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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관한 백서 외 2편
김명환
섣불리 화내면 안 돼
첨부터 액자가 있었고 기타는 분위기를 요리하는 중이었다 꽃은 파라다이스를 내놓고 예상은 현상을 요리했다 피아노는 봄을 내놓고 바이올린은 가을을 신청했다 따끈한 엉덩이는 겨울요리랍니다 36.5도에 먹어요 연인이 내놓은 겉저리는 금방 상했다 어떤 이는 계량컵에 아침을 가득 따르고 어제를 탁탁 깨트려 조리했다 무서워가 구워져 나왔다 액자가 안 보인다 야단났다 도대체 누가 가져갔을까 실내화 위에 웅크린 고양이가 힘을 썼다 소화된 액자가 흘렀다 그래도 액자라고 단언할 수 없다 고양이가 내놓은 몽정일 수도 있다면
이제부터 큰일이니까
첨부터 액자가 있었고 그 아래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요리하는 중이었다 꽃이 내놓은 파라다이스 그림자를 문득 돌아보자 작은 혹이 보였다 혹은 푸카푸카를 시작했다
이런 그림은 어떤가요
화요일이죠 건널목을
무사히 건너 아뜨리에를 갔죠
2층에서 내려다보니 건널목도 무사했어요
요즈음은 뭐라도 약간씩 불안해서요
리아스식 해안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연노랑 치마를 입은 여자예요 흰 벽돌집에
우거진 장미넝쿨을 넣고 여자의 건너편에
팔짱낀 남자를 넣었지요 얼핏보면
고개를 치켜든 남자가 뒤쪽 고요한 바다나
단단히 솟은 산을 응시하는 듯하지만
연노란 빛으로 여러 번 덧칠되어
편안한 잠처럼 따뜻해 보이는
여자의 자태에 빠진겁니다
지하철 계단이나 승강장을 지나칠 때
아무도 모르게 흠칫 할 정도로 얇은
잠자리 날개를 숨겨 보내는 사람이 있는데
이 남자가 그래요 여자도 그걸 알아채고
뒤늦게 실소를 끼워 남자에게 보내는데
남자의 팔짱 위에 곰실대는 분홍빛이 여자의 마음이죠
둘은 꽤 오래 이럴 것입니다 저들을
온몸이 따끔거리는 표정으로 갈라놓으려니
무언지 모르게 엉성하지만
어떡하나요 아쉽게도 저들의 관계를
더 이상 장악할 기술이 없군요
짙은 보라색을 버무려 거칠게
나이프를 비틀어 자국을 냅니다
아무래도 바다가 허전하군요
노을을 가득 싣고 들어오는
한 척 고깃배를 띄울까요 여자의
창백한 눈빛을 가릴 우아한
레이스 모자 하나 비스듬히 씌워 주고
칼을 놓습니다 뒤로 몇 걸음 물러서니
팔뚝에 내려앉은 오후가 홀짝거립니다
낙엽을 분석하다
칭찬>
대단하다 어디에 소속되거나 자의로 특별한 상태로 오래 남지 않는다 등장하고 집무하고 퇴진까지 결과를 수긍한다 한 번도 위배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청렴성도 높다 돈과 관련된 보도를 읽은 적 없다 공정성 역시 신뢰할 만하다 사기꾼이든 도둑이든 부자나 가난한 노동자나 뭇짐승과 바람의 눈길을 받아들인다 비가 다녀간 저녁 자동차 불빛에 자지러져도 스캔들로 인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는 자유롭다 누구의 방에도 따로 들지 않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어떤 변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단순한 과정을 반복하며 눈물과 경탄과 한숨과 쓸쓸함을 그러모으는 스타다
슬픔의 접선>
딱 한 번 가벼운 발은 난다 마른 날개도 얻는다 날아 내리기도 하고 달리다 날아오른다 어린 오후나 솟아난 밤이나 초롱한 아침에 귀를 기울이면 가벼운 그러나 싫증나지 않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무엇을 위한 목적어가 아니다 듣는 이의 마음에서 의도가 결정된다 상
