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산업도로를 건너 분황사 동편 제사공장 앞에 돌무더기가 흩어진 곳으로 간다. 이곳은 일인학자인 대판금태랑(大坂金太郞)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그는 이곳에서 도림(道林)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와편을 발견했다고 조사보고서에 기록하고 이곳이 경문왕대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의 설화로 유명한 도림사터로 추정하였다.
이 절터는 현재까지 미발굴 상태인데 도림사(道林寺)는 현재의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 부근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곳 폐사지는 도림사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현재 남아있는 탑의 부재는 현재까지 발견된 어떤 탑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8구의 인왕상 중에서 2구는 경주박물관 제2별관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4구는 현재의 위치에 있으며 2구는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인왕상의 모습이 분황사의 그것과 조각 수법이나 규모에서 닮은 점이 많고 역시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사용된 모전석(謨塼石)과 같은 석재가 많이 발견되어 모전석탑으로도 보여지지만 일반형 석탑의 지붕돌과 똑 같은 지붕돌이 발견되고 있어 어떤 형태의 탑이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가 없는 실정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추정해 볼 수 있는 탑의 형태는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두 개의 쌍탑이 있었을 가능성이다. 그중 하나는 분황사 모전석탑과 같은 모전석탑과 일반형 석탑이 동서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을 가능성이다.
또 하나는 단탑의 형태로 기단부와 1층은 분황사와 같이 모전석탑의 형태를 가지고 사방에 인왕상이 서있으며, 2층 이상은 일반형 석탑의 부재로 축조한 탑으로 볼 수 있는데, 만약 이 같은 형태의 탑이었다면 전혀 전례가 없는 독특한 형태이다.
아직 발굴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상태이다. 일반형 석탑 형태의 지붕돌 부재에는 5단의 층급받침이 조각돼있으며 인왕상의 조각에 힘과 볼륨감이 넘치고 있기 때문에 8세기의 조각으로 보이며 사찰도 마찬가지로 750년을 전후한 시기의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1층에 독립된 인왕상이 조각돼 있는 경우는 분황사와 여기 두 곳뿐이며 이후에 장항리절터의 오층석탑이나 간월사 석탑 등에서는 독립된 상은 아니고 몸돌에 부조로 조각한 형태로 나타난다.
길은 다시 낭산의 북쪽들판으로 이어진다. 들판 가운데로 나있는 농로를 따라 걸어가면 마을로 들어가는 시멘트 길이 나오고 길 왼편에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고인돌 한기가 외로이 서서 답사객을 맞이한다. 오른쪽으로 휘어진 길을 돌아서면 들판과 산자락이 만나는 곳에 듬직한 삼층석탑이 서 있으니 이곳이 바로 황복사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