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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시인의 파워인터뷰 ⑯ 고정국 시인을 찾아서
일시 : 2011. 2. 13(일) 10시-14시
장소 : 제주도 애월 해안도로
■ 고정국 시인의 약력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 시집 : 『진눈깨비』,『겨울 반딧불』, 『하늘가는 보리새우』,『서울은 가짜다』,『백록을 기다리며』등 5권의 시집, 시조선집『개망초 마을의 풍경』, 제주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래기』
•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글쓰기론 『조사(助詞)에게 길을 묻다』
• 수상 :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제 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 등을 수상했다
•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월간 『시조갤러리』발행인
• E 메일 : koukook@paran.com
• 손전화 : 010-9838-0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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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시인의 파워인터뷰 ⑯ 고정국 시인을 찾아서
일시 : 2011. 2. 13(일) 10시-14시
장소 : 제주도 애월해안도로
천천히 가라, 바르게 가라, 끝까지 가라!
제주사람, 이 시대의 시인, 고정국을 만나러 가는 길은 좌불안석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40년 넘게 글쓰기를 통해 치열하게 삶을 엮어가는 시인! 2003년 이호우․ 이영도 시상식에서 처음 뵌 인연으로 지면을 통해서 소통을 했던 시인이다. 예사롭지 않은 視力과 어휘력으로 쏟아낸 그의 작품은 돌올하다. 특히『서울은 가짜다』에 부려놓은 시대인식과 입담에 혀를 내두르며 장쾌한 느낌을 받았고 『지만울단 장쿨래기』에 수록된 300편의 사투리시조를 통해 자연과 인간과 당시 농경문화와 4․3의 상흔,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사투리 구사는 신기할 정도였다. 작년 『조사(助詞)에게 길을 묻다』라는 체험적 글쓰기를 통해 실천하는 그의 인생을 읽었다. 책읽기, 글쓰기, 마음 엿보기, 사고의 전환 등 일상에서 ‘助詞’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작은 변화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귀띔해준다.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고정국 시인의 정신세계에 쫑긋 귀를 곤두세우던 날, 기쁨은 서설처럼 쌓였다.
박희정 : 선생님, 참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매달 보내주시는 『시조갤러리』잘 읽고 있습니다. 월간『시조갤러리』는 2010년 7월에 창간하셨지요. 설립, 취지에 대한 요지를 말씀해주시면 합니다.
고정국 : 지구라는 공간적 정형에는 오대양육대주가 있습니다. 일 년이라는 시간적 정형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또 있습니다. 찬찬히 둘러보면 온 누리 삼라만상에 정형 또는 껍데기에 갇혀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지요. 형식과 껍데기를 싫어하던 우리도 결국 3장 6구 12음보의 시조라는 틀 안에서 무한한 자유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또 향유키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신인 및 아마추어들을 위해 문학의 가장 후미진 곳에다 월간 『시조갤러리』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멍석 한 장을 펴놓았던 것입니다. 신인 작가 5명과 아마추어 30여명으로 구성된 단체로 젊은 정신과 젊은 문학정신을 가지자는 취지로 만들었습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시인들과 예비 작가들이 꾸려 가는데, 나는 그저 사진, 편집 등 뒤에서 거들고 있을 뿐입니다.
박희정 : 한 손에 꼭 차는 지면으로 읽을거리를 제공해주는 월간지이군요. 아마추어 회원이 많은 단체로 지속성을 가진다면 시조문학의 르네상스를 기대해도 좋겠지요. 젊은시조문학회는 또 다른 활동도 하는지요?
고정국 : 그간 젊은시조문학회(회장 김정숙)에서 시조 낭송회를 두 번 가졌습니다. 2010년 10월 31일 오후 4시에 한경면 낙천리 의자마을에서 가진 “누구나 함께하는 시조낭송의 밤” 2회 행사에는 무려 400여명이 참석해서 우리 스스로도 놀랐었지요. 엄마 작품을 아들과 딸이 낭송하고, 아내의 작품을 남편이 낭송하고, 그 마을 악대가 와서 축하연주도 해주고, 친구가 와서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들이야말로 진정한 시조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도 “누구나 함께하는 시조낭송의 밤”을 통해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의 밤을 이어갈까 합니다.
