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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를 보고 / 안 철 수
시월 첫 주 토요일, 동아리 아이들과 동아리 활동으로 영화를 감상하기로 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동아리가 <영상제작동아리>이기 때문에 좋은 영화를 보는 것도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전 9시까지 메가박스 영화관 앞에 집합하라고 전하고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영화감상소감문> 양식을 만들어 영화관으로 향했다. 며칠 전 박 선생으로부터 전해들은 <도가니> 영화를 아이들과 함께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도가니'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였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의견도 그렇고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보자고 하여 입구에서 <영화감상소감문> 양식을 나눠주고 음료수를 사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먼저 들여보냈다. 나는 <도가니> 영화를 보고 싶어서 홀로 영화 <도가니>를 상영하는 7관으로 향했다.
이 영화는 청각장애학교의 비리와 장애아들의 지속적으로 유린되고 있던 미성년성폭행 문제를 다룬 실제 사건을 근거로 쓰인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공유와 정유미의 진실한 연기에 이 영화 보기를 참 잘했다는 뿌듯한 마음을 갖고 보았다. 사실 난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내용보다는 배우들의 연기하는 모습에 더 집중하며 볼 때가 많다. 연기하는 배우들의 진실성이 녹아있지 않은 작품을 볼 때는 마음이 개운하지가 않다.
이 영화는 무진이라는 가상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어쩌면 사건의 배경이 광주의 모 학교이기 때문에 옛날 삼국시대의 ‘무진주’를 배경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 '안개'가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이 영화의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고 본다. '안개'는 우리의 불확실한 사회상을 반영하는 부분이며 이 영화의 개운치 않은 사건의 처리 문제와도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이 순천만 대대포구를 배경으로 한 것과는 비교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내가 미술을 전공한 미술교사이고 공유가 충실히 연기한 강인호 선생도 나와 같은 미술교사였기 때문에 동질감을 가지고 보았는지 모른다.
이 영화는 '광주인화학교'의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사실을 근거로 제작된 작품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막막하고 화가 났다. 타협할 수 없는 힘겨루기의 사회 현상, 그리고 어찌할 수 없이 불의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무감각하고 정의감이 사라진 사람들의 비굴한 모습을 보며 어찌 그리 답답하고 화가 나던지…….
<도가니>에서 공유가 연기한 강인호는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세상에 진실을 말하는 사려 깊고 진지한 미술교사이다. 공유는 촬영 두 달 전부터 수화 교육을 받으며 청각장애학교 교사 강인호 역에 몰입해 갔다고 한다.
공유는 얼마 전 전역했다. 병장시절, 선물로 받은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를 읽고 많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나는 왜 이제 알았을까”라고 말하는 공유는 소설의 영화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고, 그의 관심은 결국 소설 ‘도가니’를 영화 <도가니>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도가니>의 출발점은 공유였고, 그가 연기한 강인호는 “묻힌 진실을 세상에 말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공유, 바로 그 자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혼돈스러웠다. 아이들의 소중한 성이 무참하게 유린당한 그 현장을 현대를 살아가는 무감각하고 무능력한 제3자 입장에서 사건 현장을 보고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눈을 닫아버리고 입을 꾹 다물어버린 채 그냥 지나쳐 온 것 마냥 영화 속 아이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