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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BA Misses Maurice Lucas
November 3, 2010
By Roy S. Johnson (ESPN)
Translated by Doctor J
이것부터 확실히 해두겠습니다. 저는 폭력을 미화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NBA는 물론, 그 어떤 스포츠라 할 지라도 폭력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폭력은 성숙하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이죠. 제 십대 아이도 자기가 경기 중에 펀치를 휘두르는 순간 영구히 유니폼을 벗어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모리스 루카스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포틀랜드 블레이저스의 일원으로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프로 커리어에 걸쳐 올스타에 5회나 선정된 제 친구, 모리스 루카스가 지난 일요일(2010년 10월 31일)에 운명을 달리 했습니다. 방광암과 투병하기 시작한 지 몇 개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농구코트 위에서 항상 그래왔듯이, 루카스는 마치 로우포스트에서 상대방을 위협하듯 이 병마와 싸워 왔습니다. 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죠.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싸움이 다 이길 수 있는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며칠 전에 또 다른 친구녀석이 이렇게 한마디 하더군요. 루카스가 드디어 죽음을 선택했다고. 이것도 제겐 놀랍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친구를 보고 싶어하는 만큼이나, 농구라는 한 스포츠도 그를, 그리고 그와 같은 선수들을 그리워 할 겁니다.
농구의 진정한 터프가이들 말입니다.
괜히 센 척 하는 친구들 말고, 영화 속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터프가이들, 골대 밑에 위치한 페인트존을 자신의 구역인 양 목숨걸고 지키는 사나이들, 자기 구역으로 들어온 상대팀 선수들을 마치 자신의 부양가족으로부터 먹을 것을 훔쳐 달아나는 도둑들인 양 취급하며 싸우는 이들 말입니다. 이들은 자기 가슴을 땅땅 두드리며 져지나 들었다 놨다 하는 쇼를 하는 요즘 선수들과는 달리, 자신들의 힘으로써 조용히 경기를 장악했습니다.
현 리그엔 이 '집행자'(역주 - The Enforcer는 루카스의 선수시절 별명입니다. 경호원, 보디가드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루카스의 경우엔 '힘을 이용해 강제적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청부업자'란 뜻으로 쓰였습니다)들이 전무합니다. 완전히 멸종했습니다. 올드스쿨의 유산인 이 피지컬함과 터프함은 현 시대의 마케팅 전략에 의해, 그리고 소위 '안전'이라는 명목 하에 자리를 잃고 밀려나 버렸습니다.
이 루카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수많은 선수들 중 하나이자 현 블레이저스의 어시스턴트 코치인 벅 윌리암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리그가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재능이 많고 화려한 스타일의 선수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핸드체킹 룰을 도입하고, 피지컬한 요소들을 모두 없애버렸어요. 리그 차원에서 이렇게 하니까 몸싸움과 거친 수비로 팀원들을 보호하고 페인트존을 지켜 오던 루카스나 저같은 선수들이 다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무지하게 안타까운 일이죠.
현 NBA 리그를 National Ballet Association(미국 발레 협회)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런 의구심이 생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경기 자체가 너무 달라졌어요. 선수들도 그렇고요. 룰이 바뀌니까 이들도 바뀌는 거겠죠. 어쩌면 현 세대 자체가 자기들을 무시하지 말고 "존중"(Respect) 해주기를 원하는 세대여서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들이 타인에 의해 거칠게 다뤄지는 것은 절대로 용납못하는 Generation이니까요.
강력하고 터프한 수비로 88 대 87 정도의 파이널 스코어 밖에 못 만들던 그 옛날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가끔씩이라도 심한 파울을 당해 넘어진 선수가 자신을 가해(?)한 선수에게 달려들고 - 마치 자기 어머니 욕을 한 불량배와 싸우듯이 말이죠 - 경기에서 두 선수 모두 퇴장당하는... 뭐 그런 모습같은 게 조금은 그립습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조차도 요즘 리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마치 놀이터같은 공간이 되었을 것이라 말한 적이 있죠. USA Today's Game Hunters Blog와의 인터뷰에서 조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 리그의 룰에 맞춰 농구를 한다면... 분명히 제가 파울아웃도 많이 당했을 것이고, 또한 자유투라인에도 자주 섰을 것 같습니다. 100득점도 가능했을 것 같아요."
