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김씨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김진송 씨의 책이 출간되었다.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현문서가)
는 목수 김씨의 장인 정신과 그만의 기발한 상상력이 빚어낸 매우 특별한 책이다. 사실 목수 김씨라는 이름이 알려질 때부터 그는 보통의 목수와는 뭔가 다른 느낌을 주었다.
호암미술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잘 나가던 전시기획자였고, 몇몇의 미술책을 낸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 연구자이기도 했다. 목수 이전의 그의 경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 현대성의 형성]
라는 그의 저서는 근대에 관한 탁월한 저서로 평가받기도 했다. 또한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 [광고의 신화 욕망 이데올로기] 등의 책을 기획한 출판기획가이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 팔방미인처럼 보이던 그가 이 모든 일을 그만두고 어느 날 갑자기 목수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일 년 후, 그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작품들(그는 자신의 작품을 절대로 작품으로 부르지 않는다. 한사코 목물木物이라고 고집한다.)을 갖고 "목수 김씨전"(가나아트센터)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홍수로 떠내려 온 나무를 건져다가 의자를 만들기도 하고, 저 남쪽 지방에서 썩 오래된 한옥이 헐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달음에 뛰어가 구해온 나무로 범상치 않은 평상을 만들기도 했다. 작년까지 그는 네 차례의 "목수 김씨전"을 열었다. 그의 고집스러움이 마침내 특별한 목수 김씨로 인정받게 한 것이다.
그는 네 번째 "목수 김씨전" 이후로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만든 물건들은 의자도, 탁자도, 평상도 아니다. 그 작품들은 전 세계 어디를 뒤져보아도 만날 수 없는 특별한 물건들이다. 그는 이야기를 나무로 깎은 것들이라고 한다. 대체 될 성싶은 이야기이기나 한 것인가? 이야기를 나무로 깎다니! 비를 좋아하는 아이의 이야기, 회오리바람 이야기, 지구에서 살아남기 이야기를 어떻게 나무로 깎을 수 있단 말인가? 놀랍게도 그 해답은 책을 펴보는 순간 너무도 유쾌하게 제시되고 있다.
여러 개의 작품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한 개의 작품만으로도 놀랄 만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스승은 동화 속에서나 찾을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피노키오를 깎은 그 목수장이 아버지 같은?.
116점의 나무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79편의 이야기
이 책에는 79편의 이야기와 116점의 나무 주인공(간혹 쇠로 된 작품도 있다)이 등장한다.'절간의 물고기' '아름다운 그녀' '메뚜기 우주선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신은 바보' '잡념이 많은 사람' '세상 밖 한 걸음' '책벌레와 책벌레' '생각이 자라는 바위' '십이지 동물농장' '도시를 나는 여인' '검은 개의 전설' '비루먹은 용' 등 그가 깎은 이야기들은 제목만 봐서는 어떤 이야기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어떤 이야기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단 한 줄로 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짧은 단편소설 길이의 이야기도 있다.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가 하면, 때로는 시처럼, 때로는 산문처럼, 때로는 현대인을 위한 동화나 우화처럼 가뿐히 읽히기도 한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나무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절묘하게 기록하고 있다.
정신없이 읽다보면 독자들은 절간에 물고기가 걸린 사연처럼 있을 성싶지 않은 이야기를 그대로 믿게 되는가 하면, 일상의 미묘한 순간을 포착해내는 데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기도 한다. '생각이 자라는 바위'쯤에 이르면 의미 있는 미소를 절로 머금게 되고, '짐을 실은 노새'의 진한 농弄 앞에선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골목의 그 아이'는 오래 전 묻혀 있던 기억을 발견하게 하는 의외의 기쁨을 갖게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목수의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탁월한 글솜씨로 꾸려낸 이야기들이다. 때로는 가벼운 터치로, 때로는 기발한 장면 전환으로 보는 이를 경쾌하게 끌고 가고 ,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는 시적인 서정성과 우리말을 제대로 공들인 절묘한 어휘 선택이 삽시간에 여유로 다가온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이 특별한 이야기들을 깎는 일에 미쳐 있었다. 도무지 말이 안 되고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속으로 기어 들어가 꼬물거리는 벌레처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보냈다고 한다. 이상한 세상의 악동처럼 절간에 달린 목어를 만들어 놓고 불경한 생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인어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마어를 만나기도 했단다. 책벌레를 만나 즐겁게 말을 건넬 수도 있었고, 피라미드의 비밀을 발견하고 나서 혼자 즐거워 낄낄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낯선 세계가 항상 즐거웠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가끔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고민이 들기도 했고, 먼 우주에서 날아 온 친구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으며, 세상 밖으로 나선 한 걸음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바보 같은 신을 보며 위안을 삼기도 했고, 일에 지칠 때면 커다란 물고기를 기다리며 나른한 졸음에 빠져 들기도 했다.
깎고 나서
이것들을 깎고 난 지금은 도무지 그동안 왜 그랬는지를 정말로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더 이상 그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의 작업실은 남한에서 나무의 종류가 가장 많다고 하는 경기도 마석의 축령산 자락에 있다. 그가 손수 빨간 벽돌로 지은 작업실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갖가지 연장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널따란 작업대가 온통 상처투성이다. 상처투성이기는 그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망치에 두들겨 맞은 탓인지 손톱 밑에 검은 피멍이 제 살인 양 들어 차 있었다. 그리고 작업실 한 켠의 방에선 소란스러운 이야기들이 들렸다. 그의 작품들이 제각기 제 이야기들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이 참가하는 전시가 내년(2004년) 2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수선스러운 주인공들과 독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www.namustory.com에서도 들을 수 있다.
첫댓글 필자의 이력도 특이한 것 같고, 나무 인형도 참 예쁘네요..목수 김씨 책 한번 사봐야 겠다.
흰색 바탕의 표지는 웹에 올릴때 이미지 보더값(예;border=1)을 줘야 확실히 경계가 쳐져서 잘 보입니다.
꼭 읽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