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7월 30일(주)
* 시작 기도
주님...
다윗과 같은 왕을 자신들의 메시야로 기대하고 소망했던 유대인들을 위하여 다윗(히,다비드)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였습니다(마 1장).
심지어 ‘다비드’라는 히브리어 문자에 담겨진 숫자(ㄷ:4, ㅂ:6, ㄷ:4)를 합하여 14대로 분류하는 언어유희까지 행하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다윗을 추켜세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존경하고 소망하는 다윗이라 할지라도 그는 사라져야 할 인물임을 마태복음 1장에서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그리고 오직 드러나야 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오늘 이 하루도 내가 다윗이 아니라 예수를 드러내는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요 며칠 오전만 되면 왼쪽 안면근육을 비롯해서 광대뼈 그리고 치통이 너무 심하여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오늘 주일도 그럴까봐서 성도들에게 이야기하고 어제 저녁에 주일예배를 앞당겨 드렸습니다.
잠을 자고 났더니 지금은 괜찮기는 한 대 나중에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주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내게 주신 고난과 무덤의 자리를 마땅한 것으로 받아 더 깊이 주님의 무덤에 연합할 수 있도록 나를 붙들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16:11-18
제목 : 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소수를 통해서 일하심.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 나의 묵상
바울 일행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이 와서 도와달라는 환상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을 인정하여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갔다가 다음 날 네압볼리 항구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빌립보로 갔는데 그곳은 로마의 식민지이며 마게도냐 지방의 중심지였다.
그곳 빌립보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다.
마침 안식일이 되어 기도할 곳을 찾다가 성문 밖에 있는 강가로 나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여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바울은 그 여자들에게 말 곧 복음을 전하였다.
그 때 두아디라라는 도시에서 온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자주색 옷감 장수였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다.
루디아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을 때 주께서 이 여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그녀와 그녀의 온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
루디아가 바울 일행에게 요청하기를 만약 내가 주님을 믿는 자로 여긴다면, 자기 집에 와서 머무르라고 강청을 하였다.
하루는 바울 일행이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다.
그 여종은 점을 쳐서 자기 주인들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그런 여자이다.
그런데 이 여자가 바울 일행을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외쳐대는 것 아닌가?
“이 사람들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이다. 이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
이런 일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참다 참다 견디지 못한 바울이 돌아서서 그 귀신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너에게 명하는데 그 여자에게서 나오라고 하니까 그 귀신이 즉시 나왔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 도착하여 며칠 동안 있다가 안식일이 되어 기도할 곳을 찾다가 여자들이 모여 있는 강가에까지 가게 되었다.
바울은 그곳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였는데, 여러 사람들 중에 루디아라는 여자가 반응하였다.
그는 두아디라라는 도시 출신으로 이방인이다.
그런데 두아디라는 소아시아에 속한 지역으로 전통적으로 염색이나 의복 등 제조업의 중심지였다.
이런 이유로 루디아는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에 와서 로마 시민이 입는 겉옷이나 왕족의 옷에 사용되는 자주색 옷감를 팔고 있었다.
그리고 루디아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다.
이는 두아디라에 유대인 정착지가 있었는데 거기 사는 유대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유대교 신자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보면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들어도 그것을 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강가에 몇 사람의 여인들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여러 사람들 중에서 루디아 한 사람이 복음에 반응을 하였고 자신과 가족이 모두 세례를 받은 것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는 정말 오묘하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시고 복음을 받게 하셔서 세례를 받고 바울 일행의 거처를 제공하기도 하는 등 그를 통하여 복음의 역사가 더욱 흥왕하게 되는데 일조를 하게 하신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택하심이요 또한 예정하심이다.
오늘날 이렇게 예수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이야말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엡 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사람은 끊임없이 더 많이를 구하고, 더 높이를 외치며, 더 크게를 사모한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크게라는 목적은 결국 이 세상 만물 안에서 구하는 것들이다.
그것은 아무리 많이 쌓아도 결국 무너지고 없어지고 사라질 쇠락의 법칙에 적용을 받는다.
홍수 심판을 통하여 노아의 8식구만 남았다.
그 식구들을 통하여 인구가 불어난다.
그들 중에는 니므롯과 같은 세상의 첫 용사, 곧 장대한 자들도 나왔다.
