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나는 ‘46개띠친구들’이라는 온라인 카페에 가입했다. 닉네임은 ‘유정’. 동갑내기들이 모인 공간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마음이 놓였다. 나이로 인한 위아래도, 괜한 체면도 필요 없었다. 이 방 저 방을 드나들며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하루의 일과처럼 카페를 찾았다. 화면 속 글자들이었지만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대구 동촌의 어느 식당에서 지역 월례모임이 열렸을 때는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나누던 웃음이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졌고, 우리는 어색함 없이 잔을 기울이며 우의를 다졌다. 그 시절, 카페는 단순한 인터넷 공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세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올린 글이 발단이 되었다. 평소 바른 소리를 잘하던 친구였는데, 카페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강퇴를 당했다. 기억이 또렷하진 않지만, 그 글이 그토록 중한 죄가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몇 친구들이 카페지기에게 재고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일로 경북 성주에 산다는 ‘회화나무’라는 닉네임의 친구가 먼저 탈퇴를 했다.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내쳐진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치자 결국 나도 탈퇴를 결심했다.
카페는 떠났지만 인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고, 경주 여행길에 만나 옛정을 나누기도 했다. 회화나무 친구는 경북 성주 초전면에 있는 ‘백세각’을 관리하고 있었다. 백세각은 송씨 집안의 14대조가 지은 고택으로, 198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라고 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야계 송희규가 사헌부 집의로 재직하던 중 영의정 윤원형과 이기를 탄핵하다 귀양을 다녀온 뒤, 1561년(명종 16)에 지은 제택이라 했다. 그의 굽히지 않는 기개가 서린 집이라니, 언젠가 꼭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설 연휴가 되었다. 대구에 사는 처제 집에 들를 일이 생겼다. 모처럼 시간을 낸 김에, 송해공원과 백세각을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찾은 송해공원은 명절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주차장에 빈틈이 없었다. 넓게 펼쳐진 옥연지에는 찬바람이 매서웠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호수를 따라 걸으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한 시간 남짓 달려 성주로 향했다.
백세각에 도착했을 때는 겨울방학 기간이라 그런지 방문객이 없었다. 고즈넉한 고택에는 회화나무 친구 내외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조심스레 닉네임을 밝히자 그는 금세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잡아 주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닉네임 하나로 이어진 인연은 여전히 따뜻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백세각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세월을 견딘 기둥과 마루, 담장 너머로 보이는 겨울 하늘까지도 고요했다. 권세에 굽히지 않고 바른 소리를 냈던 선인의 기개가 이 집에 서려 있는 듯했다. 문득 오래전 카페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떠나야 했던 친구, 그리고 그 곁을 조용히 지키고 싶었던 나의 마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길, 백세각의 처마 끝이 한동안 시야에 머물렀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인연이 세월을 건너 고택 마루 위에서 다시 이어진 날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참으로 묘하다. 떠났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멀어졌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늘, 나는 백세각을 뒤로하며 오래된 인연의 결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
첫댓글 새벽입니다
문득 깨어서 늘 그러하듯이 밤새 또 어떤소식들이
있을까
폰 바다를 이리저리
헤엄처 봅니다
역시 정겨운 글이 보여서~
대구입니다
저도
수십년전 블로그에서
온라인 세상에서
저랑은 완전 급이다른 분들과 소통하며 신기해 하며
주로
그들 상류층들의 일상을 보며 부럽고,
또
재밋고 , 그때는 감히 오프라인이나
열락처는 아예 꿈도 안꾼.여자들만의 세계였죠.
지금이나 그때나 한적한 시골 산꼴짝
의성출신에
온라인 친구들은 서울하고도
이름난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에 시.수필등단에
이름만대면 알 정도의 남편하고 살아가는 일상들이 어찌그리 보기좋든지요
반대로
저는
꼬장한 안동 이 시댁이라~
가끔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요
저보다 좀 윗분들이라
~
초면에 길었네요
남은
새벽도 편안하세요^^
새벽 공기가 고요한 시간에 남겨주신 글이라 그런지, 마음에 더 깊이 스며듭니다.
