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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만들기와 상여노래(만가(輓歌))
이원봉(80. 남원시 노암동 노암주공아파트)
이원봉 : 내가 원래 농사를 졌는디 원 주소는 남원시 주천면 송치리 138번지가 주소고, 지금은 노암동 주공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이원봉입니다.
옛날에 장의사를, 공설시장 뒤에 거기서 서남장의사를 했어요. 전에 허던 상여 꽃집이 지금은 장례식장이 되니까, 지금은 거의 폐지되다시피 해버렸어요. 그래서 내가 한 5-6년 전에 그만 둬 버렸지요.
전에는 노암동에 노암꽃집이란 디가 있었고, 나는 제일꽃집이라고 해서 했었고, 유신꽃집이란 디도 있었고, 꽃집이 여러 개 있었어요. 그런디 그것이 나중에 합동이 되었제. 합동된 바람에, 합동해서 너무나 폭리헌다고 농협에서도 상여를 싸게 만들어서 했어요. 농협에서 싸게 해서 줘버리니까 농민들은 전부 다 농협으로 가버려요. 그러니까 장의사는 힘을 못쓰게 돼서 그만 둬버렸지.
서정섭 : 꽃집은 언제부터 시작했어요?
이원봉 : 내가 장의업을 시작헌 것은 한 40대부터 허기 시작했은개 한 35년 되것구만요. 내가 부산서 허다가, 부산서 헐 때는 어쩌다가 상여를 한 개씩 만들고, 관겉은 거, 의복겉은 거 그런 것만 흐다가 내가 요리, 남원으로 올라왔어요.
내가 맨 처음에 꽃집을 흐게 된 것은 그때 동네서 내가 손재주가 좋으니까 초상이 나먼 나보고 상여를 만드르라고 그래. 옛날에는 부락(마을)마다 초상이 나먼 상여를 부락에서 만들었어요. 그 동네 동네에서, 여그서(시내에서) 운각 사다가, 문종이 사다가, 설통화 접어서 막 동도 기려가지고 손으로 손수 기래서 했어요. 또 시장에서 판 것도 있기는 있었어요. 그래 기려가지고, 말흐자먼 홑상여제. 단층이제. 그런개 꽃만 너울너울 해가지고 관만 덮어가지고 갔어. 내내.
내가 동네서 그렇게 맨들다 보니까 인자 선수가 됐제, 인자. 그런개 인자 가만히 보니까 저그 노암꽃집인가 어딘가 하나 있었어요. 그런디 맨든 거를 보니까 센찬해. 그래 그냥 내가 맨들기 사작했제. 그래 내가 3층 생여를 만들어, 버들달고 너울너울 해놓으먼, 아따 모도 생이 좋다고 해쌈서, 그때 한창 생이 잘 나갔지요. 그래가지고 시작했어요. 동네서 내가 생이를 맨들었기 때민에.
서정섭 : 그 당시의 상여 가격은 얼마나 했어요?
이원봉 : 그 당시 생이를 하나 만들먼, 모르것네요. 그거 오래 돼놔서. 그 때에 상여 하나 만들먼은 쌀 한 가마니가 됐는가, 그런겁소. 지금 쌀 한 가마니가 16만원이제. 하여튼 한 가마니 이짝저짝 했그만.
서정섭 : 장사가 잘 됐어요?
이원봉 : 나가기만 나감사(웃음). 아, 그게 사람이 많이 죽어야 장사가 잘 되는 것인디, 장의사는 사람이 많이 죽어야 좋아라고 그래. 그러니 그것이 쓰것소? 장사가? 합동하기 전에는 서로 경쟁이 붙어서 내가 더 싸게 준다 해서, 저 사람보다 더 싸게 준다 해서, 이렇게 해서 장사가 안 돼부렀어요.
근디 그것이 장사가 에벅 되기는 되제. 그런디 그게 많이 나가야 되는디, 여러 사람이 흐니까 많이 나가들 안해요.
관만들기
서정섭 : 상여를 처음 만들려면, 우선 관이 준비가 되어야 하잖아요. 관은 어떻게 만들죠?
이원봉 : 상여를 만들기 전에 먼저 관부터 만들어야죠. 관도 내가 직접 만들었지요. 옛날에는 소나무로 관을 만들었어요. 관은 소나무로 헌 것이 제일 좋고, 그 다음에 오동관(오동나무관)이 있는디, 오동관은 아조 귀헌 집이서, 부잣집이서 오동관같은 것은 쓰고, 약간 해서는 오동관을 못쓰고.
