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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The Economist 2012-10-20 (번역) 크메르의 세계
[사색] 시하누크의 사망과 캄보디아 왕위의 운명
Dancing off the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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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젊은 날의 시하누크 전 국왕의 모습. |
2004년에 즉위한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 캄보디아 국왕은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헌법적 역할을 지키면서 조용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는 종종 축제의 개회사를 하거나 불교 의례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영적인 버팀목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항상 그의 배경이 되어준 것은 부왕인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상왕이었다. 시하누크 전 국왕은 지난 10월15일 베이징에서 향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시하누크 공은 자신의 7번 결혼생활 중에 출생한 14명의 자녀들 가운데 13번째 자식인 시하모니 왕자가 즉위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 위해 스스로 퇴위한 바 있다.
시하누크 공이 발레 무용수이자 교수였던 시하모니 국왕을 끌어들인 것은 주로 자신의 부인인 노로돔 모니니엇(Norodom Monineath: 모니크) 왕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노쇠한 시하누크 전 국왕은 자신보다 14세나 연하인 모니니엇 왕대비가 자신보다 오래 살 것이란 점을 실감했다. 그리고 왕대비가 가진 시하모니 왕자에 대한 애정이 그러한 균형점을 찾아준 것이다.
시하누크 전 국왕은 퇴위한 후에도 사망할 때까지 숭앙받는 위상을 계속 유지했다. 캄보디아 전역의 관공서나 상점들에는 시하모니 국왕의 사진이 항상 그의 부모 사진들과 더불어 걸려있곤 했다.
겸손한 성격의 아들(=시하모니 국왕)과는 달리, 시하누크 공은 대단한 정치적 동물이었고,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경우 국내 문제나 역내 문제에 대해 간섭하길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때때로 그 결과는 비극적이기까지 했다. 이러한 그의 역할은 동시대의 여타 군주들과 비교해서도, 특히나 관례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시하누크는 1953년에 프랑스로부터 캄보디아의 독립을 쟁취한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자신의 조국에서 스스로의 위상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시하누크는 특히 오랜 기간 총리로 재임해온 권위주의자 훈센(Hun Sen)과 사이가 껄끄러웠다. 그는 1993년에 훈센 총리에게 왕실 칭호인 '섬다잇'(Samdech, 대공) 칭호를 제수했다. 그 이후부터 훈센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왕실 가족들과 유사한 길을 향유하게 될 것으로 본다는 추측들이 생겨났다. 즉, 특히 시골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캄보디아인들로부터 거의 신격화 단계에 이르는 우상화를 받는 일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시하누크는 훈센의 협박에 굴복하길 거부하면서, 때때로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이 자신의 나라를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거지들의 나라로 만들었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시하누크는 말년에 이르러 주로 프랑스어를 사용해 온라인상에 자신의 의견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정부에 대해, 스스로가 정치적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시하누크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정치적 언쟁에 개입하길 꺼리는 59세의 시하모니 국왕이 사랑받는 군주의 역할을 하기 시작해야만 할 수도 있다. 시하누크 공이 자신의 나라의 "자식들"이라 불렀던 국민들은 이제 예기치 않았던 사회적 동요 속으로 말려들어가고 있다. 이제까지 시하모니 국왕은 그 문제에 관해 그다지 말을 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캄보디아 시골마을의 생활 패턴은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는데, 종종 최악의 이유들 때문에 그러한 경우도 많다. 정부는 토지를 매각하기 위해, 수많은 주민들을 살던 곳에서 강제로 철거하고 있다. 그러한 토지는 외국 입찰자들에게도 많이 양도된다. 이러한 '토지수탈'(land grab) 정책은 정부 내의 연줄좋은 인사들이나 그들의 사업적 동료들을 부유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광범위한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수년간,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던 환경운동가들과 언론인들, 그리고 평범한 주민들이 감옥에가거나 총격을 받았고, 어떤 경우엔 경찰이나 군대와 대치하던 중 살해당하기도 했다. 정부의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은 특히 크메르어로 발행되는 언론에 더욱 가혹하다. 야당은 비록 별다른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차없이 추적당하고 괴롭힘을 당한다.
이제 시하모니 국왕이 사진의 독자적인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갈곳 없는 농민을 위해 발언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그가 그러한 일에서 성공할 경우 스스로의 힘으로 존경받는 국왕의 위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시하모니 국왕은 독신이고 자식도 없다. 따라서 오랜 세월 이어져온 캄보디아의 군주제가 엉뚱한 쪽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존재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캄보디아의 군주제는 심지어 그 종말을 거두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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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가 지켜보아 온 바로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지는 그 산하에
자체적인 씽크탱크인 EIU(이코노미스트 정보단)도 갖고 있고..
각국의 권력 변화에 대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예리한 전망을 내놓곤 하는 매체인데요..
이 글은 아주 묘하네요..
결론 부분이 명쾌한듯 하면서도..
알쏭달쏭하게 되어 있네요..
의미 심장하군요 ^ ^
좋은 소식,,,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