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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월출산(月出山. 809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4월26일 쾌청하고 향기로운 날씨다. 온 누리에 녹색의 물결로 뒤 덮이니~ 天地는 녹향(綠香)으로 충만하고, 상춘객(賞春客)들의 옷 차림은 가볍고도 화려하여서 완연(宛然)한 봄을 느낌니다.
칠곡IC를 최종 출발하여 현풍휴게소(玄風休憩所)에서 조식(朝食)을 할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넓은 광장에는 차량들로 넘쳐나고 행락객들은 어지럽게 오고 가시니 혼돈(混沌)속에 질서(秩序)를 느끼게 합니다.
동(東)으로는 비슬산(琵瑟山)의 연맥(連脈)들이 힘차게 달리고~ 서남(西南)으로는 대하(大河)의 낙동강이 유장(悠長)하게 휘감아 흐르시니, 과시(果是)! 하늘이 나리신 땅이요, 조물(造物)의 작품이로다!
광장 한켠에는 1977년 12월 17일에 새운 “구마고속도로 준공 기념탑”이 우뚝하게 세워져 있고, 탑신(塔身)에는 “번영과 평화의 길”이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 새겨져 있으며, 그 너머로 언덕 아래 숲속 강가에는 몇채의 한옥들이 고즈넉이 잠들어 있어 침묵(沈黙)속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風靡)한 영웅(英雄)은 가셨지만 그가 지은 “새마을 노래”는 아직도 우리들의 귓 가에 쟁쟁 합니다 그려!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하 생략)
차는 신나게 달려 ‘사천휴게소’와 ‘보성녹차휴게소’에 잠시 들려 휴식하고는 줄곧 내달아 영암군으로 들어서니 저 만큼 신령스런 월출산의 암봉(巖峰)들이 눈앞에 다가오는데~ 오래 전(2003년 4월)에 왔을 때 보다 녹색의 기운이 더 많아 져서~ 서광(瑞光)의 빛이 반감되는 느낌이 듬니다.
불가(佛家)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시드니, 대자연도 많은 변화를 하고 있슴니다 그려! 다만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인져! 월출산 소공원에 도착하니 시계는 거의 12시가 다 되어간다.
작은 동산의 거대한 ‘月出山’입석(立石)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촬영을 마치고 모두들 줄지어 오르시니 어찌나 대열이 긴지 끝간데를 모르겠으며, 선두에 능선님, 중간에 윤상복님, 후미에 필자가 진행을 돕슴니다.
‘천황사지구 탐방로입구’ 옆으로는 전에 없던 소공원(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몇 걸음을 오르니 ‘영암아리랑 노래비’와 ‘윤선도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영암아리랑은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과 같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로서 1972년 ‘백암 이환의가 작사, 고봉산이 작곡’하여 가수 하춘화가 17살 때 불러 대중의 사랑을 받는 불후의 명곡이다.
그 옆으로는 ‘고산 윤선도’가 1659년 당쟁에 휘말려 보길도로 유배 가던 길에 읊조린 시(詩)로서 월출산을 왕에 빗대고, 안개를 간신으로 비유하여 지은 내용이다.(산중신곡山中新曲 中 朝霧謠조무요)
다시 몇 걸음을 더 오르니 거대한 바위가 있는데 그 앞에는 제단(祭壇)이 조성되어 있으며, “월출산 바우제”를 모시는 곳으로 본래는 천황봉 옆의 “소사지(小祀址)”에서 모시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와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연(連)하여 천황사(天皇寺)가 자리하고 있는데 근래에 새로 조성된 절집이라 고풍어린 멋은 없으며, 안내문에 신라 진평왕 연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천황사’라 했다고도 하고, 또 헌강왕 연간에 도선국사가 이를 중창하였다고 한다.
천황사에 대한 기록은 대각국사문헌집(大覺國師文獻集)에 보월산 사자사(寶月山 獅子寺)라는 기록이 있으며, 1995년 1차 발굴조사에서 사자사(獅子寺)라는 기와 조각이 나와 확인되었다.
