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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야와 만유의 회복 그리고 재림
3. 엘리야의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사활을 좌우합니다.
릭 조이너가 쓴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이라는 책은 읽어본 분은 아시겠지만 지금은 천국에서 왕 노릇하고 있는 안젤로라는 걸인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 책에서 주님은 안젤로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신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내 백성에게 줄 것이 많았으나 그들이 그에게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나의 선지자들조차도 그를 기피했다. 그는 성경책과 두어 권의 책을 사서 읽고 또 읽으면서 믿음을 키웠다. 그는 교회에 가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를 받아주는 교회를 발견할 수 없었다. 만일 교회가 그를 맞아들였다면 그들은 나를 영접하였을 것이다. 그는 바로 내가 교회를 향해 문을 두드리는 노크 그 자체였다. ... 지혜는 나의 눈으로 보는 것이지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네가 거리에서 안젤로 앞을 지나갈 때 그를 알아볼 수 있도록, 네 환상 중에 그를 보여주었다. 만일 네가 환상 중에 너에게 보여 준 그의 과거에 대한 지식을 그와 나눴었더라면, 그는 그때 그의 생애를 나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너는 이 위대한 왕을 제자로 만들었을 것이며 그는 나의 교회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만일 내 백성이 내가 보는 것같이 다른 사람들을 본다면 안젤로와 또한 그와 같은 많은 사람들을 알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가장 위대한 강단에 줄을 이어 들어서고 내 백성은 땅 끝 사방에서 와 그들의 발 아래 앉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내 발 아래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너희들에게 사랑하는 것과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내가 너희에게 주는 은사들을 투자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여러분, 제가 이것을 왜 소개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교회는 매 시대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을 알아보는 데 실패를 거듭해 왔고 그들을 비웃고 거절해 왔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반 성도나 하나님의 종들은 물론이요 때로는 선지자들조차도 하나님의 진정한 사자들을 알아보는 데 실패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축복과 유익을 놓칩니다.
마찬가지로 엘리야들이 이미 왔고 또 오고 있지만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을 임의로 대우하고 핍박할 것입니다. 그래서 빌 해몬 박사님은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임박함을 나타내 주는 푯대로서 이스라엘을 주시하고 있는 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 이룬 날을 20세기의 가장 큰 표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교회를 주님의 재림을 나타내는 표적으로 주시하는 사람들은 예언사역과 선지자들의 회복이야말로 재림의 임박함을 알리는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한 표적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가 임박했음을 알려준 가장 위대한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신학자들은 그 당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표적을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교파에 속한 목회자들은 이 세기의 가장 위대한 표적인 성령께서 왕이신 예수의 재림과 또 모든 지상에서 그의 주권을 위해 적절한 준비를 하도록 세우고 있는 선지자들의 무리,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성경에 보면 엘리야가 왔지만 아무도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기까지 세례요한이 엘리야임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같은 일이 이 시대에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엘리야로 왔을때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한 것같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 역시 그럴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인 결함을 낳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엘리야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입니다.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리고 주님은 성숙한 신부 즉 영광스러운 교회를 맞이하기 위해 오십니다.
마 25:6-7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엡 5:25-27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엡 5:25-27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님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엘리야들은 교회를 회복시켜서 영광스러운 교회로 만드는 일을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들을 임의로 대우하는 자들은 대부분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날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마 23:37-39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라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리라."
보십시오.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선지자들을 영접지 않는 자들은 주님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선지자들에게 대하여 하신 말씀이고 엘리야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엘리야들에게 문자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즉 사람들은 성경에 관한 제사장적인 설교 즉 교리적이고 전통적인 설교는 잘 받아들이지만, 하나님이 성령으로 기름 부으시고 직접적으로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는 선지자들의 메시지, 즉 선지자적인 설교는 못견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이것이 어느 시대나 계속되어온 교회의 죄악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멸망을 막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거의 항상, 그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을 통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비유로 천국에 대하여 가르치실 때 예수님은 사람들의 듣는 귀에 문제가 있음을 아셨습니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들을 때에 불거졌던 문제가 선지자들의 모체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할 때 다시 그 흉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셨습니다.
마 13:14-15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시간이 흐른 뒤, 부활하신 예수님이 밧모 섬에 유배된 요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주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전히 사람들이 선지자적인 메시지를 듣는 귀가 둔하다는 사실 때문에 각 교회에 보내는 편지마다 이렇게 호소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통해서, 결국 주님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누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주님은 교회 안에 있는 자를 들을 귀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구분하십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교회에는 양과 염소가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양의 특징입니까?
