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류할때 아이들 있으면 가장 마음아파" ‘빨간딱지 집행관들이 말하는 부채사회’ 취재 후기
안녕하십니까. 사회부 기동팀의 임민혁입니다. 저는 최근 이용수·정지섭 기자와 함께 법원 집행관들의 압류 현장을 동행취재했습니다. 압류가 무려 100만건을 넘어서는 시대가 된 걸 계기로 취재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지면에서는 미처 소개하지 못했던 ‘빨간딱지’의 뒷얘기들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10시 사이 각 법원 집행관실은 ‘시장통’으로 변합니다. 압류를 신청하러 오는 채권자들이 많게는 하루에 100여명씩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사채업자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카드사·캐피탈사 대리인이 70%가 넘습니다. 각 법원에는 보통 3~7개의 집행관팀이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맡은 구역의 신청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채권자들과 집행 순서를 조율합니다. 보통 이동거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일정이 짜입니다. 이 과정에서 “왜 내 건을 먼저 처리해주지 않느냐”며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하루 집행일정이 짜여지면 보통 3명으로 이루어진 집행관팀이 집행을 위해 법원을 나섭니다. 보통 하루에 10~20건씩 처리하는데 이 건수도 올해 들어 점차 늘고 있는 추세여서 집행관들의 퇴근시간도 늦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집행관들이 압류를 집행할 때는 흔히 ‘빨간딱지’라고 부르는 압류물표목을 대상 물건에 붙이게 됩니다. 예전과는 달리 눈에 잘 안띠게 물건의 옆이나 뒷부분에 붙입니다. TV 등의 가재도구에 딱지가 붙어도 물건을 임의로 처분할 수 없다 뿐이지 사용하는 데는 제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역시 빨간딱지가 주는 공포감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자신의 집에 딱지가 더덕더덕 붙을 때 채무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서울 광진구 노유1동의 A씨는 모든 것을 포기한 경우입니다. 지난 6일 오전 집행관들이 찾아왔을때 런닝셔츠 차림의 A씨는 순순히 길을 터줬습니다. 집행관들이 “X씨에게 400만원 빌리신 거 못 갚으셔서 압류에 들어간다”고 하자 A씨는 힘없이 “어디서 또 빌려서 갚을게요”라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안방에서 이부자리도 개지 않은 채 앉아 TV를 보던 A씨의 아내도 TV, 냉장고, 세탁기에 딱지가 붙는 광경을 멍히 지켜만 볼 뿐이었습니다. A씨는 집을 나서는 집행관 일행에게 연신 허리를 구부리면서 “잘 가시라”고 인사까지 해 집행관들이 민망해 할 정도였습니다.
시흥시 시화공단 E사의 B사장은 애원을 하는 경우입니다. 임금을 제때에 받지못한 직원들이 다니던 회사를 상대로 동산 압류신청을 했습니다. 지난 13일 채권자 대리인들과 집행관들이 공장으로 찾아오자 B사장은 “내가 잘못했으니 벌은 받아야지, 그런데 정말 돈이 없다, 여기와서 딱지 붙이고 그런다고 해결되겠나, 회사가 어려워서 그런건데 제발 취하해달라. 취하하면 벌금도 없어지니 체불임금 돌려받는데 도움되지 않겠느냐”고 사정했지만 채권자들은 꿈쩍도 안했습니다. 이날 압류는 예정대로 집행됐습니다.
욕설과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13일 안산 반월공단의 J공업에서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전화로 설전을 벌였습니다. J공업에 물건을 대는 납품업체 대표 C씨가 납품대금 1900만원을 받지 못하자 압류신청을 하고 J공업 사장 D씨를 찾아왔습니다. D사장은 당시 자리를 비웠고, 한 직원이 사장을 찾아 C씨와 전화로 연결해주자 바로 C씨는 “목을 따겠다고? 아주 막말을 하는구나. 너 조심해라. 몇살이고?” 하며 험한 말이 오갔습니다. 통화 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던, 머리를 빡빡 깎은 J공업의 한 직원은 “당신보다 사장님이 나이 많아 씨X”이라며 문을 걷어차고 나가버리더군요.
동산이 압류되면 경매(競賣)를 통해 물건을 팔아 매각 대금을 채권자에게 돌려주게 됩니다. 압류를 하고 감정을 통해 가격을 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채권자가 압류와 동시에 경매를 신청해도 20일은 걸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압류는 채무자에 대한 압박수단이고 경매까지 가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압류에서 경매까지 걸리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채무자가 빚을 갚거나 채권자가 경매를 포기하는 경우에도 경매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동산 경매는 채무자의 집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때 채무자의 집을 ‘법정’이라고 합니다. 채무자들은 집 안방에서 자신이 아끼던 물건들이 남의 손에 넘어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것이죠. 경매 전에 압류된 물품에 대해 감정가가 매겨지는데, 이 감정가라는 것이 정말 시쳇말로 ‘껌값’입니다. 물건들이 새것인 신혼부부 집이라면 모를까 웬만한 서민 가정에서 TV, 냉장고, 세탁기, 오디오, 컴퓨터 등 집안 물건을 몽땅 합해도 150만원을 넘기는 경우가 드뭅니다.
실제로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E씨 집에서 진행된 경매에서도 이 집의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비디오 등이 113만원에 한 중고품 매입업자에게 넘어갔습니다. 경매가 시작되자 마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쏟던 E씨의 부인 옆에서 매입자가 만원 뭉치를 꺼내들고 열심히 침을 발라가며 세는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안쓰러운 장면이었습니다.
