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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사건의 흐름 간단 총정리 2013년 5월부터
2014/05/08 12:44
http://blog.naver.com/bbesisi/209518061
07:08 - 세월호, 진도VTS와 첫 교신 _ MBN
07:20 - 인천발 제주행 여객선 조난 속보 증언 _ KBS
07:28 - 세월호, 의문의 전속력 항진 _ 김어준의 KFC
07:32 - '진도 부근 해상 450명 탄 여객선 침몰 중' 특보 _ 문화일보
07:40 - 배가 기우뚱하는 느낌 받았다, 창문이 박살나고 배가 기울었다 증언 _ 다수의 언론
07:45 - 쾅 소리가 났고, 긁히는 느낌 받았다 증언 _ 다수의 언론
08:00 - 안행부, 소방방재청 보고서 사고 시각, 침몰 중 표시 _ SBS
08:10 - 제주해경이 단원고등학교에 연락한 시각
08:25 - 진도군청 상황보고서의 사고 시각
08:35 - 고발뉴스가 입수한 위치 보고 시각
08:46 - '진도 침몰 여객선 구조작업 중' _ KBS
08:50 - 이미 오래전부터 배가 기울고 있다, 동영상 입수 _ JTBC
08:50 - 단원고 교감 '배에 이상 있다' 학교 보고
08:52 - 전남소방본부가 첫 신고를 접수한 시각
08:58 - 승객의 학부모가 해경에 조난 신고를 접수한 시각
09:07 - 진도VTS와 세월호 다시 교신. '가만히 있으라' 방송
09:14 - 세월호 부근에 선박이 도착한 시각 _ 진도VTS
09:22 - 해경이 도착했다는 신고자의 목소리와 문자메세지 시각.
09:23 - 침몰 직전이라고 두라에이스호의 선장이 증언한 시각
09:23 -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교신 _ 진도VTS
09:26 - 해경이 도착했다는 단원고 상황실 시각
09:33 - 드라곤에이스호 도착, 경적 수 차례 울림.
09:35 - 정부 측이 밝힌 해경의 도착 시각, 선장 선원 탈출
09:37 - 배가 좌현으로 60도 이상 기움 _ 진도VTS
09:41 - '가만히 있으라' 방송
10:15 - '바다로 뛰어내릴 준비 대비하라' 방송
10:17 - 마지막 카톡 '기다리래'
10:31 - 세월호 완전 뒤집힘
10:58 - 소방헬기 11대 급파, 해경의 지시로 돌아감
11:09 - 전원 구조 통지
11:18 - 세월호 꽝! 소리 나면서 완전히 침몰
11:24 - 해경 해난 구조 전문 인력과 장비 도착
16:32 - 국방부, 본격적 구조 및 수색은 17일 새벽부터 실시 발표
18:58 - 유가족들이 공개한 세월호 내부 동영상 촬영 시각
23:19 - '살아 있다' 카톡
00:07 - 군경, 수색작업 재개 발표
00:22 - '살아 있다' 카톡 확인 중
02:00 - '오락실 근처에 김나영 김주희 외 2명이 살아있다' 통화 주장
07:00 - 수색 재개
07:10 - 언딘 도착
11:22 - 故 한세영양의 페북에 '식당 옆 객실에 6명 살아있다' 올라옴
이후, 구조 0명.
ㅡ 7시 8분부터 9시 6분까지의 교신 기록 없음. 조작 의혹.
ㅡ 긴급상황에서 국정원까지 보고했으나 적극적 대피 지시 없었음.
ㅡ 해경은 이준석선장을 해경의 아파트에 8시간 동안 머물게 함.
ㅡ 경찰과 해경, 실종자들의 휴대폰 무단 검열
좀 더 자세하게 추가하여 정리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세월호는 7시 8분에 진도관제센터와 첫 교신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7시 8분부터 9시 6분까지 반드시 있어야 할
진도관제센터와 세월호간 교신 기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김어준의 KFC에 따르면, 관제 업무를 아예 안 했거나 기록을 조작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합니다.