인하여 2001년 12월 13일 현 사자사목탑지(獅子寺木塔址)를 전남지방기념물 제197호로 지정 되었으며, 폐허됀 옛 절터에 2004년 정각스님이 새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도량(道場)내의 전각(殿閣)은 단촐하여 대웅전을 비롯하여 나한전(羅漢殿), 요사채가 전부이고, 대웅전(大雄殿) 내부에는 ‘석조비로자나불(石造毘盧遮那佛)’이 모셔져 있어 보통은 현판을 대적광전(大寂光殿)이나 비로전(毘盧殿)으로 하는데 이 곳은 대웅전으로 되어있다.
아름다운 사자봉(獅子峰)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오르니 서부장님을 비롯하여 그 일행 다섯분이 오르시고, 뒤이어서 황고문님, 박태옥님, 윤상복님, 행복님, 김명숙님 일행 등 많은 분들을 연달아 상봉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월출산의 모습은 아름다우나, 산행길로 접어드니 험한 바위들이 즐비하고 등산로도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또 등산로 좌우 수목(樹木)에는 가끔씩 명찰을 달아 놓아 수종(樹種)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월출산(月出山)은 ‘영암의 진산(鎭山)이요 얼굴이라’드니,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됀 이래로 많은 투자를 하여서 곳 곳에 정성이 깃들어 있으며, 등산로에도 많은 공사를 진행하여 경사가 심한 곳은 철 계단이며, 그 바닥은 폐 타이어를 잘게 썰어서 깔아 놓아 동절기 산행이나 우천시(雨天時)에 안전을 기하도록 잘 정비가 되어 있슴니다.
당국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향기로운 숲사이로 걷는 재미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님니다. 수목(樹木)의 종류도 대구와는 많은 차이가 있어서 동백이 지천으로 널려 있으며, 드물게도 ‘정열의 여인’이라 불리는 동백꽃이 방긋~ 방긋~ 낯선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 주심니다.
얼마를 올랐을까? 한 고개 한 고비마다 모두들 헉~ 헉~ 거리며 잘도 걸으신다. 그럭 저럭 ‘구름다리(출렁다리)’ 근처에 이르니 경사는 더욱 심하여 모두들 쩔~ 쩔~ 맵니다. 쉬다 오르고 오르다 쉬면서, 계곡과 계곡 사이를 철다리로 연결 해 놓은 것을 올려다 보니 그저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한 계단 한 계단 높이 오를수록 시야도 넓어져서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고, 모든 능선들이 숲속에 바위가 있는 山기슭과는 달리 첩첩이 포개진 바위 틈새 틈새로 나무들이 서 있어 그 골기(骨氣)와 강기(剛氣)가 대단하게 와 닿슴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월출산에는 흔들리는 바위 3개가 있었는데, 임진란 당시에 원병을 왔던 명나라 장수들이 산의 정기를 끊는다면서 그 바위를 모두 밀어뜨려서 떨어졌는데, 그 중 바위 하나가 도로 제자리에 올라가 앉아서 신령스럽다 하여 오늘날 “영암(靈巖)”이라 했다고 한다.
구름다리에 도착하니 모두들 사진 찍기에 분주하시고 외국인들도 몇 몇이 보인다. 함께 오른 김광남님에게 먼저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얼마를 쉬다가 남산님들이 도착하시는데로 차례 차례 사진촬영을 해 드림니다.
‘준공 표지판’에는 2005년 10월 20일~2006년 5월 1일까지로 되어 있으며, 총연장이 54m, 교폭이 1.8m, 동시 통과인원이 200인, 설계 및 시공 참여업체가 6개 회사에서 참여하였다. 하중이 제곱미터 당 0.35ton이니(1.8m * 54m * 0.35ton = 약 34ton)의 무개를 매달아 놓았으니 실로 엄청나다.
‘가히 신령스런 月出山에 가공(可恐)할 인간 예술품(藝術品)이로다!’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면서 다시 정상으로 진행합니다. 오늘 따라 날씨도 화창하고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여 온 몸에 땀이 나는데, 산들 산~들~ 불어오는 山바람에 어느사이 기분도 상쾌합니다 그려!
