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위원회 위원장이며 장편소설 <절반의 실패> <혼자 눈뜨는 아침> <사랑과 상처> <情은 늙지도 않아> <그 매듭은 누가 풀까> <계화> <천 개의 아침>과 단편 <곱추네 사랑> <할미소에서 생긴일> 산문집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 <남자를 묻는다> <딸아 절반의 실패도 하지마라> 등 여성주의 글을 발표하던 이경자씨가 지난 6월 신작소설 <귀비의 남자>로 성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사회에 던졌다.
그이는 만나자마자 대뜸 독자가 만든 <여성주의 작가>라는 틀 속에 자기를 가두지 말고 자연인 이경자로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이의 열혈 팬을 자처하는 한의사 이유명호씨와 작가를 만나 <귀비의 남자>에 대해 이야기한 솔직 담백하고 유쾌한 성(性 )담론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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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 왕팬이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근 <귀비의 남자>를 출간한 소설가 이경자. 그이의 왕 팬을 자처하는 한의사 이유명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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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비는 물 같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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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자 <귀비의 남자>로 작가가 가벼워지고 새로워졌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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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작소설 <귀비의 남자>를 잘 읽었다. 그런데 왜 하필 주인공 이름이 귀비인가? 현대적이지 않다.
"양귀비에서 성을 떼고 빌린 것이다. 양귀비는 후궁이 질투를 하면 죽임을 당하는 시대에 현종의 비위를 맞추고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대등한 관계로 사랑을 나눴다. 아마 그것은 양귀비가 자연성을 지닌 여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귀비야말로 양귀비처럼 자연성을 지닌 여자다.
- 이전에 다루던 주제나 형식과 많이 다르게 느껴지더라.
"전사의 이미지를 벗고 편안해졌다는 의미인가? 제발 어려운 이야기 쓰지 마라(웃음). 내 소설 <절반의 실패>에 대해 강렬한 느낌을 간직한 독자일수록 소설가 이경자를 어떤 정형화된 틀 속에 가두려는 경향이 있다. 이제 나를 선입견 없이 자연인 그대로 이경자로 받아들여 달라.
솔직하게 말하면 완경 끝나고 신체적 접촉을 끊은 것이 6년 이상 된다. 나무로 친다면 수분이 다 빠져버린 마른 나무다. 그런데 뭐랄까, 이번 소설을 쓰고 세 번 퇴고를 거치면서 내 자신이 새롭게 탄생하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긴 겨울을 지낸 마른나무가 봄 생명의 기운을 힘차게 빨아올려 새 순을 움틔우듯, 소설을 읽는 동안 내안이 촉촉해지면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인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더라. 내가 느낀 생명의 기운이 내 독자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제도는 생명의 진수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열등하게 생각하도록 교육해 왔다. 그래서 전에는 존재가 지니고 있는 생명의 진수를 억압하는 근원적 폭력을 선명하게 밝히려는 글을 썼다. 이제는 아주 편안하고 가볍게 글을 썼는데 그래도 행간 여백에 치밀하게 숨겨 놓은 밀도 높은 주제를 읽어 내는 독자도 있더라. 나로서는 그렇게 행간에 숨겨진 의미까지 읽어낼 수 있는 독자부터 그저 생명의 느낌만 감지하는 독자까지 모두 소중하다."
이유명호 : "이 소설은 한 마디로 놀랍다. 지금까지 성을 주제로 다룬 소설들은 늘 남성적 관점, 남성 시각에 비쳐진 여성들만 그려냈다. 그러나 이번 소설에서는 여성이 주도적 입장이 되어 남성의 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그려낸다. 전에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읽힌 소극적인 여성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다뤘다면 귀비는 남자가 지니고 있는 폭력성까지도 끌어안아 변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것만으로도 획기적이지 않은가?"
위선의 탈을 벗고 가벼워져라
먼저 이경자는 "여성주의 작가, 여성의 목소리를 능동적으로 대변하는 운동권 소설가라는 선입견 없이 나를 봐줬으면 좋겠다. 그저 사람들이 나를 너무나 쉬운 사람, 편안한 사람, 편안한 소설을 쓴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가볍게 소설을 읽으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 소설이 그저 통속적인 성을 주제로 다루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귀비는 몸을 열어 음순으로 가면을 벗기는 상상을 했다. 가면이 특 벗겨지면, 누군 저항하고 누군 때로 울었다. 누군 수치심을 느끼고 누군 전율했다. 때러 적개심을 느끼고 때로 진실이 두려워 포악해졌다. 무수한 가면과 진실과 거짓을 더듬다가… - 책 인용
이경자: "사실 마지막 장면은 클리토리스로 남성의 가면을 벗겨내는 내는 것이다. 제도주의가 만든 함정, 남성우월주의가 만든 함정으로부터 남성을 구원해내기 위한 고도의 노련한 장치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 드러내지 않아 거부감 없이 읽힐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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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명호 <귀비의 남자>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왕 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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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명호: "주변에서 '그게 가능하기나 해? 진짜 그럴 수 있어?'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더라.(웃음) 그렇지만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보이기 위해 자신들을 감싸고 포장하는 경우가 여자보다 더 많다고 봐야한다. 그런 가면을 하나하나 벗겨내는 것이 클리토리스 장면이다."
이경자: "귀비와 연옥 구도섭과 성민하는 영혼의 자유로움을 찾는 이와 제도에 갇힌 이를 대변하는 대칭구조로 등장한다. 구도섭은 작은 불씨나마 생명력이 남아 있어 귀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 생명력과 사랑이 넘치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귀비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연옥은 끝내 안정된 사모님의 자리 조강지처라는 굴레를 놓지 못한다. 연옥은 조신하고 사랑받는 아내다. 허위의식을 연옥의 몸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울증 등 질병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연옥과 같은 삶을 살 것이다. 그들도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려는 이들에게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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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아쉽게도 일어서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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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작가는 이 책은 특별히 남자를 위해 쓴 책 이라고 했다.
이경자: "사실 남성들에 대해 연민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 남자들 안팎으로 얼마나 불쌍한가? 나쁜 남자라는 것은 다 상대적이다. 상한 음식처럼 상한 남자와의 관계는 탈이 나지만 상한 것까지 사랑해 주면 상처는 자연치유가 된다. 남자가 지닌 깊은 슬픔을 읽어내고 상한 남자까지 사랑하고 보듬어 주되 소유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귀비가 사랑하는 방식은 그런 것이다.
이 책은 가볍고 작기 때문에 30대부터 70대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모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가볍고 행복하게 하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해방되고 자유를 얻어 가벼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이모작을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서 귀비를 연상해서 그랬을까? 강하기만 해 보이던 작가에게서 내적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을 겸한 귀비의 모습을 언뜻 연상할 수 있었던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