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의왕에 세거하고 있는 청풍김씨의 음택을 따라가는 여행을 위해서는
청풍김씨의 가계도를 이해하는 것이 쉬울 것 같다.
[청품김씨 가계 발복도]
10세 김우증(金友曾) 의왕시 입향조-정주목사,증병조판서 청평군:중종반정공신,
11세 김여광(金汝光)
12세 김계(金繼)
13세 김충백 - 14세 김익신- 15세 김수 - 16세 김간 - 17세 태로(이하 5대 봉군 배출)
13세 김인백 - 배위 안동권씨(1564~1632) : 술좌진향, 와혈: 조선 8대명당이라 함
14세 김극형(1605-1663, 공조정랑, 화순현감) : 명당 대지,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
15세 김징(1623~1676, 관찰사) - 의왕시 왕곡동 홍치골 (횡룡입수혈, 축좌)
16세 김유(대제학) - 17세 김약로(숙종 20년(1694)∼영조 29년(1753.좌의정)
17세 김상로(숙종28년 (1702)~?영의정(1759년))
16세김구(우의정)- 17세 김희로 - 18세 김치만 - 19세 김종수(1728(영조4)~ 1799(정조23)좌의정)
17세 김재로(1682(숙종 8)~ 1759(영조 35)영의정) - 18세 김치인(1716(숙종 42)~ 1790(정조 14)영의정)
4세(16세~19세) 6정승이라 함.
1. 13세손 김인백의 묘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산8
김인백[金仁伯, 명종 16년(1561)∼광해군 9년(1617)], 자는 군수(君壽), 본관은 청풍(淸風),
증조는 정주목사 김우증(金友曾), 조부는 대호군 김여광(金汝光), 아버지는 김계(金繼),
어머니는 사직 안광옥(安光沃)의 따님 순흥안씨, 배위는 현령 권대훈(權大勳)의 따님 안동권씨이다.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김익려(金益礪)·김극부(金克孚)·
공조정랑 김극형(金克亨)이다.
후룡은 주산에서 힘있게 내려오다가 본룡은 가던 길을 멈추었고 옆에서 뚜렷한 증좌없이
陽龍으로 펑퍼짐하게 자리하여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으며 가지고 있는 힘을 泄氣하고 지맥을
뻗어 내려갔으나 자수성가하듯 힘을 돋우어 내려갔다.
입구에서 본 묘역과 김인백의 묘
김인백은 관직에 나간 적이 없이 처사로 살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이 많지는 않으나 평생 예를 지키며 선비의 삶을 살다가 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묘표에는 ‘贈 左承旨 金仁伯之墓 後又 贈 吏曹判書’라 기록되어 있어 후일 후손들이 현달하여
좌승지에 贈職되고 이어서 또 이조판서에 증직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호자락이 튼실하게 關鎖하고 있는 김인백묘의 本身案山部
2. 13세손 김인백의 처 안동권씨 음택 - 청풍김씨 발복의 근원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171(의왕시청 좌측)
김인백의 처 안동권씨가 소점하고 있는 이곳은 보기 드문 대와혈로 당판국세가 평안하고
아늑하게 이뤄져 있다.
주산에서 힘차게 내려온 後龍이 의왕중앙도서관과 시청을 분기하는 過峽處를 지나 힘있게
기복하고 위이하며 내려와 혈처를 앞두고 개각하여 靑龍과 白虎로 분지(分支)해 자리하였다.
도두부에서 바라본 묘역
좌선룡에 우선수로 입맥하여 합당하고 戌坐辰向으로 제혈을 하였다
비문과 신도비
내당수가 모여 우선하고 있는 빗물길이 뚜렷하게 보인다.
또한 이사진의 좌측에 자리한 중앙도서관에서 흘러나오는 외당수도 우선하여 흐른다
3. 15세손 김징선생 묘
의왕시 왕곡동 198-1번지 윗산(홍치골)
김징(1623 - 1676)은 조선시대의 문신이다. 본관은 청풍이며 호는 감지당(坎止堂)이다.
공조정랑과 화순현감을 지내고 좌찬성에 추증된 사천(沙川) 김극형(金克亨)의 아들이었다.
관직은 전라도 관찰사에 이르렀으며 사후 아들 김구 (1649년), 김유 (1653년) 등이
현달하여 사후 증직으로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풍만한 전순을 내밀고 자리한 김징선생 묘
◆튼실한 전순과 본신을 안고 있는 백호
도두에서 바라본 사격. 백호가 아름답게 감싸며 자연스레 관쇄하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음택을 소점하고 330년이 넘는 세월을 풍파에 흔들림 없이 자리하고
축좌미향으로 소점한 김징선생 묘
貞敬夫人 咸平李氏로 되어 있어 남편인 김구선생과 달리 아들인 김구와 김유가 부귀현달하는
것을 생전에 직접 목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걸음마 하는 아기를 감싸 안은듯한 백호자락 묘역입구의 진응수
★ 진응수(眞應水)란?
혈(穴 : 땅의 생기가 뭉친 곳) 앞이나 옆에서 솟아오르는 맑은 샘물을 진응수(眞應水)라고 한다.
용세(龍勢)가 극히 왕성하여 혈을 맺은 후에도 남은 기운이 지상으로 분출시키는 물인 것이다.
따라서 진응수가 있으면 진혈(眞穴)이라는 증거다. 필시 대부(大富)와 대귀(大貴)가 기약되어
큰 부자와 높은 벼슬이 나온다. 풍수설에서 수세론(水勢論)을 중시하고 있는데 “물의 작용 없이는
절대로 혈을 맺을 수 없다. 혈을 찾고자 할때는 산을 보지 말고 물을 보라 산은 있으나
물이 없는 곳에서는 혈을 찾지 말라”고 했다.
4. 16세손 김유선생 묘 - 1571(선조 4)~ 1648(인조 26)
간산이라는 공부와 역사탐방기행을 하며 선량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안동권씨 산소에서 만난 청풍김씨 문중의 며느리들이 바로 그러한 분 들이었다.
산소를 관리하다가 점심때가 되어 식사를 하고 있던 참에 올미 김정인선생님과 내가 방문을
하였는데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밥을 덜어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니 말 그대로 十匙一飯이
되니 오히려 그분들의 밥보다 많아졌다.
어제 뜯어다 만들었다는 봄나물 반찬에 風客의 젓가락질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시장기를
채우느라 바쁘다.
선영의 산소를 후손들이 돌보고 소풍 나온 것처럼 나서서 돌보는 정성스런 마음과,
과객에게도 흔쾌히 인정을 베푸는 마음이 복을 부르는 것이리라.
묘역을 나서는 우리에게 “내일은 밥 더 많이 해올 테니 또 오시라”는 말씀에 그리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미안스러울 지경이었다.
2012.05.01 풍수학인 載下 김홍길 終.
첫댓글 간산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