관도 5푼관, 8푼관, 1치관, 치5푼관, 그 뚜께가 틀리잖해요. 내가 옛날에 장의사 헐 때는 내 손으로 관을 직접 짰어. 딴 사람들은 저 조산에, 관 짠 사람한티서 짜가지고 가져왔잖아요?
서정섭 : 조산에 가면 길거리에서 나무를 말리느라고 담장에 나무를 세워두고 그랬죠?
이원봉 : 나무는 말리는 것이 아니라, 관은 생나무 관이 더 좋은 거요. 땅 속에 묻히먼 안 썩으니까 더 좋은 거요. 그런디 바짝 마른 것으로 흐먼은 그냥 썩어부러.
옛날에는 산에서 나무를 비다가 절반 딱 짜개갖고 말라. 그러고 그렇게도 안 해놓은 사람은 산에서 한 자가옷 정도 되는, 큰 나무, 한 두자 정도 되는 큰 나무를 베다가, 초상이 나먼은 생나무를 베다가 큰 톱 있지 왜? 밀었다 잡아댕겼다 허는 것. 그 톱으로 막 썰었잖여. 그러고 대패질 해서 초상마당에서 그렇게 해서 관을 짜. 생관을.
그런디 알고 보먼 생관이 안 좋와. 안 썩은 것이 좋기는 좋은디, 맹인한티는, 죽은 사람한티는, 시체한티는 안 좋제.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가뿌러야 흔디, 관이 안 썩고 있으먼 그 속에서 시신이 조깨 덜 썩는다고 봐야제. 3년만이나 4년만에 이장을 허먼 안 썩은 데가 있어요. 그런개 팍 썩어뿐 거이 좋와.
옛날 사람들은 나무를 미리 마련해놓고 관을 만들어놓고, 관을 짜가지고 자기 사랑방 다락에 여놓은 사람이 있고, 다락 밑에다 놓고, 수의를 여놓고, 수의를 만들라고 삼베를 갖다 여놓고 그랬잖아요. 미리 준비를 해놓으먼, 오히려 멩이 더 길대.
상여 만드는 순서
서정섭 : 상여를 만들려면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이원봉 : 상여를 만들라먼 이걸 대체(장강으로 긴 장대나무 2개와 횡으로 맨 앞과 뒤를 건너지르는 단강)라고 헌디, 이것은 부락(마을)마둥 하나씩 갖다가 미리 맨들어놔요. 내가 대체 밑에다 오토바이 발통 3개를 달아서 이미 밀먼 이리 가고, 저리 밀먼 저리 가게 맨들었어요. 지금은 생이를 멜 사람이 없잖애. 내가 맨들어서 팔았어요. 한 70만원도 받고 그랬어요.
대체를 나무로 미리 맨들어놔요. 그런디 지금은 플라스틱 파이프로 해요. 옛날에는 나무로 해서다가 긴 나무 두 가닥이 있어요. 이것은 육모(육각형)로도 접고, 4모로도 접고 그래놔요. 육모로 해갖고 옆으로 된 것에다 뀌여. 뀌갖고 끈을 짬매. 끈은 옛날에는 광목으로 많이 했어요. 인자 옛날에는 미영베로 했어요. 미영베 한 필을 가지면 양쪽으로 해요.
그림 1) 대체에 관을 고정시키기 위해 줄을 매다는 과정의 설명
그라느먼은 아주 옛날에는 짚으로, 진짜는 짚으로 댕기따디끼 따. 짚으로 댕기따디끼 따서 했어요. 없는디는 그때는 갑자기 미영베 한 필이먼 돈이 얼마간디. 그거 생이다 써뿔고는 쭈그러지고 어쩌고 흐먼은 이 사람이 끊어가뿔고 가져가불고 그러먼 이저부러. 그런개 허비흔다 해서는 짚으로 댕기따디끼 땄어요. 인자 가로로 건너지르는 횡길대(횡목. 2개의 장강과 횡으로 앞뒤에 있는 단강이 있고, 단강의 사이에 횡목을 놓는다.)를 해요. 12이 메면 5개를 놓고, 10명 멜라먼 4개를 옇고 그래요. 보통은 12명 상부꾼이죠.
그림 2) 5개의 횡목을 놓아 12명의 상부꾼이 상여를 매게 한다.