여러 네티즌들의 증언에 따르면,
7시 20분경, '굿모닝 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세월호 관련한 속보를 내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시보기가 잠시 중단되었고,
다시보기가 가능해진 영상에서는 속보 관련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7시를 전후하여 이준석 선장의 통화량이 유난히 많았고,
또한 7시 30분부터 8시를 전후해 이 선장과 청해진해운 본사 직원은
의문의 통화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역을 따러 바다로 나섰던 한 어민은,
7시에서 7시반 사이에 표류하는 세월호를 발견하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세월호는 7시 28분부터 의문의 전속력 운항을 하였습니다.
7시 32분경, 문화일보는
'진도 부근 해상 450명 탄 여객선 침몰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승객들과 승무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7시 40분경 배가 기우뚱하는 느낌을 받았고
7시 45분경 쾅 하는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세월호 우측 아랫 부분에
긁히고 찢긴 자국이 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의 상황보고 자료에는 사고 시각이
4월 16일(수) 08:00경으로 적혀 있고, '침몰 중'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제주해경은 8시 10분경,
세월호가 연락이 두절되었다며 단원고에 연락을 해왔습니다.
진도군청의 내부 상황보고서를 보면,
세월호 사고 시점이 8시 25분경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한 조타수의 진술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당시 선원들이 퇴선 준비와 구조요청을 하지 않고
선체 복원(밸러스트 탱크 조정)을 위해 20여 분의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JTBC는 김시연 학생의 동영상을 입수했습니다.
8시 50분에 촬영된 화면에서,
배가 이미 오래 전부터 기울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KBS는 8시 46분
'진도 여객선 침몰 구조 작업 중'이라는 뉴스를 내보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소방본부에 최초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8시 52분이며,
승객의 학부모가 해경에 신고한 시각은 8시 58분입니다.
세월호의 선장이나 승무원의 신고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 선장의 긴급 전화를 받은 선사측은
적극적으로 대피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청해진해운관계자는 상황을 국가정보원에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적극적 대피 지시는 없었습니다.
7시간 뒤, 이 기사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사라졌습니다.
故 양대홍 사무장과 故 박지영씨는 선박직 선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의 다음 지시를 수 차례 물었으나
선박직 직원들이 이를 묵살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세월호 선원의 주장에 따르면,
이준석 선장은 갇힌 승객들을 무시하고 배를 버리라 명령했습니다.
진도VTS가 공개한 관제 기록에 따르면,
9시 14분에 이미 다른 선박이 세월호에 접근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옆에 보트가 탈출한다고 나옵니다. 그 정체는 무엇일까요?
해경의 도착 시각이 제각각입니다.
단원고 상황실 기록에는 9시 26분으로 기재되어 있고,
단원고 아이들의 문자메세지에 의하면, 9시 22분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해경의 사고 해역 도착시각은
9시 35분경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해경은 당시, 이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을 구출하였습니다.
심지어 해경은 어업지도선의 구조활동을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 이 선장은 해경의 아파트에서 8시간을 머물렀습니다.
- 이 당시의 CCTV 일부 화면이 사라지고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세월호 생존 화물기사 전병삼 씨 증언에 따르면,
3층과 4층 객실 안에 학생 수십 명이 갇혀 있으니
유리창을 깨서라도 학생들을 구해줄 것을 요청 했으나
해경은 이를 묵살했고, 대피방송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0시 11분, 단원고 학생의 마지막 영상이 기록된 시간입니다.
이미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의 가만히 있으라던 말만 믿고
아이들을 포함한 승객들은 대기하고만 있었습니다.
10시 17분에 보내온 마지막 카톡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해경은 11시 9분경, 전원 구조하였다고 통지했습니다.
이 오보는 해경에서 알려온 것이라고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11시 18분에는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였습니다.
해경 구조전문 인력 122구조대는 11시 24분에야 도착했습니다.
사고 당일, 해경은 급파된 민간잠수사, 해군잠수사,
서울시 구조팀 등의 구조활동을 막았습니다.