가장 ‘험한 꼴’은 역시 명도(明渡)를 집행할 때 벌어집니다. 명도란 집이나 건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인데, 스스로 나가지 않을 경우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강제집행을 하게 됩니다. 세입자가 기간이 만료됐는데도 집을 비워주지 않을 때 강제로 집 밖으로 끌어내는 것 등이지요. 당연히 저항이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서울 서부지법 집행관사무소의 손태우 계장은 작년 명도 집행 때 큰 봉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명도소송에서 져 집을 비워줘야 하는 응암동 재개발주택의 세입자가 LP가스를 틀어놓고 저항을 한 것입니다. 20대 중반의 세입자가 계단에 가스를 틀어놓고 라이터를 들고 소리를 지르다가 라이터에서 불꽃이 튀어 가스가 폭발했고 손 계장은 이를 피해 계단에서 뛰어내리다가 발목을 접질러 4개월간 병가를 냈다고 합니다.
같은 법원의 김종근 대표집행관도 작년 10월에는 뉴타운으로 지정된 은평구 기자촌 근처의 한 허름한 집에 명도집행을 할 때 곤욕을 치뤘습니다. 나이가 70도 넘은 할머니가 “우린 못나간다”며 보이는 데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옷 잡고 늘어지고, 손만 데면 까무러치는 시늉하고, 욕 퍼붓고…. 아들과 딸까지 합세해 난리를 쳐 결국 인력보강을 요청해 20명 이상이 달라붙어 겨우 집행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집행관들에게는 ‘명도를 할 때는 절대 새 옷을 입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현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행관들은 보통 ‘냉혈한 저승사자’와 같은 이미지로 비춰집니다.한 집행관은 “TV드라마 같은 데서 주인공 집안이 몰락하자마자 법원 직원들이 신발 신고 우당탕 들어가서 울부짖는 가족들을 밀치고 아무 설명도 없이 손바닥만한 시뻘건 딱지를 더덕더덕 붙이는 모습이 나와 정말 황당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들도 법에 의해 공무를 수행할 뿐이지 인간적인 고민을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집행관은 “가재도구라고 할 것도 몇 개 없는 반지하방에서 병들어 누워있는 채무자를 볼 때면, 여유만 있다면 정말 내가 빚을 대신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군요. 인천지법의 이순 대표집행관도 압류 현장에 갔다가 채무자의 사정이 하도 딱해 딱지대신 돈봉투를 놓고 나오게 되는 경우가 1년에 5~6차례씩 있다고 합니다.
특히 집행관들이 곤욕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는 현장에 아이들이 있을 때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지요. 서부지법의 양경식 계장은 이달초 홍은동의 한 주택에 압류집행을 나갔다가 채무자의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되는 딸이 여동생을 안고 한쪽 구석에서 우는 모습을 보고 비슷한 또래의 자식이 있는 입장에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다른 집행관은 “중·고등학생들이 있는 집에서는 차라리 애들이 담배 피고 싸가지 없이 굴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하더군요.
저와 다른 기자들이 1주일여간 집행관들을 따라다니며 느낀 것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빨간 딱지의 아픔’이 매일같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법원이 허가한 압류건수는 1997년 77만8895건이다가 IMF직후인 1998년에 144만1928건으로 2배 가까이 급증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1999년 92만6630건, 2000년 63만2677건, 2001년 61만996건으로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2002년부터 다시 늘기 시작해 작년에는 5년만에 다시 100만건을 돌파하기에 이르렀고, 그 대상도 서민층과 영세기업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한 집행관은 “서민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정부 정책의 잘못”이라고 하고, 다른 집행관은 “분수에 맞지않게 무분별하게 카드를 긁는 소비자도 문제가 많다”고 하더군요. 누구의 잘못인지는 여러분들도 생각이 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벼랑 끝까지 밀려있는 우리 이웃들이 더 이상 좌절하지 않도록 함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책임질 일을 벌였으면 그 책임을 끝까지 부담하여야 할 것이며, 이는 검소하게 절약하며 밝은 미래를 위해 생활하는 사람에게 그 당위성을 부여하는 명백한 증거이며 그와 같은 절차를 증오하여서는 안된다. 다만, 그들을 다듯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재활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바란ㄷ.
첫댓글 흥미로우면서도 슬프네요 엉엉ㅠㅠ 작년기사인데 퍼와봤습니다
갑자기 경매가 실타^^
가슴 아픈 현실이네요...
명도 부분은 잘 모르겠으나 일반적인 유체동산 압류는 본기사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단지 흥미를 배가 하기위해서 기사를 꾸며 쓴 부분들이 많아 보이네요...
아이들 부분에선 정말 가슴 아프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저도 유체동산 압류까지 해봤는데, 씁쓸하더라구요~! 물론 그인간은 돈이 있어면서도 안줘서 "심"상해서 압류했습니다. 집행하기전에 돈줘서 취하는 했지만, 무서운 세상입니다. 더러운꼴 안당할라면, 미리미리 준비해야겠죠! 함께 노력합시다!
흠.............
책임질 일을 벌였으면 그 책임을 끝까지 부담하여야 할 것이며, 이는 검소하게 절약하며 밝은 미래를 위해 생활하는 사람에게 그 당위성을 부여하는 명백한 증거이며 그와 같은 절차를 증오하여서는 안된다. 다만, 그들을 다듯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재활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바란ㄷ.
정말로 슬픈그림이네요....전부 부자되야겠죠?
그러죠? 우리에겐 그런 아픔이 절대 없기를.....
잘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짠한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