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4번째 행사, 회장으로는 2번째...
해를 거듭할수록 행사준비가 만만하고 수월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시간, 장소, 인원, 예산, 경기일정 등등 어느 하나 저절로 해결되는 건 없고 모두 맘 졸여야 된다는 건 분명 큰 스트레스...
하지만 그에 못지 않는 큰 보람과 기쁨이 기다림을 잘 아는터라 틈만 나면 전화기를 들거나 일제 문자메시지를 날린다.
난 축구보다 그런 일에 더 제격이 아닌가. 부끄럽게도... ㅠ ㅠ
본거지인 부산에서 행사를 개최하는데도 예상보다 참가신청자가 너무 적었다.
행사 당일 오전까지 10명 남짓, 엔트리 11명이 채워질 것인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개인 스케줄도 문제였겠지만 처음으로 내는 회비 10만원의 부담도 분명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회장 감투를 쓴 나에게도 10만원의 압박은 만만치 않았다.
몇주 전에도 처음 열리는 대학 동창회비 10만원에 왕복 교통비까지 20만원을 지출했으니...
하지만 쓸만한 유니폼 한벌 장만에다 숙박비, 식비, 교통비 등 써야 할 돈이 너무 많았고 일부 회원들에게 이런 부담을 떠맡길 수는 없었다.
유니폼을 제외하면 인하가 가능하겠지만, 희한하게 회비 비싸다고 하면서도 유니폼 하지 말자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돈 늦게 내면 유니폼 늦게 준다는 말에 속속들이 회비를 입금시키는 걸 보면 암만해도 회원들의 옷 욕심이 대단한가보다.
내가 보기엔 하나같이 대단한 모델감들이 아닌데 말야.
하여간 미리 받은 돈 100만원은 행사를 추진하는 주요동력이 되어주었다.
앞으로도 돈 미리 내는 사람들은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으리라. 주전 엔트리 보장은 물론이고...
그런데 이 중요한 유니폼이 고속버스 출발 2시간을 앞두고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선택이 형의 다급한 전화.
택배기사 핸드폰마저 꺼져 있어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큰일이다. 유니폼 없이 무슨 낯으로 부산까지 내려가나.
그 때 성윤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차도 별로 안 밀릴 것 같고 어차피 유니폼도 기다려야 하니 승용차로 가자고...
이 문제로 선택이 형이랑 상의를 좀 해야 하는데 금요일 퇴근무렵에 무슨 일인지 회의중이라고 전화도 안 받는다.
그러기를 1시간, 유니폼은 뒤늦게 도착을 했다고 하지만 고속버스는 운임의 10%나 되는 비싼 수수료를 물고 취소한 후였다.
원래 고속버스로 8시 출발예정이었다. 하지만 실제는 10시가 넘은 시간에 쫄래쫄래 길을 나섰다.
경고등 들어오기 직전의 선택이 형 차에 기름부터 넣어야 했지만 유니폼을 실은 마음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짐작되리라.
오는 길에 부산가서 맛 볼 음식들을 얘기했다. 밀면, 돼지국밥, 꼼장어 구이, 오뎅, 된장에 찍어먹는 순대...
하나 같이 서울에서 보기 어렵거나 먹어도 입에 안 맞는 것들이다. 이것들 모두 먹어보고 와야지 하면서...
휴게소에 두 번을 쉬며 셋이 번갈아가며 운전하니 새벽 3시가 좀 못된 시간에 온천장에 도착, 피곤한 몸을 눕혔다.
듣자하니 내가 코를 많이 골았다하니 미안하고... 분명 선택이 형도 같이 골았을테니 형한텐 별로 안 미안함.
눈 뜨고 챙겨서 밥 같이 먹자는 영진이 형을 찾아갔다. 돼지국밥 먹기로 하고는 엉뚱하게 순대국밥을 먹었지만 참 맛있었다.
밥 먹은 것 말고는 별로 한 일도 없는 듯하면서 예상외로 빡빡한 오전을 보내고 시간 맞춰 명장동 혜화여중에 도착.
가는 길에 영일이 형 태우고, 동기 형 태우고...
못 온다던 철형이가 먼저 와 있는데, 난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우리는 해병전우회만큼이나 끈끈한 해후팀 아닌가.