20여 분을 진행 했을까? 시계는 벌써 13시 30분을 가르킨다. 모두들 시장타 하여 700여 고지 부근의 적당한 장소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을 드심니다. 시장하던 터라 밥맛이 꿀 맛입니다! 서로간에 맛나는 반찬들을 나눠 드시면서 후식으로 과일까지 드시니, 늘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고들 하신다.
그렇다! 살아서 건강한 몸으로 아름다운 조국의 강산을 내발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선자(禪者)는 “죽어도 좋고 살면 더 좋다!”라고 하시드니... 13년 만에 다시 와보는 월출산이 얼마나 좋은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다시 30여 분을 올랐을까? 눈앞에 통천문(通天門)이 보이는 곳에서 일행 중 한명(정정희님)이 심한 고통을 호소하여 윤상복대장님의 도움을 받으며, 여러차례 지압과 사혈침으로 응급처치를 해 드리니 한결 편하시단다.
그럭저럭 통천문을 통과하여 하늘에 떠 있는 천황봉(天皇峰) 정상에 도착하니 선착하신 많은 회원님들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단체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잠시 쉬면서 주위를 조망(眺望)합니다.
월출산(809m)은 호남정맥(湖南正脈)의 국사봉과 가지산 부근에서 서남으로 한 지맥이 뻗어나와 선왕산, 웅성산, 활성산을 거쳐 이곳 월출산에 이르고, 다시 그 잔여지맥은 도갑산, 별뫼산, 서기산, 두륜산, 달마산을 지나 사자봉(땅끝)에서 그 맥을 서남해 바다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땅끝기맥’이라 한다.
또 월출산은 금강산이나 설악산처럼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곳 천황봉에 이어서 구정봉, 향로봉, 발봉, 도갑봉 등 높은 바위봉우리들이 마치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장관을 이루고, 특히 구정봉(九井峰)에는 아홉 개의 바위홈이 파여져서 빗물이 고여 샘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큰 것은 지름이 3m에 깊이가 50cm나 된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정상에는 통일신라 때부터 천제(天祭)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으며, 1994년 목포대학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여 실제 제사용 그릇이 발견되었다 한다. 연하여 구정봉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거대한 ‘마애불(국보 제144호)’이 조성되어 있으며, 나말여초(羅末麗初)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아울러 신령스런 월출산에는 오고 간 인걸(人傑)도 많아서 영암군 성기마을 일대에는 백제시대 때 출생한 ‘왕인(王仁)박사’와 신라 말엽과 고려초에 활약한 ‘도선국사(道詵國師)’의 출생지라 하여 그 유적지와 도갑사가 있다.
특히 왕인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구전(口傳)만 되어 올뿐 그 기록은 없으며, 일본의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그 기록이 있는데, 생몰(生沒)년대가 정확치는 않으나 백제의 전성기인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 때의 학자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당시 일본왕이었던 오진왕(應神王)의 요청으로 논어 10권과 천자문 한권을 가지고 일본에가서 태자를 교육하고 학문을 보급한 공로가 커서 일본에서 더 존숭(尊崇)되고 있으며, 그의 무덤은 일본 오사카와 교토의 중간쯤에 있는 히라가타(杖方)에 있다.
연하여 도선국사(827~898)는 출생의 비밀이 또한 신비하여 그의 어머니가 강씨 또는 최씨라고도 하며, 하루는 강씨 처녀가 마을 근처 빨래터에서 물에 떠 있는 오이를 먹고 후에 낳았다고 전해온다.
인하여 몰래 대밭에다 갔다 버렸는데, 3일후에 모성애를 못이겨 다시 가보니 비둘기 떼들이 애기를 보호하고 있어 데려다 키웠다 한다. 하여 그 곳의 지명이 구림리(鳩林里)로 불리워지고 있다.