월간『시조갤러리』는 2011년 2월 현재, 제 8호를 간행했고요. 젊은 시조정신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덕분에 『시조갤러리』는 다달이 유료구독자가 늘고 있습니다. 멍석 한 장을 꽉 채우고 넘치는 그날까지 젊은시조문학회의 열기는 묵묵히 지속될 것입니다. 전국각처에 우리와 같은 아마추어 그룹을 권장하면서 시조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노력해나갈 계획입니다.
박희정: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 많은 회원들의 열정이 조금씩 퍼져나갈 때 시조문학은 독자 깊이 파고들겠지요. 최근의 근황은 어떠신지요?
고정국 : 사실 요 몇 년 사이 작품발표는 거의 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써왔던 제 작품에 대한 점검이라 할까, 당분간 스스로 성찰의 기간을 가지려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하루일과는 5시간 정도 잠자고 나머지는 독서, 붓글씨, 틈만 나면 새로 시작한 고향 귤밭으로 달려가 귤나무, 풀꽃, 산새, 노루 등과 함께 지냅니다. 또한 사진 찍기는 상당히 오래도록 이어온 취미이기도 하구요. 바다를 향해 비상하는 새떼들을 보노라면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지…볼 때마다 경이롭고 눈이 부십니다. 또한 물속에 비친 세상을 보세요. 거꾸로 세상을 읽지만 어쩌면 우리의 또 다른 내면일지도 모르지요. 저는 물에 비친 사물 찍기를 좋아합니다. 가끔은 종일토록 말을 하지 않아도 행복할 때가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마음 가는 데로 생각의 길을 열어가면서 그저 침묵이 주는 신비감을 체험하지요.
“혈서는 언제나 마침표부터 찍는다.”는
시인 이정록의 ‘붉은 편지’를 다시 읽으며
구제역 방제요원의 피 묻은 장갑을 생각했다.
허옇게 눈 뒤집고, 흙속에서 꿈틀거리던
네발달린 짐승들의 비명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올 겨울 함박눈에는 피가 섞여 내린다지.
언 땅에 무릎 꿇어, 하늘의 용서를 빌며
가축 생매장 하고 농민 가슴에 얼굴을 묻던
일용직 근무일지도 피범벅이 됐다지 아마?
누가 또 핏빛하늘에 사의찬미를 띄우는가,
갈대들 수군거리는 4대강 하류로 와서
살처분 붉은 상소의 마침표를 찍는가.
-「붉은 상소」전문
박희정 : 신작 「붉은 상소」는 당면한 현실에 대한 처절한 ‘상소’이군요. 선생님 작품에는 현재에 대한 의식이 강하게 나타날 때가 많아 울림이 큽니다. 또한 체험적 글쓰기론『조사(助詞)에게 길을 묻다』표지에 실린 글을 읽고 머리가 서늘했어요. “천천히 가라, 바르게 가라, 끝까지 가라!” 이는 글 쓰는 모든 이가 깊이 새겨들을 명언 같습니다.
고정국 : 『조사(助詞)에게 길을 묻다』는 주 2회 150분짜리 강좌, 50회를 묶은 책입니다. 매 강의 때마다 준비한 A4 용지 석장 분량의 자료랍니다. 이러한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글쓰기, 문예창작 이론서를 뒤지기도 합니다. 그 이론서를 통해 인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기존 문학이론서의 내용들을 피해가기 위해서죠. ‘책에 없는’ 내용으로만 묶은 자료를 통해 독자와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 강의는 더욱 진솔해지는 것을 체험했던 결과입니다.
제 1부는 제 나름의 글에 대한 인식과 글 쓰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내용들이고, 제 2부는 이론의 현장응용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문학이론에 갇혀 제자리만 맴도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아왔기에 창작현장의 중요성을 부각시켰지요. 제 3부는 제가 여기저기 발표한 산문과 시를 연결시켜 <에세이 시작노트>라 이름 붙여봤습니다.
독자와 작가 지망생들은 언제 어디서건 필자의 지엄한 스승입니다. 6개월간 50강의 자료를 써낼 수 있었던 것도 수강생의 충고와 자극과 다그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이처럼 독자와 소통할 때 글쓰기의 즐거움은 곱절이 됩니다.