페인트존에 들어오는 상대팀 선수들과 싸우고 그들을 밀쳐내는 플레이 등을 사랑했고 낙으로 삼았으며, 심지어 팀원들에게도 무서웠고, 생김새 자체도 삭막했던 모리스 루카스. 요즘은 이런 위협적인 외모와 제스쳐만 보여도 리그로부터 벌금을 부여받기 십상이죠.
루카스는 완전히 다른 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선수들끼리 주먹을 교환한 것이 팀들 간의 패싸움, 심지어는 관중들까지 연루가 되며 경기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리는 요즘과는 달리... 선수들끼리 일대일로 붙어 싸운 후 거기서 싸움이 정리가 되던 그런 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감독이 선수들의 다리에 매달려 조잡한 몸싸움을 말리는 요즘과는 달리... 아예 감독이 자기 선수가 상대팀 선수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것을 막으려다 실패해 버리던 그러한 시대의 산물이 바로 루카스였습니다.
루카스에게 있어서, 주먹을 쓴다는 것은 곧 병법(兵法)이었습니다. 주먹을 맞은 선수보다 자기가 더 세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편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많은 분들이 루카스가 어떻게 '집행자'(The Enforcer')로 불리우게 됐는 지를 잘 모르시더군요. 현재 농구전문 프리랜서 컬럼니스트로 일하는 스티브 존스 씨가 ABA 세인트루이스 스피릿 팀의 일원이었을 1974년에 마퀫 대학을 졸업한 모리스 루카스가 팀에 드래프트 됐습니다. 루카스와 한 팀이 된 스티브 존스 씨가 이렇게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켄터키 팀과 경기를 할 때였어요. 루카스와 아티스 길모어 (7-2, 240파운드, 당시의 샤킬 오닐 같았던 선수) 사이에 싸움이 붙었습니다. 굉장했어요. 이 둘이 코트 정중앙에서 마치 복서들처럼 으르렁 댔습니다. 둘 중 어느 누구도 사실 상대와 싸우고 싶어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어요. 그러던 중 아티스 길모어가 그 큰 몸으로 루카스를 반대편 골대 밑까지 밀어 붙였죠. 그 순간, 루카스가 이렇게 생각한 것 같았어요, '어, 링 밖으로까지 밀려나면 안 되는데?' 바로 그 순간, 루카스의 주먹이 섬광과 같이 길모어의 안면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길모어가 마치 큰 고목이 쓰러지듯 코트 바닥에 널부러졌지요."
"바로 그 날 그 순간부터 루카스에게 터프가이란 딱지가 붙어 그를 항상 따라 다녔습니다. 루카스는 움직이는 모든 것을 때렸어요. 그에게 스크린을 걸었다고요? 그러다가 어디 한 방 맞지요. 그가 지키는 페인트존에 들어가셨다고요? 신체 어디가 부러지셨을 겁니다."
"켄터키 전 이후에 우리 팀이 뉴욕 넷츠와 경기를 가질 때였어요. 넷츠의 줄리어스 어빙이 골밑 돌파를 하다가 루카스에게 얻어 맞았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었던 어빙이 눈을 크게 뜨며, '야, 루크, 너 대체 왜 그래?' 라며 물었죠. 그러자 루카스가 '이리로 들어오지 말라고 아까 말했잖아' 라며 소리를 지르더군요."
"루카스는 상대선수의 가슴에 주먹을 자주 날리곤 했습니다.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기도 했고요. 모두가 두려워한 선수였지요."
"1976년에 포틀랜드가 그를 영입했을 때, 그는 이미 상대선수들에게 위협을 준다는 측면에 있어서 도가 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의 그런 모습을 블레이저스는 필요로 했습니다."
벅 윌리암스는 이러한 모리스 루카스의 경기를 자신의 루키시절에 가까이서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루카스와 윌리암스가 한 팀 소속이었음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 둘이 정규시즌 때 같이 뛰어보진 못 했으니까요. 1981-82 정규시즌의 개막전이 열리기 하루 전날에 넷츠가 루카스를 닉스의 포인트가드 레이 윌리암스와 트레이드를 한 것입니다.
