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2.4.20. 곡우. 송강초등학교 (근대 3-2)
6 년 만에 첫 수업을 했습니다.
짧은 지식을 보충하고자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여 졸업하고,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에 선 것입니다.
한 시간 반이나 일찍 송강초등학교에 도착하여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자잘한 흰꽃이 달린 조팝나무와 진분홍의 박대기나무 꽃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운동장 가에 서 있는 오래된 메타세콰이어와 느티나무 가지 끝에도 어린 눈이 돋아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나무 아래에서도 딱딱한 흙을 뚫고 어린 원추리 싹이 여기저기 솟아 났습니다.
어린 싹들을 보니 한밭문화마당에서 첫 강의를 하러 간 학교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한 시간이나 일찍 학교에 도착에서 학교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곤 했지요.
교무실에서도 숨죽이며 차를 마시던 일이 벌써 칠 년 전의 일이라니 ......
이제 다시 첫마음으로 교단에 섰습니다.
오늘의 만남이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서 대전을 많이 사랑하게 되길 기원해 봅니다.
아이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봅니다.
감기로 인해 목소리가 탁해진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더니 박수까지 쳐 주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한 수업은 조금은 산만하게 시작했습니다.
운동가에 심어진 조팝나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들은 잘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우루루 창가로 몰려가서 살펴보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조팝나무를 쉽게 찾지 못한 아이들이 더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유성구의 이팝나무 축제와 연관지어 조팝나무꽃과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조팝나무 사진을 보여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새롭게 알게 된 것, 그리고 다시 찾아보고 싶은 것을 수첩에 메모했던 아이들,
지금쯤이면 운동장가에 심어진, 혹은 인터넷에서 조팝나무를 찾아봤을 테지요.
아이들은 야, 라고 부를 때보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때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나무나 문화재도 이름을 불러주면 좋아합니다.
나무와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옛날에는 먼 길 떠나기 전에 동구 밖 둥구나무 아래서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름"을 알면 관심이 생깁니다.
더욱기 이름에 담긴 뜻을 알게 되고,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라도 듣게 되면, 관심은 마음속에 뿌리를 내립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뿌리에서 싹이 돋고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가끔 물을 줘야 합니다.
이 글이 물 한 바가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 만난 송강초등학교 3학년 2반 학생들은 10장쯤 그림을 그린 스케치북과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앞으로는 주변의 나무나 풀들을 많이 그렸으면 좋겠습니다.
운동장 가에 심어진 나무나 풀을 보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더불어 흙과 뿌리의 소중함도 깨닫게 될 날이 올 때까지,
저는 민들레 홀씨되어 날아다닐 겁니다.
* 책상에 엎드려 있는 여학생을 보니 문득 생각났습니다.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다녀왔답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뒤 한 남학생이 제게 와서 조용히 물었어요.
"선생님한테 (화장실) 간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때는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잘 몰랐는데, 사진 보니까 이해되는군요.
혹시 책상에 엎드려 있는 저 남학생이 아니었나 싶어요.
용기있는 행동과, 참고 견디는 행동....
어떤 선택이든, 박수를 보냅니다.
첫댓글 같은 시간에 같은 수업을 다녀도 느낌은 천차만별이네요. 글로 쏟아내니 기록이되고 역사가 되네요. 선생님의 넉넉한 품이 어찌나 좋은지 ㅋㅋ
初心 을 잊지말아야겠죠 샘의 글과 사진에서 새롭게 일깨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