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토) 밤, 장마철에 백두대간 16차 산행은 시작된다.
하루 종일 비가 왔지만 내일까지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가는 설악산 구간은 40미리 정도의 비가 예보되어 있다.
장마철에 한 번 이상 겪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우중산행! 오늘 마주쳤다.
오늘은 한계령에서 시작하여 점봉산, 단목령, 북암령, 조침령까지 24㎞, 12시간 소요예정이다.
비 때문에 큰 카메라는 포기하고, 컴팩트 카메라만 비닐에 넣어 가져갔다.
형주가 지난 산행에서 같이 산행한 “이창호”라는 사람이 암만해도 우리 마고 동기 같다고 앨범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며칠 후 3-8반 이창호가 맞다고 문자가 왔었다.
37~8년 전 친구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형주의 기억력에 존경을 표한다. ㅋㅋ
잠실에 도착하니 형주, 이창호가 먼저 와 있다. 반갑게 인사했다.
이창호는 최수용이와 같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부대에서 정보장교로 오랫동안 근무를 한 모양이다.
오늘은 3명의 마고37기 동기가 함께 산행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02시경 비 오는 한계령에 도착했다. 온도는 10℃정도이고 바람이 불어 한기를 느낀다.
단단히 우중산행 준비를 마치고, 02:20분 16차 구간 산행을 시작한다.
한계령에서 점봉산을 거쳐 단목령까지 13.5㎞는 산림보호구역으로 통행이 금지된 구간이다.
최근 들어 한계령 및 단목령에 단속원이 상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단속원 출근 전에 이 구간 통과를 위하여 쉼없이 가야한다.
한계령에서 본 점봉산 정상(화살표)
앞에 보이는 돌산을 비 오는 야간에 밧줄을 타고 넘어야 하며, 백두대간 3대 위험구간에 곱힐 정도로 험난한 구간이다.
초입부터 비가 와서 진흙탕이 된 된비알이라 미끄럽고 힘이 많이 든다.
또한 비옷을 입고 있어 땀도 많이 나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40분쯤 오르니 깍아지른 암벽구간이 나타난다. 여기는 밧줄을 타고 1명씩 통과하여야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대기하였다가 순서대로 미끄러운 바위를 타고 올라간다.
밧줄이 미끄럽고, 오래되어 안전한지도 염려스럽다. 통제구역이라 안전시설도 허술하다.
또한 이 구간은 백두대간에 흔히 볼 수 있는 띠지를 전부 제거해 버려 길을 잃기 일쑤다.
대간꾼들 사이에 알바를 많이 하는 코스로 정평이 나 있다.
앞사람을 보고 가는데 길이 없다고 도로 올라온다. 이크~ 알바다. 약100미터를 올라가니 뒤따르던 사람들이 다른 길로 간다.
또 가다 길이 없다고 다시 올라오고, 또 앞 사람을 따라가다 길이 아니라고 돌아오고, 급경사에서 3번의 알바를 하고 나니 온 몸에 힘이 쭉 빠진다.
한계령을 74명 중 20번째로 출발했는데, 3번의 알바로 거의 후미가 되어버렸다. ㅠ
처음부터 후미로 따라왔으면 알바는 안 했을텐데… 조금 후회스럽다.
오늘은 아주 열악한 상태로 산행한다.
대여섯 군데의 긴 밧줄구간과 암릉구간을 통과하니 선두와 후미 간격이 1시간 이상 벌어졌다.
가파른 내리막 길을 따라 끝까지 내려가니 주전골 삼거리이다.
주전골은 남설악의 큰 골 가운데 가장 수려한 계곡으로 십이폭포가 있고 오색약수터로 이어지는 가을 단풍이 유명한 곳이다.
주전골이란 이름은 용소폭포 입구에 있는 시루떡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옛날 이 계곡에서 승려를 가장한 도둑 무리들이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주전골 삼거리에서 점봉산을 향해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주위에 산죽나무가 빽빽하게 자생하고 있어 길이 잘 안보일 정도다. 허리이상으로 자란 산죽을 헤치고 나아간다.
또 앞 뒤 사람과 간격이 너무 벌어져 나 홀로 비 오는 한밤 중에 헤드렌턴에만 의지한 채 산죽나무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잘 보이지도 않는 첩첩산중 길을 가는 것이 오싹하게 느껴진다.
꼭 발 밑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 허~~헉
한참을 오르니 바위가 나타난다. 망대암산(1,236)이다.
