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토요일 복음생명 교제 모임 위에 은혜를 주옵소서.
폭염으로 두 주간 소공원 연주 및 전도를 쉬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사역했던 전도팀들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이 되게 하시고
주님을 향한 열심은 한결같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본문 주해)
1~5절 :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다녀 온 지 약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더베와 루스드라 지역으로 간다. 루스드라에 도착하여 보니 디모데라는 청년이 있었다. 복음이 전해진 지 5년이 지난 지금 루스드라에 가보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욕심나는 청년 하나가 잘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는 헬라인과 결혼하였는데 남편이 일찍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디모데는 믿음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력 아래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딤후1:5)
그때 디모데의 나이는 학자들에 따르면 대략 21세 정도로 추정한다.
바울이 디모데를 택한 이유를 본문에서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라고 밝힌다. 또한 바울의 많은 서신서에서 디모데는 순종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부를 때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 ‘내 아들아’,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 등 극진한 사랑을 담아서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한다.
‘할례가 아니라’고 그렇게 싸운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이유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이방인인 디모데를 전도 여행에 합류시키기 위해서는 할례를 행함으로 복음이 방해받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헬라인인 디도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 (갈2:1~5)
바울 사도가 할례를 행하는 경우고 있고, 안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바울의 삶이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 사는 자의 자기부인의 모습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제 디모데와 함께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한 것들과 함께 그들을 복음으로 굳게 세우는 여행을 계속했다. 그 결과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게 되었다.
6~10절 : 바울이 의도했던 2차 전도 여행의 방향은 아시아(중국과 한국의 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터키 지역) 쪽이었지만 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두 번이나 연거푸 성령께서 허락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이 자신들을 도우라고 하는 환상을 보게 된다.
마게도냐는 바울이 원하는 방향과는 아주 다른 생소한 곳이었다. 그곳은 헬라 문화권의 본산지로서 어쩌면 지금까지 복음을 전했던 곳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는 곳이었다.게다가 멀기도 멀었다.
그런데 바울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하며 즉시 순종한다.(10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순종하여 바로 마게도냐로 갈려고 움직이는 것이다. ‘힘쓴다’는 것은 마게도냐에 대한 전략을 짜고 배편을 알아보고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누가가 합류했음을 알 수 있다.)를 부르신 줄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마게도냐는 지금 그리스 지역이다. 그래서 복음이 유럽으로 먼저 가게 된 것이다.
(나의 묵상)
바울이 5년 전에 복음의 씨를 뿌려 놓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가 잘 자라고 있었다.
디모데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디모데를 붙여 주신다.
디모데는 비록 아버지는 이방인이었지만,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믿음의 영향 아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신앙이 잘 성숙된 젊은 청년이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전도여행에 곧 합류될 만큼 준비된 청년이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 ‘내 아들아’,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 등 극진한 사랑을 담아서 부를 만큼 귀한 믿음의 동역자를 얻게 된 바울의 기쁨이 상상된다.
살아가면서 믿음의 동역자를 만나게 되는 것은 너무도 큰 은혜이다.
내가 누군가의 믿음의 동역자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를 내가 그런 동역자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복음과 생명의 은혜를 알고 난 후에는 동역자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진다.
물론 하나님께서 교회라는 한 울타리에 넣어주신 양무리들이 다 소중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역자란 단순히 교회 일을 같이 하는 자가 아니라,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 창세 전 아버지와 아들의 그 영원한 세계, 생명을 살리는 복음, 그로 인해 누리게 되는 영생의 삶에 대해 서로 나눌 수 있는 자임을 생각한다.
이런 동역자가 되면 어떤 일이든 한 마음으로 할 수 있다. 서로 부대끼며 알아가고,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자로 서게 되는 것이다.
영원하지 않은 이 땅에 주력하는 자들이 아니라, 영원한 그 나라를 사모하며 사는 자들이니 일상에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자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믿음의 동역자 디모데를 만나게 주선해 주셔서 바울의 전도 여행에 힘을 실어주신다.
그런데 또 엉뚱하게 힘이 빠질 만한 일이 생긴다.
바울이 원했던 곳을 성령께서 연거푸 두 번이나 막으시는 것이다.
바울은 그 이유를 깊이 생각했을 터이고, 또 하나님께 기도했으리라. 그 증거로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환상을 보게 하신 것이다.
바울이 즉시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두니아가 아니라 마게도냐였던 것이다.
바울 자신이 원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멀고 힘들고 어려운 곳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비두니아는 잊어버린다.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대할 때면 ‘즉시로 순종’에 나는 ‘즉시로 아멘’한다.
그러나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와 같은 말씀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왜? 왜?’를 연발한다.
‘바울이라도 잘못 생각했다면 즉시로 순종하여 고치는 것이 마땅하지.....그런데 지금 내 생각은 다르지 않는가? 내 생각이 뭐가 틀렸는데.....?’ 한다.
일을 하기는 하는데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그런 일이 어제도 있었고, 벌써 몇 번째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그래도 잠잠히 속으로만 생각한다.
확실히 옳다고 여긴 내 생각이지만 이것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성령께서 이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고, 진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디모데를 만나게 해 주셔서 기쁨으로 사역하게 하시고, 때로는 옳다고 여기는 비두니아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더 멀고 생소하고 두려운 곳일 수 있는 마게도냐를 보게 하신다.
뜻하지 않은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확고히 뜻한 바에 제동을 걸게도 하심을 말씀을 통하여 보게 하시니 새 힘을 얻는다.
그 힘이란 ‘으샤!’하는 내 감정이 아니라, 십자가를 더욱 힘있게 의지하는 마음이다.
(묵상 기도)
주님,
디모데를 만나게 해 주셔서 바울에게 기쁨을 주시니 제가 감사합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동역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비두니아를 잊어버리고 마게도냐를 품는 것을 보고 배웁니다.
그의 그런 순종은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시고
성령님을 의지하기에
제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게 하옵소서.
기쁨을 주시는 주님께 하하 했다가
길을 막으시는 주님께 시무룩하는
변덕이 죽 끓는 존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