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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포위된 성읍에 사는 자들아, 이제 이 땅을 떠날 터이니 짐을 꾸려라.
10:18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번에는 이 땅에 사는 백성을 먼 곳으로 내던지고,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달아 알도록, 내가 직접 그들에게 고통을 주겠다" 하셨기 때문이다.
10:19 "아! 우리가 이렇게 심하게 다쳤으니, 우리의 상처가 나을 것 같지 않구나. 이런 고통쯤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10:20 우리의 장막이 부서졌다. 장막을 잡고 있던 줄도 모두 끊어졌다. 우리의 자녀들도 모두 떠나가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서, 우리의 장막을 다시 칠 사람도 없고, 휘장을 달 사람도 없다."
10:21 백성의 목자들이 미련하여,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지 않더니, 일이 이렇듯 뒤틀려서, 우리 백성이 모두 흩어지게 되었구나!
10:22 "들려 오는 저 소식! 보아라, 이미 이르렀다. 북녘 땅에서 올라오는 요란한 소리다. 유다의 성읍들을 무너뜨려서, 여우 떼의 소굴로 만들어 놓으려고 진군해 오는 소리다."
10:23 "주님,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이제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 못한다는 것도, 제가 이제 알았습니다.
10:24 주님, 형벌로 주님의 백성을 채찍질하여 주시되, 주님의 진노대로 하지 마시고, 너그럽게 다스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10:25 주님의 진노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백성에게 쏟으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쏟으십시오. 그들이 야곱 자손을 삼켜 버렸습니다. 삼켜서 아주 없애고, 그 거처까지도 황무지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주해
1.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2가지 악은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떠난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신다.
1)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라며 탄식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금속을 단련하듯이 녹이고 연단”하겠다고 하신다.
2.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버리고, 세상적인 지혜와 힘과 부함을 구하다가 심판을 받는다.
1) 우상은 허수아비와 같고 그들의 가르침은 나뭇조각에 불과하고(8절) 여호와는 위대하신 창조주이신데,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겼다.
2) 우상은 문제를 해결해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고 거짓되이 말했기 때문이다.
3) 참 신자는 창조주 하나님, 만물 위의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을 신앙한다(고전 8:5-6).
4) 하나님은 야곱의 유산(분깃, 몫)이 되신다(렘 10:16).
3.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숭배한 유다에게 바벨론에 의한 심판이 선포된다.
1) 하나님은 멸망이 임박한 유다에게 쫓겨날 것에 대비하여 짐을 싸라고 경고한다.
“너희는 독 안에 든 쥐와 같으니 보따리를 꾸리고 이 땅을 떠날 채비를 하여라(17절)”
2) “여호와의 말씀이다”로 시작되는 멸망의 심판은 하나님의 결심에 의한 것이다.
[표준새]렘 10:18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번에는 이 땅에 사는 백성을 먼 곳으로 내던지고,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달아 알도록, 내가 직접 그들에게 고통을 주겠다" 하셨기 때문이다.
[개역개정]렘 10:1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사는 자를 이번에는 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4. 누가 자녀를 “비틀어 짜내는 고통을 주고야 말겠다. 괴롭히고 말겠다, 고통을 주겠다”고 결심을 한단 말인가?
1) 하나님은 즉흥적인 분노로 심판을 가하지 않는다.
2) 너무나도 오랜 세월동안 경고하시고, 가볍게 징계하시면서 돌아오라고 하셨다.
- 바벨론이라는 채찍을 통해서만 20년 동안 경고하셨지만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싫어하는 유다를 향하여 하나님의 결정, 하나님의 결단을 선포하신다.
3) 물론, 이 심판의 목적은 “그들의 죄를 깨달아 알도록, 그들을 깨닫게 하려 함”이다.
5. 징계 없이 깨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고난 없이 깨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1) 모든 부모의 마음이며, 선생의 마음이며, 사랑하는 자를 향한 마음이다.
2) 그러나 미련한 자는 절구에 넣어 찧어도 그 미련이 벗겨지지 않을 만큼 미련하다.
잠 27: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3) 오늘날 훈육 없이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다는 교육관은 인간의 죄악과 타락을 모르기 때문이며, 그 타락한 인간의 주인 노릇하는 죄의 세력의 강력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4) 교육, 훈육, 체벌, 과거의 군대 같이 온갖 학대를 가해도 버티는 것이 고집센 인간이다.
6.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 새생명을 얻는 길 뿐이다.
