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46>
1. 최근 1990년대 영화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던 왕가위의 영화가 ‘리마스터링’되어 상영되고 있다. 인간의 고독과 관계의 절망을 절묘하게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왕가위의 작품들 중 마지막 작품이 2004년에 제작된 <2046>이다. 미래와 과거가 결합되고 인간의 애정이 경험할 수 있는 특정한 형태의 만남과 좌절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영화는 진한 허무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사랑은 지나간 후에야 추억으로 인식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만 의미있음을, 그리고 절묘한 시간적 우연이 함께 하는 결코 수학적으로 예견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정임을 재현한다.
2. 영화는 현실과 허구의 세계 속에서 작가 차우(양조위)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행된다. 영화의 시간은 <화양연화>의 헤어짐에서 시작된다. 자신만의 이별의 슬픔을 캄보디아 정글 속에 봉인시키고 싱가포르로 온 차우는 고독과 방황 속에서 도박에 빠지고 그 곳에서 한 여인(공리)의 도움으로 잃었던 돈을 찾을 수 있지만 결국 동행하지 못한 채 홍콩으로 돌아온다. 홍콩에서 새로운 여인들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화양연화>의 아파트가 아닌 호텔이다. <2046>은 호텔의 방 번호이자 그가 호텔방에서 만들어낸 소설 속의 미래이다.
3. 호텔에서 만난 한 여인(장쯔이)과의 만남은 일종의 ‘서로의 시간’을 빌려주는 관계로 시작하며 쾌락의 극대를 보여준다. 또 호텔 사장의 딸(왕페이)의 일본인과의 연애를 도와주면서 시작된 동반관계도 중요한 사랑의 감정을 만나게 한다. 하지만 뜨겁지만 가벼운 관계는 여인의 예기치 못한 절실한 요구와 직면하고 호텔 사장의 딸은 일본인과의 결혼이 성사되어 일본으로 사라진다. 사랑을 원하지도 않았고, 사랑을 꿈꾸지도 않고, 단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그 자체에 충실했던 사람은 결코 사랑에 안착할 수 없다.
4. 사랑은 그가 쓰고 있는 소설 <2046>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인조인간을 사랑하는 일본인으로 자신을 묘사한다. ‘2046’은 모든 것이 영원한 세계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추억을 찾기 위해 ‘2046’열차를 탄다. 소설 속에서도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열차를 탔지만, 미래에서 만난 여인과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인조인간에게 같이 가자고 말을 건낸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가 머무르고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장소와 관계는 없다. 사랑은 끝없이 반복되고 서로에 대한 갈망은 넘쳐나지만 사랑은 무엇도 창출하지 못하는 불모의 관계일 뿐이다. <2046>은 홍콩의 중국 반환에 대한 수많은 은유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러한 은유와 관계없이 <2046>은 사랑의 경험 속에서 인간이 조우하게 되는 다양한 고독의 형태를 집약한다. 때론 관계의 불가능이, 때론 나의 허무가, 때론 상대의 슬픔이 관계의 지속을 방해하는 것이다.
5. 1990년대 나는 왕가위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 가끔 영화잡지에서 그의 영화에 대한 평을 읽을 때, 어쩌면 그가 만들어내는 사랑과 고독이 나와 닮은 것은 아닌지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때에는 영화 속 고독으로 들어갈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나는 현실 속에서 허우적되었고, 현실에서 탈출하려고 했다. 쾌락과 욕망에 대한 탈주를 포기하지 않은 채, 그럼에도 자신에 대한 과도한 애정 때문에 나는 내면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최근 ‘왕가위’의 영화를 보면서 고독하면서도 쉽게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인간들의 안타까움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것은 30대의 나의 젊음이었고, 탈출하지 못하는 관계와 공간에 대한 절망이었다. 왕가위의 모든 영화를 보면서 1990년대의 외로움과 방황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그 시절 나에 대한 연민을 시간이 흐른 후에 내가 공감할 수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아무튼 진한 외로움이 느껴진다. 과거처럼 고독하게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싶지만, 술에 취할 수 없는 현재의 몸이 조금은 안타깝다.
첫댓글 지난 일들에 대한 회상은 삶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2046까지 좋은 날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