주전골을 감시하던 곳이라고 해서 망대암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조망이 좋은 곳이지만 비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망대암산에서 바라본 점봉산 정상
작년 7월2일 백두대간 산행 준비를 위해 창환이와 산행했을 때 찍은 사진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지루한 오르막길이다.
군데 군데 뿌리뽑힌 나무들이 많이 있다. 멧돼지들이 뿌리를 파 먹고, 영역표시를 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여진다.
4시간반 만인 06:50분경 드디어 오늘 산행의 최고봉 점봉산(1,424)에 올랐다.
형주 인증샷! 강한 비바람 때문에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작년 점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설악
한계령을 출발하여 야간에 암릉구간을 넘어, 능선을 우에서 좌로 올라 망대암산을 경유 점봉산에 올랐다.
작년 오대장의 멋진 모습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 잠깐도 서 있을 수가 없다. 빗줄기가 빰을 때린다. 거의 우박 수준이라 아프다!
정상석만 한번 쳐다보고 하산길로 발길을 옮긴다.
여기서 단목령까지 6㎞ 남짓.
이제부터는 육산구간이다. 길도 편한 내리막길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출근할 것으로 예상되는 8시 이전까지 단목령에 도착해야한다고 재촉하지만 70분만에 비 오는 산길 6㎞를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비가 많이 와서 쉴 수도 없고, 간식을 꺼내 먹기도 불편하고, 졸음을 참으면서 쉬지 않고 가는 수 밖에 없다.
내리막길을 부지런히 가다 보니 앞에 낮 익은 뒷태가 보인다. 형주다. 무지 반갑다.
형주도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야간산행을 계속하니 힘드나 보다.
08:30분 단목령에 도착했다.
단목령은 양양군 서면 오색의 마산에서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를 잇는 고개로서 예로부터 박달나무가 많아서 박달령이라고도 부른다.
단목령 사진이 없어 남의 사진을 빌려왔다. ㅋㅋ
단목령 통제소 처마 밑에 비를 피하고 있는 형주와 나 (오른쪽 파란 원 내)
다행히 국공직원은 없었다. 하지만 비를 피할 곳이 없다. 여기서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타프(Topper: 비나 햇빛을 막기 위한 천막)를 치고 그 밑에 쭈그리고 앉아 아침을 먹는다. 너무 힘들어 아침도 잘 넘어가질 않는다. 그래도 먹어야 갈 수 있다.
소주 한잔에 뜨거운 누룽지를 먹으니 속이 조금 풀린다. 이 와중에도 삼겹살을 구워먹는 팀도 있다. 에너지 보충을 위해서다.
다른 팀들은 식사를 끝내고 체온이 떨어져 춥다고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뒤처리는 탈출팀에게 맡기고 우리도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비를 많이 맞고, 바람까지 불어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탈출한다고 한다.
20여명이 곰배령쪽으로 탈출했다.
형주와 나는 아무 생각없이 완주 대열에 합류했다. ㅎㅎ
단목령(750)에서부터 또다시 오르막 구간이 시작되고, 조침령까지는 10㎞ 이상 가야한다.
천미터가 넘는 봉우리 4개가 버티고 있다. 다행히 암릉구간은 없고 부드러운 육산 구간이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푸른 숲, 새소리, 숲의 향기, 시원한 바람 등 오감을 느끼면서 걸을 수 있는 낭만적인 길이지만, 오늘은 미끄럽고 볼품없는 흙탕길에 불과하다.
아침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니 다들 산행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오르막길을 평지 산행하듯 속도를 낸다.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따라갔다.
1020봉을 오르기 직전 오른쪽허벅지에 심한 통증이 온다. 움직이기 힘들다. 오르막길을 너무 무리해서 따라왔나 보다.
대열에서 벗어나 후미대장에게 쥐가 났다고 하니 무전으로 아스피린 가진 사람을 찾는다.
회장이 아스피린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천천히 걸어 회장과 조우하고 아스피린 2알을 먹고는 또 출발했다.
비가 와서 쉴 수가 없다. 쉬고 있으면 체온이 내려가 더 고통스럽다. 다행히 천천히 걸어가니 조금 낫다.
내리막 길을 다 내려가 오르막을 만나니 또 힘들어 지기 시작한다.
항상 얘기하지만 대간길에서의 진리는 목적지에 도착해야 산행이 끝난다는 것이다. 아무도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ㅠ
중간에 양수발전소에서 탈출이 가능하다고 하여 탈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걷고 또 걷는다.
아스피린의 효과인지 더 이상 쥐가 내리지는 않는다.