벅 윌리암스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루카스는 굉장히 영리한 선수였어요. 자신의 사이즈를 잘 이용했지요. 또한 자신의 마크맨이 어떤 단점들이 있는 지를 재빨리 간파해서 그 부분들을 집중공략했습니다. 팔꿈치를 휘둘렀다고 상대팀 선수가 움찔하기라도 했다면, 루카스는 계속해서 팔꿈치를 휘두르며 저돌적으로 달려들었을 겁니다. 상대팀 선수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루카스에게 먼저 폭력을 행사할 때까지..."
"페인트존 안에 서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루카스의 적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루카스는 적을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선수... 현 리그에 있습니까? 정신을 바짝 차린 론 아테스트라면 아마... 비슷할까요?
이에 대해 스티브 존스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아테스트는 루카스처럼 머리를 쓰고 계산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루카스는 자기가 무엇을 왜 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던 선수였어요. 아테스트의 경우는... 이 선수의 멘탈이 언제 얼마나 가다가 꺼질 지를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루카스는 자신의 마크맨이 완전히 그로기 상태가 될 때까지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불독같은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루카스가 이런 상대 선수들과의 관계를 사적인 자리로까지 이어간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가 펀치를 한 방 먹인 선수라 할 지라도, 루카스는 그 선수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곤 했습니다. 악수도 했고요. 이는 1977년 파이널에서 그에게 한 방 먹었던 대럴 도킨스(역주 - 루카스보다도 35파운드가 더 나갔던 운동능력 최상급의 괴물이었습니다)하고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루카스의 블레이저스가 파이널에서 Dr. J의 식서스에게 2 대 0의 시리즈 리드를 허용하기 일보직전의 순간이었습니다. 블레이저스의 바비 그로스와 도킨스가 리바운드 쟁탈과정에서 몸싸움이 붙었죠. 그로스가 도킨스에게 욕을 하며 싸우려고 하자, 도킨스가 그로스에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불행히도 그 주먹은 그로스를 말리고 있던 도킨스의 팀원 덕 콜린스(현 식서스 감독)의 턱에 명중했습니다.
바로 이 때였습니다. 도킨스가 자신의 팀원을 때렸다고 판단한 루카스가 코트 반대쪽에서 늑달같이 달려와 도킨스의 뒷통수를 가격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이 경기에서 퇴장을 당했습니다. 루카스가 회고하길,,, "그건 싸움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이 날린 주먹 중에 제대로 명중된 게 하나도 없었는데요."
이 전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틀랜드로 장소를 옮겨 벌어진 파이널 3차전. 경기 시작 전에 앞서 선수들 소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도킨스의 이름이 호명되던 순간, 포틀랜드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습니다. 이제 홈팀인 블레이저스 선수들이 소개될 때였습니다. 루카스의 이름이 소개되는 순간, 루카스가 아주 기이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팀원들이 기다리던 센터코트로 달려가질 않고, 식서스의 벤치로 달려간 것입니다. 모두가 숨죽이고 긴장한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그는 도킨스의 손을 잡으며 그와 악수를 했습니다.
"도킨스의 손을 꽉 잡아 주었습니다. 좋게 지내자고..." 루카스의 표현입니다.
"그 악수가 끝난 후... 도킨스의 멘탈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루카스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벅 윌리암스도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모리스 루카스... 그는 파이터가 아니고 집행자였습니다.
사실 그는 싸움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가 어린 시절에 피츠버그에서 복서로서 큰 것은 사실입니다만... 복싱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스포츠임을 인지한 십대 때에 복서로서의 길을 과감히 포기했죠. 지난 봄, 루카스가 The Oregonian 지에 회고한 내용입니다 - "저보다 훨씬 큰 아이하고 복싱 매치를 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매치가 시각되기 전, 그 아이가 자기의 머리를 마구 때리면서 저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데... 자존심이고 뭐고 그냥 그런 스포츠가 하기 싫어지더군요."
재미있지요? 루카스 자신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팀 선수들의 심리를 역이용했다는 사실이 말이죠.
스티브 존스의 말입니다, "루카스도 그랬어요. 상대팀을 툭 한 번 쳐보고 그 다음 반응을 살피는 거죠. 여기서 상대팀 선수가 조금이라도 겁먹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면, 거기서부터 그 선수는 루카스에게 먹히는 겁니다. 단순히 그 경기만이 아니라 커리어 전체에 걸쳐서 루카스의 밥이 되는 거죠."