다음으로 태영이, 상경이(상경이도 얼굴 잘 기억 안났음), 성규, 성진이가 오고...
이어서 자기 덩치만큼이나 큰 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 용재 형까지 나타나 그럭저럭 약속된 오후 1시에 12명이다.
온다던 사람 몇 명이 안 오고, 올 줄 몰랐는데 툭 나타나기도 하고... 하여간 조직이란 늘 그렇더라.
게임시작 1시간 남았으니 그 동안 몇 명 더 오겠지 생각했으나 1명도 안 오고 1시간이 흘렀다.
경기 10분을 남겨놓고 회원들을 모아서 간단하게 회의를 가졌다.
회의라기보다 회장 원맨쇼였지만, 해후의 역사, 2005년 재결성 이후 활동, 이번 행사계획과 향후 운영방향 등...
귀담아 듣는지는 몰라도 열심히 얘기하는 중 (평소 이름만 듣고 잘 몰랐던...) 원태 형이 와서 13명이 되었고 선수교체의 여지를 굳혔다.
평소 워낙 운동을 안 해서 축구는 커녕 경기 내내 서 있을 자신도 없지만 마땅히 맡을 포지션이 없던 나는 스트라이커였다.
엔트리는 당연히 회장 독단으로 내가 정했지. 하지만 말이 스트라이커였지 몇 번의 볼터치 실수 이후 볼 처리 자신이 없다.
내가 언제는 자신감으로 공 찼냐는 생각(실력으로 찼지.ㅋㅋ)에 스트라이커를 고집했지만 결정적 찬스를 10번 정도 놓치고 말았다.
스피드도 없고, 감각도 없고, 골문 앞에서 침착하지도 못하고, 경기를 읽는 눈도 사라진 비운의 스트라이커...
비운의 스트라이커보다는 (머리를) 비운 스트라이커가 더 맞는 표현이 아닐지. 하여간 이만큼 공 못찬 적은 없었던 것같다.
그래도 어떠랴. 모두들 땀 흘리며 즐겁게 웃는 시간이면 되는 거지. 쪽팔림을 무릅쓰니 나도 즐거웠다.
경기 도중 쉬가 마려웠는데 여자중학교다 보니 무척 조심스러웠다. 화장실엔 못 들어가게 막혀있고 그렇다고 으슥한 데서 함부로 꺼냈다가 바바리맨으로 몰릴 수도... 그래서 되도록 깊은 산속으로.ㅋㅋ
경기가 끝나고 목욕탕 앞에 도착하니 정홍이 형이 도착했다.
목욕비 아끼려고 나름 머리 굴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목욕비가 싸서 쉽게 해결했다. 서울엔 억수로 비싼데...
멀지 않은 횟집에 자리를 잡으니 오랜만에 얼굴 보는 진성이 형이 온다.
술 많이 권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꽤 마신 것 같은데 도무지 취하질 않는다.
사실 첫경기 시작 이후 행사의 부담감도 별로 없었는데 그럴 줄이야. 술이 좀 세졌나?
그다지 비싼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먹었는데 정홍이 형이 회비 10만원 넘는 부분을 계산했다. 고맙고로...
다음 장소는 동기 형 가게인 M House... 이름이 무슨 뜻일까 궁금해서 물어본다 해 놓고 잊어버렸다.
애무 하우스???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았지만 어디 학교 감독인 박민서란 사람이 저쪽 테이블에 보였다.
프로신인이었던 것이 불과 몇년 전인데 벌써 은퇴하고 지도자라니... 하여튼 운동을 직업으로 하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
그건 그렇다치고 장사를 포기했는지 맥주를 추가해도 도무지 카운트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장부에다 바를 正자를 그릴 수밖에...
시원하게 잘 마시는 동안 사람들이 하나씩 술과 잠에 취해 졸기 시작하고 내일 일정이 바쁜 사람들은 자리를 떴다.
미리 잡아둔 여관으로 6명이 자러 갔는데 성진이가 따라와서 맥주 뒷풀이가 벌어진다.
지켜보던 난 잠시후 어제처럼 코 골고 잤겠지. 아침에 영진이 형이 여관까지 찾아와 사람들을 깨웠다.
이 양반은 왜 이리도 아침잠이 없어서 매년 행사때마다 잠 깨우는 걸 전문으로 하는지...