대체로 일반적 강의가 연역법에 의존한다면, 저는 귀납법에 의한 강의를 합니다. 가급적 쉽고 구체적인 내용이나 글줄을 탐색한다 할 수 있지요. 중학생 정도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일 때 소통이 가능해지고, 문학의 진정성을 공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글의 가치성은 물론, ‘쉬운 것’과 ‘가벼운 것’에 대한 인식은 별도로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박희정 : 맞습니다. 이중섭이 그림을 그릴 때 산골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고집한 경우를 읽었습니다. 그림이든 글이든 쉬워야한다는 지론에는 동의합니다. 선생님의 작품과 산문은 구체성을 가지며 독자에게 이해되는 책이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조문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고정국 :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우리 시조단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2천 명가량의 시조시인이 있다고 합니다. 대단한 발전이라며 자부할지 모르나, 눈여겨 바라보면 시조전문지 A나 B에 나오는 작품들은 대동소이합니다. 시조시인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잡지 또한 변별력이 없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한 사람이 이 잡지, 저 잡지 작품 발표하는 것도 볼썽사납고 특히 작품에서 시대성을 잃어가는 느낌에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이 시대의 서정을 바탕으로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이 시대에 필요한 정신추구에도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형식에만 연연하지 말고, 좀 더 살아있는 목소리로 당대의 사회, 정치, 문화에 대해서 쓴 소리도 하며 시조 특유의 기법으로 오늘의 문제성을 짚어내야 합니다. 또 하나 신인이나 아마추어들에 대한 배려가 좀 모자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역사의식, 사물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오는 문제성을 우리 시조시인이 극복해 나아가기 위한 고민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깨져야 합니다. ‘언어의 구슬치기’에 만족하지 말고, 체험과 사유와 실천이 함께 해야 한다는 정신훈련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이 말은 타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바로 제 스스로에게 다그치는 내용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개잡놈이
가슴으로 시 쓴다기에
젖꼭지에 먹물 바르며
시 한 수 써낸 아침
홍매화 가지 끝에도
피가
맺혀 있었다.
-「매화 무렵」 전문
박희정 : 시조문학의 현주소를 짚어주신 점, 시조시인들의 숙제라 봅니다. 최근 유네스코에 ‘제주어 소명위기 언어’로 등재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한 우려를 일찍부터 염려하고 찾아 작품화한『지만울단 장쿨래기』는 제주의 숙명적인 언어찾기이겠지요. ‘저무랑, 푸시락, 소랑고랑허다, 하간디 골로로족족, 구지, 고개 뚜려맹 앚아그네, 더디약더디약, 깍깍, 공쟁이축’ 등 방언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제주 사투리 구사는 참으로 놀랍고 소중한 고유 언어입니다.
고정국 : 『지만울단 장쿨래기』는 1950년대 제주 위미리 언어로 씌어진 국내최초의 사투리서사 시조집이라 자부합니다.
무작정 타임머신을 타고 40여 년 전 고향으로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이르는 처소마다 그때의 사람들이며 골목골목이며, 초가지붕들이며 ‘빌레’ 위로 머리풀고 쓰러지는 파도자락이며, 산천초목들이 담담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말문을 열며 또박또박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주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전해주는 말들을 받아쓰기 시작했고 주로 마른 음식과 땅콩 몇 알을 씹으면서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습니다. 하루 최고 102수가 쓰여진 날도 있었습니다. 불과 6일 만에 사투리 시조 300수 초고를 끝냈습니다. 이 책 내용은 원어작품, 분류, 번역, 그리고 해설 등 네 단계로 나누어지며 표준어 번역 과정에서 내용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되는 사건, 연상되는 낱말 또는 숙어들을 기록했습니다. 초고를 놓고 이를 분류하고 보완, 해설, 정리하는데 3년이 걸렸습니다. 김동윤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빌리면 “이 시조집은 1950년대 제주판 「농가월령가」로 보리․메밀․고구마 등을 파종하여 거름 주고 김을 매고 수확하기까지 농사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아 대상과 분리되지 않은 삶 속에서 희망을 키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보면 아쉬움이 여전합니다. 모자란 부분은 고향 후배들에게 남겨둘 수밖에 없지요.
박희정 : 한 곳에 몰입하며 고유의 서정을 찾아나서는 그 열정! 아무도 따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매사에 독특한 발상으로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삶을 사시는 그 모습! 존경의 대상이십니다. 또한 선생님의 독서법은 독특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잡다한 핑계 그만 대고, 하루 한 페이지 읽기, 하루 한 줄 쓰기, 하루 한 번 하늘보기를 3년만 계속해보라.”는 체험의 말씀은, 글쓰기에 마음을 둔 모든 분들이 새겨들어야 할 경구입니다. 독서, 글쓰기, 강의 등을 통해서도 독서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하시지요?