폰 바다를 헤엄치다 정겨운 글을 만나셨다니, 그 또한 인연이지요. 수십 년 전 블로그에서 느끼셨던 설렘과 거리감, 부러움과 호기심이 한 줄 한 줄에 담겨 있어 읽는 저도 그 시절 화면 앞에 앉아 있던 마음이 그려졌습니다.
의성의 산골에서 서울 명문가 사모님들의 일상을 바라보던 시간도, 안동 시댁 이야기 속의 현실도, 모두 선생님의 삶을 단단히 만들어온 결들이겠지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는 또 다른 깊이가 각자의 자리마다 있을 테니까요.
어쩌면 그분들도 저마다의 고요한 새벽에, 누군가의 삶을 궁금해하며 폰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까요. 삶은 자리만 다를 뿐, 마음의 결은 비슷하게 흔들리고 또 다독여지는 것 같습니다.
초면이라 하셨지만,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오히려 오래 알던 분처럼 느껴집니다. 남은 새벽 시간, 마음까지 포근해지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선생님만의 빛으로 차분히 채워가시길요.
위의 글을 읽으니 나도 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나는 1999 년에 컴퓨터를 배웠구
2003 년부터 채팅 컴퓨터 바둑 컴퓨터 고스톱을 하다가 모두 다 적성에 안맞았구
띠방 모임이 재미 있다고 해서 2004 년 10월부터 51 년생 띠방 모임 카페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카페에서는 평소에 글을 올리거나 꼬리글로 대화를 하다가 한달에 한번쯤
모임을 갖고 대화를 하며 식사를 함께 하고 노래방까지 가는걸루 끝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카페 활동이 내 적성에 맞았나 봅니다
그러다가 여기 아름다운 5060에 탁구모임이 있어서 2009 년 2월에 가입을 하게 되었구
탁구방과 띠방에서 활동하다가 나이가 들다보니 지금은 걷기모임과 띠방에서 활동중 입니다
그러니 나도 카페 활동 한지 21년 4개월이 되었구 여기 5060 카페에서도 활동 한지 17 년 이 되었습니다
카페 활동을 하다 보니 내 인생이 더 알차고 즐거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활동 하다 보면 말도 안되는 이유로 활동 정지 , 강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세월이 흐르다 보면 그거는 그거대로 그럭 저럭 세월이 흐르면 해결이 됩디다
그냥 내 이야기도 해봤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이것저것 해보시다 결국 사람 만나는 모임에 정착하신 게 참 잘 어울리세요. 띠방, 탁구, 걷기까지… 20년 넘는 시간 동안 인연을 이어오신 것만으로도 대단하십니다.
중간에 힘든 일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 해결이 된다”는 그 말에서 삶의 여유가 느껴졌어요.
그냥 하신 이야기라지만, 오래된 사람의 향기가 담긴 글입니다.
나도'충성 우하하하 😊
마음 속 잔잔한 울림을 주는 결이 다른 글 입니다.
선비의 기개가 백세각의 기둥같은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구요.
46년 개띠 카페 모임이 있었군요.
다른 한편으로 뭉치기 좋아하는 우리 민족성이 느껴지구요 또 그 모임이 강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와해되는 모습도 그려집니다.
카페생활의 대 선배님이셨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댁내 늘 행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커쇼님, 깊이 있는 말씀으로 제 글을 헤아려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족한 글에 과분한 평가를 내려 주셔서 송구한 마음도 함께 듭니다.
선비의 기개와 백세각의 기둥에 비유해 주신 표현은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겠습니다.
46년 개띠 모임 이야기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람의 모임이란 결국 각자의 개성과 인연이 빚어내는 또 하나의 풍경이라 여겨집니다.