이렇게 해놓고 관을 놓을 자리에 사내끼를 걸어. 긴 대체에다가 사내끼를 걸어 짠매요. 그래 여그다가 관을 연저요.
사내키를 한 쪽에 4군데씩 2줄로 8군데를 짠매요. 관을 연저놓고는 양쪽 줄에 있는 사내끼 2개를 서로 야물게 묶어요. 그래서 줄을 서로 묶어요.
관도 절관줄이란 것이 있는디, 이걸 보고 절관이라고 해요. 방에서 관을 7매듭을 묶어요.
횡으로 2줄씩 네군데를 묶고나먼, 길게 종으로 묶는디 횡으로 된 줄을 한번 감아서 묶고, 그 다음 줄도 한번 감아서 묶고,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는 고리를 내서 묶어요. 이렇게 해놓고, 그 우게다가 상여를 연져.
그림 3) 관의 줄을 매는 법과 마지막 고리매기
상여를 연져서, 그 옆에 양쪽에 삽전대라고 있어요. 구름 운(雲)자가 앞에 2개, 버금 아(亞)자가 뒤에 2개를 연져요. 그리고 여그다가 너불너불헌 것 초롱을 달제.
옛날에 부잣집에서는 목상여를 해요. 나무로 상여를 만들어요. 봉같은 것도 나무로 만들어요. 나무에 봉을 그려서 칼로 조각을 해요. 목상여는 뽄이 없어요. 너울너울헌 것이 없은개.
그러고 이제 방지알이라고 해요. 옛날에 독새가 천년이 되먼은 먼 새가 된다 그랬어요. 도새, 되새(?) 먼 샌가 돼가지고, 오래 된개 생각이 안 나네요. 먼 새가 돼가지고 날아가먼은 생이 위를 날아가먼은 새 그림자가 생이 위에 비치먼 그 집이 멸종을 헌다고 말했어요. 그런디 그런 일은 천년만에 한번씩 있을 둥 말 둥 허제. 그래서 그런 것을 방제한다고 해서 방지알(방제알. 양장)이라고 허제. 상여 위에 지붕을 만드는데 그 지붕을 방지알이라고 허요. 방지알이 있어야 팔랑팔랑 움직여서 생이가 뽄이 나지.
설통화 만들기
서정섭 : 상여에는 울굿불굿한 꽃이 있어, 꽃상여라고도 말하잖아요? 꽃은 어떻게 만들어요?
이원봉 : 울굿불굿한 상여꽃을 만드는디, 옛날에는 물감을 사다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모닥불가에 앉아서 설통화를 접어. 종이를 한 열댓장을 포개, 포개가지고 열십자로 네군데를 끊어. 그리고 그 네군데 사이를 짤게 끊어, 착착 외려(오려).
그림 4) 설통화 만들기 위해 종이의 네 곳을 자르는 방법
막대기에다 대고 또로록 몰아. 몰아갖고는 아까 카삭카삭허게 벴죠? 여기를 끄내키로 묶어요. 고무줄이 있으먼 고무줄로 묶으먼 더 좋고. 그래서 종이를 착착착 까. 그러고 히룻저녁을 재와. 그러먼 나중에 막대기를 쏙 빼부러도 뚱그롬해가지고는 풀어지도 안 해. 그러먼 그것을 요짝으로도 허고, 저짝으로도 허고, 서로 엇비슷허게 비껴서풀먼 꽃이 되부러. 너울너울허는 꽃이 되부러. 이거이 진짝 설통화여. 상여이 진짜 꽃이 설통화여.
연봉 만들기
인자 연봉을 만들어요. 연뽕은 어떻게 맨드냐 허먼, 한 되짜리 병, 유리병, 소주병 있잖애요? 소주병에다 은박지를 사다가, 이만큼씩 짤라서 한 되짜리 소주병에다 감아. 실로 그것을 감아 꽉 쪼구리먼 큰 것이 아주 작게 오무라져서 만들어지제. 그러먼 그것을 한 장씩 떼가지고 끄터리를 요로케 해서 딱 짠매고, 딱 짠매고 해서 요로케 대고, 요로케 대고 허먼 진짜배기 연뽈이 되부러.
