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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시설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시작돼 안착단계에 와 있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이번 호에는 해외에 거주한 경험이 있거나 거주하고 있는 분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미국 일본 호주의 탈시설화 현장의 특색있는 모델들을 살펴보았다.
미국 탈시설화가 낳은 자립생활의 집
<소비자로서의 주권>
올해 53세인 캐로린 오스본이라는 미국인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대학원에서 재활상담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지난 87년에 받았다. 네브라스카에서 출생하여 시카고에 재활훈련센터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해 살다가 콜로라도에 정착한 것이다. 캐로린은 8세 때 교통사고를 당해 목 이하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머리와 입뿐이다. 때문에 그의 홀로서기에 대한 주위의 관심과 이해는 대단하다.
입으로 운전하며 달리는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그녀는 이처럼 중복중증장애도 굴하지 않고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주 1회 "패밀리 방송국"의 방송요원으로 장애인의 삶과 애환 그리고 극복의지를 이웃에 전하며 용기도 전해준다. 입으로 그린 각종 카드를 만들어 짭짤한 수익도 올리고 있는데 그의 카드는 크리스마스는 물론 질병 쾌유, 추수감사절, 부활절 카드 등 이웃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는 다양한 카드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런데 이 캐로린 오스본이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자립생활센터라는 독특한 모형의 장애인주거공간과 삶의 터전이 있기 때문이다. 내용적으로 좀 더 분석해 보면 미국에서의 자립생활센터는 자립생활운동의 한 결과로써 나오게 된 제도이다. 그러니까 자립생활운동의 철학과 개념 그리고 방향을 이해하면 쉽게 미국 장애인재활과 복지의 근간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립생활운동의 가장 큰 중핵적인 정신이며 일차적인 실행방안이 "탈시설화" 운동이었다. 대형복지시설이 안고 있는 폐해성과 비인격적 요소 그리고 엄청나게 들어가는 재정적 지원 등 제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장애인에게 지역사회공동체와 구성원이 함께 삶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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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탈시설화 운동은 새로운 형태의 자립생활의 집 같은 프로그램을 창출해 놓았는데 그것으로 인해 소비자 개념이 확산되게 된 것이다. 장애인이 정부와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해 살아가는 시혜적 복지 대상이 아니라 재활과 자립의 주체로서 자기 스스로 재활프로그램의 방향을 찾고 선택 결정할 수 있는 "소비자로서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탈시설화는 미국 장애인 재활과 복지의 목적적 개념인 자립생활의 알파와 오메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탈시설화의 또 다른 대안적인 시설모형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정신지체나 자폐증 그리고 중증 중복장애인을 위한 그룹홈이 있는가 하면 중증 노인장애인을 위한 병원형태의 너스리홈(Nursery Home)과 양로병원, 한낮에만 장애아동을 돌봐주는 주간보호센터(Day Care Center) 등도 있다.
<충분한 수당으로 장애인 스스로 거주모델 선택>
더 진전된 탈시설화 모형이 있다면 포스터 홈(Foster Home) 제도이다. 이것은 우리말로 위탁양육 가정제도인데, 요보호장애아동 보호와 함께 정부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하여 바람직하게 성장시키는 것이다. 자기 자녀로 입적을 시키던지, 입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 아빠, 아들, 딸 등 가족체계를 만들 수 있다. 대리모나 대리부 역할을 하는 이 위탁가정에는 장애유아만이 아니라 성인이 된 중증장애인도 오순도순 모여 살게 된다. 그런데 이때 위탁양육가정을 선택하는 권한은 장애인에게 있다는 점이 주목할 사항이다. 장애인이 싫어하는 가정이나 대리모, 대리부에게는 아이를 절대 맡기지 않도록 하는가 하면 장애인 스스로가 거부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1973년 제정, 1978년 1차 개정된 재활법에 자립생활조항을 신설, 미국 장애인 재활과 복지의 목표점을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탈시설화와 아울러 1980년대 후반부터는 지역사회중심의 재활을 주창하고 각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장애인지역재활센터를 만들어 그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니까 미국의 장애인정책 방향이 장애인 스스로의 독립적 생활과 재활 그리고 사회통합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장애가 심하다 할지라도 자립과 독립생활을 해야만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권익을 찾는다는 것이다. 캐로린이 있는 독립생활의 집에 있는 장애인들의 수준은 캐로린만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중증장애인들이다. 지방신문사 기자로 있는 근이앙증 장애인 매트(Matt)라는 친구도 그렇고 동료상담가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토마스도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할 수밖에 없는 척수장애인이다. 이 자립생활센터에 있는 16명의 구성원은 남의 도움없이 살기가 곤란한 중증장애인이다. 24시간 자립생활에 필요한 지원체계가 마련되어 있는 점이나 미국의 사회보장이 이루어지고 있기에 이들의 독립적인 삶이 가능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 있는 중증장애인나 65세 이상의 영세노인, 모자세대로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정부로부터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한화로 약 60만원 정도를 받으며 그 금액으로 자립생활의 집에 입소가 가능하다. 이런 수당제도에서도 우리는 탈시설화 정책을 엿볼 수 있다. 우리네의 법인이나 대형시설에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집단주의 복지정책을 지양하고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권리의 하나로 수당이 주어져 개인주의에 입각한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수당제도는 자립생활센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생활하든 존재하고 있는 평등적 분배정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점도 탈시설화 운동의 가속화에 힘을 더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탈시설화를 통한 진정한 장애인복지가 만인의 것이면서도 분명 한 사람의 행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미국의 법이론체계는 물론 시행체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글/1997 김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