루카스는 어릴 때부터 복싱 링에서 배웠던 싸움의 법칙과 심리전을 기가 막히게 농구에 적용시켰던 것입니다.
코트 위에서 만날 싸운 것은 아니지만, 상대 선수들이 위협받을 만큼은 싸웠던 루카스... The Oregonian 지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말하길, 자기가 지금 뛰었다면 아마 벌금내느라 집안 살림이 거덜났을 거라며 웃었습니다.
매릴랜드 대학의 터프가이, 벅 윌리암스가 리그에 입성했을 당시 모리스 루카스는 겨우 29세에 불과했었습니다. 아직 선수로서 전성기였습니다. 하지만 루카스는 왜 벅 윌리암스가 넷츠에 영입됐는지 잘 간파하고 있었죠. 결국 같은 포지션에서 자기를 밀어내기 위한 선수가 아니었겠습니까? (역주 - 칼로스 부저와 폴 밀샙이 한 팀에서 공존할 수 없듯이 말이죠) 그런데도, 윌리암스의 말을 빌리자면, 루카스는 스스로 윌리암스의 멘토가 되어 성심성의껏 윌리암스에게 프로 기술의 모든 것을 전수해줬다고 합니다.
"루카스가 누구입니까? 리그 최고 중의 하나인 선수가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같은 포지션에서 뛸 나이어린 제가 팀에 드래프트 됐는데도 조금도 불쾌해 하지 않고 저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게 루카스란 한 인간의 참모습입니다. 후배들, 약자들, 여자들을 먼저 생각하던 이타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루키시즌에 올스타에 선정된 것도 다 그의 공입니다."
물론, 루키시즌에 올스타에 선정된다는 것이 공짜로 되는 것은 아니죠. 갈비뼈 통증 정도는 지불을 해야.....
윌리암스가 크게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루카스와 연습하다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도 때려서. 정말 연습에 오기가 싫더군요."
코치들이 선정한 1982년 동부 올스타들 - 맨 왼쪽에 루키, 벅 윌리암스가 보이고, 네 번째에 아티스 길모어도 보입니다.
루카스가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 된 후, 그는 최소한 코트 밖에선 자기가 싸움을 오히려 피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음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뉴욕 타임즈 지의 리포터였던 시절입니다. 닉스 팀의 전용기에 탑승했던 저에게 닉스의 또 다른 한 선수가 시비를 걸어 왔습니다. 자기 자리에 제가 앉아 있다고 하면서...
제가 가만 있으니까 그 선수가 제게 욕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상대가 덩치가 큰 농구선수였지만 저도 성깔이 좀 있는 사람이었는지라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저를 끌어안으며 저를 번쩍 들어 안아서 창문 쪽 시트에 앉혔습니다. 모리스 루카스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복도 쪽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까 그 개같은(?) 농구선수와 제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은 것이죠. 그리고 저를 그윽히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오늘 저녁식사는 뭘로 할까요? 닭고기? 아니면 생선?"
이런 루카스를 겁줬던 선수가 대체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스티브 존스가 주저없이 대답했습니다. "커밋 워싱턴".
"커밋 워싱턴의 평판이 사실 루카스보다 더 악명이 높았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글쎄요, 커밋 워싱턴이 진짜 싸움을 잘하는 선수였다면, 루카스는 주먹 한 방으로 모든 걸 평정한 선수였다고나 할까요? 하하하."
농구란 스포츠가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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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리스 루카스에 대한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오랫동안 차일피일 미루던 중, 최근 그의 사망과 때를 맞추어 나온 이 글을 우연히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쓰고자 했던 내용과 싱크로율까지 너무나도 똑같아서 차라리 번역을 하는게 낫다고 판단되어 번역을 해보았습니다.
故 모리스 루카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멋진 선수이고 ,멋진 남자 인듯 싶습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신이 안정적인 로드맨이라 봐도 될런지요?