옛날에는 다 하얀 문종이로 했지요. 물감을 사다가 젹셔. 물감을 다 들일라먼 돈이 많이 든개 끄터리만 살짝살짝 적세. 옛날에는 그렇게 맨드랐어요. 생이를 다 만들먼 적은 꽃은 한 70-80개 들어가요. 지금 생이는 두 줄로 들어가요. 근디 옛날 생이는 외줄로 들어갔어요. 단층 생이를 만들고 옆에다 연뽕을 달았지요. 남원 생이는 3층 생이가 있어도 3층 넓이가 다 똑 같애요. 2층 생이만 돼도 좋은 생이여.
버들과 초롱 만들기
생이 옆에 길쭉길쭉흐게 늘어진 것은 버들이라고 해요. 버들은 종이를 외려(오려). 그러고 대나무를 잘게 쪼개갖고 막 감아요. 감아갖고 접시꽃이나 설통화 쪼그만 것을 몇 개씩 달제. 그러먼 막 너울너울 허제.
초롱은 종이를 이렇게 접어요. 그래서 쪽 잡아댕기먼 쪽 늘어지제. 이것이 초롱이껍대기고, 초롱피고, 안에 초롱은 밑에는 청홍, 태극기 모양으로, 음양으로 해서, 음은 파랑 것, 양은 빨간 것 해가지고, 우에는 빨간 것으로, 밑에는 파란 것으로 해서 대나무를 휘어가지고 실을 쫀매. 그러먼 대가 안 걸릴 거 아니여. 그리고 거기에 딱 맞게끄롬 접어요. 여그를 요로케 허고 해서, 아까 그 대에다 꼽아. 그러고 아까 너울너울헌 거 있잖애, 그거를 여그다가 갖다 씌워부러. 그러먼 너울너울 초롱이 돼부러.
상여가 비싼 것일수록 꽃도 많이 달고, 들어가고, 버들, 초롱도 많이 들어가죠. 상여는 법이 없어. 뭣을 몇 개 달고, 뭣을 몇 개 달고 허는 법이 없어. 자기들 맹글고 싶은 대로 맨들아. 규정이 없어요.
명정 만들기
상여 앞에 들고 가는 것은 명정이 있고, 공포, 만사가 있죠. 만사란 것은 친구들이 글씨를 써.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든지, 뭐 그런 거를 써요. 1m 거리로 하나씩 달아가지고 그것이, 옛날에 양반 부잣집은 십리가 늘어졌다고 했고, 간난한 사람들이 죽으먼 아조 그것도 없어.
명정 글씨도 지금은 은분으로 쓰지만 옛날에는 물에다가 풀을 살짝 타가지고 글씨를 써. 그러고 글씨에다가 밀가루를 착착착 뿌리거든. 밀가루가 명정 글씨에 딱 붙을 거 아니여. 나중에 밀가루를 탁 떨어뿔먼 글자가 딱 나와뿔제. 여자가 죽으먼 유인(幽人), 남자가 죽으먼 학생(學生), 벼슬한 사람은 참봉(參奉) 뭐, 그렇게 썼제.
데어리(상여놀이)
서정섭 : 출상하기 전 날 밤에 집에서 상여놀이를 하잖아요?
이원봉 : 상여를 만들어 집에 가져가서 마당에 놓아둬요. 그리고 내일 출상하면 출상하기 바로 전날 밤에 데어리를 해요. 인자 상여를 집에서 맨들먼은 밤에 이슬 안 맞는 곳에다 둬요.
출상하기 전날 저녁에 데어리를 해요. 말흐자먼 출상 연십을 허는 거요. 소리꾼들을 놓고 데어리를 해갖고, 초경, 이경, 삼경, 사경, 오경, 육경, 칠경까지. 칠경이 뭐냐먼, 인자 연습을 한번 하고 쉬고, 두 번 허고 쉬고, 세 번 허고 쉬고, 네 번 허고 샛거리를 먹어, 사경 허고 참을 먹어. 그리고 오경, 육경, 칠경 혀놓고 또 한잔 더 먹고. 그란헐라먼 이경 허고 술이 안 첸게 한잔 먹고 해야것다고 허고 먹고, 옛날에는 그랬지요.