산행 시 비상약품으로 아스피린과 소화제를 반드시 챙겨가야겠다. ㅎㅎ
오르막길에서는 천천히, 내리막길에서는 조금 빨리 걸어 앞사람과 간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산행을 계속한다.
1136 봉우리에 올라서니 앞서가던 대원들이 막걸리파티를 하고 있다.
오늘은 비 때문에 중간 중간 펼쳐지는 막걸리 파티도 하지 못하고 쉬지 않고 걷기만 했다. 먹을 것을 비우지 못해 배낭이 무거웠나 보다. ㅎ
과일을 조금 얻어 먹었다. 힘이 난다.
미끄러운 진흙탕 길로 변해버린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간다. 누군가 한번 미끄러진 구간은 더 미끄러워 조심을 해도 쭉쭉 미끄러진다.
한참을 내려가니 조침령이 3.1㎞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어~ 탈출구간을 지나쳐 버렸다. 젠장~~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조침령까지 가는 방법 외에는 없다. ㅠ ㅠ
김박사는 묵묵히 잘 도 간다. 이창호는 선두를 따라가서 산행 내내 볼 수가 없었다.
500미터 간격으로 서 있는 이정표를 낙으로 삼고, 아무런 조망도 없이 앞사람의 진흙이 잔뜩 묻어 있는 등산화만 보면서 걷고 또 걷고를 반복한다.
드디어 조침령에 도착했다.
형주와 함께 인증샷을 찍었다. 오늘 유일한 사진이다. 비가 오는 와중에 사진을 찍어준 일행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내 우의는 조금 찢어졌고, 형주 우의는 거의 폭탄 맞은 상태다. ㅋㅋ
출발할 때 비닐봉지로 등산화를 테이핑하였더니 등산화 속으로 빗물은 조금 적게 들어왔다.
다음 우중 산행 때는 비닐봉지와 장단지 연결부위를 반창고로 테이핑 하면 거의 빗물이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버스가 보이질 않는다.
여기가 조침령이지만 버스가 있는 국도 조침령은 걸어서 20여 분을 더 가야 한단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또 간다.
오후2시 버스에 도착했다.
오늘은 24.5㎞를 11시간 40분 동안 비를 맞으며 산행했다.
비 때문에 사진기는 꺼내보지도 못해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 ㅠ
오늘 산행은 아무런 경치를 보지도 못하고 비를 맞으며 암벽구간을 오르내리고, 진흙탕 길을 오랫동안 힘들게 산행했다는 기억뿐이다.
하지만 버스를 타면 힘든 고통은 눈 녹듯 사라지고 완주에 대한 성취감으로 마음이 뿌듯해 지는 것은 일종의 마약이라고 해야하나? ㅋㅋ
이것 또한 대간길의 색다른 추억으로 남겠지!!
첫댓글 엄청 고생 했네... 아마 지금까지 백두 구간 중에 가장 힘들었던 구간 중에 하나 인 것 같네... 그러니까 더 ,같이 가고 싶은 충동을(또 다리 때문이라도) 더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 동기가 (내가 가면) 네 명이 백두를 탄다는 생각만 해도 설렌다.. 위에 여행기 보니 " 돌산" 도 나오는 데 같이 갔나? ㅎㅎ (joke). 여하튼 무사히 마치니 다행이고 완주를 축하한다....
아무런 경치를 보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힘들게 산행을 해도 완주의 성취감이 보상해주니 계속 할 수 있는 거겠지. 사실 하는 일만 없다면 구간을 좀 더 짧게 나누고 아침 밝을때 출발 하루 7-8시간 정도 산행. 쉬엄쉬엄 가면서 사진도 찍고 경치도 음미해가면서 하는 것이 좋을텐데...나도 이번 휴가때 자전거 국토종주가 목적지 가는 거에만 급급할 거같은데 뭐 시간이 없으니 할 수없네...
ㅋㅋㅋ 물에 빠진 생쥐였는데 달랑 사진 두장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사진찍어주신분께 고맙다고 꼭 전해다고
두 장 다 같은 사람이 찍었네! 부부가 항상 같이 오고, 단목령 장승사이에 서 계시는 분 ㅎㅎ
부부가 백두 탈 정도면 대단한 산 마니아네..
김형주는 이제 완존히 코뿔소에서도 인정한 대간맨이 되버렸네. 뱃살은 저절로 빠지겠다. 둘 다 이번엔 넘 고생한것같다. 담엔 좋은날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