로드맨의 거머리같은 근성과 영악함에 찰스 오클리의 사이즈, 주먹 등을 합치면 루카스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저두 70년대~90년대초반까지 이런 터프한 농구가 그립습니다.. 우리나라도 80년대는 장난 아니었는데.. 삼성하구 현대하구 붙으면 거의 대부분 2시간이상 늘어져서 정규방송 관계로 끝까지 못보던 기억이...
모리스 루카스의 죽음은 포틀랜드에게도 큰 슬픔이었습니다. 번역 감사드리고,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신, 루카스의 어시스턴트 코치 자리를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벅 윌리암스가 물려 받았죠. 이 둘은 뉴저지 넷츠에서 한솥밥을 먹은 것부터 나중에 포틀랜드 팀에서 뛰었던 것까지 비슷한 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젠 그 구단에서 코칭 직을 맡은 것까지도 같네요.
칼럼을 읽어보니깐 경기스타일이 터프 그 자체인것이 이번 시즌부터 개정된 테크니컬 파울 룰로는 거의 매경기 퇴장당했을듯 하군요; 점점 리그에서 터프가이들이 사라지는것 같습니다. 전 글 위에 Translated by Doctor J 를 못보고 칼럼 초반에 '제 친구, 모리스 루카스'라고 써있어서 Doctor J님이 NBA 레전드 친구분도 계시구나 했네요 ㅋ;;
모리스 루카스는 아니지만, 88년도 NBA 리바운드왕이었던 마이클 케이지와는 종종 이메일을 주고 받는 사이입니다. 서로 나이도 비슷하고요.^^
우와;; 역시 ㅎㅎㄷ ㅋ
OMG...깜짝 놀랬는데요^^; 언제나 좋은글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이런 글 많이 읽을 수 있었음 합니다~
오 철인 마이클 케이지와 지인이시라니 신기하고 부럽습니다^^
타계하신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루즈한 현 리그의 룰이 오히려 부상자들이 더 속출하게 만드는거 같습니다. 오히려 더 화려하고 그런 동작들을 많이 하다보니 다치고 그런거같네요. 차라리 몸싸움이 치열하다면 어쩌면 기본기 위주의 농구게임이 벌어지겠지만 재미는 없어도 부상은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타박상같은 잔부상은 더 많겠지만요 ㅎㅎ
1952년생이니 우리나이로 59세가 되겠군요.
독특한 생각이시네요. 화려한 플레이를 시도하다 부상을 당하는 것 같으니 그런 플레이를 시도조차 못하도록 게임이 터프해야 한다는 말씀같은데
그렇게 한다면 레이업하면서 수비수에게 무릎을 들이대고 박스아웃할 때는 팔꿈치로 복부를 가격하겠지요. 덩크를 하려고 점프를 하면 허리춤을 끌어안고요.
제 생각에는 훨씬 큰 부상이 많을 것 같습니다. ㅎㅎ
No.33Pip님의 생각은... 요즘 농구에서 스윙맨들이 돌파나 체공동작을 이용한 레이업이나 덩크들을 많이 시도하게 되다 보니, 그 와중에 무릎이나 발목, 허리 등에 무리가 많이 가는 부상을 입는 것 같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 이 분 돌아가셨군요.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잘봤습니다.
이런 칼럼글이 요즘 보고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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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Dr.J형님 근데 모리스 루카스와 커밋 워싱턴 사이에 무슨 상성이라도...? 혹시 아시는 스토리 있습니까?
꽤 오래 전에 SLAM 지에서 루카스를 인터뷰했는데, 루카스가 똑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느껴 본 선수가 있었냐고... 그 때 루카스는 솔직히 두어 명 정도 있었지만 밝히기는 싫다고 얘기했었죠. 제 생각엔 루카스가 두려움을 느꼈을 만한 선수들로 '로니 셸튼'과 '커밋 워싱턴' 정도가 떠오르는데, 그 외에 정확히 아는 바는 없습니다. 루카스와 워싱턴 사이에 별 다른 사건은 없었고요. 저 얘기도 루카스가 한 얘기가 아니고, 스티브 존스가 한 얘기니까 어느 정도까지 신빙성이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워싱턴이 싸움을 정말 잘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잘 봤습니다...왠지 숙연해지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좀 폭력으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했다는게(한대친것도 폭력은폭력이니까요..) 좀 별로긴하네요...
요즘세대인 저로써는 좀 별로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