1) 죄의 세력과 자아의 파괴는 너무나 엄청나서 새생명을 얻고도, 생명의 교제를 떠나면 유다처럼 거짓되며, 악하게 된다.
2) 새생명을 얻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속해서 생명을 얻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7.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포위한다(왕하 24:10, B.C.598-7년).
1) 예레미야는 이러한 심판을 초래한 첫 번째 책임이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이라며 슬퍼한다.
렘 10:19 "아! 우리가 이렇게 심하게 다쳤으니, 우리의 상처가 나을 것 같지 않구나. 이런 고통쯤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10:20 우리의 장막이 부서졌다. 장막을 잡고 있던 줄도 모두 끊어졌다. 우리의 자녀들도 모두 떠나가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서, 우리의 장막을 다시 칠 사람도 없고, 휘장을 달 사람도 없다."
10:21 백성의 목자들이 미련하여,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지 않더니, 일이 이렇듯 뒤틀려서, 우리 백성이 모두 흩어지게 되었구나!
8.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로 심하게 다쳤을 때에, 목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백성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줄 것을 기대했다. 그로 인하여 영적 상처가 나을 수 있다고 여겼다.
1) 그러나 미련한 목자들은 끝까지 “회개 없는 평안, 언약안에 돌아오지 않는 제사”를 가르치면서, 주님께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지 않았다.
2) 예루살렘 멸망의 1차적인 책임은 지도자(목자)들에게 있다.
-선지자들은 거짓으로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권력으로 다스렸는데 백성들은 그것을 좋게 여겼다. 그들의 마지막이 어찌 될 것인가!(5:31).
3) 하나님의 성읍 예루살렘은 너무나 황폐하여, 희망 없는 땅이 되어 재건할 수 없다(장막을 다시 쳐줄 사람이 없다).
4) 하나님은 유다를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는 도구로 북방의 바벨론 군대를 사용하신다.
9. 작은 징계로 낫기를 바랬던 예레미야도 완악한 유다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철회될 수 없음을 안다.
1)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 예레미야가 할 수 있는 일은 멸망하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탄원하는 것뿐이다.
2) 예레미야는 심판을 집행하시되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
10. 예레미야는 먼저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님을,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 못함을 깨닫는다.
10:23 "주님,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이제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 못한다는 것도, 제가 이제 알았습니다.
1) 우리는 내 몸, 내 삶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내 몸과 삶의 주체라고 생각한다.
2) 그러나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운명과 생명을 조종하지 못한다.
11. 예레미야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며, 다만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을 구한다.
10:24 주님, 형벌로 주님의 백성을 채찍질하여 주시되, 주님의 진노대로 하지 마시고, 너그럽게 다스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10:25 주님의 진노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백성에게 쏟으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쏟으십시오. 그들이 야곱 자손을 삼켜 버렸습니다. 삼켜서 아주 없애고, 그 거처까지도 황무지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 채찍질을 하시되 공의대로 심판하시며, 너그럽게 때려 달라고 간구한다.
- 우리의 죄악을 깨닫고 돌아오게 하기 위한 채찍질인데, 우리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2) 그리고 유다를 삼키고 진멸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악한 바벨론에게 주님의 분노를 쏟아 달라고 탄원한다. 그래서 유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간구한다.
12.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와 심판의 목적을 정확히 안다.
1) 그러기에 슬프고, 아프지만 그 심판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심판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태도도 안다. 심판을 받아들이되 공의와 긍휼로 심판하여 달라고 간구한다.
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2)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을까 두렵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대로 “죄를 깨닫고 돌아오게 하여 달라”는 것이다.
13. 예레미야는 대적자(바벨론)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한다.
1) 바벨론의 군대가 아무리 강하고 무자비해도 그들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
2) 또한 예레미야는 완악하고 미련한 유다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 이 악독하고 무지한 백성을 하나님께서 “괴롭게 하심으로 깨닫게 하실 것”이다.
3) 그리고 심판을 받는 백성들과 자신을 위하여 겸손히 간구한다.
“이 백성을 징계하시되 진노로 마옵시고 공평으로 하여 살려주소서”
14. 영원히 신실하신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에게 새 언약을 약속하여 주신다(렘 31:31-34).
