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극복 불밝힐 ‘민족의 등불’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나라를 이끌 참된 정신은 어디에 “아름다운 내 나라” 평생 의연한 뜻 경제·무력 아닌 ‘문화의 힘’ 강조‘
우리가 왜 이렇게 어려운 지경을 맞게 되었을까. 이 고비를 잘 넘기면 다시 좋아지는 걸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요즘 모두가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이런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막상 어려운 것은 경제적인 문제보다 정신적 공황상태라고 본다.사회 저변에 기본적인 철학이 존재하지 않을 때 국민 전체의 효용성이 떨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를 5백년 이상 지탱케 해준 유교적 질서가 사라지는 이 즈음 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하나로 뭉쳐야 한다면 무엇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전 민족의 애국심을 불러일으켜 꺼지지 않는 성화처럼 모두를 활활 타오르게만 할 수 있다면 이 정도 어려움이야 쉽게 극복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우리를 각성케 해줄 무엇인가를 찾다가 결국 다시 잡은 책이 ‘백범일지’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민족과 조국의 갱생을 위해 분골투쟁한 일관된 자아의 전형적인 삶을 밝혀 놓은 이 책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철이 들고 세상을 알기 시작하면서 불평등에 대한 회의를 갖기 시작했고,선생은 이러한 분노를 자신을 파괴하는데 사용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단련하는 계기로 삼아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킨다.
청소년기에 읽은 동양의 고서들은 나중에 선생이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할 때마다 되새겨 가르침을 받게 되니 흔들림 없는 삶의 첫 출발은 역시 학문에 대한 열정과 많은 독서에서 나온 셈이다.
청년기에 들어서는 구한말의 부패상황 속에서 신국가,신국민을 꿈꾸며 동학에 참여하나 추구하는 바가 자신과 다르자 그만 두고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인 안태훈 진사와 평생 스승으로 모신 후조 고능선 선생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사람이 태어나 자신의 삶의 방향을 일깨워줄 스승을 만나는 것은 동서고금 위인들의 공통된 첫 출발점이다.
선생은 젊은 나이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고국산천을 주유하게 되는데 어느 것 하나 무심히 스쳐 지나지 않고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며,나라사랑의 의지를 공고히 하였다. 우리 땅 구석구석을 돌아보지 않고 바다에서,들녘에서,심지어 산 언저리에서까지 우리 동포들이 이 땅을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실제로 보지 않고 어떻게 그 철벽과도 같은 애국심이 생겨났으랴.
인천 감옥에서 신학문을 접하게 되면서 지난날 자신이 구학문을 고집하는 것만이 애국이라고 생각한 것을 크게 후회하였다. 선생은 옛 것을 고집하거나,하나의 철학만을 모든 행동의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늘 무엇이 더 우리 민족의 앞날에 보탬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진정한 민족주의자였다. 이 땅과 주권을 회복하고,우리 문화를 일궈내려는 정신만 강건하다면 서양의 제도나 방법이라도 얼마든지 수용하고자 하였다.
선생은 애국운동에 헌신하는 동안 단 한번도 개인 재산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고자 남을 속이거나 모멸한 적도 없고,오로지 이 땅이 독립하여 가난하더라도 희망을 갖고 살기를 바랐으며 후세를 열심으로 교육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고 싶어 했다. 선생이 호를 백범(白凡)으로 정한 것도 백정,범부라도 애국심이 다 자기와 같았으면 하는 바람이요,책 이름을 ‘백범일지(白凡逸志)’라고 한 것도 ‘세속을 벗어난 희망’이라는 ‘일지(逸志)’를 지니고 세상의 영욕에서 벗어나고자 함을 나타낸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지도층 인사들이 선생의 반의 반만을 흉내라도 내려 했다면 우리가 이처럼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으리라.
부와 권력은 운이 있으면 얻을 수 있되,존경은 아무나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은 어느 경우든 개인의 이익이나 주장보다 대의에 따르고자 하는 의인이었으므로 일을 해나가는 동안 개인적인 억울함과 손해를 많이 보아도 목표에 어긋남이 없으면 개의치 않았다.이는 삶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강렬하고,간절할 때 나올 수 있는 의연함이리라.
인생에 있어 두가지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데,한가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는 것이요,다른 하나는 그것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선생은 자신의 삶을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선생은 우리나라가 무력이나 경제력으로 세상의 제일이 되기보다 세상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흠모할 수 있도록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는 나라가 되기를 원했다.그리하여 수차례 가정의 윤리를 강조하였는 바 이것 없이는 사회의 도덕이 바로 서지 않으며,사회의 도덕 없이는 향기로운 문화가 일어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자유를 삶의 근본으로 삼았으되,‘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는 자유’를 추구하라고 했으며 ‘짐승과 같이 저마다 자기 배를 채우는 자유가 아니요,제 이웃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임을 강조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국권이 있어 떳떳이 살 수 있고,자유가 있어 원하는 바대로 살 수도 있으니 선생의 말씀대로 사랑과 의(義)로움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삶의 목표를 정해 볼까 한다.죽는 날까지 나와 내 자식들이 발붙이고 살아가야 할 이 땅,이 나라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