데어리는 마당에서만 허는 거요. 문밖을 나가먼 안 돼요. 동네를 한바퀴 돌거나 그러먼 안 돼요. 그 집 마당에서만 모택불 가에서 허지. 동네 마을을 돌먼 큰일 나요. 궂은 일인디, 동네 마을을 돌먼 쓰간디. 동네 주렁도 못 넘어가게 헌디. 아 송장, 궂은 것이 넘어간다 이거지. 그래서 못 넘어가게 해요. 자기 부모들이 돌아가셨을 때 자손들은 중요허지만 넘한티는 그게 아니거든. 넘헌티는 치명이 될 수가 있잖애요. 송장을 아들도 무서라 허고, 동네 안 돌아요.
인자 입관을 했거든. 입관을 흐먼 상주가 굴건 제복을 흐잖애. 입관을 흐기 전에는 흰 두루매기다가 한 팔만, 남자가 죽으먼 왼팔을 빼고, 여자가 죽으먼 오른팔을 빼고 입고, 굴건 제복을 안 했거든. 상복을 안 입었거든. 인자 데어리흐는 날 저녁에는 상주가 상복을 제대로 입어. 상주들이. 인자 진짜 초상에서 흐는 것맹키로 ‘아이고-, 아이고-’ 곡을 흐고, 데어리 흘적에 울기도 흐고 그러제.
상여소리를 배우게 된 계기
서정섭 : 상여소리는 처음에 어떻게 해서 배우게 됐어요?
이원봉 : 상여소리는 한 애닐곱 살, 아니 한 여나무 살이나 묵었것다. 우리 자형이 소리를 잘 했어요. 판소리를, 상여소리도 잘 멕이고, 장구도 잘 치고, 아주 다방면으로 잘 했어요. 아조 나허고 똑 같했어. 나도 시방 그래요.
그런디 데어리를 헌디, 상여소리를 헌디, 나보고 “동생 너도 배와라. 요걸 배와노먼 언제 써 먹드래도 써 먹을 텐개 배와라”고 그래요. 그때는 그냥 벌로 알았제, 그냥. 그런디 내가 딴 것은 몰라도 어찌 음악에는 소질이 있어갖고 머든지 한번만 들어뿔먼 해뿌러. 한번만 들어불먼. 지금 저 시조같은 것도 나보다 훨씬 잘나고 그런 사람들도 나허고 똑같이 시조를 배우고 했지만은 아직까지도 나만 못해. 나한테 와서 배와요.
서정섭 : 상여소리를 처음 배우라고 권한 자형의 성함은 어떻게 되신가요?
이원봉 : 자형 이름은 이한규라고 했어요. 자형은 구례 산동 탑골이요. 산동면 온천이 있어요. 온천에서 쪼금만 올라가면 우측으로 탑골이 있어요. 자형이 우리 마을로, 처가동네로 와서 누님허고 제금났어요. 동네 한쪽에가. 그러먼서 나보고 배우라고 했제.
서정섭 : 상여소리를 처음 배울 때는 방에 앉아서 배웠는가요?
이원봉 : 동네에 초상이 나먼, 말 흐자먼 우리 자형이 소리를 멕이제. 그러먼 나보고 앞에서 따라 흐라고 해. 그런개 초상만 났다흐먼 꼭 나를 찾아갖고 앞에서 따라 흐라고 해. 나를 옆에 세워놓고 따라 흐라고 해. 그러지 않으먼 뒷소리를 멕이라고 흐지. 그런개 나는 농악칠 때도 한 열댓살 먹을 때부터도 농악친 데를 꼭 따라다녔어요. 자형이 꼭 데꼬댕겨요. 장구친 것도 갈쳐주고 그랬어요. 시조는 그 양반한티 안 배웠는디, 방에 앉아서 배운 것이 아니고 초상날 때 따라다니면서 배웠제. 그때 몇 번 해본개 그냥 해불제 머.
그러고 우리 누님들이 괴짜들이여. 어찌 생여소리를 슬프게 멕이든지. 우리 누님들이 누워서자면서 옛날 이야기를 안 했어요. 이애기를 허다가도 ‘아, 우리 생이노래허자.’ 그러면서 멕이먼 우리 누님들이 기가 멕히게 잘 해. 우리 누님들이. 우리 누님들허고 한 방에서 같이 자고 했었은개 같이 허고 그랬어. 그렇게 해서 배웠어요. 같이 놀면서 배웠어요. 누님 이름은 이당귀여. 벌써 죽었제. 셋째 누님은 상례. 그랬제.
서정섭 : 자형 이한규씨는 상여소리를 어디에서 배웠답니까?