고정국 : 글쓰기 40년, 시조 경력 25년을 돌아보면서 아직도 크게 부족한 스스로를 느낍니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늘 변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새롭게 보고자 하는 욕구로 내 글쓰기는 잠 설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강의 첫 시간엔 주로 작가정신을 강조합니다. 강의실 칠판에다 비석하나를 그려놓고 그 비석에 <정의> <진실> <사랑>을 써넣습니다. 과연 당신의 정신이 <정의> <진실> <사랑>에 가까워지려고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수강생들에게 묻습니다. 섣부른 이론이나 기교보다도 작가로서 근본부터 갖추라는 권고입니다.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권하는 필독 네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자연> <고전> <세상> <자아> 읽기지요. 힘든 작업이지만 이 과정을 거쳤을 때 비로소 사고의 절름발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읽는 책이야말로 당신 의식을 잠 깨우는 기상나팔인가, 의식을 잠재우는 자장가인가 확인해보라”고 충고합니다.
제가 한때 한림읍 금악리에 작업실을 두었을 때, 금악오름을 1년에 180회 넘게 올랐던 일이 있습니다. 8년 전 35년 넘게 피워온 담배를 끊으면서 오름에 꾸준히 올랐고 그때 붓글씨를 시작했습니다. 동양고전 50권 필사를 목표로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성계의 정적 정도전이 하루 반쪽씩 읽었다는『맹자』를 세 번 옮겨 쓰다 보니 어느새 맹자는 나의 스승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왕 시작한 붓글씨 훈련 중에 천자문 100필을 목표로 지금 제30필째를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는 독서법은 “필독서 100권을 선정하라. 그리고 이 필독서를 반드시 3번 반복해 읽어라”고 주문합니다. 제가 필독서 100권을 정하는 기간만도 10년이 걸렸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한 독서태도야말로 정의, 진실, 사랑에 가까워지는 기본학습이라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편의 작품을 완성해놓고는 그 작품을 향해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라는 매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산산조각 나기 위해 만 리 길을 달려온 파도
그 파도 기다리다 제가 먼저 부서져버린
북제주 바닷가 쪽엔
그런 것들만
모여서 산다.
기다림 뉘우침 또는 안타까움 따위의
명사형 바위들이 추억의 형상을 하고
앉은 채 나이만 먹는
그런 것들만
모여서 산다.
속은 게지, 꿈엔 정녕 뿌리가 없었던 것을!
이 기나긴 비수기의 파도에게 전해 듣는
겨울철 내 가슴에도
그런 것들만
모여서
산다.
-「꿈 또는 나이 듦에 대하여」전문
박희정 : 독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순간입니다. 저도 학생들과 책 읽고 이야기 나누고 글쓰는 일을 하고 있지만 좀 힘들 때도 많거든요. 선생님과 더불어 책 이야기를 하는 구성원들은 많이 긴장하겠어요(웃음^*^) 그런데 선생님은 문인들과 어울리기를 즐기시지는 않으시는지요.
고정국 : 사람들이, 특히 시인들이 나를 두고 까다롭고 편치 않다고 하는데, 아직도 사람이 덜돼서 그런가 봅니다. 요즘 수명이 짧은 단어가 있지요. 바로 인기, 유행, 권력이라는 허상입니다. 그곳 취향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뿐, 일부러 사람을 피한 적은 없습니다. 정의, 진실, 사랑에 다가가려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리를 걸어서라도 찾아 나선다는 마음가짐임엔 변함이 없구요.
나이 드니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리하여, 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갑니다. 혼자 행동하고 생각할 때 즐겁습니다. 또한 저의 산문에 주로 등장하는 새, 우럭, 오징어, 모기, 파리 등과의 대화는 어느 한순간을 포착한 이야기지만 자연 가까이에는 그런 미물들이 천지이지요.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에 나타난 이야기도 여린 식물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꼼꼼히 바라본 날들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롭지 않고 어떻게 시를 쓴다고 할 수 있나요. 그래서 더 외로워지고 싶습니다.