처받은 자에게 더 크게 들린다 입이 없으니 성대도 없다 그래서 몸을 던진다 소멸의 순간 아우성대는 사진 한쪽에 유난히 긴 그림자가 찍혀 나온다 새로운 종種의 슬픔을 접선하기 위해 자학하는 언어배양주식회사 사원 즉, 시인이다
뻔하다 그러나 멋지다>
그가 대단한건 팀 없이 발휘하는 테크닉 때문이 아니다 탁월한 지표 탓도 아니다 절정에서 돌아가 리바이벌하지 않는 화끈함에 있다 붉고 뜨거운 분열로 속을 비워내는 걸 보면 몇몇 우리가 아는 손님과 다르다 제때 돌아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전전하다 브라운관 구석 우거지상으로 찌그러지는 무리를 매번 봐야하는 우리는 얼마나 많이 슬픈가 우리가 마음을 열고 흠뻑 취할 수 있는 것은 한때의 점령지를 떠나며 당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 그래서 뻔한, 뻔해서 더욱 돋보이는 밟히고 쓸려도 두려워하지 않는 늠름함이다 낙엽주酒라고 해두자 낙엽주는 비좁고 가난한 달동네에서 도수의 끝점을 찍는다
절망은 우리의 몫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자르고 묻어두고 갈고 찢고 터트리고 훔치고 바꿔치고 겹치고 굴리고 늘어트린다. 그런 후 종내 애써 쌓아둔 탑들을 한순간에 무너트리고 그 잔해의 허무 속에서 모질게 방황한다. 모호함과 뚜렷함을 동시에 요구하며 어색한 행간의 파고 속을 떠도는 우리는 어휘를 쓰는 족속이다. 말을 글로 쓰는 순간, 그것들이 함유하고 있는 달콤한 과육과 불타는 절망은 우리의 몫이다. 무언가를 포착하고 받아들이고 확장과 해체를 통한 재구성으로 세상에 나온 글의 모든 책임은 작가에게 있다.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갖는지 매순간 촉각을 곤두세워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는 오늘날 비참할 정도로 침체되어 있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다만 스펙트럼화 되고 급변하는 타 장르의 빠르고 편한 문화에 사람들의 의식과 시선이 몰려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은 시가 얼마나 문학적 가치를 지향하느냐, 시의 격조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지성과 감성과 이성의 눈을 크게 뜨고 지금의 문학이, 오늘의 시가, 존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의 문학적 세계관을 인식하고 모두의 이상을 한껏 밀어올릴 수 있는 책과 여행을 통해 그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긴 시간 시는 어둡고 느리게 침잠해 왔지만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크리스토퍼 메릴은 사람은 암울한 시대에 시를 찾는다고 했다. 시인은 가난하고 병든, 지치고 억울한 무엇인가를 위해 그들의 슬프고 어두운 밤을 열어 수첩에 적어야 한다. 환치와 변형된 말의 열매를 매단 찬연한 아침을 행간마다 심고 고단한 현실 혹은 희망찬 미래를 상상해 내야함이 시인의 숙명인지 모른다.
나는 도시에 엉켜 살며 시를 읽는다. 네루다, 카잔차키스, 옥타비오 파스를 만나기도 하고, 노인과 소년의 대화를 기록하기도 하며 어두운 골목 안 낮은 창틀에 반짝이는 단 하나의 장미꽃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마음속에서 ‘늦었다’와 ‘늦지 않았다’가 패를 갈라 싸운다. ‘늦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그 소리를 인정하기에는 이미 늙었지만 시로 향하는 옥신작용은 멈추지 않는다.