이원봉 : 진도에 가서, 바닷가에 가서 고기잡이 흐먼서 배웠대요. 왜정 때, 제국시대 때 살기가 모다 복잡했잖애요. 모다, 그때. 돈벌러 가서 고기잡이도 허고 돈 벌고, 인자 총각 때제. 거그서 살다가 왔어. 머심맹이로, 너무집 고용살이맹이로, 회사같은 디 취직흔 거같이 배따라 다니기도 허고, 통통선같은 거 따라 다니기도 허고, 동네 투어탕가먼 또 한잔 허는 거 아니여. 그런디 가서 따라 배웠제. 그런 디서 흔개 배왔제. 진도에서 배왔제.
오장소리
서정섭 : 오장소리가 뭣인가요?
이원봉 : 오장소리를 남원시내나 촌에 다니먼서 오장소리가 뭐냐고 흐먼 다들 몰라요. 오장소리란 것이 ‘남무어-’. 남무어는 나무아비타불이여. ‘헤이-이, 헤이-에헤이-’. 이것을 일곱 번을 해야 해. 그러먼 거시기 헌 사람은 유제꾼들은 ‘오-, 오- 헤- 헤이- 남무어-’. 일곱 번을 허고, 인자 ‘관아-’로 들어가. 관아는 관세음보살이여. ‘관아- 헤- 헤-헤이 - 남무어-’. 이것을 다섯 번을 해야 혀.
그런개 쪼글치고 앉아서 일곱 번을 허고, 또 다섯 번을 허고 그러먼 유제꾼들이 물팍이, 무릎이 아파서 죽을라고 해. 한번만 허자 그러그던.
옛날 원칙을 흘라먼 일곱 번을 해야 허고, 다섯 번을 해야 허는디, 지금은 그냥 시번만 허고, ‘관아’ 한번만 허고 땡글땡글 핑경을 흔들먼 ‘헤-헤이- 남무어-’ 허고, ‘어노- 어-노 어이가리 어-노 인제 가먼 언제나 오실라요 오실 날짜를 일러주소’, ‘어-노- 어-노- 어이 가리 어-노-’. 인자 막 한잔 묵고 그러먼 ‘북망산천이 멀다고 하였더니 저 건너 앞산이 북망산이네’, ‘어-노-’. 이렇게 허는 것이여.
‘어제 저녁에는 집에서 잠을 잤지만은 오늘 저녁부터서는 북망산천에 가서 잠을 잔다.’는 그런 소리, 먼 소리를 자꾸 해놓으먼 상주들이 슬퍼갖고 엉엉 울제. 상여소리는 잘 멕이먼은 상여 돈도 많이 걸리고 상주가 겁나게 물어불고, 상여소리를 잘못흐먼 못 믹이먼 돈도 얼마 안 나오고 상주도 벨로 안 울고 그러제.
한 15년 전에 송동면 부서를 간개, 유친계 계원 하나가 주구 어머니가 돌아거셨는디 상여소리를 데어리를 허는디, 거그 영감 하나가 오장소리를 허드란개. 근디 딴디서는 초상난디 많이 가봤어도 오장소리허는 것을 보들 못했어요. 모다 몰라. 그래서 지금은 오장소리가 없어졌어요. 내가 오장소리를 흔개 깜짝 놀라불더란개. 젊은이가 어떻게 오장소리를 흐냐고 흐더란개. 그때 내가 나이가 60도 못 됐을 때였을거요. 나보고 줄맞은 노래라고 흐더란개.
줄맞은 노래
서정섭 : 줄맞은 노래가 뭣입니까?
이원봉 : 줄맞은 노래란 것은 박이 맞다는 말이요.
옛날에 거시기는 ‘나무어’도 진양조 24박이여. 북으로 말흐자먼 ‘하나- 둘- 서이- 너이- 딱- 딱-’ 이것이 6박 아니요? 이것이 4번 들어가야 24박이여. 이것을 길게 빼야해요(24박의 실제 소리를 들려 줌). 이렇게 딱딱 박이 맞도록 소리를 해야 해요. ‘어- 노-’는 중모리 12박이여.(실제로 소리를 들려 줌).
이렇게 줄이 딱딱 맞게, 박이 맞게 해야 허는디, 촌사람들이 어디서 박을, 택도 없지. 그러니까 어려워.
