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사성의 공당문답(公堂問答).
세종대왕 시절에 황희정승과 맹사성은 두 사람 모두 청렴결백한 정치인이자, 한국역사상 누구보다도 그 일화가 많았다.
<다음은 맹사성에 관한 일화...>
조선 세종 때 맹사성이란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맹사성은 높은 재상자리에 있으면서도 집은 비가 샐 정도였으며 성품은 대나무처럼 곧아 윗사람에게 아첨할 줄 모르고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얕보지 않았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권세를 앞세워 부당한 일을 절대 하지 않았다. 나들이를 할 때는 늘 소를 타고 다녔고 피리 불기를 좋아했다.
맹사성은 고향 온양에 조상님의 산소가 있어서 자주 내려갔다. 언젠가는 그가 온양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온양 고을 원님이 동네 어귀 길을 황토로 깔아놓고 대감 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식경이나 되어도 대감 행차는 보이지 않아 원님의 속이 타들어 가는데, 이때 저 멀리서, 소를 탄 웬 늙은이가 대감행차를 위해 닦아 놓은 길로 들어오고 있지 않는가..... 화가 난 원님은 포졸을 시켜 당장 쫒아 내라고 호통을 쳤다.
포졸이 소를 탄 늙은이에게 달려가서 “대감 행차를 위해 닦아 놓은 길에 버릇없이 함부로 들어오는가, 썩 물러나시오”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러자 그 노인은 태연하게 “가서 내가 고불이라고 전하시오” 하였다. 고불은 맹사성의 ‘호’다. 이 말을 들은 포졸은 황급히 되돌아가서 사또에게 전했다.
한양에서 오는 대감행차라 응당 거창하게 삼현 육각을 앞세워 올 줄 알았는데 대감이 소 등에 얹혀 올 줄 어찌 알았겠는가.....
사또는 맹사성에게 가서 몰라뵈서 죄송하다고 사죄를 하였다. 그러자 맹사성은, 앞으로는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는 이런 짓은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맹사성은 고향에서 일을 다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날도 허름한 옷에 검은 소를 타고 가던 길이었으니 누가 보아도 정승으로 보일 리는 만무했다.
한참을 어슬렁어슬렁 소의 느린 걸음으로 가고 있던 중 용인 어느 마을에 이르러 갑자기 먹구름이 일며 억수같은 비가 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어서 비를 피해야지. 하며 맹정승은 근처 용인의 마을 입구에 있는 주막으로 급히 들어섰다.
주모의 안내를 받아 주막집의 방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아랫목에는 한 젊은이가 그가 데리고 온 것 같은 여러 명의 하인들과 점잖게 앉아 있었다.
아마도 부잣집 아들이겠거니 하며 맹정승도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비가 그칠 기미를 안보이자 젊은이가 지루했던지 "영감님, 저랑 장기나 한판 두시지요" 하며 장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심심한건 마찬가지인지라 마침 잘 되었다는 표정으로 장기판을 받은 맹정승은 거푸 여러 판을 이겼고 젊은이는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행색을 보아하니 무식한 시골영감 같은데 한 번 놀려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젊은이가 맹정승에게 말을 건넨다.
"거 노인장 우리 심심한데 공당(公堂)놀음이나 한 번 합시다." 거푸 장기를 이긴 미안함도 있고 해서 맹정승은 흔쾌히 응답한다.
"그럼 묻는 말끝에 노인장이 공(公)을 붙이 시구려“ 그러면 내가 대답하는 말끝에 당(堂)을 붙일 터이니 "하고...
젊은이가 건네 온 말을 듣자하니, 이건 자신을 은근히 놀려먹는 놀이가 아닌가. 그러나 너그러운 맹정승은 빙긋이 웃으며 먼저 질문을 던진다.
"그래, 젊은이는 무엇 하러 서울에 가는 공?"
젊은이가 킬킬대며 맞받는다. "한양에 벼슬하러 간당!"
맹사성이 “무슨 벼슬인공”하였다.
젊은이가 “녹사(錄事) 취재(取材)란당.” 하였다.
맹사성 "그럼 벼슬자리 내어 줄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공?"
젊은이 "없당!"
맹사성 “내가 마땅히 시켜주겠공.”
젊은이 “에이, 그러지 못할 거당.”하였다.
맹사성 “내가 아는 사람 통해 한자리 마련해 주면 어떻겠는공?"
얘기가 여기까지 오자 젊은이와 하인들은 푸하하 폭소를 터뜨리며
뒤로 뒹굴 듯이 웃는 것이 아닌가.
젊은이 "하하... 바라지도 않는당"
그러는 사이 어느덧 날이 개어 서로는 헤어져 각자의 방향으로 길을 갔다. 주막에서의 일이 있은 며칠 후 과거시험이 끝나고 채점을 마친 후 면접하는 자리에, 면접관 맹사성 앞에 그 젊은이와 마주 앉게 되었다.
급제자들이 정승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시간에 맹정승은 상좌에 앉아 급제자를 살피며 젊은이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는데, 그 젊은이가 맹정승에게 인사하는 순서가 되자 그의 점수가 합격인 줄알고 있던 맹사성이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그래, 시험은 잘 보았는공?”
감히 정승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땅으로 향하고 있던 그 젊은이는 맹정승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상좌에 앉아 있는 우의정 대감앞에 당도하자 ‘익히 들어 보았던 목소리’가 분명한데 장난기 섞인 엉뚱한 질문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당황하여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우의정 자리인 상좌에는 몇 일전 주막에서 보았던.... 초라한 그 노인이 관복을 입고 앉아 있는 것 아닌가.
"자...잘 보았당"
젊은이도 놀라 떨며 대답했지만, 더 놀란 것은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었다.
주위의 의아해 하는 시선 속에 맹정승은 한 번 더 물어 보았다.
"그래 과거에 급제한 기분은 어떠한공?
젊은이가 어찌 달리 할 말이 있겠는가.
한참을 주저하던 젊은이는 머리를 땅에 묻으며 대답을 했다.
"주...죽고만 싶당"
"죽을죄를 지었습니 堂"
껄껄 웃던 맹사성 말씀하시길, "길가의 거렁뱅이 견공(犬公)에게서라도
항상 배울 것이 없을까 생각하는 것이 공인(公人)의 길임을 명심 하시게낭"
맹사성이 난처해하는 젊은이를 달래어 주며 몇 일전 주막에서의 일을 대신들에게 말하자 모두 감동하여 웃었으며, 그런 인연으로 그 선비는 맹사성의 임명으로 녹사가 되었고 후에 그가 돌보아 여러 고을 벼슬을 하게 해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고불 맹사성의 좋은 성품을 보여주는 가장 재미있는 일화로 공당문답(公堂問答) 이라 불리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