이 밖에도 그와 관련된 지명은 많아서 성기동, 최씨원, 도갑사, 구정봉 등이 있고, 15세 되는 해에 문수사(도갑사의 전신)로 출가하여 훗날 도갑사를 창건 하였다 하며, 이 후 고려 왕건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출생에 대한 예언과 전국에 비보사찰로 500여 사찰을 창건하고 오늘날 풍수지리의 비조(鼻祖)로 숭앙(崇仰)받고 있다.(이상 영암군지 참조)
아울러 월출산은 신라때는 월나산(月奈山), 고려때는 월생산(月生山), 조선조에 와서 월출산으로 불리워 졌다 하며, 매월당 김시습은 이 산을 두고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고 노래 했다. 수 수 만년의 역사 속에서 어찌 오고 간 인물들을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저 내 필력(筆力)이 둔한 것이 안타까울 뿐인저!
반(半) 공중(空中)에 우뚝 솟은 月出山이여
볼수록 아름답고 찬란하구나!
만학천봉(萬壑千峰)이 흐드러지게 웃으니
천하 만물들이 다 모인 듯 기이하고 신령스럽도다!
그대는 녹색으로 단장하니 아직도 청춘인데
이 몸은 덧 없는 세월속에 백발이라네!
다시 ‘바람재’를 향해 나아가니 경사가 완만하고 등산로도 한결 수월하다. 한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한 껏 여유를 부리면서 기이한 바위들을 살펴 봅니다. 돼지바위, 남근바위, 여근바위, 촛대바위, 거북바위, 사자바위, 매바위 등 지나온 여정(旅程)에서 셀 수 없이 많았슴니다.
30여 분을 걸어 ‘바람재’에서 서부장님과 박영하님의 일행분들과 윤상복님 등 7~8명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충분한 휴식을 한다음 ‘경포대계곡’으로 서둘러 하산을 합니다.
한 시간 여를 걸어 나렸을까? 물이 귀한 월출산에서 계곡의 물소리가 철~철~철~ 들리고, 등산로 주위로는 동백나무가 많이도 우거져 있다. 하산기점이 가까워 지니 한사람 두사람씩 개울에 손 발을 씻으며 산행의 여독(旅毒)을 씻어 날림니다.
그사이 정정희님 일행 4명은 먼저 하산하여 개울 물에 발을 담그고 도란 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웃고들 있다. 이제 기분이 좀 나으냐고 여쭈니~ “좋으시단다!” 춘(春) 4월의 녹향은 은은하게 코를 간지리고~ 철지난 벚꽃 시(詩) 한수가 떠 올라 몇구절만 옮겨 봅니다.
벚꽃 그늘 아래 잠시 한 생애를 벗어놓아 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다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쌀처럼 팽팽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중 략~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기철의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이라는 시입니다.)
단기 4348년(서기 2015년) 4월 26일
영암 월출산(月出山 809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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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 고문님 산행후기 올려주셔서 산행은 안했지만 덕분에 생생한 산행소식을 접하네요 너무잘보고갑니다 오월 정기산행때 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이경숙님! 그간 잘 계시는지요?
당일 함께 산행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장문의 후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5월 산행 때 뵙겠슴니다.
오를대는 힘이 들어서 대지만 또 등산을 왜 왔을까 하면서도...
산행 후기를 보니 많은 역사 공부를 하고 갑니다.
건강 할때 산에서 휴식을 하고 체력을 보충하는 유익한 시간이지요.
항상 수고하시는 고문님에게 감사 함을 전 합니다.
황고문님께서 다녀 가셨군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열심히 산행 하시길 바람니다.
박영하님(83), 서부장님(79) 그 일행분들 모두가 평균 76세라 합디다!
보잘 것 없는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긴장문의 산행후기쓰시느라 많은 수고하셨습니다.
영암 월출산의 역사공부 후일 남산에 좋은 사료가 될것 같습니다.
벽송님! 고맙슴니다.
졸문의 산행후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드림니다.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항상 노력하심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당일(4/26) 월출산 산행에 동참하신 모든분들(43명)에게 다시한번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진행에 수고하신 구회장님을 비롯하여 윤갑용총무님, 김미소총무님,
윤상복대장님, 박태두대장님, 능선운영위원장님 등에게도 감사를 드림니다.
연하여 황고문님, 김해진님의 사진자료들을 많이 활용한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모든님들!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소원성취 하시길 기원합니다.