그런디 우리 자형은 박을 딱딱짚어서 갈쳐줬어요. 그렇기 때문에 진짜로 내가 배운거요. 진짜배기 양반한테 배운 거제. 진짜로. 뭐든지 박이 맞아야지, 박이 안 맞으먼, 길게 했다가 느리게 했다가 흐먼 박이 안 맞잖애. 시조도 마찬가지여. 박이 맞아야기.
서정섭 : 장지가 멀먼 상여소리를 할 때 춘향가같은 판소리를 하지는 않습니까?
이원봉 : 상여소리할 때 춘향가나 그런 것은 안 불러요. 그런 거는 안 해요. 먼 데 가먼 했던 노래를 또 허고, 또 허고 그러제. 그러고 먼 데 가먼 소리를 빨리빨리 불르제. 또 가다가 좀 빨 리가 해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 그러고 쭉 걸어가부러 그냥.
그러야제, 그 먼데를 꼭 그렇게 헐라고 허먼 하룻길이 넘어 되먼 큰일나제. 또 가서 하관도 허야제 뭐, 봉분도 해야제, 그럴라먼 하루로는 안 되제. 그런개 오전에 가고, 오후에 한 다섯 시나 돼서 돌아와야제. 그럴 제는 거리봐서 바쁘먼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허고 ‘하나 둘 하나 둘’ 허고 걸어가부러요.
상여소리 품삯
서정섭 : 상여소리를 한번씩 하고 나면 돈을 얼마씩 받았어요?
이원봉 : 그것은 종을 못해요. 나는 그렇게 소리를 갈치고 이 테잎을 한 2-300개 나갔을 거요. 동네마다. 근디 갖다놓먼 어디로 가서 없다고 또 도라고 허고 또 도라고 허고 그래요. 없애불고.
그런디 친구들이나 친구 아부지들이나 돌아가셨다고 그러먼, 그전에 오성목재 주그 아부진가 어문닌가 한번 돌아가셔서 소리 한번 멕이줬지. 그때 제군들이 생이소리를 많이 흔개 그때 돈으로 30만원인가 얼맨가 모르것네. 하여튼 쌀 한 너댓가마 값이 됐은개. 그렇게 한번 받아보고, 그때 또 누구냐? 최세일이. 최세일은 그때 주그 딸이 그랬제. 그때 누군가 죽어서 가갖고 뒤에서는 기생이 멕이고, 나는 앞에서 멕이고 그랬제. 기생이 나한테 미쳐갖고는 오갈병이 들어서 소리를 못히서 도망가뿔더만. 뒤에서 기생이 미긴디 소리를 못미긴개, 아 제군들이 ‘하이-, 소리가 안 드끼여!’ 여자가 흔개. 그때는 마이크가 없었거던. 확성기로 흐고, 마이크로 흐고 해얀디 그냥 육성으로 흔개 소리가 안 듣긴다고 흔개 가 뿔더라고.
이훈정 : 남원 부잣집에서는 창하시는 분들이 상여소리를 많이 멕였어요. 한 50년전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다닐 때, 어릴 때 많이 봤어요.
이원봉 : 소리를 멕이먼 돈이 딱 정해진 것이 아니여. 인자 ‘아 누구요, 소리 좀 맥애주시오’, ‘초상날 때 소리 좀 멕이주시오’ 그러먼 ‘아, 그러소’. 그래서 공짜로도 허고 그럴 때도 있고, 그 전에 우리 장의사헐 때는 노암동 전씨라고 있어. 전씨가 멕앴는디 그 사람은 돈을 꼭 받고 멕애요. 그때 돈으로 15만원, 20만원 받고 기여이 멕였제. 우리가 사다준깨. 사서준깨. 장의사보고 소리꾼 좀 사돌라고 흔개. 그러먼 ‘15만원 버라먼 소리 한번 멕애주고 오소’ 그러거든.
인자 좀 거시기 흔 사람들은 상애 건 거에서 받제. 유제꾼도 열가지등만. 고 놈 건 놈을 상주를 싹 줘불고 목욕비만 가지고 와서 목욕만 흐는 디도 있고, 고 놈 건 놈을 싹 가지고 와 갖고 계원들 자금을 흔디고 있고, 고놈 절반을 딱 나눠서 소리꾼 주고, 나머지는 주그들 가져가는 것도 있고 그러등만. 흔개 그게 여러 가지여.
상애 앞에 거는 돈은 노자돈이라고 그러지요.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말고 노자돈이나 많이 걸어주소.’라고 생이멕일 때 흐는 소리도 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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