어둠 속으로 역사를 빠져나가는 막차를 보며 발을 굴렸다 친구의 꾐에 빠져 보게 된 연속극 여로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세발차를 직접 몰고 시내로 나와 나를 매달았다 비 맞은 돼지풀처럼 자라는 내 호기심을 꺾었다 새벽이었다 부엌에 잠든 자전거를 끌어냈다 하나의 언덕을 넘기 위해 이튿날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비웃음처럼 내리는 실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끌고 철 대문을 넘었다 뒤뜰의 패랭이꽃들 돌배나무 최근 콜렉션한 무릎 높은 암노루에게 입술을 깨물어 보냈다 시내로 가는 언덕은 비를 따라 이어지고 구부러진 길마다 닻 같은 한숨을 내렸다 구구절절 발을 포개던 형, 나는 어느 손가락에도 끼어 들지 못해서 구부러진 링처럼 굴러 갈 거야 잘 있어 안녕 눈물은 비가 닦아주었다 엉덩이를 들고 페달을 밟았다 어둠이 시린 이를 내놓고 낮게 웃었다 젖은 옷 사이로 냉기가 흘렀다 하늘의 어느 상회가 열렸을까 길은 발가벗긴 채 흠씬 젖었다
아버지 전 당신을 구걸하지 못하겠어요 말대꾸 한번 못하는 시체놀이는 이제 그만 둘래요 밤마다 엄마가 찾을 때 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아세요 누나가 대롱거리던 감나무 아래 있었어요 비가 더 크게 웃었다 귀 밖의 말들이 귓속으로 쏟아졌다 폭포수 시그널의 아랫배 함부로 구겨 넣은 편지, 트라이앵글의 안쪽을 울리고 되돌아온 말고삐를 젖꼭지처럼 잡고 메아리가 담긴 봉지를 쳐들었다 헤이 헤이 헤이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은빛이라고 했다 삐거덕거리는 자전거 페달 안쪽 떨어져나온 잉어비늘 하나 러시안 훅처럼 훅훅 귀 밖을 스쳤다 월요일은 별 걱정 없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겠지 교단 위 마이크가 백 살은 넘게 살 목소리를 쩌렁 쩌렁 불러오겠지 내가 역전에 도착해 끈적거리는 코피를 소매로 훔치며 최후의 총탄 같은 차표를 살 때 헤이 헤이 헤이 어머니 왜 똑똑 부러지는 내 실낱같은 팔다리를 그냥 두셨나요 나는 어머니의 영국제 경대를 발로 찼어요 뒤집어 보시면 깨진 뒤쪽 면 조각난 거울 모서리에 악을 쓰던 내 발길질 모습이 보일 거예요
말, 꿈, 윤희를 지우며 비가 내렸다 먼 모퉁이 기차는 오발탄을 발등에 맞은 형의 비명을 지르며 나타났다 역사 마당 끝에도 삼손 다리털 같은 돼지풀이 수북 자랐다 달리는 기차 맨 끝 칸에 서서 투망을 뿌리는 어부처럼 돼지풀 가운데로 책가방을 던졌다 그리고 모든 소침한 끈을 놓았다 투망은 아버지를 덮치며 빗속에 가라앉았다 기차는 사슬을 철컹거리며 달렸다
어머니가 말릴 수 없었던 아버지의 광대뼈가 내게도 부지런히 부풀고 있었다 몇 번의 직장을 잃고 몇 권의 지루한 책을 훔쳐본 후에야 아버지의 낚싯대 끝을 죄다 분질러놓고 나온 손이 부끄러웠다 연속극은 더 이상 보지 않았다
──졸시 「돼지풀 마당」 전문
유난히 조숙했던 나는 충동적 가출을 했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으로 기억되는데, 위의 시는 시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더듬어진 기억이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나는 마땅한 브레이크가 없던, 아웃사이더였다. 망아지처럼 살던 80년대 초 아버지와 젊은 누나와 큰형을 한꺼번에 다 놓쳤다. 6개월 사이에 덮친 파도로 가족은 저마다 혼비백산했다. 어머니는 석가래와 기둥을, 누이들은 벽과 지붕을 잃었다. 모두 제정신이 아닌 채 캐나다와 미국으로 철새처럼 달아났다. 커다란 상실감은 가족의 얼굴에 햇살을 걷어갔다. 통 웃지 않았고 이별은 차분했다. 어머니와 누나와 남은 형과 동생과 조카들이 떠나던 김포 비행장을 돌아나오며 나는 잠시라고, 잠시의 도피며 헤어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은 벽마저 무너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혼자 남은 나는 인천과 영등포, 수원과 안양의 밤무대를 전전했다. 사이키 조명 아래 드라이아이스에 휩싸여 죽은 누나의 노래와 형의 눈동자를 불러와 사자死者처럼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면 역전 빠찡코에 들려 밤을 새웠다. 극심한 우울과 대인 기피증이 생겼다. 그 이상한 질병은 오랫동안 나를 구겨놓는 숙적이 되었다. 다 타 들어간 촛불처럼 가물거리다 꺼지는 기억은 일종의 메멘토Memento현상을 동반하기도 했다. 의심과 기억상실을 두 눈 깊이 들어앉힌 채 동수원과 북문 또는 남문의 어느 주점에서 온 새벽을 행려자처럼 기울어지기 일쑤였는데,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다.
