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00년 7월 24일 한국 방송 비평회 주체로 개최된 "드라마 허준에 대한 비평"의 발제문으로 서울의대 외래 조교수인 신동원 교수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1. 부족한 사료, 꾸며진 생애
자신이 후대에 이렇게까지 유명해지리라고 허준은 살아 생전 꿈에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럴 것임을 생각했다면 허준은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을 어떤 식으로든 좀더 충실히 남기지 않았을까? 또 주변의 이웃이나 학자들, 그리고 사관(史官)들이 축구경기장 골문 뒤에 사진기자처럼 훨씬 신경 써서 그의 행적과 생각을 붓끝에 담지 않았을까? 그러나 당대에는 허준 자신을 포함하여 그 어느 누구도 '허준'이라는 인물이 후손의 입술에서 그렇게 회자될 것이라 기대한 인물은 없었다.
이 점,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흔하디 흔한 개인의 문집 안에 들어 있는 무수히 많은 행장(行狀)과 만장(輓章), 그리고 묘비명 안에 허준이라는 이름 두 자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2천 종을 영인한 경인문화사 본 문집 색인을 찾아보아도 허준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그의 이름 두 자조차 발견하기 힘들다. 이는 그가 매우 뛰어난 의원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삶과 의술이 여전히 조선 사회의 의원 대접을 초월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조선의 어느 의원의 경우도 상세한 삶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이름 몇 자라도 남긴 인물은 그나마 성공한 것이었다. 그런데, 허준은 그 이상을 남겼으니 의원으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뿐이지 그 이상 그 이하가 아니다.
우리의 경우는 허준의 시대와 다르다. 이미 허준은 우리 사회의 최고 스타이다. 그는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아픈 자를 어루만져주는 의사의 대명사가 되었다. 소설과 드라마는 그의 행적과 의술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앵글을 잡아낸다. 신분 상승에 대한 강한 욕구, 사랑, 애정 어린 진료, 어의로서 승승장구 등 시시각각 카메라 각도를 바꾸어댄다. 그 장면들은 너무 생생해서 마치 우리 주변의 일을 보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허준 당대의 사람보다도 더 '허준'에 대해 훨씬 잘 알게 된다. 그 모든 것이 허구이기는 하지만. 소설가와 드라마 작가는 단지 역사상 의원 허준이라는 인물만 빌려 왔을 뿐이다.
그들은 허준의 생애와 의술의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점, 다행스러운 일이다. 역사적 진실을 거의 말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그렇지 않은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토록 드라마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유의태, 삼적대사, 예진, 유도지 등은 모두 꾸며진 인물이며, 그렇기에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 또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만일 진짜와 가짜가 서로 그럴 듯하게 복잡하게 섞여져 있었다면, 소설과 드라마 속의 허준의 삶과 의술 중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구인가를 가리기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사료의 부족은 상상의 영역을 넓혀준다. 소설과 드라마는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인간 허준"의 삶을 흥미롭게 엮어냈다. 반면에 역사가에게는 사료의 부족이 치명적이다. 음식을 만드는 데 비유한다면 조미료는 물론이거니와 기본 재료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거기서 어떻게 맛난 요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겨우 입에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음식을 만든다면 그나마 최선을 다한 셈이다. 하지만 소설가와 달리 역사가는 한 인물의 온 삶을 다 말할 필요가 없다. "역사적 가치"에 초점을 둘뿐이다. 이를 말해줄 수 있는 사료만 있어도 최소한 충분하다.
역사가는 왜 4백여 년 전 인물인 허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그가 사람을 가리지 않는 인술을 펼쳤기 때문인가? 그가 다른 의원보다 월등한 의술 솜씨를 지녔기 때문인가? 그가 신분의 장애를 극복하고 최고 의원 자리에 올랐기 때문인가? 이 때문이 아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인술을 펼친 의사는 무수히 많았고, 솜씨 좋은 명의와 양의(良醫)도 적지 않았다. 최고 의원도 늘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나 그 중 의학 책을 남긴 사람은 드물며, 그 가운데에서 {동의보감} 같은 책을 쓴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가 허준이다. 당연히 역사가는 일차적으로 허준의 학문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역사가에게는 그의 학문의 배경, 그의 학문의 진전 과정, 그의 학문의 학술적, 사회적 의의를 밝히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