요 10:4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양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영에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들을 수 있어야 진짜 양입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예수님의 편지에 보면 이기는 자가 있고 지는 자가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이기는 자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하는 자는 지는 자입니다.
그러면 이기는 자가 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즉 제상장적인 설교뿐 아니라 선지자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기는 자가 되는 비결입니다.
4. 이 시대의 엘리야로 부름받거나 보내심을 받은 자들을 위한 충고
엘리야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요한과 같이 주의 길을 예비할 뿐 아니라 사도와 선지자들의 무리를 길러내는 엘리야가 있고, 선지자의 무리라는 의미에서 엘리야가 있습니다. 전자는 상대적으로 소수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수천수만 수십만 명에 달합니다. 엘리야의 의미를 후자까지로 볼 때 여러분 중에도 엘리야로 부름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나 여러분이 진정한 엘리야가 되려면 세례요한을 닮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인정한 엘리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왜 엘리야가 회리 바람을 타고 승천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영감 때문이 아니고 그의 심령이 예수님을 꼭 닮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29절에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혼자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비결 역시 예수님과 같습니다.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이처럼 에녹은 들림받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산 채로 승천하신 것처럼 승천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엘리야 역시 같은 원리로 승천했습니다. 즉 능력 때문에 승천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 닮았기 때문에 승천한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원리로 휴거도 발생할 것입니다(엡5:27-28).
엘리야가 주님을 닮은 사람이었다는 것은 엘리야 자신에 대한 기록에는 충분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엘리야의 심령으로 온 세례요한을 통해 밝히 볼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세상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자신의 제자들마저도 포기했습니다. 신부가 아닌 신랑에 관심을 가지고 제자들이 떠날갈 때 친구의 기쁨으로 충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마지못해서나 억지로가 아니라 즐거이 자신의 제자들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여기에 어떤 이기심, 어떤 야심, 어떤 탐심, 어떤 시기 질투 욕심이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엘리야의 심령인데, 이것은 곧 예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비우고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빌 2:5-7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므로 엘리야의 심령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엘리야의 심령 즉 예수님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엘리야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 없이, 즉 엘리야의 심령 없이 엘리야의 능력만 구하고 받으면 가짜 엘리야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면, 주님이 세례요한에게 엘리야의 심령을 먼저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엘리야의 심령이 없으면 엘리야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엘리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부를 예수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의 추종자로 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의 왕국이 아닌 자기의 왕국을 세우는 자입니다.
한편, 이를 통해 우리는 왜 주님이 마지막 날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내어쫓고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정죄했는지 그 이유 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의사 자격증이 없으면서 의사 노릇하면 불법이 되고 변호사 자격증이 없으면서 변호사 노릇하면 불법이 됩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심령이 없으면 엘리야의 능력이 있더라도 진짜 엘리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심령이 없이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하는 자는 결국에는 불법을 행하는 자로 정죄 받게 됩니다(마7:22-23).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마음이 바르지 못했던 마술사 시몬처럼 능력에 혹하여 엘리야의 능력 혹은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만 구하지 말고 엘리야의 심령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 주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엘리야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엘리야에 대해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엘리야의 사명은 만유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엘리야의 사명을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겠습니까?
행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이처럼 만유의 회복이 있은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만유의 회복이 있기까지 예수님은 재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유를 회복시키는 엘리야의 사명은 다른 말로 하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만유를 회복시킴으로써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른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만유를 회복시키는 것과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길을 어떻게 예비합니까?
벧후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예수님의 재림이 왜 늦어지는지 아십니까? 회개치 않은 심령들이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고 오실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시면 세상뿐 아니라 교회에까지도 회개치 않은 자가 너무 많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차마 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을 예비하고 그 길을 닦는 것은 다른 것으로는 안 됩니다.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사람들을 회개시킴으로써만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례요한의 사역을 통해 입증될 뿐 아니라, 다음 말씀을 통해서도 명백하게 입증됩니다.
행 3:19-21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이 말씀을 보면 회개하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문맥을 보면 '회개'와 '만유의 회복'이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는 '회개하면 예수님을 보낼 것'이라고 했고, 뒤에서는 '만유의 회복 때까지는 재림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을 지연시키며 회개할 기회를 주고 있는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회개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더 늦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 같이 각자의 죄를 회개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