다. 기생妓生을 ‘말을 하는 꽃’이라는 해어화解語花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조건 데이트코스로 딱이다. 노친과 걷는 것은 자원봉사이긴 하나,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고역苦役이다. 하하. 그래도 모처럼 아들노릇한 것같아 좋았다. 정원 입구 도로 양옆에 세워놓은 국화 분재盆栽도 아름다웠다. 구절초로 만든 뻥과자 한 봉지에 6000원. 바가지를 쓴 것같다. 내년에는 옆지기와 같이 오리라.
구절초정원은 산내면에 있고, 인근 산외면 면소재지는 십수년 전부터 한우정육식당으로 전국에 이름이 났었다. 배꼽시계는 하루 세 번, 왜 그렇게 정확할까? 틀림없이 가보지 않았을 곳이기에 모시고 갔다. 그전보다 많이 위축되었다해도 면소재지 곳곳이 ‘한우 정육식당’ 간판으로 뒤덮여 있다. 연신 신기해하는 노친은 한우는 비쌀 터이니 그냥 가 집에서 먹자고 한다. 내 참, 자식 호주머니 걱정은 좋으나 그게 말이 되는가. 육사시미를 사드리려 했는데, 되는 게 육회비빔밥 뿐이라 한다. ‘한우명가 산외면’은 옛말인 듯했다. 얼싸덜싸, 이런 명소에서도 한번 먹어보는 것이다. 운전 때문에 막걸리 한잔도 할 수 없다. 저녁에 구워먹으려 살치살 한 팩(3만3000원)을 샀다. 왕복 2시간 반쯤, 별 곳을 다 가서 점심을 먹었다고 하는 말은 나의 수고로움에 대한 칭찬이리라.
다다음주엔 아버지가 가고 싶어하는 동복서원에 모시고 가야겠다. 나로선 아무런 의미나 재미도 없지만, 초겨울 바람을 쐬어 드릴 겸 젊은 시절 당신이 다니시던 곳을 한번 더(마지막으로) 모시고 가 보여드리는 것도 아주 뜻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과거의(소싯적) 기억은 아직도 눈에 본 듯 선명하고, 현재의 기억은 금세 까먹는 97세 노친의 ‘단기기억 상실’이 큰 문제이다. 치매나 섬망은 확실히 아니기에 아직은 안심단계이나, 곧 점차 ‘그 단계’를 밟으실 것은 분명한 일. 어쩌겠는가? 누가 뭐래도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인 것을. 생명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으랴. 꽃 한 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예쁘다. 예쁘다. 참 예쁘다”를 연발하신다. 애가 되어버린 우리 아부지를 누가 돌봐야 할 것인가? 이미 선진국이 된 나라에서 책임을 져야 할까? 불효자가 득시글득시글한 세상을 탓하랴? 아무튼, 꽃구경을 시켜드린 것은 모처럼 잘한 일이라고 자위한 어느 가을 오후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