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봉교로 가마 안되나?"
"그라마 많이 돌아가잖아. 그냥 왔던 길로 가자."
이모집 다녀가는 길. 손에 큰 보따리 하나 들었다.
이 손 저 손 옮겨 들다가 머리에도 이고 가다가, 집까지는 아직 먼데 방천을 건널 일이 아득하다.
드디어 내가 겁내는 징검 돌다리 앞에 다다랐다.
방천을 건너는 돌다리 위에만 올라서면 이상하게도 잘 흐르던 물은 흐르지 않고, 내가 급히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착시현상에 시달렸다.
급기야는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어질어질 물에 빠지기 일쑤.
나중에 어떤 깨달음이 있고 나서야 오히려 그 착시현상을 즐기게 되었지만, 그전까지는 방천을 건너는 일이 항상 두려움이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보퉁이를 엄마에게 건네주고 용기를 내어 돌다리를 건넜다.
다행히 집에 가서 보퉁이를 펼쳐 볼 부푼 마음이 있어서 그랬는지 쉽게 건넜다.
"팔 안 아푸나? 엄마가 대신 들어주까?"
"괘안타. 엄마도 짐 들었잖아..."
"조금만 빌려 오지... 쯧쯧."
"또 한참 있어야 이모집에 오잖아. 왔을 때 많이 빌려 가야지. 헤헤~"
다시 낑낑 이 손 저 손 옮겨 들다가 팔이 아프면 머리에도 이고, 양손으로 가슴에 감싸 안기도 하면서 먼 길, 집을 향해 걸었다.
"엄마. 우리도 매달 이 책 받아보마 안되나?"
"그거 나중에 짐만 되는데 뭐할라꼬... 공부에 필요한 책도 아이고..."
엄마가 말은 안 했지만 그런 곳에 돈 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
공부를 큰형만큼이나 잘하던 큰누나가 가고 싶던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서울 가서 배운 사진식자기술로 벌어 보내는 돈까지 보태야 곗돈에 생활비에 간신히 맞추어내던 시절.
언감생심. 편안히 집에서 밥 잘 먹고사는 막내가 무슨 염치없는 말을 꺼낸 거야...
꺼낸 말이 머쓱해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래도 빌려갈 수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랴...
집에 도착하니 팔이 많이 저렸지만, 기대감으로 고인 침을 꼴깍 삼키며, 성급해진 손이 가져온 보퉁이를 허둥대며 풀었다.
쨘~~!
지난 몇 달 분의 <새소년> 다섯 권 등장이요~
내가 좋아하는 만화에 불가사의한 세상이야기, 신기한 과학이야기, 동물의 세계에 퀴즈도 재미 솔솔,
김일 천규덕에 서수남 하청일도, 궁금한 구봉서 아저씨 근황들도 소복이 담겨있던 <새소년>이 다섯 권.
비록 이모집 사촌에게서 빌려 왔지만, 어린 내 상상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던 잊지 못할 <새소년>.
<어깨동무>도 있었고 <소년중앙>도 있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추억 속의 <새소년>
덕분에 나는 지금도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꿈 많은
새소년이 되어 길 위에 산다.
첫댓글 어쩜~~
방천 징검다리 건너는 꼬마 마음자리님이 눈에 보이 듯,
영화의 한 장면이 떠 오르는 글 입니다.
새소년, 어깨동무.소년 중앙? 동아?
저도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그 시절엔 뭐든 귀했죠.
사촌에게 빌리고, 빌려주고...
잡지 내용도 알 찼어요. 읽을거리가 많았죠.
요즘은 청소년을 위한 잡지가 없겠죠?
인터넷으로 대신 하니까.
막내였지만 일찍 철 든 마음자리님.
아직도 새소년을 읽을 때 느꼈을 실레임을 간직하고 계시다니..
마음이 아름다운 미소년이십니다.
새소년의 모든 내용들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품게했지요.
그때 읽은 불가사의 세상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이 나요. ㅎ
글을 읽는데 방천 물소리가 먼저 들려오는 것 같네요.
징검다리 위에 서면
물은 그대로 흐르는데
내가 거꾸로 가는 것 같던 그 어지러움.
그게 꼭 어린 날의 두려움 같고,
또 지나고 보니 삶의 한 장면 같기도 합니다.
보퉁이 하나에
꿈이 다섯 권이나 들어 있었던 시절
팔은 저려도 마음은 먼저 달려가 있던 그 집 안 마루,
허둥지둥 풀어보던 손끝의 설렘이
눈에 선합니다.
형편은 넉넉지 않았어도
상상은 누구보다 부자였던 시간.
사서 보지 못해도
빌려 읽을 수 있어 감사했고,
그 몇 권이 세상을 통째로 열어주던 때.
지금도 “새롭게 태어나는 새소년으로 길 위에 산다” 한
그 말이 참 좋습니다.
몸은 자라 어른이 되었어도
무언가를 펼쳐보는 설렘,
아직도 가슴이 먼저 두근거리는 마음,
그게 바로 진짜 부자 아니겠습니까.
그 시절의 방천도,
엄마의 투박한 말투도,
보퉁이의 무게도
다 지금의 마음자리님을 만든 보석이었겠지요.
읽는 내내
괜히 내 마음도 따뜻해졌습니다.
오늘도 길 위의 새소년,
그 설렘 잃지 말고 오래오래 걸어가길 바랍니다.
글보다 더 귀한 댓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순간순간의 느낌들이 단석님의
댓글을 읽으며 더 순화되고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읽을거리 귀하던 시절 천하를 얻은듯
의기양양 하셨을것 같아요.
전 외삼촌이 보던 선데이서울이나
삼촌이 이모집에서 얻어온 여원으로
잡지에 입문해서 애늙은이 였어요.ㅎㅎ
네. 그보다 더 배부른 일은 없었습니다.
선데이서울이나 여원을요?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가져온 새소년, 주욱 펴놓고
가장 오래전 책부터 펼칠 때
감정이 폭죽처럼 터지지요. ㅎ
그 시절 잡지책을 정기적으로 구독하여 보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우리집에는 유일하게 아버지가 <경향잡지> 가톨릭 간행물을 정기 구독하였어요.
공부 책은 보고 싶지 않은데
이야기나 만화책은 왜 그렇게
읽고 싶던지요. ㅎ
길 위의 새소년이
길 위의 마음자리님이 되기까지
세월은 방천 물처럼 흘렀습니다.
그 무거운 책을 들고,
징검다리 건널 제~
끄덕끄덕
어질어질
가만히 서있기만 하려는데도
발은 물 속으로, 빨려 듭니다.
아득하기만 했던
징검다리위의 추억이네요.
세월은 많이 흐른 것 같은데
마음은 늘 예전 그곳에 머물고 있네요.
<새소년을 열심히 읽더니 새나라의 새소년처럼 지금은 씩씩하게 길을 달린다> 확실히 마음님은 어려서부터 꿈많은 청소년이였군요.. 혹시 중고등학교때 학원지는 안봤나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 학원지 학생기자를 2년했답니다.
죽은 연세대 국문과 교수 마광수. 당시 대광고등학교 학생이였구요.
배우 허장강 아들도 학생기자였지요..
중고등학교때는 학원지가 유명했지요. 제 형은 학원지를 통해 팬팔도
했는데 저는 열심히 보진 않았습니다.
그런 인연이 있어 언덕저편님은
가족신문도 발행할 수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