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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대학살 90년]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을 청소한 대학살 |
| 일본은 은폐·왜곡, 한국은 무관심해 조사·사과 요구 안해 |
90년 전인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수도 도쿄가 속한 관동 지방에서 규모 7.9의 큰 지진이 일어났다. 이 자연재해는 수많은 한국인이 일본인 손에 학살되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관동 대지진'으로 기억되는 이 사건에 대해 "이제 '관동 대학살'로 고쳐 부르자"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허동현 한국현대사연구원장은 "피해자였던 우리의 입장에서 용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방화·폭동을 저지르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했고, '조선인은 죽여도 괜찮다'는 선동까지 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에 버금가는 잔혹한 인종 청소, 대량 학살이었다. 학살된 한국인은 6600여명이라는 것이 기존설이지만, 1만~2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더 비극적인 것은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조차 제대로 된 진상 규명 시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후안무치했고 한국은 게을렀다. 사건 이후 일본 정부는 진상 은폐→민간인에게 떠넘기기→가해자 불처벌→교과서 왜곡의 수순을 밟아왔다.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논리와 같은 방식이다. 한국 정부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사과를 요구한 적이 없다.
이제 '관동 대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사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에서도 조상의 반(反)인륜 범죄에 대한 반성 움직임이 일고 있다. 피의 역사를 외면하는 것은 '제2의 관동 대학살'을 방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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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엔 고짓센'을 발음해 봐!" "기미가요를 불러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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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초, 지진으로 폐허가 된 일본 수도 도쿄 일대에서 칼을 찬 사내들이 몰려다니며 살기에 찬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협박했다.
15엔 50전'이란 뜻의 '주고엔 고짓센'을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렸다. 발음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조센징이다"라는 외침과 함께 폭행과 살인이 자행됐다.
탁음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은 한국어의 특성상 '주고엔 고짓센'은 조선인으로선 발음이 어려운 일본어였다. "'파피푸페포' '가기구게고'를 발음해 보라" "에도시대 노래를 불러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오직 조선인을 색출해 죽이려는 목적이었다. 명백한 '인종 학살'이었다.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규모 7.9의 대지진이 가나가와현에서 일어나 도쿄와 요코하마 등 관동 지방을 휩쓸었다. 10만 명 넘는 인명 피해가 난 큰 재해였다. 지진 발생 직후 통신이 두절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일본 정부는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공작'을 펼치기 시작했다. 야마다 쇼지 일본 릿쿄대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진 당일인 1일 저녁부터 이미 일본 경찰이 "조선인이 살인 방화를 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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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이 되자 소문은 더욱 빠르게 퍼졌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산업시설을 파괴하고 있다" "약탈 강간까지 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적극적으로 퍼뜨린 것은 일본 군인과 경찰관들.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부터 여러 지구의 경찰서장이 "조선인은 죽여도 좋다"고 공공연히 발언했다는 것이다.
2일 오후 6시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내무성 경보국장 고토 후미오의 명의로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하고 있으며, 폭탄을 소지하고 석유를 뿌리는 자가 있으니 엄밀하게 단속하라"는 전문이 전국에 발송됐다. 실탄을 가진 계엄군이 출동해 도쿄와 지바 등에서 조선인을 살해했고, 자발적 무력 조직인 3600여개의 자경단이 각지에서 조직돼 거리를 활보하며 학살을 자행했다. 일본의 군·경과 민간이 모두 학살의 주체로 나섰던 것이다.
학살은 끔찍했다. '경관에게 연행돼 가던 한 남자를 군중이 조선인이라고 욕하더니 가까운 연못에 던지고 세 명이 굵은 몽둥이로 내리쳤다. 이미 죽은 시체를 연못에서 꺼내 몸이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9월 2일 도쿄) '손에 쥔 죽창과 칼로 조선인의 몸 이곳저곳을 찔렀는데 신음과 고성이 섞인 처참한 광경이었다.'(9월 2일 요코하마)
9월 4일 도쿄에서는 이런 참상도 벌어졌다. '열 명이 피투성이가 된 조선인을 철사로 묶고 한 되나 되는 석유병을 부어 불을 붙였다. 몸부림치며 뒹굴자 이번엔 부지깽이로 짓눌렀다.' 목과 사지가 절단돼 몸통만 남은 시신도 사진 자료로 확인됐다.