박희정 : 선생님은 혼자 계셔도 혼자가 아닌 분입니다. 곁에 있는 자연과 벗이 되고 사람과 벗이 (언젠가 제게 시집을 보내주시면서 ‘제주 친구’라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 걸요) 되고, 또한 책의 아우 또는 형님이 되어 “독서는 남이 닦아놓은 길을 가는 것이고, 쓰기는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내가 새롭게 길을 내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전해주셨지요.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덧붙여주세요.
고정국 : 저는 솔직히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보다 듣고 싶은 말이 더 많습니다.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공포는 다름 아닌 독자의 침묵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지요. 가끔씩 독자들이 우리 글 쓰는 사람들보다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의식이 훨씬 깊고 앞서 있는 경우를 봅니다.
세 차례 시집을 내도
독자들은 침묵했다.
네 번째도 등을 돌린
이 땅 풀꽃이 야속도 하여
붓 대신 무릎을 꺾고
꽃 앞에서
울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붓꽃」이라는 졸시 한편으로 대신할게요.
한 작품을 가지고 3년 동안 퇴고를 거듭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30초에 작품을 쓰고 또 제목을 다느라 3년이 걸리기도 한다는 고정국 시인의 보법은 독특하다. 파리를 차에 태우고 제주 시내까지 동행하면서 모 기관에서 보낸 도청용 로봇파리냐고 능청을 부리던 일, 생선가게에서 반찬용으로 사온 우럭형제와의 별난 대화, 별꽃, 꿀풀꽃과 주고받는 가상의 이야기들은 통쾌하기 그지없다. 어디 그뿐일까, 만성골수염, 감염, 복막염, 폐농양 등 이승과 저승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흩어지지 않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적 같은 날들, 뜻밖의 화염으로 엄청난 화상을 입은 채로 주치의에게 “이 손으로 글만 쓰게 해달라”며 간청했다는 사실! 고정국 시인은 운명처럼 가난과 병마와 화상을 이겨내고 당당히 제주의 시인, 아니 이 시대의 시인으로 거듭났다.
그는 하늘을 믿는단다. 병마와 싸울 때 훌륭한 의사를 보내주신 하늘, 화상을 입었을 때 어느 알코올중독자의 손을 빌려 65% 3도화상인 전신에다 소주병을 부어주시던 하늘, 5백년 간 늙은 팽나무의 모습으로 고향을 지키시다가 그토록 무식하고 가난한 시인을 그 자리에 세우고는 슬며시 그림자를 거두시던 하늘! 그래서 하늘은 고정국 시인의 백그라운드다.
이번 인터뷰 때도 그랬다. 한참 운전 하다가 길옆에 차를 세우고는 길 가운데 나뒹굴고 있는 커다란 돌멩이를 옆으로 치우는 것이 아닌가. 그게 하늘과의 약속이란다. 제주 오일장에서 한약재 장사하시는 팔순 할머니의 품목이름을 써놓은 특급닭발 글씨를 보고 감동하는 시인, 8년 붓글씨를 통해 지속성의 위대함을 눈치 챘던 시인, 한 권 분량의 독서에서 열 권 분량의 제 무식을 확인하는 시인, 묵묵히 한 길을 꾸준히 가는 사람들이 가장 존경스럽다고 하시는 시인, 시인들이 보내온 시집들을 10권씩 구입하여 문학후배들에게 선물하는 시인, 개인의 허물은 용서하고 덮어줄 줄 알고, 공동체의 허물은 가차 없이 까발릴 줄 알아야 한다고 성토하는 시인, ‘가족농사, 밭농사, 자기농사’라며 인생 삼농주의를 강조하는 시인, 아픔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기쁨도 따라온다는 시인, 세상에 가장 맛있는 반찬이 자화자찬이라는 시인, 여전히 고향의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시인!
고정국 시인은 정녕 시대의 파수꾼으로 시대의 아픔을 노래할 것이다. 천천히…바르게…끝까지……
박희정
2002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제 4회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 시집 『길은 다시 반전이다』
-계간 《나래시조》2011년 봄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첫댓글 어제 한번 읽고 오늘도 읽어봅니다..인터뷰하는 사람도 상당히 공부를 해야만 상대에게서 진수를 뽑아낸다는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선생님께서 위상이 높아지시니 저희도 으쓱해집니다...ㅎㅎ
수업시간에 읽었는데 맨마지막 구절에선 닭살이 돋았다는^^ 덩달아 으쓱으쓱!!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