소방헬기 역시 돌려보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해경은 특공대를 수중 투입해 선체에 파공이 있는지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고 당일에는 16명의 잠수사만이 투입되었습니다.
즉, 사고 당일에는 구조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9시 30분부터 11시까지 해경과 군 경비정 9척이
사고해역에 순차적으로 도착했으나 선내 구조작업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해군은 해경의 통제로 구조 작업에 투입되지 못 했다고 밝혔습니다.
해군이 보유한 수중 수색 작업 인력은 어림잡아도 해경의 20배에 이릅니다.
이튿날 아침 7시 10분 경,
마침내 언딘 측의 장비와 인력이 현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언딘과 청해진해운이 계약을 맺은 시점이 17일이었습니다.
사고 발생 첫날 해수부 차관이 주재한 회의록에 기재돼 있던
‘언딘’에 대한 기록이 30일 갑자기 삭제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언딘을 위한 배려에 정부 역시 동참했음을 의심케 하는 대목입니다.
청해진해운도 해경의 주선으로 언딘과 독점 계약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날, 박근혜대통령도 진도를 찾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구난업체 관계자의 증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명은 구조해봐야 돈 받을 게 없다니까요.
배를 건져올리게 되면 보험사에서 못 물어준 돈은
청해진에서 추가해서 받고 거기서 돈 되는 거죠.
세월호에서 탈출한 단원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세월호 참사로 남편을 잃은 세 아이의 어머니가 자살을 기도하였습니다.
세월호 관련 조사를 받았던 기관사도 자살을 기도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자살을 기도하였습니다.
공기 주입은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해경 측은 세월호 상황을 축소하고 구조는 과장하였습니다.
실종자가족들이 공개하려 했던 수중영상을 도난당하였습니다.
수 백명의 경찰은 청와대로 향하려던 실종자가족들을 막았습니다.
국정원은 세월호 관련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제하였습니다.
해경 측은 실종자들의 휴대폰을 동의 없이 검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를 제안한 용혜인씨는 미행을 당하였습니다.
촛불번개를 제안한 마을공동체에는 정보과 형사가 방문하였습니다.
진도 팽목항에는 사복경찰들이 대거 잠복하고 있습니다.
조류의 영향을 덜 받는 대형바지선 현대보령호는
56시간 동안 해경의 지시를 기다리며 대기하다가 철수하였습니다.
아시아 최고의 탐사 선박 누리안호는 5일간 쓰레기만 치우며
대기하다가 할 일이 없어졌다며 현장에서 철수하였습니다.
그런데 해경은 일주일 뒤, 누리안호에 수색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다이빙벨은 뒤늦게 투입되어 성능이 확인되었지만
산소케이블이 고장나고 해경 고속정이 바지선을 들이받는 등의 사건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낀 알파 측에서 자진 철수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구조된 사람은 0명입니다.
해경의 구조활동이 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경은 지금까지도 공식 '인명구조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합동수사본부 역시 해경을 수사하는데는 늑장을 부립니다.
합동수사본부의 수장은 용산참사의 진실을 덮은 검사로 알려진
안상돈 광주고검 차장 검사입니다.
예능과 드라마가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0일까지 수색을 마무리하겠다고 합니다.
반면, 국정조사와 청문회에 관해서
여당은 야당의 정치공세로 규정한 채 부정적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자를 엄벌하겠다고만 합니다.
그러나 책임지겠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마치 정부의 책임이 아닌 것처럼 들립니다.
국민의 90%가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럼에 불구하고, 정부의 행태를 강도높게 비판하는 언론은
외신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만약 당신이 세월호의 탑승객 중 한 명이었다면
과연 무사히 구조되었을까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된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요?
참혹한 대학살에 동참한 기자 여러분,
이 질문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기사를
작성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당신의 가족이 세월호의 탑승객 중 한 명이었다면
과연 무사히 구조되었을까요?
정말로 그럴 수 있었을까요?
[출처] [세월호 참사] 사건의 흐름 간단 총정리|작성자 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