(창 10:8-10)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노아의 후손들이 시날 평지에서 모여 다시는 홍수 심판을 당하지 말 것을 결의하고 성읍과 탑을 건설하고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내자고 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흩어지지 말자고 한다.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들은 성읍을 건설하되 더 크게 더 넓게 지으려고 했고, 탑을 쌓되 더 높이 가장 높이 최고로 높이 쌓으려고 하였다.
그 목적은 다름 아니라 자기들의 이름을 내는 것이었으며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흩어지는 것을 면하고 피할 요량으로 높이 지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흩으셨고 그들은 결국 탑을 쌓지 못하고 그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로 다 흩어지고 말았다.
이를 이름 하여 바벨탑이라 하는데 인간의 이름을 내고자 욕심으로 행하는 것은 결국 무너지고 흩어질 수밖에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모습이, 탐욕으로 점철된 사람의 모습이요, 바로 나의 모습이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쌓으며, 더 큰 것을 소유하고자 애쓰던 자였다.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귀가 닳도록 들어왔었다.
그래서 내가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하며 더 크게 되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고 믿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그게 아니다.
강가에 앉아 있는 여러 여인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을 택하셔서 그를 통하여 복음이 확장되는 역사에 일조하게 하신다.
사람은 강해지려고 온갖 몸부림을 치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강함을 도리어 바꾸셔서 약한 자나 천한 자로 만드셔서 그를 통하여 일하신다.
(고전 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를 쓰시는데 그의 권력이나 힘 그리고 지식을 동원해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미디안의 광야로 내모신 후에 그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힘을 다 빼내신 후에 쓰신다.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며 순종하게 하시는 것이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신다고 하신다.
그래서 이 땅에서 주를 위하여 이것도 준비하고 저것도 준비하는 일명 스펙을 쌓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기도 한다.
물론 주를 위하여 열심히 준비하고 그런 스펙을 쌓으려는 마음은 가상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스펙을 보시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 사람의 속성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아담 안에 있는 본성인 옛 사람이 숨겨져 있다.
이는 탑을 높이 쌓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려고 했던 시날 땅의 절대 강자들의 모습이 우리 안에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 그 자기주장의지는 그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절대 강자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자기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 자기 의는 얼마나 강고한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욥도 잘 벗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욥조차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을 악하다 하는 자였다.
(욥 40:8)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하나님의 창세전 언약은 오늘도 나를 겸손하게 한다.
내 의를 세우고자 하나님을 악한 자로 몰았던 나를 주님 앞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내어 놓는다.
그리고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을 고백하며 나의 의를 벗겨내기 원한다.
사도 바울도 자기주장의지를 벗고자 그토록 몸부림을 쳤다.
(롬 7:21-24)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사람의 방법과 차원을 달리 한다.
사람은 숫자와 양과 크기를 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말씀에 순종하는 한 사람을 보신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며 그 한 사람을 통하여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 일행 중에서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 계시로 주님을 알고 믿게 된 이는 오직 사울이라 하는 바울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들 일행이 다 소리는 들었지만 천둥소리로 치부하고 말았다.
이처럼 단 한 사람 바울, 단 한 사람 루디아를 통하여 주의 복음은 흥왕하게 된다.
그들의 순종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나는 바울과 같이 겉으로 주님을 박해하고 비방하는 자는 아니었지만, 내 안에서는 주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이 세상 만물 안에서 주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니 그게 온통 혼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복음을 통해서 생명으로 나아가므로 나의 거주지가 이 땅이 아니고 하늘에 있음을 알고 믿음으로 오늘도 그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놀기 원한다.
이 자리가 다수가 아니라 소수일지라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영광의 빛이 임하는 자리임을 믿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 오늘도 임하게 하시고 영의 양식, 생명의 양식을 먹고 마심으로 더 이상 주리지도 않고 갈하지도 않게 하소서.
비록 소수일지라도 다수에 현혹되지 말게 하시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게 내 눈을 열어 주옵소서.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시어 내 속사람이 온전히 당신의 생명으로 가득 차게 하소서.
그것 하나만으로 족하오니 주님으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우리 안에 한 사람, 바울이 있게 하시고, 이곳에 한 사람, 루디아가 있게 하소서.
주의 영광의 빛을 비추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