1) 그리고 이제는 큰 자나 작은 자가 다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렘 31:34).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 나의 묵상
비참한 실존
곡식은 절구에 넣어 찧으면 껍질이 벗겨지는데 미련한 자는 절구에 넣어 찧어도 그 미련함이 벗겨지지 않는다. 옳다. 나를 봐도 옳고, 남들을 봐도 옳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으면 얼마나 좋을까? 훈육이나 작은 징계로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에는 인간의 자아가 너무나 파괴되어서 너무나 미련하고, 죄의 세력은 너무나 강력하고 간교하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죄의 속임으로 인하여 자기주장의지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성전을 짓기 위하여 심판하심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중심은 온전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다. 일부는 옳고, 일부는 틀렸다고 주장하였고, 어느 정도만 주님께로 돌아가면 된다고 속였다. 전적인 타락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전적으로 회개하고, 전적으로 은혜의 왕노릇 아래로 달려가지 않았다. 말씀 앞에 나가야 심판이 복음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전한 마음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참으로 만물보다 부패하고 거짓된 것이 사람의 마음이어서, 나도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두 마음, 정하지 않은 마음은 나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를 주장하고, 헛된 것을 구하였다. 그러기에 “이번에는 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과 실행은 옳다. 다만, 예레미야처럼 공의로 심판하시되 주의 긍휼을 구하여 죽지 않고, 깨닫고 돌이키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한다.
2. 복음을 통하여 생명이 환하게 나타나다.
예레미야의 지혜와 겸손을 구한다. 받아들이기 싫어도, 심판을 인정하도 심판을 받아들이는 예레미야의 마음과 지혜를 구한다. 그리고 예레미야처럼 기도한다. 심판을 집행하시되 긍휼을 베푸사, 죽지 않고, 돌이켜 생명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한다. 심판을 결정하신 하나님은 깨닫게 하시겠다는 것도 결정하셨다. 그러기에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새언약 안에 거하게 하실 것이다. 심판도 주님 손에 있고, 치유와 회복도 주님 손에 있다. 심각한 환자는 수술대에서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듯이, 중상을 당한 내 영혼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에 맡긴다. 너무나 파괴된 자아와 너무나 강력한 죄의 세력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기에, 치료자이신 주님의 손에 맡긴다. 나를 깨뜨리시고, 찢으시는 주님만이 또한 나를 낫게 하시며, 싸매어 주실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아들을 십자가에서 함께 심판하셨다. 나는 아들과 함께 심판을 받았고, 아들과 함께 장사되었다. 그것이 그분의 심판이며 긍휼이다. 저주 받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고,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셨고, 나의 죄로 함께 죽으시고 무덤에 거하셨다. 나를 심판하시되 공의로 심판하시며, 너그러이 하신다. 심판중에도 나를 지켜 주셨고, 용서해 주셨고, 은총을 베푸셨다. 그 은혜의 손길에 내 영혼과 마음과 몸을 맡긴다. 나의 기업은 여호와다. 나의 지혜는 여호와를 아는 지혜다. 나의 회복은 여호와께 있다. 절구에 넣어 찧어도 벗겨지지 않는 미련을 벗겨 내시는 것도 여호와의 지혜에 있다. 나를 괴롭게 하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손길을 찬양한다. 주님의 심판이 고통을 넘어서는 사랑임을 더욱 알기를 원한다. 그 사랑은 십자가로 확증되었다.
◈ 묵상 기도
“내가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는 주님의 결정을 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사랑하시고, 대신 심판을 받으심으로 심판을 유보하셨건만 저의 미련함이, 저의 교만이, 헛된 욕망으로 인하여 결국 심판을 자초하였습니다. 심판 너머에 있는 사랑, 심판 너머에 있는 생명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유다의 멸망의 1차 책임이 목자에게 있다는 말씀 앞에 회개합니다. 주님을 떠나고, 생명을 떠난 이들, 심판 받는 양들의 1차 책임이 저에게 있습니다. 주님, 생명으로 섬기지 못한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주님을 떠나고, 생명의 교제를 떠나고, 심판 중에 있는 양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심판이 필요하다면 죽지 않고, 주님의 긍휼 안에서 심판을 받고 아름답게 되어 돌아오게 하옵소서. 나의 운명과 몸이 내게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기업으로 삼고, 주님을 목자로 인정하며, 주의 길 가게 하옵소서. 유명수 형제가 갑상선과 임파선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주님, 저희는 이 길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너머에 있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긍휼과 사랑과 구원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친히 영의 생각으로 찾아가 주셔서 만나주시고, 치유하여 주옵소서. 오늘 한밤도 주님이 주관하여 주옵소서. 교권으로 인한 뉴스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주님의 생명이 교육계에 흐르게 하옵시고, 다음세대를 주님이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