그러나 '조선인 폭동'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자, 당황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풍설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이것이 사실로 되도록 긍정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는 결정을 내린다(9월 5일 임시진재사무국 경비부의 결정). 자신들이 유포한 유언비어가 사실인 것처럼 날조해 국가의 학살 책임을 은폐하겠다는 것이었다. 허문도 전 국토통일원 장관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잔혹한 악행이 저질러진 사건"이라며 "일본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한 진상조사와 사죄 요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軍·警이 주도한 대학살… 한국정부, 조사·사과 요구도 안 해"
재일교포 사학자 강덕상(姜德相·81)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은 29일 "일본 군대와 경찰이 학살을 주도한 관동대지진 한인 학살에 대해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단 한 번도 조사와 사과를 요구한 적이 없다. 재외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정부 존립의 목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쉽다."고 하면서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내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64년 '관동대지진과 조선인'이라는 자료집을 시작으로 관련 논문을 30편 이상 발표해 1990년대 일본 교과서에 관동대지진 당시의 한국인 학살 내용을 포함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관동대지진 학살 문제를 연구한 이유는?
"재일교포라면 아버지, 할아버지를 통해 들어서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들은 또다시 그런 일이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살았다. 1958년 한인 학살을 부정하는 논문이 발표된 것을 보고 사학도로서 울분을 느꼈다. 이에 반박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군대가 개입하지 않았으며 우발적이라고 주장한다.
"지진 피해 지역에 진주한 군대가 '조선인이 독을 우물에 풀고 방화했다'는 식의 유언비어를 직접 유포하고 학살을 자행했다. 군대가 하는 것을 보고 일반인들이 모방해 자경단을 만들어 학살에 가담했다. 당시 일본의 치안 상황, 계엄령 선포 등 여러 정황을 볼 때, 일반인이 유언비어에만 휩쓸려 학살을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입증하는 증언과 사료는 수없이 많다."
―군대가 왜 학살을 했는가?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량 인명 피해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왕실과 정부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당시 3·1운동에 이어 청산리 대첩 등 한국의 독립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발생했고, 중국과 긴장도 높아지고 있었다. 위기감을 갖고 있던 일본 군부가 내부의 단결을 위해 '적'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근본적 배경이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상해 임시정부는 관동대지진 후 조사요원을 일본에 파견했으며 1923년 8월에 진상보고서와 일본 정부에 보내는 항의문을 발표했다. 임시정부를 계승한 한국 정부는 정부 수립 이후 단 한 번도 일본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역사에는 소멸 시효가 없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진상 규명과 사죄를 요구해야 한다."
―요즘 일본 교과서에서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학살당한 내용이 삭제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쌓아온 연구 성과와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도쿄 한복판에서 '한국인을 죽이자'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 마치 관동대지진 당시의 일본 사회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일본의 우익들이 불경기가 오래 지속되면서 좌절한 젊은이들을 애국심으로 단결시키려 한다. 한국과 중국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일본인을 수용소에 강제 수용한 것을 사과했다. 북한에 의한 납치 문제에 대해 전 사회가 일치단결해 대응하면서도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에는 눈감고 있다."
http://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331§ion=sc6§ion2=
첫댓글 일본이라는 나라는 철천지 불국대천의 원수다. 이는 모두 탐욕으로 만들어낸 역사적 사실에 의해 싸인 의식이다. 단 한번도 일본은 한국과 긍정적인 역사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한적이 없음이 이를 입증한다고 볼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