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은 농민의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빼빼로데이라고 하고 어른들은 가래떡데이라고도 하는 날이지요.
하지만 농민의 날로 알고 있는 분은 별로 없었습니다.
마침 농업기술센터 주관의 농촌사랑 소비자교실에서
한국농식품인증원의 석종욱박사를 모시고
'땅과 생명을 살리는 친환경농산물과 건강'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여
농민의 날 의미를 되새기고 친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지난 10월의 마지막날은 안동 다섯째이모 과수원에서 열심히 사과를 땄습니다.
엄마, 누나, 외삼촌, 이모, 외사촌들과 오랜만에 함께 하면서 땀을 흘렸습니다.
3년째 사과따기를 도와드리고 있지만 올해는 유난히 애착이 더 갔습니다.
아마도 봄에 적과를 하면서 제 손이 한번 갔던 사과나무의 결실이기에
더욱 마음이 갔던 것 같습니다.
사과를 딸 때마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똑같은 토양 위에서 같은 시기에 비슷한 크기의 동일품종 묘목을 심고
같은 농법으로, 일조량도 유사한데
나무마다 달린 사과의 크기, 모양, 빛깔이 다 다르다는 것은 신기합니다.
품질 좋은 사과가 많이 달린 나무에서도 꼭, 최상품이 있는 반면
아기주먹밖에 안되는 작은 크기에 색감도 별로인 사과도 함께 달려있습니다.
먹어보면 맛의 차이는 느낄 수 없지만 상품으로써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갓 딴 사과의 꼭지 부분을 숨구멍 정도만 남기고 잘라준 뒤
1등급~4등급, 쥬스용으로 구분을 하는데
1등급이 상대적으로 적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1년 수확의 결과가, 땀의 대가가 노력에 비해 턱없이 못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부모의 마음도 이와 같은게 아닌가 합니다.
자식의 성장 정도, 학교 성적, 성격도 이와 같은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며
지나친 욕심을 버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시간여 일을 하고 휴식시간에 마시는 시원한 물 한잔이 얼마나 꿀맛이던지...
그런데 이모들이 물을 드시는데 1번, 2번을 찾기에 무슨 말씀이냐고 하였더니
제가 얼마전에 보내드렸던 글 중에 환경보호 관련 생활 속에서 실천가능한 항목을
몸소 실천하고자 종이컵에 1,2,3 숫자를 적어놓고 재활용하고 계셨던 겁니다.
1번은 어머니, 2,3번은 각각 둘째이모, 세째이모 이렇게 말입니다.
전날부터 쓰셔서 오늘까지 최소한 6~7회는 재활용하는 것이니
일회용품이라도 환경친화적이지않냐는 것이었지요.
다섯째이모는 그 설명과 함께
"장균이 앞에선 매사 조심스럽다"는 농담까지 하셨습니다.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었지만 제게는 망치로 내려치는듯한 충격이 왔습니다.
제가 매주 보내드리는 글은 일상에서의 느낌을 반성과 함께
제 생활의 일부를 고쳐보자는 다짐으로 주로 끝내는데
그러한 내용이 다른 분들께는 부담이 될 수도 있겠구나,
저를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마 이러한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일상 속에서 느낀 부분들을 고치려 다짐의 말들을 늘어놓지만
실천은 잘 안되는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그러한 느낌과 다짐만으로도 의미가 없진 않지만 실천의지는 따라가지 못하니
실제로는 반쪽짜리도 못되는거지요.
하지만 그러한 말만으로도 다른 분들께는 제가 도덕군자처럼, 도인처럼 느껴져
거리감을 주는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됩니다.
아내도 항상 제가 조심스럽다고 하고
친척분들 중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섯째 이모는 제게 확실한 멘토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함으로써, 얘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주변인을 끌어들이는 마력,
농담 한마디 잘 못하는 성격이지만 주변사람들에게 편안함과 푸근함을 주는
이모의 경지는 제가 따라가기에는 한참 멀었다 싶습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내색 한마디 않고 밝게 웃으시며
항상 긍정의 에너지로 주변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편하게 만드는 능력은
제가 가장 닮고 싶으면서 실제로 가장 어려운 역량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나름대로의 명확한 가치관이 있지만
다른 분들께 강요하거나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얘기를 많이 하기보다는 주로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자 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인생에는 각각의 삶의 철학이 따로 있을 것이며
그것이 그에게는 최선의 삶의 방식과 목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이나 글로 표현되는 내용으로
이미 어느 정도의 부담이나 거리감을 주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조금 더 내려놓고,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경지가 되기까지
일상에서의 느낌도, 다짐도 마음 속으로 갈무리해야겠다는 결론을 맺습니다.
보내드리는 글을 놓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부분을 찾아내 몸소 실천하시는
이모를 비롯한 지인들의 행동과 말씀 한마디가
부담도 되지만 제겐 큰 힘이 됩니다.
도와드린다고 가서는 칙사대접 수준의 성찬으로 식사를 하고
사과까지 얻어 돌아오니 한 일보다 대접받은게 더 큰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했습니다.
외형상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사과지만 맛은 얼마나 좋은지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까지 매일 아침에 한개씩 먹을 정도입니다.
안심하고 껍질 채 먹을 수 있는 안전하고 맛있는 사과를 재배하고 나누어주신,
그리고 땀흘리는 즐거움을 알려주신 이모부 내외분께 감사드립니다.
전염성이 있는 사람의 얼굴(모셔온 글)=====================================
오늘은 만나는 모든 친구들에게 "야, 너 얼굴 좋아보이는구나"
하고 말을 건네보십시오.
내가 겪어본 수많은 경험으로는 누군가 나와 만난 직후
"얼굴 좋아보이는구나"라는 말을 들었들 땐
그때 당시 나의 생활이 좋건 나쁘건
나는 무언가 모를 생활의 활력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선물이었습니다.
내 생활이 밝고 즐거울 땐 "너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칭찬을 해주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왔고,
내 생활이 힘에 겨울 땐 그 친구가 "힘내"라면서
영양제 한 알을 건네주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었지요.
그런 말을 건네는데 인색했던 나로서는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나도 그 말을 자주 애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말을 해주는 나 또한
점차 활기차고 즐거워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웃고 있으면 나 또한 그의 얼굴에 전염되어 웃게되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으면
나 또한 슬픈 표정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너 얼굴 좋아보이는구나"라는 말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누군가를 만나면 이유 없이 먼저 그 말을 해주십시오.
그가 행복해지고 내가 행복해지는 일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박성철의'누구나 한번쯤은 잊지 못할 사랑을 한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