아끼던 악기를 팔고 가방 두 개를 꾸린 채 어느 날 공항행 버스를 탔다. 배웅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고소공포증에 시달렸지만 시카고 공항에서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써바이브 지역 어느 한적한 아파트에 짐을 풀고 누에고치처럼 긴 잠을 잔 다음날 아침, 나는 그제서야 어머니와 가족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커다란 창으로 드는 밝은 햇살 아래 아침상을 두고 둘러앉아 가족들의 얼굴을 보았다. 가족 모두 싱싱한 양배추 같았다. 낮선 이국이 얼마나 좋길래 저리 밝아졌을까? 이민 생활은 마치 아무 일 없듯 그렇게 순탄하게 시작되었다.
겨우내 모로 누워 벽을 쳐다보다가 숨을 몰아쉬곤 했다 전차가 빌딩의 허리를 뚝 분지르며 지나갔다 더 이상 담배를 물지 못했다
자작나무 숲은 자꾸만 호수 쪽으로 기울었다 보리매미 만한 바퀴벌레들이 비스켓을 끌고 가던 아파트에서 이사를 했다 써바이브 지역 표지판은 숫자를 고쳤다
시카코 서부교회에서 살 같은 국수를 먹었다 가끔 귀에서 전차소리가 났다 꼬깃한 백달러를 헌금하고 돌아온 탕자를 부르며 훌쩍거렸다 백달러 보다 더 많이 울었다 환풍기에 몰려든 비둘기들이 발을 헛디뎌 날아올랐다 축도가 시작되고 큰 눈이 내렸다
──졸시 「결빙기」 전문
하지만 이국생활은 갈수록 불편하고 힘겨웠다. 친구들과 성주산 아카시꽃이 못내 보고픈 5월엔 밤마다 울적한 채 잠이 들었다. 심지어는 고국의 집 앞 전봇대와 가로등마저 그리웠다. 수 없는 고민 끝에 혼자라도 다시 돌아가자 결심을 했다. 잘 적응된 아내와 아들을 설득하긴 어려웠다.
역이민 후 몇 번의 계절이 활강하는 스키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부천 에이A구역 김양숙 시인을 만난 것은 탈출구를 찾아 헤매던 2007년 봄이다. 그는 잦은 이사와 뒤바뀌는 환경이 시인의 필수요건이라며 준비된 사람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 재주와 노력은 그 말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게 격조 높은 산문시를 쓰는 세련된 제주의 오름 같은 미인이다. 그녀가 간간이 곁들이는 야사野史는 조직의 감칠맛 나는 양념이었고, 새로운 활력을 느끼게 했다.
어느 날 김 시인의 소개로 성주산 기픈구지에서 또 다른 시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몇 개월의 고민 끝에 스터디를 시작했다. 비로소 제대로 된 글꼴이 무엇이며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오늘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글의 향방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마치 불가능한 미로의 문이 열리고 빛과 길이 보이는 듯 기뻤다. 오브제와 콜라주, 메타텍스트를 통해 나는 시가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었다.
생각컨대, 우리는 그 어떤 일도 혼자 할 수 없다. 기구나 기계를 빌리기도 하고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기도 해야 한다. 좋은 문학, 훌륭한 시의 양식을 답습하고,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여행하고, 사색에 잠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큰산을 넘는 방법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시를 떠나지 않는다면 상상을 뛰어넘는 완성된 모반의 그 날이 오지 않을까.
나는 비 오는 날의 쓸쓸함이 좋다. 습한 체감과 가라앉음이 어쩐지 슈게이징shoegazing류의 음악 같다. 구두를 내려다보며 걷던 어느 봄, 산비탈 복사꽃 그늘에 앉아 기형도를 읽다가 상심했다. 천재는 왜 빨리 제 그림자를 접는가! 그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광명시 하안동 그의 기와집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뒤늦게 찾아와 두드리는 감성은 심야극장을 찾게 하고 사춘기 소년처럼 철없이 흔들리게도 했다. 밤새 차들이 헐떡이며 지나가는 언덕 끝집에서 글을 읽는다.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별들이 일제히 창문을 여는 그 날을 위해 오늘도 한 권의 책을 편다.
김명환 / 1960년 안동에서 태어났으며 2006년 『문학 21』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