귀한 덕담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커쇼님 가정에 늘 건강과 평안이 함께하시고, 새해에도 뜻하시는 바 모두 이루시길 기원드립니다.
잘읽고 갑니다.
카페라는 게 즐겁게 어울리는 거라면서도
가끔은 가슴을 아프게 하지요.
그래도 고운 인연은 물밑으로 흐르고 있었네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지는 마음이 있기에 우리가 또 이렇게 글로 마주하는 것이겠지요. 아픔도 있었지만, 그만큼 더 깊어지는 정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한 번, 따뜻한 공감에 감사드립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잔잔하게 카페활동에서의 언행에 대한
의미도 다시금 생각해봤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카페라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말 한마디가 서로의 하루를 밝히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울림으로 남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제 글을 그런 시선으로 읽어주시고 의미를 함께 되새겨 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서로에게 작은 위로와 배려가 되는 글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 회나무님 이시죠.,
전에 단석님과 연락이 된다고
하신것 같은데 만나셨군요
참으로 오래된 귀한 인연 입니다.
해솔정님, 인연의 시간을 알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이어지는 인연이 있다는 것이 참 든든합니다.
이렇게 마음 나눌 수 있음이 참 좋습니다.
좋은 인연은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은 동양란을 키우듯 늘 신경써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도 감동을 받습니다. 어제 저도 잠실사는 친구를 일년만에 만나 3시간동안 점심과 커피를 마시며 진솔한 대화를 했고 그친구의 진면목을 다시 보았습니다.
답글을 읽으니
햇살 한 줄기 스며든 난 화분이 떠오릅니다.
보이지 않는 정성 속에서
향기가 자라듯,
인연도 그렇게 깊어지겠지요.
일 년 만의 만남은
묵은 차 한 잔처럼
더 진하게 마음에 남았을 듯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해도네님,
제 마음을 그렇게 깊이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는 걸
그 장면을 보며 다시 느꼈습니다.
그래도 떠나는 발걸음 뒤에도
인연의 온기가 남아 있다는 걸 알기에
조금은 덜 쓸쓸했습니다.
같은 공간이 아니어도
마음이 닿아 있다면
그 또한 인연이라 믿습니다.
따뜻한 공감에 감사드립니다.
서로 서로,
품격 있게 활동 하시면,
서로 서로가 좋습니다.
카페 경험이 많은 단석님~
우리가 즐겁자고 만난 친구들이
헤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가면,
노년의 즐거움도 있습니다.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정도 가고 좋아 보입니다.
단속님도 그러실꺼라고....^^
수필방에서는
계속 정이 이어가실겁니다.
카페라는 공간이 글로 맺은 인연이지만,
그 속에 흐르는 정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저도 나이가 들수록 더 느끼게 됩니다.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켜주는 분들이 있어
이 공간이 더 온기 있게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저 또한 수필방에서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정을 보태며 함께 걷겠습니다.
때로는 카페지기의 횡포가 심할 때도 있었지요.
다행히 그 분과 연락이 닿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군요.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게
그렇게 허전한 일인 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도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더군요.
바람에 흩어지는 듯해도
어딘가에서 다시 이어지는 실처럼
조용히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다시 닿은 연락이 더 반갑고
다시 만난 자리가 더 따뜻했던 건
아마 그 시간을 함께 건너왔기 때문이겠지요.
그 마음 알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인터넷이란 세상이 열려
우리네의 삶이 얼마나 더
풍요로워졌는지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교류를
가능하게 해주었지요.
덕분에 멀리 떨어져 살아도
외롭지가 않습니다. ㅎ
마음자리님,
따뜻한 마음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맞습니다.
인터넷이라는 다리가 있어
멀리 있어도 안부를 묻고
마음을 건넬 수 있으니
참 고마운 세상이지요.
화면 너머이지만
이렇게 정이 오가니
거리보다 마음이 더 가깝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오늘도 그 다리 위에서
고운 인연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