동래역 부근에서 추어탕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낙민초등학교 시합을 준비하고 있으니 철수 형이 온다.
자칭 10분용인데 요즘 운동을 안 해서 3분용이라지만 생각보다 잘 뛴다. 세컨드 윈드니 하는 건가보다.
난 오늘 수비를 맡았는데, 여러 차례 골 찬스를 내주고 우리편 공격루트는 사정없이 끊어 놓았다.
역시 난 스트라니커를 맡아야 하나보다. 언제나 내 주변에서 골 찬스가 나잖아.
포지션을 잘못 정한 것이 화근이라며 후반전에서는 스트라이커로 복귀하려 했는데 아쉽게도 게임이 성사되지 않았다.
조금 밖에 뛰지 못한 정홍이 형과 철수 형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교문쪽으로 걸어가는데 우리 엄마가 불쑥 나타났다.
곧 이어 아버지도 따라 들어오시고.
천리길 와서 가까이 있는 부모한테 들러보지 않는 큰아들 얼굴이라도 보려고 예고 없이 오셨다는데, 엄마 눈에 살짝 눈물이...
엄마 아버지랑 30분이나 함께 있었을까?
얘기를 나누다 다음달쯤 서울 한번 올라오시라는 약속과 함께 다시 헤어져 다른 사람들이 먼저 떠난 봉계로 향했다.
한우로 유명한 동네라 그런지 손님도 많고 고기 먹는 분위기도 남달랐다.
마음 같아서는 먹고 마시며 하루쯤 더 놀다 가고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이 아쉽다.
30분도 채 못 뛴 철수 형이랑 정홍이 형의 남아도는 체력을 감안, 술값 내기 족구라도 한겜 하려고 나왔는데 족구장이 없네.
운동도, 술도, 나눈 얘기도 부족했지만 이대로 모든 일정을 마칠 수밖에 없어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한 아반떼에 몸을 실었다.
정홍이 형이 또 8명 고기값 내주느라 많이 썼을 것이다. 그런데 고기값 진짜 내리긴 내린 걸까?
구미에 성규를 내려주고 얼마나 왔을까. 성규 내려주기 전이었나? 하여튼 선택이 형이랑 성윤이가 또 시합이 있다며 동두천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
얼굴만 비추러 간다고 했지만 나중에 들으니 또 경기에 참석했다네. 하여간 총각들이라 그런지 철인이다. 철인.
분당에 들리지 않고 동두천까지 직행하는 여정때문에 집에서 20km 넘게 떨어진 중부고속도로 경안(광주) 톨게이트까지 와이프랑 애들을 나오게 한 죄로 식당에서 돼지갈비를 쐈는데 한우 생고기를 먹은 나는 도무지 젓가락이 가질 않는다.
덕분에 애들이 잘 먹었는데 애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가 저물었다.
행사개최에는 어려움이 많지만 회원들의 격려와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매번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사람과 조직에 대해서는 돈, 시간, 행동 등 여러가지로 도와줄 방법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옛날 해후를 그리워하는 마음만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작은 소망 하나 가져본다.
과거 해후에 몸 담았던 사람들 모두 돈 많이 벌고, 자기 시간도 많이 낼 위치라서 가끔씩 우리 모두가 함께할 수 있기를...
지금만큼으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서로 만났을 때 지금만큼이라도 행복할 수 있기를...
첫댓글 역시 영태형 후기는 최고야~~!!! 이틀 동안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았네요...수고했습니다...행님~!!
경기내용에 관한 얘기는 최소한으로 억제했다. 제 발등 찍는 짓이라서...ㅋㅋ
굉~장히.. 현명한 판단입니다.. ㅋㅋ 절대~!! .. 경기 내용은 올리지 마소서 ^^ ..
영태~ 니는 어쩔수 없는 정보 요원이다 ㅋㅋㅋ 긴 글이지만 재미나고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모두 방가웠고 모두 보고 싶었다) 다음을 기약하기엔 멀지만 그날이 올꺼라는 기대에 마음이 설레입니다 ... 그동안 건강하고 돈 많이 벌어서 함 쏴라~~ㅋㅋ
온다고 수고했고 간다고 수고했다....그날이후 이번주는 완전 강행군이네...쫌 쉬어애겠다..입술 터졌다..우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